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법은 국가인권위원회를 설립하여 모든 개인이 가지는 불가침의 기본적 인권을 보호하고 그 수준을 향상시킴으로써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구현하고 민주적 기본질서 확립에 이바지함을 목적으로 한다.”
 (국가인권위원회법 제1조)
“이 법은 노동관계에 있어서 판정 및 조정업무의 신속·공정한 수행을 위하여 노동위원회를 설치하고 그 운영에 관한 사항을 규정함으로써 노동관계의 안정과 발전에 이바지함을 목적으로 한다.” (노동위원회법 제1조)
 
국가인권위원회 독립성 논란이 일파만파 번지고 있다. 현병철 위원장이 인권위를 독단적으로 운영한다며 상임위원들과 대다수 인권위원들이 사퇴의사를 밝혔다. 잇단 위원들의 사퇴와 친정부 인사의 상임위원 내정 등으로 해결기미가 보이지 않고 있다. 인권의 파수꾼을 자처했던 인권위가 심각한 위기를 맞은 것이다.

노동자들에 대한 신속한 권리구제를 목적으로 한 노동위원회도 독립성 논란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북한의 연평도 포격이나 현대자동차 비정규직 문제 등 굵직한 노동현안에 묻혀 있지만 쟁점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정부는 “보다 빠르고 공정한 노동분쟁 해결 서비스를 제공하겠다”며 지난달 노동위원회법 개정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이에 대해 노동계와 사회단체는 “위원장의 권한이나 정부 입김이 세져 인권위의 전철을 밟을 수 있다”고 우려했다. 이참에 노동위원회를 고용노동부로부터 독립시켜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4년 만의 노동위원회법 개정
 
노동위원회법 개정은 내년 7월 사업장 단위 복수노조 시행에 따른 교섭대표결정위원회 설치 등으로 개정이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 정부는 복수노조 시행을 계기로 노동위의 전반적인 운영체계 개편을 추진하고 있다. 비정규직법상 차별시정제도 도입에 따라 대대적으로 바뀌었던 2006년 12월에 이어 4년 만이다.

정부가 국회에 제출한 개정안을 보면 노동위 소속 위원들의 공정성이나 투명성 확보 측면에서 개선이 기대되는 일부 조항이 눈에 띈다. 위원의 행위규범을 만들어 공정성·중립성에 어긋나는 위원을 면직·해촉할 수 있도록 한 조항이다. 직무관련 정보제공이나 이용을 금지하겠다는 것이다.

위원을 기피하거나 제척할 수 있는 사유도 확대됐다. 예컨대 공익위원이 속한 법무법인이 사건 당사자의 법률·경영에 자문이나 고문을 하거나, 과거에 관여했을 경우 심판에 참가하지 못하도록 했다. 현행법에는 위원이 해당 사건의 대리인이었을 경우에만 기피하도록 하고 있다. 해고나 부당노동행위 등 사건과 직접적인 연관이 있을 경우에만 사건 배정에서 제외하던 것을 간접적으로 관련돼 있어도 제외하도록 한 것이다.

실제로 8월 철도공사 부당노동행위 구제심판을 담당하는 공익위원에 공사의 다른 사건을 위임받았던 법무법인 소속 변호사가 배정돼 논란이 된 것을 고려하면 긍정적인 변화다.

선택적 재심제도가 개정안에 포함된 것도 주목받고 있다. 현행 제도는 지노위-중노위-행정법원-고등법원-대법원으로 이어지는 ‘의무적인 5심제’다. 앞으로는 지노위 판정 뒤 중노위에 재심을 신청하는 기간(10일)이 지나면 15일 이내에 본인 선택에 따라 바로 행정법원에 소송을 제기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지노위 판정이 중노위에서 유지되는 비율이 90% 이상인 상황에서, 노동자의 권리구제 기간이 단축될 것으로 기대된다. 반면에 일부에서는 중앙노동위원회의 위상이 축소될 것이라는 지적도 제기된다.
 

공익위원 선정, 위원장 손에
 
그러나 정부 개정안의 일부 조항은 노동위원회 위원장의 권한을 필요 이상으로 강화시켜 독립성과 공정성을 해칠 것이라는 반발에 부딪혀 있다. 정부는 개정안에서 노동위 공익위원을 선정할 때 적용하는 노사단체의 배제권을 삭제했다. 현행 제도는 노동위원장과 노사 단체가 추천한 후보 중 노사단체가 마음에 들지 않는 후보를 순서대로 제외시키고, 남는 이를 선정하고 있다. 이 중 노사단체의 배제권을 없애 버린 것이다.

노사단체가 배제권한을 행사하면서 전문성을 가진 인사들의 참여 폭이 좁아졌다는 것을 감안하면 긍정적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당초 입법예고안에는 노사의 추천권도 삭제돼 있었다.

그러나 우려지점은 여전히 남아 있다. 노사단체가 추천한 후보자들에 대한 최종 선택권이 노동위원장에게 주어졌기 때문이다. 노사단체의 영향력은 줄어든 대신 위원장의 권한은 확대된 셈이다. 노사단체의 후보자 추천 자체가 무의미해 질 수 있다는 비판이 제기되는 대목이다.

위원장 성향에 따라 공익위원들의 성향이 편중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 등은 추천된 후보자들에 대해 노사단체가 투표로 결정했던 2007년 7월 이전의 방식을 다시 도입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대폭 확대되는 노동위원장 영향력
 
노동위원장이 최종 선택하는 공익위원들의 권한이나 영향력도 확대된다. 정부는 개정안에서 근로자위원이나 사용자위원 없이 심판담당 공익위원 1명이 사건을 처리하는 단독심판 요건을 완화했다. 현행 제도는 신청기간을 넘기는 등 신청요건을 명백하게 갖추지 못하거나, 노동자와 사용자 양쪽이 동의한 경우에만 단독심판을 할 수 있다.

그런데 개정안은 사실관계에 대해 양쪽의 다툼이 없으면 당사자들의 동의를 받고 단독심판을 할 수 있도록 했다. 복수노조 사업장의 교섭대표 결정사건도 공익위원 한 명이 심판할 수 있다. 노동부는 “공익위원 인력을 효율적으로 활용하고 사건처리 시간을 줄이기 위한 것”이라고 밝혔다.

사실관계가 분명하더라도 법리해석은 다를 수 있다. 단독심판 확대가 공정성을 해칠 수도 있다는 얘기다. 노조 간, 노사 간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대립하는 교섭대표 결정을 공익위원 한 명이 처리하는 것은 아무래도 부적절해 보인다.
 
노동계·야당 “이번 기회에 독립을”
 
위원장이 공익위원들을 선정하고, 그중 위원장이 별도로 지명하는 한 명의 공익위원이 단독심판을 진행하는 운영체제도 문제다. 90% 이상이 노동부 관료 출신인 노동위원회 위원장들의 영향력이 크게 확대될 수밖에 없다. 민변 노동위원장을 맡고 있는 권영국 변호사는 “위원장의 독단적인 조직운영으로 파행을 맞은 국가인권위 같은 사태가 발생하지 않는다는 보장이 없다”고 주장했다.

노동위원회법 개정을 놓고 노동계와 야당은 이번 기회에 노동위원회의 위상 자체를 바꾸겠다는 계획이다. 노동부 소속기관으로 예산과 인력을 통제받는 한 준사법기관으로서 노동위원회의 독립과 공정성을 장담할 수 없다는 것이다.

한국노총의 경우 강성천 한나라당 의원을 통해 별도의 개정안을 제출할 계획이다. 노동위 소속을 노동부가 아닌 국무총리나 대통령 소속으로 바꾸는 내용이다. 민주노총도 홍희덕 민주노동당 의원을 통해 노동위를 국무총리 소속으로 두는 내용을 뼈대로 한 개정안을 준비하고 있다.

노동계 관계자들은 “장기적으로는 노동법원 설립에 대한 고민을 해야겠지만, 좀 더 연구가 필요하다”며 “실질적인 준사법기관이나 노사정 3자 합의기구 위상을 세우는 것이 시급하다”고 입을 모았다.

한편 조배숙 민주당 의원은 올해 4월 노동법원 설치를 골자로 하는 노동법원법 제정안을 발의했다. 노동민사사건·노동행정사건·노동비송사건을 관할로 하는 노동법원을 1심 단계에 설치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노동위원회법 개정, 복수노조 ‘지뢰’되나
고용노동부가 노동위원회법 개정안을 제출한 가장 큰 이유는 내년 7월 시행되는 사업 또는 사업장 단위 복수노조 허용 때문이다. 현행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노조법)과 시행령에 따르면 노동위원회는 복수노조 사업장의 교섭참여 노조 확정과 관련한 이의신청, 과반수노조 결정, 공동교섭대표단 결정 권한을 갖고 있다.
올 연말에 노동위원회법 개정안이 국회에서 통과돼야 나머지 6개월간 노동위 내부지침을 확정하고 교섭대표결정위원회 위원 교육을 차질 없이 수행할 수 있다는 것이 노동부의 설명이다. 노동부 관계자는 “12월에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하지 않으면 이후 일정에 차질이 생긴다”고 말했다.
노동부가 당초 입법예고안과 비교해 공익위원에 대한 추천권 등 노동계 요구를 일부 수용한 것도 복수노조 시행에 차질을 빚는 상황을 피하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현재 민주당의 경우 노동부 개정안에 크게 반대하지는 않는 것으로 알려졌다. 조배숙 의원이 발의한 노동법원법 제정안은 민주당의 당론이 아니다.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관계자는 “민주당이 노동위원회법 개정안에 관심이 없는 것 같다”고 전했다.
환노위 여야 간사는 최근 노조 동의 없이도 퇴직연금 제도를 도입할 수 있는 근로자퇴직급여보장법 개정안, 자영업자에게도 실업급여를 주는 내용의 고용보험법 개정안과 함께 노동위원회법 개정안을 12월 국회에 상정하기로 합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김학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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