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년에도 2007년에도 복수노조준비위원회를 만들고 몇 차례 조직화를 시도했었습니다. 그런데 번번이 복수노조 시행이 유예되면서 유야무야 끝났죠. 이번에는 다릅니다. 내년에 복수노조가 허용되든, 혹은 유예되든 법과 상관없이 복수노조를 조직화하기로 했거든요. 만약에 내년 6월 또다시 복수노조가 유예된다 하더라도 지금 전국에 불고 있는 조직화 바람은 계속될 겁니다. 지금 추세라면 내년 상반기에 1만명 시대를 맞이할 것으로 봅니다."

18일 오후 서울 대림동 운수노조 사무실에서 <매일노동뉴스>와 만난 박사훈(52·사진) 운수노조 민주버스본부장은 자신에 차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본부에 올해 신규 가입한 조합원수만 1천600여명이 넘는다. 지난해 말까지 조합원수가 1천500여명이었던 것을 감안하면 성장률이 100%를 웃돌고 있는 셈이다.

내년 6월 복수노조 허용을 앞두고 버스업계는 벌써부터 복수노조 바람이 거세다. 첫 출발은 올해 초 운수노조가 준조합원 제도를 도입해 ‘노조 이중가입’을 허용하는 한편 민주버스건설준비위원회(민버준)를 만든 것이었다.

“한국노총 소속으로 돼 있는 조합원들이 기존 노조를 탈퇴하고 민주노총으로 오면 회사로부터 온갖 시달림을 받아요. 그래서 탈퇴하지 않아도 운수노조 조합원으로 인정해 주도록 한 거죠. 민버준은 버스본부 산하조직이 아니라 운수노조 전략조직화위원회의 특별조직입니다.”
 
사실 본부가 복수노조를 준비하는 조직체계를 결성한 것은 올해가 처음은 아니다. 2002년에도 2006년에도 복수노조준비위원회를 만들고 조직확대 사업을 벌였다.

“복수노조 허용이라는 법·제도에 맞춰 여러 차례 시도를 했었습니다. 그런데 올해 또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이 개정되면서 복수노조가 1년6개월 유예되지 않았습니까. 정부 정책이나 법·제도만 바라보다가는 또 허송세월 보낼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벌써 13년의 세월을 그렇게 보냈으니까요. 그래서 조직적 결단을 내렸습니다. 복수노조가 시행되든, 유예되든 상관없이 현행법에서 가능한 복수노조 조직화를 하자고.”

전국에서 각 지역별로 활동하고 있는 버스노조민주화를 위한 노동자협의회 소속 회원들과 본부는 지난해 말부터 6차례 이상 토론회를 열어 구체적인 조직화방안을 마련했다. 내년 6월30일까지 민버준을 통해 조직화하되, 업종구분 없이 지역단위를 골간으로 한다는 원칙을 정했다.

복수노조시대, 소규모 노조의 생존법은?

하지만 지난달 열린 임시대의원대회에서 민버준과 본부는 통합됐다.
“당시 설계한 민버준의 조직체계는 복수노조시대의 본부 조직체계입니다. 지금은 사업장 단위를 골간으로 조직이 구성돼 있습니다. 내년 6월 이후에는 시내버스 운전하든, 전세버스를 운전하든 상관없이 ‘지역’이라는 한 지붕 아래 뭉치는 구조이지요. 버스회사들은 직원수가 평균 100여명 수준이에요. 영세한 사업장에서 노조가 둘, 셋으로 늘어나면 분산적이고 파편적으로 대응할 수밖에 대응할 수 없어요. 사업장 벽을 허물고 지역조직 체계로 간다면 비록 기업별노조만큼 민첩하게 대응할 수 없다 해도 동일지역 내 노동자들이 공동으로 발휘할 수 있는 위력이 있지요. 복수노조 시대에 맞는 조직체계는 지금과는 전혀 다르다고 생각합니다.”

“급격한 조직확대는 오히려 독”

박 본부장은 “최근 전북지역의 한 시내버스 노동자들이 최저임금법 위반으로 사측을 고소·고발해 겨우 최저임금이 넘는 월급을 받게 됐다”며 “버스 현장은 피폐해질 대로 피폐하고 불만이 폭발 일보직전까지 축적돼 있다”고 말했다. 이러한 버스노동자들이 복수노조 허용이라는 빗장이 열릴 것으로 보이자 노동환경이 열악한 지역부터, 상대적으로 더 억눌렸던 사업장부터 운수노조 가입을 문의하고 이런 흐름은 전국으로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고 박 본부장은 전했다.

하지만 그는 “급격한 조직확대는 오히려 독”이라고 말했다.
“단시간 내 조직의 양적 확대는 실효성 있는 조직관리를 어렵게 합니다. 내용을 어떻게 채울 것인가가 고민입니다. 최소한의 집행체계와 전담인력을 단시간 안에 키워 내는 게 쉽지 않으니까요. 그래서 복수노조 허용과는 상관없이 우리의 속도대로 가려고 합니다.”
본부는 올해 말까지 조합원수 5천명을 달성하고, 내년 상반기까지 1만명, 내년 말까지 2만명으로 늘린다는 목표를 갖고 있다. 박 본부장은 “이런 속도라면 무난하게 목표를 달성할 것 같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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