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원만큼 근무형태가 복잡한 현장도 드물다. 병원노동자라면 피할 수 없는 야간근무는 국제암연구소(IARC)가 2급 발암물질로 규정할 만큼 위험성이 널리 알려져 있다. 야간근무와 함께 병원노동자들을 힘들 게 하는 요인 가운데 하나는 불규칙한 근무형태다. 일반적으로 교대제 근무에 종사하는 노동자들은 주기적으로 근무형태가 바뀌기 때문에 낮과 밤이 수시로 바뀐다.

대구지방법원은 지난해 12월 불규칙한 근무형태와 초과근무로 인한 업무상과로와 스트레스로 인한 사망을 업무상재해라고 판결했다. 박아무개(사망 당시 33세)씨는 2002년 7월 포항의 한 병원에 입사해 방사선 기사로 근무했다. 방사선 기사는 일반적으로 주간근무(오전 8시30분~오후 5시30분)와 당직근무를 병행한다. 주간근무시 주당 40시간을 근무했다. 당직을 병행할 경우 근무순서는 주간근무 2일, 주·야간 근무(오전 8시30분~오후 10시30분) 1일, 완전 철야근무(오후 5시30분~오전 8시30분) 1일, 철야근무(오후 10시30분~오전 8시30분) 1일, 휴무 2일이었다. 주당 근무시간은 57시간 정도였다.

야간·철야 주기 단축되면서 근무시간 증가

박씨의 경우 근무형태 주기는 일정하지 않았다. 대체로 ‘주·야간 근무→완전 철야근무→철야근무→휴무→휴무’ 순서로 근무했다. 방사선 기사의 인력현황에 따라 10일 내지 13일 정도의 주기로 근무형태가 바뀌었다.

그러던 중 동료기사가 지난해 4월 휴가를 받아 근무에서 빠지게 되면서 야간·철야근무 주기가 단축됐다. 이로 인해 주당 근무시간이 증가했다. 박씨는 같은해 5월 출근준비를 하던 중 집 거실에서 갑자기 쓰러져 119구급차량으로 후송됐다. 하지만 이미 사망한 상태였다. 시체검안 결과 ‘심급사’로 추정됐다.

박씨의 아내는 남편의 사망이 업무상재해에 해당된다며 근로복지공단에 유족급여 및 장의비 지급을 청구했다. 공단은 그러나 같은해 8월 “망인에게 업무상과로나 스트레스가 없다”며 업무상재해로 인정하지 않았다. 이에 박씨의 아내는 공단을 상대로 행정소송을 제기했다. 원고는 박씨의 아내, 피고는 근로복지공단이다.

법원 “변칙적인 근무형태로 생체리듬 파괴”

박씨의 아내는 “남편의 재해 이전에는 특별한 질환이 없었고 병원에서 방사선 기사로 근무하면서 일일 근로시간을 훨씬 초과해 과중한 업무를 수행했다”며 “특히 재해발생 전인 2010년 5월에는 근무형태가 갑자기 변경돼 육체적·정신적 부담이 가중됐다”고 주장했다.

대구지법은 이에 대해 “망인의 근무형태는 주간근무에다 당직근무가 병행하는 형태로 1일 총 근무시간 및 근무시간대가 다양하고, 근무주기도 일정하지는 않아 변칙적인 근무형태가 지속·반복됨에 따라 생체리듬과 생활리듬의 파괴 등 만성적 과중 부하가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고 판시했다.

재판부는 “망인의 근무시간 역시 주간 근무시 8시간, 주·야간 근무시 12시간, 완전 철야근무시 14시간, 철야근무시 10시간 등 통상적인 일일 근로시간을 초과하는 경우가 많았다”며 “사건재해 발병 직전인 2010년 5월부터는 근무주기가 13일에서 11일로 단축돼 업무환경의 변화가 생겼을 뿐만 아니라 야간 및 철야근무 횟수가 증가하는 바람에 근무시간 역시 상대적으로 증가하게 됐다”고 인정했다.

재판부는 이어 “망인에게 재해를 유발한 고혈압이나 심장질환 등의 특별한 질환은 없었던 것으로 보이는 점 등을 종합하면, 망인은 불규칙한 근무형태 및 초과근무 등으로 인한 업무상과로와 스트레스로 인해 이 사건 재해에 이르게 된 것으로 추단함이 상당하다”고 판시했다.

[관련판례]
대구지방법원 2010년 12월3일 선고 2010구단3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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