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과학기술부가 지난 12일 시간강사에 교원지위를 부여하고 대학평의원회 등 학내 의사결정 과정에 참여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으로 고등교육법·사립학교법 개정안을 입법예고했다. 개정안에 따르면 시간강사 명칭은 강사로 변경되고, 임용기간은 최소 1년 이상으로 바뀐다. 이 같은 개정안은 10월 대통령소속 사회통합위원회(사통위)가 발표한 시간강사 제도 개선방안을 토대로 한 것이다.

그러나 시간강사에서 강사로 이름을 바꾼다고 시간강사 제도가 폐지되는 것은 아니다.
강사들에게 여전히 시급제가 적용되기 때문이다. 국회 입법조사처조차 사통위의 개선방안을 “시간강사 제도화 방안”이라고 비판했을 정도다.

시간강사 문제는 인문학 축소와 학과 통·폐합, 국립대 법인화 등으로 나타나는 대학의 기업화와 맞물려 있다. 대학사회에 확산되는 비정규 교수의 실태를 살펴보고, 대학교육을 정상화할 수 있는 대안이 무엇인지 <매일노동뉴스>가 짚어 봤다.
 
“대학 시간강사는 전임교원과 비교해 근무조건과 신분보장·보수 및 그 밖의 급부 등에 있어서 차별대우를 받고 있고, 그 차별적 대우는 합리성을 잃은 것이어서 헌법상 기본권인 평등권 침해의 소지가 있으며, 결과적으로 국민의 교육을 받을 권리도 훼손될 우려가 있어 조속히 개선돼야 한다.”(2004년 국가인권위원회 권고 중에서)
 
“제가 삶을 마감하면서 이 글을 쓰는 것은, 더 이상은 이와 같은 비극이 일어나길 원하지 않기 때문이며, 또한 그럴듯한 구호나 정책만으로는 해결될 수 없는, 진정한 반성과 성찰 없이는 결코 극복할 수 없는 사항이라 생각하기 때문입니다.”(2008년 고 한경선 박사의 유서 중에서)
 
‘등록금 1천만원 시대’라는 말이 익숙해진 지 오래다. 올해 초 한 아르바이트 전문 포털사이트가 대학생 1천466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했더니, 대학생 5명 중 2명이 “등록금을 마련하기 위해 학자금 대출을 찾고 있다”고 답했다. 응답자의 23.5%는 ‘1학기에 등록하지 않을 예정’이라고 밝혔는데 가장 큰 이유는 ‘등록금이 마련되지 않아서’(40.3%)였다.

내년부터 등록금 상한제가 실시돼 대학들이 한 번에 등록금을 5% 이상 올릴 수 없게 된다. 하지만 한번 오른 등록금은 내려가지 않는다. 한 해 1천만원에 가까운 등록금을 부담하느라 학부모와 학생들의 허리가 휘고 있다. 그런데 1천만원의 등록금을 받는 대학들은 그에 상응하는 교육을  제대로 하고 있을까.

지난해 한국교육개발원 통계에 따르면 전체 대학 강의 중 시간강사가 담당하는 강의가 36%에 이른다. 교양강의는 51.2%를 시간강사가 맡는다. 시간강사 의존도가 점점 높아지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시간강사는 법적으로 교원이 아니다. 한국교육개발원 통계에 따르면 고등교육법상 교원이 아닌 시간강사에게 364만명의 대학생들이 고등교육을 받고 있다.
  
교원자격 없는 시간강사에 교육 떠맡긴 대학
 
90년대 후반부터 대학에는 다양한 종류의 비정규 교수가 생기기 시작했다. 기존의 시간강사에 객원교수(초빙교수)·연구교수·강의전담교수·대우교수 등 10여 종류가 넘는다. 이들은 ‘교수’로  불리지만 실상은 비정규 교수, 즉 시간강사다.

법적으로 교원신분이 아닌 시간강사들이 정규직 교수인 전임교수보다 강의수준이 떨어질까. 결코 그렇지 않다. 대학들은 강의평가 점수가 낮으면 시간강사를 다시 고용하지 않는다. 전임교수와 달리 고용이 불안정한 시간강사들은 강의를 ‘대충’ 할 수가 없다.
현행 고등교육법에 따르면 학생을 교육·지도하고 학문연구를 전담할 수 있는 ‘교원’은 총장·학장·교수·부교수·조교수·전임강사로 한정된다. 교원 외에 겸임교원·명예교수·시간강사를 두고 교육이나 연구를 담당하게 할 수 있다.

그러나 대학교육의 절반을 책임지는 시간강사들은 그에 합당한 대우를 받지 못하고 있다. 전국 대학들이 공시한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현재 시간강사 규모는 약 9만명이다. 중복출강자를 제외하면 실제 시간강사는 7만5천여명, 전체 교원수(7만4천여명)를 웃돈다. 이 가운데 전업시간강사는 4만명 정도로 추산된다.

사통위 자료를 보면 시간강사료는 대학별로 편차가 매우 크다. 최저 1만3천원에서 최고 9만7천원을 받는다. 평균 3만5천원이다. 주 9시간을 기준으로 하면, 연봉은 1천12만원 수준이다. 도시근로자의 최저생계비(4인 가족 기준) 1천600만원보다 588만원이 적다. 교원자격이 있는 전임강사 보수(지난해 기준 평균 4천395만원)의 4분의 1에 불과하다.
대학사회처럼 ‘동일노동 동일임금’의 원칙이 적용되지 않는 곳도 드물다. 게다가 시간강사에 대한 전임권은 전임교수가 쥐고 있다. 학교와 전임교수에 이중으로 고용돼 있는 셈이다.


‘동일노동 동일임금’은 언감생심
 
교과부는 이달 12일 고등교육법 개정안을 입법예고하면서 “시간강사제도를 폐지한다”는 표현을 사용했다. 개정안의 주요 내용은 시간강사에게 고등교육법상 교원지위를 부여하고, 시간강사 명칭을 강사로 바꾼다는 것이다. 기존의 시급제가 유지되는 상황에서 이름을 강사로 바꾼다고 시간강사 제도가 없어지는 것이 아닌데도 정부가 사실을 왜곡한 것이다.

10월에 발표된 사통위의 ‘대학시간강사 제도개선 방안’ 역시 문제점을 안고 있다. 사통위 방안에 따르면 대학의 교원확보율을 산정할 때 교원지위를 부여한 강사의 비율을 20%까지 채울 수 있게 된다. 현재 교육부가 정한 법정교원충원율이 61%인데, 이 중 20%를 비정규 교수인 강사로 채울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김동애 ‘대학강사교원지위회복과 대학교육정상화 투쟁본부’ 본부장은 “시급을 주는 1년짜리 비정규직을 정규직 정원에 포함하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며 “연봉제로 하든 기본급제로 하든 시급제를 없애야 시간강사 제도가 없어지는 것”이라고 말했다. 국회 입법조사처도 “(사통위의 개선방안은) 시간강사제 폐지가 아니라 법률에 의해 시간강사제를 제도화하려는 것으로 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현재 국회에는 시간강사에 교원자격을 부여하는 내용의 고등교육법 개정안이 5개나 발의돼 있다.<표 참조> 국회 통과 전망이 밝은 것도 아니다. 17대 국회에서도 3개의 관련 법안이 발의됐지만 회기 안에 통과된 법안은 없었다.


이름 바꾼다고 시간강사 없어지나
 
시간강사 문제는 구조적으로 대학의 기업화와 연관돼 있다. 대학은 전임교수에 비해 인건비가 싸고 고용도 자유로우면서, 강의의 질이 떨어지지 않는 시간강사 채용을 선호한다. 법적인 강제가 없는 한 굳이 정규직 교수를 채용할 이유가 없는 것이다.

그런 가운데 인문·사회학과들이 통합 또는 폐지되면서 일자리도 줄어들고 있다. 최근 동국대는 특성학과로 주목받아 온 북한학과 입학정원 감축을 추진하고 있다. 동국대 북한학과는 2008년 정치행정학부로 통합되면서 입학정원이 이미 절반으로 줄었다. 내년부터는 신입생을 18명만 뽑는다. 동국대는 입학성적과 경쟁률 등을 평가해 하위학과의 입학정원 10~15%를 축소하는 입학정원관리시스템을 3년째 시행하고 있다. 입학정원이 15명 이하로 떨어지면 이듬해 신입생을 선발할 수 없다.

대학들은 마치 기업이 외부기관의 컨설팅을 받아 구조조정을 하듯이 학과를 구조조정하고 있다. 지난해 중앙대가 단과대와 학부를 통폐합하는 구조조정을 완료했고, 고려대도 학과 구조조정을 위해 외부 컨설팅업체로부터 조직진단을 받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성균관대는 삼성경제연구소와 ‘비전 2020’을 마련해 올 5월 비공개 설명회를 열기도 했다. 문리과대학을 신설해 기존의 문과대학·사회과학부·경제학부·자연과학부 등 주요 학부를 포함시키겠다는 것이다. 내부에서도 기초학문이 고사되고 말 것이라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비공개 설명회에서 나온 내용을 살펴보면, 성균관대는 학부를 줄이고 대학원 비중을 늘리는 방식으로 구조를 개편할 것으로 보인다. 그럴 경우 학부 강의는 시간강사 등 비정규 교수가, 대학원 강의는 정규직 교수가 맡을 수도 있다. 대학사회가 구조조정과 비정규직 확산으로 상징되는 기업을 닮아 가고 있는 것이다.

기업 닮아 가는 대학사회
 
수년째 지속되고 있는 서울대 법인화 문제는 공기업 민영화를 떠올리게 만든다. 현재 국회에는 지난해 정부가 발의한 ‘국립대학법인 서울대학교 설립·운영에 관한 법률’ 제정안이 발의돼 있다. 내부 구성원들의 반발이 커 통과 여부가 불투명하지만, 서울대가 법인화되면 나머지 국립대들의 법인화는 시간 문제다.

대학의 기업화와 비정규직 문제를 대학의 책임으로만 볼 수는 없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가운데 고등교육에 투자하는 공공재원의 비율은 한국이 최하위권이다. 2005년 기준 OECD 회원국의 ‘고등교육 공공재원·민간재원 부담현황’에 따르면 평균 고등교육 재원은 공공재원이 73.1%, 민간재원이 26.9%를 차지한다. 한국은 정반대다. 공공재원이 24.3%, 민간재원이 75.7%를 차지한다.

대학의 시간강사 문제는 대학교육의 질적수준 저하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연구에 전념해야 할 시간강사들이 생존 문제를 고민해야 할 상황이기 때문이다. 대학교육 정상화를 위해서는 대학의 구성원인 학생·학부모·정규직 교수·비정규 교수·시민단체의 연대가 필요한 상황이다. 어느 한 주체만 나선다고 해서 해결될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김영곤 고려대 비정규 교수는 “시간강사에게 교원지위를 부여하는 것은 강사들만의 문제가 아니라 학생과 학부모들의 문제”라며 “1천만원의 등록금을 내고 스펙을 쌓아 기업의 기능인력으로 교육받는 시스템을 바꿔 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지식사회에 걸맞게 대학이 바뀌어야 한다”며 “그 핵심에 시간강사가 있다”고 말했다.

등록금 내는 학생·학부모의 관심도 필요
 
대학 교원 범주에서 시간강사가 제외된 지 33년, 국가인권위원회가 정부에 시간강사에 대한 차별적 대우를 개선하라는 권고를 내린 지 6년의 세월이 흘렀다. 그리고 98년 이후 9명의 시간강사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영문학 시간강사를 하다 2008년 목숨을 끊은 고 한경선 박사는 유서에서 “더 이상은 이와 같은 비극이 일어나길 원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하지만 올 5월 광주의 한 대학교에서 시간강사를 하던 서정민 박사가 대학 내 교수채용 비리와 논문 대필사건을 폭로하며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경찰은 이달 5일 서 박사가 폭로한 교수채용 비리와 논문대필 건에 대해 ‘무혐의’로 사건을 종결했다. 그렇다고 서 박사의 폭로가 “사실이 아니었다”고 곧이곧대로 믿을 사람은 많지 않다.

국회에 시간강사의 교원지위 회복과 관련한 5개의 법률 개정안이 발의돼 있다. 이번에도 17대 국회 때처럼 발의에만 그쳐서는 안 될 것이다. 김동애 본부장은 우리 사회에서 풀지 못한 세 가지 난제로 국가보안법 폐지와 삼성의 노조 불인정, 대학 시간강사 문제를 꼽았다. 고 한경선 박사의 유언대로 ‘구호나 정책’이 아닌 ‘진정한 반성과 성찰’이 필요한 때다.


서울 여의도 국회를 오가다 보면 누구나 한 번쯤은 KB국민은행 앞에 자리 잡은 낡은 텐트를 목격하게 된다. 낡은 학사모를 쓰고 있는 마네킹은 텐트 앞에서 비바람을 맞으며 몇 년째 같은 자리에 서 있다. 지난 2007년 9월 시간강사 교원지위 회복을 촉구하며 만들어진 농성장은 이제 노부부만이 외롭게 지키고 있다.
텐트농성 1천175일째에 접어든 지난 24일 오후 <매일노동뉴스>가 농성장에서 김동애(63·사진 오른쪽)·김영곤(61) 부부를 만났다. 시간강사 출신 박사인 김동애씨는 대학강사교원지위회복과 대학교육정상화 투쟁본부 본부장을, 남편 김영곤씨는 한국비정규교수노조 고려대분회 분회장을 맡고 있다.
 그는 현재 고려대 세종캠퍼스 경영학부에서 전공과목인 ‘노동의 역사’·‘노동의 미래’를 강의하고 있다. 수업은 모두 학생들의 발표와 토론으로 진행된다.
이들은 5제곱미터 남짓한 텐트 안에서 숙식을 하며 올해로 네 번째 겨울을 나고 있다. 중국사를 전공한 김동애 본부장은 70년대 초 중국 유학을 앞두고 고려대 아세아문제연구소에서 중국어를 배우다 친구의 소개로 김영곤 분회장을 만났다.
 71년 위수령이 발동되면서 서울시내 캠퍼스에 무장 군경이 투입됐고 대학생들을 무작위로 연행해 갔다. 이때 군인을 피해 도망다니던 김영곤 분회장을 김동애 본부장이 도와준 것이 인연이 돼 결혼까지 하게 됐다.
문득 궁금했다. 국민은행측이 사유지에서 3년 넘게 텐트농성을 벌이는 것을 그냥 내버려 뒀을까.
“몇 번 철거하려고 시도했었죠. 그때마다 이 투쟁이 개인을 위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말해 줬습니다.  단순히 시간강사 만의 문제가 아닌 국민의 문제라고요. 감히 ‘국민’이라는 이름을 붙이고 있으면서 국민을 위해 5제곱미터 못 내주냐고 따졌죠.”
농성장을 철거할 경우 비정규 교수들과 함께 통장해지 운동을 벌이겠다고 경고하기도 했다. 결국 은행에서도 텐트를 철거하지 못했다. 구청에서도 몇 차례 철거를 시도했지만 노부부의 의지를 꺾을 수는 없었다. 
“구청 직원들에게 대학 보내는 자식 없냐고 물었습니다. ‘이 텐트는 학부모들이 낸 시간강사 강사료로 받아서 만든 것이다. 천막 하나, 집기 하나도 모두 국민의 것이다. 건드리지 말아라’고 했죠.”
부부의 집은 부평에 있다. 일주일에 4~5일은 텐트에서 머물고, 하루 이틀은 빨래를 하기 위해 집에 들른다. 농성장의 위치가 말해 주듯 이들의 기나긴 투쟁은 국회를 상대로 한 것이다. 김동애 본부장은 “여기저기서 고등교육법 개정안을 발의할 필요가 없다”며 “안을 내놓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의결해서 강사의 교원지위를 회복하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이들은 대학 시간강사 문제가 대학생들의 학습권, 학부모들의 자녀교육권 문제와 맞물려 있다고 강조한다.
“정규직 교수에게 적당히 비위를 맞추면서 어떻게 소신 있게 양심에 따라 강의를 할 수 있겠습니까.”
시간강사 문제가 제기된 것은 오래됐지만 정작 투쟁에 참여하는 시간강사는 많지 않다. 비정규교수노조의 각 분회에 가입해 있는 조합원들도 20명을 넘지 않는다.
“시간강사는 신분상으로 대학과 정규직 교수의 노예입니다. 강의실에는 수업시간에만 나타나는 유령이고요. 각 대학에 흩어져 있다 보니 모래알 같은 존재입니다. 유령과 모래알이 만나기가 쉽겠어요.”
김동애 본부장은 대신 학생들에게서 희망을 보고 있었다.
“최근 국·공립대 학생들이 잘못 쓰인 기성회비를 반환하라며 집단소송을 냈잖아요. 학생들에게서 희망을 봅니다. 이제 대학생자녀를 두고 있는 노동자들은 자녀들의 교육권 문제에 눈을 떠야 해요. 대학자본에 빼앗긴 권한을 되찾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조현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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