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산업안전보건공단의 산업재해 통계에 따르면 최근 5년(2005~2009년) 동안 피자 등 패스트푸드점에서 배달을 하다 재해를 당한 노동자는 1천890명에 이른다. 이 업종에서 발생한 이륜차(오토바이) 관련 재해자는 2005년 224명, 2007년 406명, 2009년 477명으로 해마다 증가하는 추세다. 같은 기간 중국요리 음식점에서 1천314명, 치킨 전문점에서 894명, 한식 음식점에서 660명, 분식 및 김밥 전문점에서 193명의 배달 노동자가 배달 중 사고를 당했다.
지난달 21일 학비와 용돈 마련을 위해 피자 체인점 배달원으로 일하던 대학생이 교통사고로 숨진 후 ‘30분 배달제’ 폐지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업무 특성상 배달 노동자들은 항상 교통사고의 위험에 노출돼 있다. 그런데 만약 운전면허가 없는 노동자가 배달을 나갔다가 교통사고를 당했다면 업무상재해로 인정받을 수 있을까.

배달 나갔다 1톤 트럭과 충돌

ㄱ씨는 인천에 있는 활어 도소매업체에 종업원으로 근무했다. ㄱ씨는 이 업체에 근무하기 전부터 오토바이를 운전했다. 가게주인은 ㄱ씨가 오토바이 운전면허가 있는 것으로 알았다. 그래서 ㄱ씨는 근무 초기 오토바이를 운전해 회 배달 등의 업무를 수행했다. 그러다 사고 발생 2개월 전 무렵, 가게주인은 ㄱ씨가 무면허라는 사실을 알게 됐다. 그는 회식·식사 자리에서 ㄱ씨에게 “오토바이는 운전하지 말고 활어 입·출고 업무를 하라”고 얘기했다. 그러나 오토바이 키는 사무실 키꽂이나 오토바이에 꽂혀 있어 언제든 ㄱ씨가 쉽게 운전할 수 있는 상태로 방치돼 있었다.

이 업체는 가끔 거래처인 횟집에서 요청이 있을 경우 대신 회를 배달해 주는 경우가 있었다. 이 업체의 종업원 ㄴ씨는 거래처인 A횟집으로부터 고객에게 회를 배달해 달라는 부탁을 받았다. A횟집에서 회를 받아온 ㄴ씨는 가게 주인에게 회 배달을 나간다는 사실을 알리려고 잠시 자리를 비웠다. 그 사이 ㄱ씨는 키가 꽂혀 있던 오토바이를 이용해 A횟집의 회 배달을 대신 나갔다. ㄱ씨는 오토바이를 운전하던 중 그만 앞서 가던 1톤 차량과 충돌하는 교통사고를 당했다.

ㄱ씨는 이 사고로 ‘외상성 경막밑출혈, 미만성 뇌손상, 요추염좌, 경추염좌’ 진단을 받았다. ㄱ씨는 사고를 당한 후 근로복지공단에 요양승인 신청을 했다. 공단은 2008년 1월 ㄱ씨의 요양승인신청을 승인했다. 그런데 ㄱ씨의 가게주인이 요양승인을 결정처분을 취소해 달라며 공단을 상대로 행정소송을 제기했다. 원고는 가게주인, 피고는 근로복지공단, 보조참가인은 노동자 ㄱ씨다.

원고는 사고 발생 당시 ㄱ씨가 배달한 것은 거래처인 A횟집의 주인이 본인에게 개인적으로 부탁을 한 것으로 본인 업체의 업무가 아니고, 회 배달은 ㄱ씨의 업무도 아니며, ㄱ씨가 무면허로 오토바이를 운전하지 말라는 원고의 지시에 반해 무면허 운전을 하다 사고를 당한 것이므로 이 사건이 원고의 지배·관리를 벗어난 행위라고 주장했다.

법원 “무면허라고 업무수행성 부정되지 않는다”

그러나 서울행법은 2008년 9월 공단의 요양승인결정이 적법하다는 판결을 내렸다. 법원은 “이 사건 사고는 보조참가인이 소외 업체의 업무 일부인 거래업체에 회 배달을 나갔다가 발생한 것이고 사업주 또한 어느 정도 예상 가능한 행위 중에 발생한 것으로 사업주인 원고의 지배·관리하에 있던 행위로 말미암아 일어난 것으로 보인다”며 “원고의 업무와 상당인과관계가 있다고 봄이 상당하다”고 판시했다.

법원은 “업체의 규모나 인적 구성상 직원들 사이의 업무 분담을 명확하게 나누기는 어려웠을 것으로 보이는 등 여러 사정에 비춰 보면 사업주인 원고로서도 일손이 부족하다는 등 사정이 있을 경우 활어 입·출고 업무를 주로 하던 보조참가인도 회 배달을 할 수 있다는 것을 전혀 예측할 수 없었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덧붙였다. 또한 법원은 “보조참가인이 사고 당시 한 A업체의 회 배달은 보조참가인 개인의 이익을 위해 한 것이 아니라 소외 업체의 고객 관리 차원에서 이뤄진 것으로 소외 업체의 업무 내용에 포함된다고 보인다”는 점을 명시했다. 특히 “무면허운전이라 하여 바로 업무수행성이 부정되는 것은 아니고 배달업무의 성격상 교통사고는 배달을 위해 오토바이를 운행하는 과정에서 통상 수반되는 위험의 범위 내에 있다고 보인다”며 “이 사고가 통상적인 운전업무의 위험성과는 별개로 오로지 보조참가인의 무면허운전만이 원인이 돼 발생한 것이라고 볼 만한 뚜렷한 자료는 없다”고 판시한 점도 주목된다.


[관련판례]
서울행정법원 2008년 9월26일 선고 2008구단39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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