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세계 금융위기로 공공부문 사유화정책이 위기를 맞았습니다. 이전까지는 시민·사회진영에서도 공공부문을 민영화하면 효율적이라는 인식이 강했습니다. 그러나 금융위기를 겪으면서 사회적으로 금융자본 주도의 구조개편 논리가 힘을 잃게 됐죠. 오히려 각국 정부들이 국가기간산업과 설비의 중요성을 여실히 깨닫게 된 계기가 됐죠.”

2일 오전 서울 신라호텔에서 <매일노동뉴스>와 만난 데이비드 보이즈 국제공공노련(PSI) 공공·연금정책 사무관은 “전 세계적으로 공공정책에 있어 2008년 금융위기는 중요한 전환점”이라고 말했다. 그는 유엔사무총장 물산업자문위원회(UNSGAB) 위원 자격으로 지난달 26일 서울을 찾았다. 2004년 설립된 UNSGAB은 유엔 190여개 회원국이 2000년 채택한 빈곤퇴치 프로그램(새천년 개발목표) 가운데 물과 위생 분야 해결책을 모색하는 유엔 사무총장 산하 자문기구다. UNSGAB은 지난달 29일부터 이달 1일까지 서울에서 제15차 회의를 개최했다. 공공부문 사유화 반대를 내걸고 있는 국제공공노련은 UNSGAB에서 물 산업을 민영화할 경우 닥칠 위험성에 대해 경고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보이즈 사무관은 “물뿐만 아니라 전력·의료·연기금 등 공공부문이 경쟁체제에 놓이면 기업 빼고 모두 손해를 보게 된다”고 강조했다. 그는 정부와 민간이 똑같이 투자를 한다면 누가 더 많은 이윤을 회수하겠냐고 반문했다.

“제 고향인 캐나다 온타리오주의 전력회사를 예로 들죠. 캐나다 최대 국영전력회사였는데 7~8년 전 민영화 논란이 불거졌어요. 그 원인을 추적하다 보니 기업 인수합병(M&A)과 관련 있는 변호사와 금융인들이 배경이더군요. 국영전력회사를 민영화하면 400억캐나다달러의 금융시장이 형성된다고 합니다. 단지 기업형태만 바꾸는 작업에도 10억캐나다달러가 그들의 주머니로 들어간다는 사실을 알게 됐죠. 공공부문 민영화 뒤에는 이렇게 보이지 않는 손이 존재하고 있습니다.”

세계 금융위기가 바꿔 놓은 공공정책

그러나 2008년 전 세계를 강타한 금융위기 국면에서 사회적 분위기가 달라졌다. 과욕으로 위기를 자초한 금융자본의 폐해를 목격하면서 금융자본을 중심으로 한 공공부문 구조개편에도 브레이크가 걸린 것이다. 보이즈 사무관은 “경제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세계 여러 나라에서 정부재원을 공공부문에 과감하게 투자하기 시작한 것이 2008년 금융위기 때였다”며 “에너지·교통·보건·상하수도 등 기간산업 투자가 활발하게 이뤄졌고 공공부문의 중요성을 깨닫는 기간이었다”고 말했다.

우리나라는 정반대의 길을 걸었다. 이명박 정부는 4대강 사업에 집중하는 대신 다른 공공기관에서는 1만2천여명의 정원을 감축해 비용을 줄이고 노사관계를 강력하게 통제하는 정책을 폈다.

보이즈 사무관의 눈에 한국은 '노사관계에서 존중이 없는 나라'로 비춰진다. 최근 한국의 비정규직이 처한 상황이나 공공부문 노사 간 극단적인 갈등에 대해 그는 “노사정이 모여 허심탄회하게 견해 차이를 극복하지 않는 이상 노동자에 대한 야만적인 행태는 계속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보이즈 사무관은 “에너지산업은 국영체제로 운영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강조했다.
“민간기업들의 목표는 이윤추구가 아니라 최대 이윤추구라는 점을 기억해야 합니다. 이윤의 극대화가 목표이기 때문에 나머지 문제에는 관심이 없습니다. 한국 정부가 과거에 에너지산업을 집중적으로 육성하지 않았다면 지금과 같은 경제발전도 없었을 겁니다. 공공서비스는 국가발전에 가장 중요한 원동력이에요.”

교육과 물·전기·의료서비스는 사람이 살아가는데 가장 필수적인 요소다. 이 같은 공공서비스는 세금제도와 마찬가지로 부의 재분배 기능을 한다. 공공부문 사유화를 막는 것이 양극화 현상을 해소하는 방편이 되기도 한다.

보이즈 사무관은 “물이나 전기·의료서비스 같은 공공부문 구조개편은 해당 기관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의 협조 없이는 불가능하다”며 “공공부문 노동자들이 나서 싸운다면 충분히 막아 낼 수 있다”고 말했다.

“가장 중요한 것은 공공부문노조가 얼마나 많은 우군을 확보하느냐는 것입니다. 환경·소비자단체 같은 시민사회진영을 우군으로 만드세요. 그것이 승패를 좌우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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