현행 산업재해보상보험법상 업무상재해는 업무수행 중 그 업무에 기인해 발병한 질병을 의미한다. 대법원 판례(2005두13841 등)에 따르면 업무와 질병 사이에 인과관계가 있어야 하지만, 질병의 주된 발생원인이 업무수행과 직접적인 관계가 없더라도 적어도 업무상 과로나 스트레스가 질병의 주된 발병 원인에 겹쳐 질병을 유발 또는 악화시켰다면 그 사이에 인과관계가 있다고 본다. 또한 대법원은 업무와 질병과의 인과관계 유무를 해당 노동자의 건강과 신체조건을 기준으로 판단하고 있다.
대법원은 지난해 12월 당뇨병이 있었으나 장시간노동으로 인해 뇌경색이 발병한 노동자에 대해 업무상재해 판결을 내렸다.

4개월 동안 일주일밖에 못 쉬어

최아무개(발병당시 61세)씨는 2008년 3월 ㅎ중공업의 하청업체인 (주)ㅌ산업에 입사했다. 그는 인천 ㅎ중공업 조선소 부지 내에서 용접이 끝난 철판의 표면을 그라인더로 매끄럽게 가는 작업을 했다. 최씨는 입사 후 매일 오전 8시에 업무를 시작해 오후 5시까지 점심시간을 제외한 8시간을 근무했다. 연장근로를 할 때는 오후 9시까지 근무했다. 근로계약기간은 2008년 3월5일부터 2009년 3월4일까지로, 시급으로 7천639원을 받기로 했다. 연장근로·야간근로 등의 여러 수당이 포함된 금액이었다. 정당한 사유 없이 월 3회 이상 무단지각·외출·조퇴를 하거나 결근한 경우 회사가 최씨를 해고할 수 있었고, 정당한 사유 없이 5일 이상 무단결근한 경우 자진사직으로 처리됐다.

최씨가 근무를 시작한 2008년 3월부터 2008년 6월 사이는 조선업계 호황으로 인해 114일 중 7일을 제외한 107일을 근무했다. 이 기간 중 연장근로를 한 날은 54일이었다. 3월에는 근무일수 27일 중 휴일이 하루에 불과했고 4월에는 아예 휴일 없이 일했다. 5월에는 4일, 6월에는 2일의 휴일이 있었다. 뇌경색이 발병하기 1주일 동안에는 71시간을 근무해 근로기준법이 정한 기준을 약 77% 초과해 근무했다.

최씨는 유해물질에 노출되지 않기 위해 평소 두건과 헬멧을 쓰고 보호복을 입은 상태에서 선체 밖 혹은 내에서 작업을 했다. 5월부터는 날씨가 더워지면서 최씨는 퇴근 후 더위에 따른 피로를 호소했다.

2008년 6월27일 오후 8시쯤 작업을 하던 중 최씨는 어지럼증이 발생했지만 1시간가량 참고 일을 마친 후 퇴근했다. 최씨는 다음날 아침 출근하지 못했고, 인근 대학병원 응급실에서 ‘뇌경색·우측편마비·구음장애·당뇨병’ 진단을 받았다.

1심·2심·3심 판결 엇갈려

최씨는 입사하기 전 당뇨와 폐결핵 기왕증이 있었지만 약물치료를 통해 일상생활에 지장을 받지 않은 정도였다. 최씨는 “입사 후 4개월 동안 7일 정도만 휴무한 채 격일로 오후 9시까지 야근을 하면서 쌓인 과로와 스트레스에 발병 전날의 덥고 습한 날씨까지 겹쳐 병이 발병했다”며 근로복지공단에 요양을 신청했다. 그러나 근로복지공단과 서울행정법원은 그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반면 서울고등법원은 “기존에 당뇨병을 앓고 있던 원고가 충분한 휴식 없이 수시로 연장근로를 해 업무가 과중했고, 지속적인 과로와 그에 따른 스트레스, 무더운 날씨 속에 열악한 작업환경에서 보호복을 착용하고 근로를 하던 중 발생한 탈수·탈진 등의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해 이 사건 상병이 발병했거나, 이런 요인이 원고의 당뇨와 뇌혈관 협착을 자연적인 진행 경과 이상으로 가속시켜 발병했다고 판단된다”고 판시했다. 서울고법은 특히 “원고의 업무강도와 업무량은 일반인을 기준으로 볼 때에도 과로에 해당하는 것일 뿐만 아니라 159센티미터, 54킬로그램의 왜소한 체격에 약 60세 고령자로서 당뇨증세로 식이요법 등을 통해 건강관리를 하고 있던 원고에게는 더욱 과중했을 것”이라고 판단했다.

대법원은 지난해 12월 서울고법의 판결을 받아들였다. 다만 서울고법은 최씨의 뇌경색과 우측편마비·구음장애·당뇨병을 모두 업무상재해로 인정한 반면, 대법원은 “당뇨병은 원고의 과거병력과 진료내역으로 보아 이미 기존 질환으로 치료를 받아 오던 질병이어서 요양의 대상이 될 수 없다”며 당뇨병은 업무상재해로 인정하지 않았다.

[관련판례]
서울행정법원 2009년10월20일 선고 2009구단1245
서울고등법원 2010년7월7일 선고 2009누38451
대법원 2010년12월9일 선고 2010두158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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