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대법원 현대자동차 관련 판결에 놀란 고용노동부는 가장 먼저 한 조치는 실태점검이었다. 현대차처럼 외형상 합법도급으로 보이지만 실제로 파견근로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파견법)에 저촉되는 불법파견이 얼마나 많은지 실태부터 확인하겠다는 것이다.
이때 노동부가 조사에 활용한 것은 ‘근로자파견의 판단기준에 관한 지침 관련 사업장 점검요령’이었다. 2007년 6월에 마련된 점검요령은 2008년 2월과 지난해 12월 일부 내용이 추가됐다. 현대미포조선 판결이 일부 인용된 것과 원·하청 운영실태 점검표에 지난해 7월 대법원 판결내용을 접목한 것이다.

그러나 틀은 전혀 달라지지 않았다. 업체에 요구하는 사전조사 자료와 하청노동자 설문조사, 현장조사 내용은 같았다. 특히 판단에 결정적 근거가 되는 ‘근로자파견의 판단기준에 관한 지침’은 바뀌지 않았다. 지침은 파견사업주가 사용사업주(원청)로부터 독립된 회사인지, 지휘·명령권을 실제로 행사하는지를 확인하는 근거를 나열한 서류다. 불법파견 여부를 놓고 노동부와 검찰의 판단이 다르게 나오면서 혼선을 빚자 2007년 노동부와 법무부가 마련한 공동기준이다.

하지만 법원은 최근 지침과 다른 판결을 잇따라 내놓고 있다. 지침이 무력화되고 있는 셈이다. 지난해 7월 대법원의 현대차 울산공장 관련 판결이 결정타였고, 같은해 11월 서울고등법원의 현대차 아산공장 판결이 종지부를 찍었다.

대법원은 현대차 사내하청회사가 현대차 소유의 설비를 사용하면서 원청의 작업지시서에 의해 단순·반복 업무를 하고 있다는 데 주목했다. 원청이 작업배치권과 변경결정권을 소유하고 하청노동자의 작업량과 작업방법·작업순서를 결정했고, 하청회사의 시업과 종업·휴게시간·야간연장근로·작업속도를 결정하는 이상 사내하청회사는 현대차의 노무지휘를 직접 받는 파견관계를 맺고 있다는 것이다. 거기에 하청회사가 현장관리인 등을 세워 작업지시를 해도 원청의 결정을 전달한 것에 불과하다고 했다.

이는 노동부가 지침에서 도급과 파견을 구분하는 기준 가운데 중요하게 여기지 않았던 이슈였다. 지난해 11월 서울고등법원은 주요 자동차 생산공정과 보조공정까지 컨베이어벨트를 이용한 자동흐름 방식으로 이뤄져 있으면 업무의 독립성과 전문성을 강조하는 ‘도급’과는 거리가 멀다고 봤다. 노동부가 지난해 11월 발표한 ‘(업체별) 사내하도급 실태점검 결과’는 비슷한 내용의 공정에 대해 합법도급이라고 판단했다.

박현희 공인노무사(노동법률원 법률사무소 새날)는 “(서울고법 판결은) 제조업 사내하청 공장 내 불법파견의 범위를 판결을 통해 확장시켜 준 것”이라며 “파견과 도급의 구별기준 등 법리적 쟁점을 넘어서게 했다”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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