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에 사는 서민들이 ‘내 집 마련’의 꿈을 이루는 데 SH공사는 없어서는 안 될 공기업 중 하나다. 지난 89년 서울특별시도시개발공사라는 이름으로 출발한 SH공사는 지금까지 임대주택 11만여호와 분양주택 7만2천여호를 공급했다. 전세대란인 요즘 SH공사가 공급하는 장기전세주택 시프트는 주변시세의 80% 수준으로 저렴해 연신 사상최대 경쟁률을 갈아치울 정도로 큰 인기를 모으고 있다.

그러나 SH공사 노동자들에게는 말 못할 고민이 있다. 2004년 자본금 5조원으로 비교적 건실했던 SH공사는 올 6월 현재 17조원에 가까운 부채를 안고 있는 대표적인 부실 공기업으로 전락했다. 뿐만 아니다. 같은 기간 사업물량은 7배가 늘어 업무량도 그만큼 증가했지만, 인력충원은 이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지난 19일 오후 서울 개포동 SH공사노조 사무실에서 만난 김재도(45·사진) 위원장은 “2003년 600명이던 직원수는 올해 680명으로 고작 80명 늘었는데 업무량은 7배나 많아졌다”며 “정기적으로 지급되는 성과급을 받아도 서울시의회와 언론에서는 ‘부채가 많은데 왜 직원들 성과급 주냐’며 도덕적 해이로 몰아가고 있다”고 토로했다.

“열심히 일할수록 부채가 늘 수밖에 없는 구조”

SH공사의 부채는 2007년 말 9조7천257억원(부채비율 390.7%)에서 지난해말 16조3천456억원(부채비율 505.5%)으로 매년 급격히 늘고 있다. 이 기간에 보금자리 주택이나 뉴타운 같은 국책·시책사업이 본격적으로 시행됐기 때문이다.

김 위원장은 “부채가 늘어난 핵심 원인은 ‘선투자 후회수’ 사업방식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일례로 발산지구의 경우 지구 지정부터 보상·착공에 3년9개월이 걸렸다. 분양·준공으로 사업비를 회수한 것은 4년9개월째부터였다. 투자금을 회수하는 데 4~5년은 족히 걸린다는 설명이다. 시프트의 경우 대형평수인 114제곱미터(34평)의 원가는 7억원이다. 임대보증료는 2억원 수준이다. 나머지는 임대료를 받는 20년간 고스란히 부채로 묶인다.

“지난해 회계상으로는 2천700억원의 당기순이익이 발생했습니다. 그래도 SH공사는 사업을 할수록 빚을 질 수밖에 없는 구조예요.”
김 위원장은 “악성부채로는 은평뉴타운 미분양 300세대와 동남권 유통단지(가든파이브)가 있는데 서울시가 무리하게 사업을 벌인 결과”라고 지적했다. 그는 “시프트의 경우 중대형평수(84제곱미터) 이상은 지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SH공사 아파트는 서울시 세금으로 짓는 겁니다. 그렇다면 서민주택 안정화에 더 충실해야죠. 오세훈 서울시장은 중산층까지 시프트 공급을 확대하려고 합니다. 그건 SH공사의 몫은 아니라고 봅니다.”

김 위원장은 “서울시장을 한나라당이 장기집권하다 보니 주택정책에 대한 비판과 감시기능이 제대로 이뤄지지 못하고 있다”며 “SH공사가 포플리즘 정책에 희생자가 되지 않으려면 서울시의회나 시민단체와 같은 감시·견제세력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밝혔다.
SH공사 노사의 최대 현안은 인력충원이다. 올해 실시한 조직진단 결과 필요인력은 800여명으로, 향후 120명을 더 뽑아야 한다. 김 위원장은 “전체 예산에서 인건비(350억원)가 차지하는 비중은 0.5%에 불과하다”며 “청년실업 해소에 큰 역할을 할 수 있는데도 서울시는 초임 2천만원(성과급 제외) 정규직 채용에 알레르기 반응을 보이고 있다”고 비판했다.

“복수노조 시대, 공기업노조 지형 변할 것”

김 위원장은 전국지방공기업노조연맹 위원장을 겸하고 있다. 27개 지방공사·공단노조들이 모여 2005년 6월 설립한 연맹은 양대 노총에 가입하지 않은 채 독자노선을 걷고 있다. 현재 가입 노조수는 33개로 늘었다.
"한국노총에 정부투자기관노조들이 많은데, 지방공기업노조가 소수이다 보니 우리들의 목소리가 제대로 반영되지 않더라구요. 민주노총도 마찬가지로 지방공기업 투쟁에 대한 배려가 부족했습니다. 양대 노총 모두 한계를 느꼈어요. 요즘엔 규모가 큰 노조에서도 가입문의가 곧잘 옵니다."
김 위원장은 "복수노조 시대가 오면 공기업노조들의 지형이 많이 달라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다양한 목소리를 담아내려면 그릇도 다양해져야 한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사진=김미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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