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산업재해로 숨진 노동자는 2천181명이다. 하루에 6명의 노동자가 일하다 숨진 것이다. 사망자가 가장 많이 발생한 업종은 건설업(606명)으로 하루 평균 2명의 노동자가 건설현장에서 목숨을 잃었다. 건설업은 일 자체가 위험하다. 하지만 재해가 많이 발생하는 데는 구조적인 원인도 있다. 무리한 공기단축은 노동자들을 장시간으로 내몰고, 다단계하도급은 원래 책정된 공사비를 갉아먹는다. 화장실이나 휴게실을 제대로 갖추지 않은 곳도 적지 않다. 공사현장에서 일하면서 받는 스트레스는 현장 노동자들은 물론 현장소장도 예외는 아니다.

신아무개(47)씨는 지난 2008년 한 건설사에 입사했다. 비무장지대에 차량이 다닐 수 있도록 도로를 만들고 옹벽을 보강하는 공사현장의 소장을 맡았다. 공정 전체를 파악하고 현장노동자 관리, 군부대 관계자와 협의를 하는 것이 그의 업무였다. 이 현장은 신씨가 근무하는 회사가 다른 건설사로부터 도급을 받은 것이었다. 군과 원청 건설사의 공사기간은 4개월이었지만, 원청과 신씨 회사가 계약한 공사기간은 3개월(9월~11월)이었다. 정해진 휴일은 따로 없었다.

현장이 군부대였기 때문에 공사시간은 오전 9시부터 오후 5시까지로 통제됐다. 비무장지대여서 출퇴근하는 데 시간이 많이 걸렸다. 신씨는 오전 6시 춘천시에 있는 사무실에서 현장 노동자들과 함께 출발했고, 오후 5시면 현장에서 나와 오후 8시쯤 사무실에 도착했다. 출퇴근시간만 무려 5시간 정도가 걸린 것이다.

열악한 현장조건에 공사 지연돼

군의 출입통제도 엄격했다. 신원조회를 위해 건설노동자와 레미콘 노동자들은 적어도 2~3일 전에 미리 군에 신고를 해야 했다. 레미콘 노동자들은 이동시간이 많이 소요되고 위험하다는 이유로 공사현장에 가는 것을 꺼려했다. 현장 근처에 지뢰가 있어 자유로운 이동은 불가능했다. 화장실이나 식당·편의시설·난방시설, 심지어 현장사무소도 없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공사를 하는 중에도 현장을 통제할 수가 없었다. 공사현장 부대에서 다른 건설회사가 부대 내무반 보수공사를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병사들이 천막 생활을 하고 있어서 공사를 빨리 마쳐야 했기 때문에 도로를 막을 수 없었다. 신씨가 맡은 도로공사에 차질이 빚어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신씨는 군부대에 공사기간을 연장해 줄 것을 요청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신씨는 레미콘 차량을 구하기 어려운 데다, 내무반 보수공사 등으로 공사에 차질이 발생하자 군부대와 협의해 공사대금 변경 없이 옹벽을 세우는 대신 도수로와 철망을 설치하기로 했다. 그런데 이후 군부대에서 공사내용 변경으로 당초 약정된 레미콘 차량비용을 인정할 수 없다며 공사대금 중 8천만원을 삭감하겠다고 통보했다. 11월 말쯤 공사가 마무리됐지만 군부대에서 노면의 고르기가 잘 안됐다는 등의 지적을 해 공사가 12월까지 이어졌다.

신씨는 공사대금 삭감과 준공 지연으로 인한 비용 발생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사무실로 돌아온 후에도 자정 내지 새벽 2시까지 서류작업을 했다. 회사 대표로부터 공사대금 삭감 문제로 질책을 당했고, 현장에서는 임금을 제때 받지 못한 노동자들로부터 항의를 받았다.

신씨는 공사를 마친 후 군으로부터 검사를 받던 당일, 군부대 담당자와 협의하던 도중 쓰러졌다. 군의관이 가져온 차량으로 1시간30분을 이동해 화천군의 의료원에 도착했으나 신씨는 사망 판정을 받았다.

법원 “고혈압 등 자연경과 이상으로 악화”

이에 신씨의 부인은 지난해 2월 근로복지공단에 유족보상 및 장의비 지급을 청구했다. 공단은 그러나 “망인은 공사대금 삭감 문제에 대해 직접적인 책임을 지는 위치에 있지 않으므로 공사대금 삭감 문제를 정신적인 충격을 줄 만한 스트레스로 인정하기 어렵고, 의학적으로 과로 등을 인정할 만한 객관적인 인과관계가 희박하다”며 불승인 처분을 내렸다.

부검 결과 신씨의 사인은 뇌동맥류 파열에 의한 지주막하출혈이었다. 2008년 7월 개정 이전의 산업재해보상보험법에 따르면 업무수행 중에 발생한 지주막하출혈(뇌출혈의 일종)은 무조건 업무상재해로 인정됐지만 법이 개정되면서 업무수행 중 발병했더라도 질병과 업무의 관련성(과로 여부)를 따지게 됐다.

공단은 신씨의 사례를 업무상질병으로 인정하지 않았지만 법원의 판단은 달랐다. 서울행정법원은 8월 “망인이 업무상 과로와 스트레스를 겪다가 겉으로 드러나지 않았던 고혈압 등의 질환이 자연경과 이상으로 급격히 악화돼 사망에 이른 것으로 추단할 수 있다”며 “망인의 사망과 업무 사이에 인과관계가 있다고 봄이 상당하다”고 판시했다.


[관련판례]
서울행정법원 2010년8월13일 선고 2009구합50220
대법원 2007년4월12월 선고 2006두4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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