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사회가 빠르게 늙어가고 있다. 노동시장도 예외는 아니다. 31일 노동부에 따르면 노동자들의 평균연령은 99년 35.9세에서 지난해 38.5세로 증가했다. 노동자들이 10년 새 2.6살 늙어 버린 것이다. 이 속도라면 2020년에는 노동자 평균연령이 40대 초반을 넘어서게 된다.

급속도로 고령사회에 진입하면서 노동현장의 산업재해 발생 양상도 달라지고 있다. 무엇보다 산재를 당한 노동자 가운데 고령층이 차지하는 비중이 월등히 높다. 한국산업안전보건공단에 따르면 올해 1월부터 6월 사이4만3천969명이 산업재해로 다치거나 죽었다. 이 가운데 50세 이상 고령층은 1만8천864명으로 42.9%에 달한다. 같은 기간 사망사고로 모두 590명의 노동자가 운명을 달리했는데, 이 가운데 절반(287명)이 50세 이상 고령자였다.

청장년층 재해 줄고 고령층 재해 급격히 증가

산업재해 통계를 보면 55세 이상 고령노동자(고령자고용촉진법 시행령에서 정의하는 고령 근로자 기준)의 산업재해 건수가 해가 갈수록 늘고 있다. 2007년 고령 노동자의 재해건수는 1만9천133건으로, 전체 산업재해의 21.2%에 해당한다. 98년(7천478명)과 비교하면 2배 이상 늘었다. 같은 기간 25세 미만과 25~39세 청년층 노동자의 산업재해 비율이 각각 2%포인트, 4%포인트 감소한 것과 대비된다.

이 기간 고령노동자의 업무상사고 중 가장 발생빈도가 높은 재해는 전도(넘어짐) 사고였다. 이는 곧 10년간 고령노동자의 3분의 1(28.5%)이 넘어지거나 미끄러져 산재를 당했다는 의미다. 이어 추락(17.4%), 감김·끼임사고(16%) 순으로 나타났다.
넘어지거나 떨어지거나 끼이는 사고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고질적으로 발생하는 3대 재해로 꼽힌다. 하지만 연령대별로 차이는 있다. 나이가 많을수록 넘어짐 재해나 추락사고가 증가하는 반면 감김·끼임 재해는 감소한다.

너무나 어이없는 죽음의 이유

전문가들은 “연령이 높아질수록 자세의 제어가 어려워 넘어지거나 추락하는 사고가 많이 발생하는 편”이라고 설명한다. 실제로 고령노동자의 사망사고 사례를 보면 어이없는 경우가 많아 충격에 빠지게 된다. 2004년 청주에서 64세의 건설 노동자가 준공검사를 앞둔 한 건물의 공사현장에서 유리창 청소작업을 하다 4.4미터 높이에서 추락해 숨졌다. 사고원인을 조사한 결과 준공으로 인해 외부에 추락방지망이 설치될 수 없는 상황에서 고령의 노동자가 무리하게 작업을 하다 몸의 균형을 잃어 추락한 것으로 밝혀졌다. 찰나의 순간으로 생사가 갈린 것이다. 같은해 서울에서 72세 경비원은 지하실에 있는 전등을 소등하고 어두운 계단을 오르다가 발을 헛디뎌 지하 2층(3.6미터)의 발전기실 바닥으로 추락해 사망했다. 앞의 사례처럼 어두운 장소에서 걷다가 몸의 균형을 잃은 것이 원인이었다.

노화와 노동력

나이는 신체기능을 급격하게 떨어뜨린다. 일반적으로 연령이 높아짐에 따라 신체기능이 저하된다고 알려져 있다. 국제노동기구(ILO)에 따르면 근력은 20~60세 사이에 15~20% 정도 저하된다. 정밀한 조정 등을 요구하는 상황에서 자세의 제어가 힘들게 된다. 온도와 환경에 따른 작업이 곤란할 뿐 아니라 시력조절기능 및 청력기능의 저하 등도 발생한다고 알려져 있다. 일본의 한 연구에 따르면 25~29세의 신체기능에 비해 50~59세의 고령자의 경우 악력은 20% 정도 감소하고, 특히 청력·평형감각능력·야간근무 후 회복능력은 약 60~70%까지 저하되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때문에 몸의 반응이 느려져 충분히 피할 수 있는 사고도 사망으로 이어지는 비극을 초래하게 된다. 고령노동자의 산업재해가 급격히 증가하고 있는 추세를 감안하면 앞으로 이들의 신체기능에 맞는 노동환경을 만드는 것이 앞으로 우리나라 산재발생률을 낮추는 데 관건이 될 것으로 보인다.

 


고령자에게 맞는 노동환경은 따로 있다

가톨릭의대 연구팀(책임연구자 구정환)이 발표한 ‘고령 근로자의 산업재해 특성 및 안전보건 관리방안에 관한 연구’ 보고서에 따르면 노동자들은 작업에 필요한 정보의 80% 이상을 눈을 통해 얻는다. 그런데 나이가 들면 시각정보도 쇠퇴한다. 먼 곳과 가까운 곳으로 시선을 옮기는 기능을 원근조절력이라고 하는데, 20세 후반에 정점을 찍은 후 급속도로 기능이 떨어진다.
 
볼록렌즈 같은 안경으로도 보안이 불가능하다. 노동현장에서 작업을 하다 보면 자기 주위를 보다가 급히 멀리 시선을 옮겨 그것에 초점을 맞춰야 하거나 또는 반대의 경우가 많다. 이런 경우 고령노동자는 시간이 오래 걸린다. 먼 곳에서 자기 주위로 시선을 옮길 때는 주변의 지각능력이 뒤틀릴 가능성도 있다. 그래서 고령노동자는 초점변환이 적은 작업방법으로 일을 하거나 미세한 작업을 피하는 것이 좋다.

연구팀은 “고령 노동자에 대한 산업안전보건 관련 법령이나 규정이 제대로 갖춰지지 않은 실정”이라며 “고령노동자에게 발생할 수 있는 주요 재해를 중심으로 작업장 안전보건관리지침을 개발하고 제도적 보완장치를 개발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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