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미치겄네. 지금 집에 가면 마누라가 눈치 줄 텐데. 미안해 죽겄네. 이러다가 이번달도 20일 못 채우는 거 아녀."
지난 8일 오전 충남 세종시(행정중심복합도시) 아파트 공사현장. 눈이 흩뿌리기 시작하자 이성찬(56)씨가 한숨을 길게 내쉬었다. 애타는 건설노동자의 마음을 헤아렸는지, 눈발이 가늘어지는가 싶더니, 장난인 듯 얼마 못가 아예 펑펑 쏟아붓는다. 하늘에 구멍이라도 난 듯하다.
오후 3시를 지나자마자 내부공사를 제외한 모든 현장에서 공사가 중단됐다. 형틀목수인 이씨도 발걸음을 돌려야 했다. 11월에도 20일을 채우지 못했다는 그의 발걸음이 가벼울 리 없다.
 


양영두(45)씨는 겉 옷 속주머니를 뒤적이더니 뻘쭘하게 서 있는 기자에게 종이 하나를 건넸다. 고용보험 통지서였다. 18개월 동안 일한 날이 345일이라고 적혀 있다. 한 달에 19일꼴로 일한 셈이다. 양씨는 “하루살이 인생”이라고 말했다. 그마저도 “일자리가 언제 끊길지 몰라 불안하다”는 말에 묻혔다. 공사물량은 점점 줄고 이주노동자들과도 경쟁해야 한다고 했다. 이러면 임금인상은 먼 나라 얘기다. 양씨는 “집값은 천정부지로 뛰는데 처음 일을 시작했던 8년 전이나 지금이나 받는 돈은 큰 차이가 없다”고 무심한듯 내뱉았다.

그렇지만 양씨의 넋두리는 거기까지다. 기자가 쫓아다니는 내내 양씨가 했던 말은 자부심으로 가득했다. 그는 형틀목수다. 24명이 속해 있는 형틀목수팀을 이끄는 반장이다. <매일노동뉴스>가 양씨의 하루를 함께했다.

아파트 골격을 만드는 사람들

양씨의 일과는 새벽 5시에 시작됐다. 세종시 아파트 공사장에 출근해 아침을 먹고 일할 채비를 갖추면 1시간이 금방 지나간다. 양씨의 임무는 다른 형틀목수에게 할 일을 지시하고 제대로 일이 진행되도록 하는 것이다. 형틀목수는 건물의 골격을 만드는 사람들이다. 사람으로 치면 뼈에 해당하는 철근을 둘러싼 거푸집을 만드는 작업을 한다. 형틀목수가 작업을 마치면 펌프카 기사 등이 콘크리트를 타설해 공간을 메운다.

수도설치 등의 설비 일을 하던 양씨는 지난 2002년부터 이 일을 시작했다. “우연히 일을 시작하게 됐다”는 그는 “허허벌판에 건물이 올라가는 모습을 보며 신기했다”고 말했다. 일에 재미를 느끼자 배우는 속도도 빨라져 반장까지 맡게 됐다. 현장에서는 양씨를 보고 종종 '독종'이라고 부른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10년 이상의 경력을 쌓은 뒤 반장자리에 올랐기 때문이다.

"올라갑니다."
아침 8시, 작업이 시작됐다. 아파트 건설현장은 지붕 없는 거대한 공장처럼 보였다. 지상에서 지게차 등이 건설자재 등을 운반해 쌓아 놓으면, 공중에 있는 타워크레인이 자재를 올려 필요한 곳으로 운반한다.
양씨는 자재를 타워크레인에 실어 무전기로 타워크레인 기사에게 운반할 곳을 지시했다. 자재를 운반하는 작업을 돕고, 동시에 신호수 역할을 겸하는 것이다. 자재를 타워크레인에 싣는 ‘양중작업’이 끝나면 본격적인 형틀 옮기기가 시작된다. 형틀을 만드는 알루미늄폼을 나르는 일이다. 알루미늄폼을 현장에서는 ‘알폼’이라고 하는데, 알폼을 조립하면 형틀이 된다. 어른 키의 두 배나 되는 알폼을 2인1조로 들어올려 짜맞춰야 하는 일이다. 알폼 한 개의 무게만 10~40킬로그램에 이른다.

알폼은 주로 아파트의 벽이나 계단 등에 쓰인다. 상가나 주택 등 규격화되지 않은 건물에는 철제 틀에 합판을 붙인 ‘유로폼’을, 아파트 층을 올릴 때 외벽은 철로만 만든 ‘갱폼’을 사용한다. 40킬로그램에 달하는 자재를 반복적으로 옮기니, 허리나 어깨가 남아날 수가 없다.

"이 일을 하는 사람치고 허리가 성한 사람이 없어요. 직업병으로 인정받았으면 좋겠는데, 괜히 말했다가 일자리를 잃어버릴까봐 쉬쉬해요. 일하다 보면 병원 갈 시간을 놓쳐 병을 키우는 경우도 많아요."

알폼을 옮기는 일을 끝내니 오전 10시다. 휴식시간이다. 빵과 우유가 나왔다. 쉬는 도중 소주를 대접에 따라 마시던 추억은 이젠 옛일이다. 양씨는 “예전과 달리 안전에 대한 의식이 달라져 엄격한 현장에서는 출근할 때 음주단속을 하는 곳도 있다”고 귀띔했다.
오후에 내릴 폭설을 예고라도하는 듯 꽁꽁 언 땅 위로 흩날리던 눈발이 쌓이기 시작했다. 숨쉴 때마다 짙고 하얀 입김이 솟아올랐다. 추운 날씨가 무색할 정도로 안전모를 벗은 양씨의 머리카락에는 땀이 흥건했다. 장갑을 벗었는데, 손등이 흉터투성이였다.

 



"작업의 최대 변수는 날씨"

“추울 틈이 있나요. 오늘은 바람이 안 불어서 나은 편입니다.”
말은 그렇게 했지만 걱정하는 기색이 역력하다. 알고 보니, 궂은 날씨 때문이다. 날씨가 궂으면 콘크리트가 굳는 데 시간이 더 걸린다. 최첨단 건축공법이 발전한다고 해도 ‘하늘의 뜻’이니 어쩔 도리가 없다. 봄이나 가을에 아파트 한 층을 올리는 데 일주일 정도가 걸리는 반면 겨울이나 여름에는 3주일에서 5주일이 걸린다.

양씨는 43평형 아파트 24층을 올려야 한다. 10여분의 짧은 휴식이 끝났다. 숨 돌릴 겨를도 없이 본격적인 알폼 조립작업이 시작됐다. 번호에 따라 그냥 끼워 맞추는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다. 설계도면을 읽고 바닥에 그어진 먹선(설계도면선)에 맞춰 알폼을 조립한다.

"겉으로 보기엔 단순작업처럼 보여도 도면을 읽고 해석하지 못하면 일을 못합니다. 새파랗게 젊은 이주노동자들이 나이 많은 숙련공을 뛰어넘을 수 없는 이유이기도 하죠. 기능교육이 정말 중요한데 우리 같은 사람이 기능을 체계적으로 배울만한 곳이 없어 안타까워요."

조립에 앞서 알폼에 먼저 기름칠을 한다. 콘크리트를 타설한 뒤 알루미늄에 콘크리트가 붙는 것을 막기 위해서다. 휑하게 철근만 박혀 있던 공간에 알폼이 연결되기 시작했다. 알폼을 정확한 위치에 조립해 넣은 뒤 망치로 핀을 박는다. 그렇게 사각 반듯한 공간이 생겼는데, 엘리베이터가 오가는 곳이란다. 이어 4층으로 올라가는 계단도 만들어졌다.

금세 오전작업이 마무리됐다. 점심을 먹으러 가니, 식당 곳곳에서 중국말이 넘친다. 흡사 무협영화를 보는 듯하다. 공사장에서 일하는 노동자의 절반 가량이 이주노동자란다. 양씨의 팀원 24명 중 12명도 이주노동자다. 우리나라 노동자의 평균 나이가 50대 초반이라니, 20대 후반의 이주노동자와 50대 초반의 한국 노동자들이 섞여 일하는 곳이 바로 공사장이다. 양씨는 “세종시는 국책사업 현장으로 이주노동자와 국내노동자의 비율이 각각 절반이지만 일반 아파트 현장의 경우는 90%가 이주노동자”라고 말했다.
아파트 공사는 비슷한 작업이 층마다 반복된다. 그래서 사업주들이 임금이 싼 이주노동자를 선호한다고 했다.

"처음에는 일자리를 빼앗긴다는 생각 때문에 많이 싸웠어요. 하지만 지금은 현장에 젊은 인력이 들어오지 않아 이주노동자들이 없으면 공사가 되질 않아요. 같은 노동자로 받아들이고 인정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면서도 양씨는 “머리로는 인정하면서도 막상 현장에서 대하다 보면 좁혀지지 않는 거리감이 있다”며 “인건비를 낮추고, 노조활동을 어렵게 하는 요인이 되기도 해서 이주노동자들을 어떻게 끌어안아야 할지 고민”이라고 털어놓았다.

점심식사를 마친 노동자들이 휴게실에 모여 몸을 녹였다. 대화를 들어 보니 대부분 "이달에는 과연 얼마나 일할 수 있을까"였다. 다행하게도 국가가 발주한 사업이라 임금체불은 없지만, 다단계 하도급으로 인해 일한 뒤 3~4주 후에 받는 유보임금 관행은 여전했다.

 



"집값은 뛰고 임금은 떨어지고"

상상을 뛰어넘는 집값도 화제에 올랐다. 갑자기 목소리가 높아졌다.
"도대체 아파트 분양원가는 왜 공개하지 않는 겁니까. 정작 우리 임금은 오히려 더 떨어졌어요.", "도둑질에도 상도의가 있는 거 아닌가요. 왜 없는 사람들의 임금을 더 뺏으려 하는지 이해가 안 돼요."

양씨는 "실제 아파트 원가는 분양가의 3분의 1도 안 될 텐데"라며 말끝을 흐렸다. 오후 12시30분이 되자 노동자들이 다시 현장으로 이동하기 시작했다. 겨울에는 해가 짧아 일하는 시간이 줄어든다는 이유로, 점심시간이 30분 줄어든다. 다행히 해가 보이기 시작했다. 밝아지는 날씨에 노동자들의 얼굴도 펴졌다.

오후작업 장소는 지붕이다. 3층 천장이기도 하고, 4층 바닥이기도 한 공간을 창조하는 일이다. 노동자들은 ‘슬라브’ 작업이라고 했는데, 슬라브를 받칠 기둥을 설치하고는 사다리 위에 올라 허공에 알폼을 연결했다. 알폼이 움직이지 않도록 지지대를 땅에 박는 작업을 끝으로, 3층 계단구역의 형태가 갖춰졌다. 여기에 콘크리트를 부으면 곧바로 계단이 된다.

점심 햇살을 비웃은 탓일까. 오후 2시가 되자 날씨가 변덕을 부리기 시작했다. 조금씩 떨어지던 빗방울이 어느덧 진눈깨비로 변했다. 진눈깨비와 알폼이 부딪치는 소리가 요란해지자 작업을 하는 사람들의 손놀림도 빨라졌다. 양씨는 3층 슬라브 작업을 마치고, 4층 외벽을 올리기 위해 갱폼을 매달 수 있도록 볼트를 설치했다. 진눈깨비는 눈으로 바뀐 지 오래였다. 양씨의 옷도 젖어 갔다.

"아휴, 더 이상은 안되겠네요. 몸이 유일한 재산인데 이러다 감기라도 들면 내일 작업까지 망치겠어요."
결국 오후 3시께 철수했다. 이때 일이 끝나면 하루 일당의 70%를 받는다. 오전까지 일하면 50%를 받는다. 곳곳에서 일하던 사람들이 휴게실로 모여들기 시작했다. 담배로 몸을 녹이며 집으로 돌아갈 준비를 했다.

"일반 직장인들은 일단 출근만 하면 아파서 퇴근을 해도 월급이 깎이지는 않잖아요. 주말엔 휴업수당도 받고요. 일하는 날도 없는데 일당마저 깎여 속이 탑니다. 이럴 때를 대비해 무슨 보험 같은 걸 정부가 만들어 줬으면 좋겠어요."
"난 그런 것 까지 안 바라고 임금을 깎지만 않아도 소원이 없겠어요.”
예상대로 건설노동자 처우 문제가 도마 위에 올랐다. 이들은 한목소리로 "정부가 너무 무관심하다"고 질타했다.

 


"마누라도 숨기는 내 직업"

"가끔은 내 마누라조차도 내가 무슨 일을 하는지 다른 사람들 말하지 못해요. 사람들은 우리를 볼 때, 얼마나 인생을 막 살았기에 그런 일을 하느냐는 시선으로 봐요."
권혁현(49)씨는 "20대의 젊은 인력이 건설현장으로 들어올 수가 없는 구조"라며 "임금을 생활임금 수준으로 올리고, 이미지 개선을 위한 정부의 대책이 필요하다"고 주문했다.

양씨는 정부의 관심을 얻기 위해서는 먼저 건설노동자들이 스스로 목소리를 내야 한다고 강조했다.
"좋은 건설현장은 그냥 만들어지지 않아요. 우리가 목소리를 내서 노동시간을 서서히 줄여 유보임금 기간을 단축시킨 것처럼 우리가 먼저 권리를 얘기해야 해요."

양씨는 2005년 건설노조에 가입하기 전까지 ‘못이 보이지 않을 때까지 일을 했다’고 회고했다. 잘리고 싶지 않았고, 남들도 다 그렇게 사는 것 같았다고 했다. 하지만 노조 가입 후 양씨의 노동시간은 하루 10시간으로 줄어들었다. 새로운 세상을 꿈꾸기 시작했다. 양씨는 "주말에 맘 편히 조기축구를 해 보고 싶다"며 "항상 주말에도 대기하느라 정기적인 취미를 갖는 게 불가능했는데, 우리가 목소리를 내다 보면 언젠가는 취미를 가질 수 있는 날도 오지 않겠느냐"고 되물었다.

"당장은 힘들겠지만 더도 말고 덜도 말고 일한 만큼 대우받을 수 있는 토대를 만들고 싶어요. 나중에 현장에 들어올 자식세대만큼은 천대받게 하고 싶지 않습니다. 누군가는 해야 될 일이잖아요." 양씨가 건설현장을 떠나지 않는 이유다.


 

건설노동자 생활 살펴보니
"유보임금·체불 늘고, 근로일수·임금 줄어"
충남 세종시 아파트 공사현장에서 만난 건설노동자들은 생활여건이 갈수록 악화되고 있다고 입을 모았다. 실제로 건설산업연구원 등 전문가들의 조사에서도 이 같은 사실이 확인된다. 건설근로자공제회와 건설산업연구원이 지난 9월6일부터 10월15일까지 건설노동자 676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임금과 근로일수는 감소하고, 유보임금 기간과 임금을 떼인 경험은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조사 결과에 따르면 건설노동자의 연간 근로기간은 평균 7.3개월로 지난해보다 0.5개월 줄었다. 연간 임금도 1천666만4천346원으로 40만원가량 감소했다. 게다가 임금을 떼여 봤다는 노동자도 61.3%로, 10.2% 이상 늘었다. 유보임금 일수는 평균 41.1일로 15.9일 증가했다. 하루 근로시간은 9.6시간으로 0.5시간 정도 단축됐지만, 다른 업종에 비하면 여전히 장시간 근로를 하고 있다.
주거환경과 노후대책에 대한 준비상항도 형편없었다. 건설노동자의 주택 보유율은 일반 노동자(55.6%)의 절반 수준을 약간 웃도는 37.1%에 불과했다. 그 밖에 퇴직공제제도(52.7%)·산재보험(81.1%)·국민연금(27.7%)·건강보험(27.3%) 등 사회보험 적용비율도 상당히 낮았다.
건설공제회가 올해 4월 건설노동자 복지증진을 위한 무지개 플랜사업 실시를 위해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98년부터 2008년까지 건설업 노임단가 상승률은 제조업 상승률의 61.2%에 머물렀다. 공제회 관계자는 “지난 10년간 건설근로자 명목임금상승률은 물가상승률에도 미치지 못해 사실상 실질임금이 떨어지고 있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김은성 기자



 

불법 하도급, 왜 근절 안 되나
고용노동부가 건설현장의 유보임금 관행을 근절하기 위해 전국 260개 건설현장에 근로감독관을 투입해 점검한 결과를 바탕으로 조만간 대책을 발표할 예정이다. 하지만 유보임금은 건설현장 내 관행인 불법 다단계 하도급이 없어지지 않는 한 근본적인 해결이 쉽지 않다.
정부는 2008년 다단계 하도급을 양산한 시공참여자제도를 폐지해 미등록자(일명 십장)에게 하도급을 주지 못하도록 했지만 건설현장에서는 전혀 먹히지 않았다. 하루 벌어 하루 먹고사는 건설노동자들은 십장의 하도급 요구를 거부할 수가 없다. 구직과 관련한 인맥을 십장이 모두 장악한 상태에서 이들에게 기대지 않는 한 다른 구직통로가 없기 때문이다. 건설근로자공제회 자료에 따르면 건설노동자들의 절대다수인 88%가 인맥을 통해 일자리를 구하고 있었다.
사업자의 경우 최저가낙찰로 인해 전문업체들도 십장을 통해 도급을 줘야 적절한 이윤을 확보할 수 있다.
또 양벌 규정으로 인해 건설노동자는 불법 하도급을 알고도 신고를 하지 못한다. 형틀목수로 일하는 한 건설노동자는 “내일이 없는 불안정한 일자리가 최대 고민인 건설노동자들은 십장 눈 밖에 나면 일자리를 구하는 게 쉽지 않다”며 “현 상황은 노동자와 사용자 모두 불법 하도급이 아니면 일을 할 수가 없는 구조”라고 꼬집었다. 그는 “정부가 진정성을 갖고 의지를 보여야 해결할 수 있는 문제”라며 “불법 하도급 관행이 사라지지 않는 한 유보임금과 임금체불의 근본적인 해결은 요원할 것"이라며 안타까워했다. 김은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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