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8일 오후에 처리된 내년 예산안을 놓고 뒷말이 많다. 강행처리를 감행한 한나라당은 9일 부상자 목록까지 발표하며 법적인 책임을 묻겠다고 나섰다. 단독 처리를 몸으로 막아섰던 민주당·민주노동당·진보신당도 부상자가 속출했다고 한다. 강기정 민주당 의원은 동료 의원에게 맞아 피를 흘렸고, 이정희 민주노동당 의원은 실신해 후송됐다. 폭력은 몸뿐만 아니라 정신에도 깊은 생채기를 내게 돼 있다. 당분간 대화는 실종될 것이 분명하다.

강행 처리된 예산안이 실종시킨 것은 대화만이 아니다. 예산결산특위와 본회의에서 강행처리하는 과정에서 환경노동위원회가 올린 예산을 삭감, 실업자들이 받는 구직급여도 실종되게 생겼다. 고용노동부의 모성보호지원 예산 증가분 100억원이 바로 그것이다. 이른바 ‘형님예산’ 1천350억원이나, 박희태 국회의장이 확보한 202억원, 초유의 예결위 직권상정 전례를 만든 이주영 위원장의 548억원과 비교하면 발뒤꿈치에도 못 따라가는 돈이다. 그런데도 국회는 이 예산을 삭감해 고용보험의 지속가능성에 중대한 상처를 입혔다.

얘기는 이렇다. 지난달 30일 환노위는 일반회계로 지원되는 모성보호지원 예산 100억원을 200억원으로 늘려 잡은 노동부 예산안을 의결했다. 그러면서 “정부는 모성보호비용의 사회분담 실현이 해당연도 사업예산의 50% 수준에 이를 때까지 2011년도 예산부터 전년도 고용보험기금에 대한 일반회계 전입금의 100%를 증액해 다음연도 예산에서 반영하도록 노력한다”는 부대의견을 달았다.

실업급여의 재원인 고용보험기금의 고갈우려 때문이다. 정부는 육아휴직급여 같은 모성보호사업을 노사가 내는 고용보험으로 일부 충당하고, 나머지 돈을 내겠다고 약속했지만 사업비가 10배 이상 늘어난 뒤에도 수년째 달랑 100억원만 내고 있다. 약속 불이행이다. 국회예산정책처는 고갈시기를 2012년으로 예상하며 정부에 추가 출연을 촉구하기도 했다. 노동부도 이를 인정했다. 그러나 해법이라고 내놓은 게 고작 보험료율 조정이다. 노사로부터 돈을 더 걷어 충당하겠다는 것이다.

100억원 추가 배정은 바로 이런 사정을 감안한 환노위원들의 고육책이었다. 이렇게 기금재정 건전화의 싹을 자른 예결위가 한 일은 환노위원들이 반대했던 사업에 고용보험기금 10억원을 넣은 것이다. 이래서는 상임위 심의가 무색해진다. 다수당이 선수들을 뽑아 기획재정부에 파견해 예산을 따내는 것과 무엇이 다른가. 부끄러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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