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3일은 ‘납세자의 날’이다. 해마다 이날이 돌아오면 ‘납세자의 날’ 기념식이 열린다. 국세청은 국민 납세의무를 독려하겠다며 각종 세금을 모범적으로 납부한 이들을 선정해 표창장을 수여한다. 권리찾기유니온과 근로기준법 입법추진단은 3월3일을 ‘가짜 3.3 노동자 날’로 정하고, 3.3의 이름을 내세운 또 다른 기념식을 개최하고 있다. 세금의 종류인 사업소득세로 위장해 근로기준법을 빼앗긴 노동자들의 현실을 조명하는 취지다. 올해는 현행 근로기준법의 제정일인 3월13일로 변경해 세 번째 기념식을 열었다. 근로기준법 없이 일하는 노동자가
“나 여행 가 있는 동안 민지가 시아버지 식사 챙기러 올 수 있나?”결혼한지 1년도 채 안 된 내 친구가 시어머니한테 들은 말이다. 요즘 어디 가서 여성이라 차별받은 얘기를 하면 “그건 다 옛날 일 아니냐, 요즘 MZ들은 안 그렇다더라”라는 말을 종종 듣는다. 틀렸다. 옛날이 아니라 아직도 있는 요즘 일이다.다 큰 성인 남성이 혼자 밥을 못 챙겨 먹는 것도 아닐 텐데, 시아버지의 밥을 당신들 자식도 아닌 남의 딸 며느리에게 말하는가. 아직도 밥과 같은 식사와 챙김, 돌봄은 여성의 몫이구나, 이상한 문화가 바뀌기까지 시간이 오래 걸리
지난 26일, 안전운임제를 재시행하는 내용의 오스트레일리아 노동법 개정안이 오스트레일리아 의회를 통과했다. “노동법의 허점을 메꾸는 법(Closing Loopholes Act)”이라는 부제를 단 공정노동법 개정안은 임시직, 용역, 플랫폼 노동자 등 기존 노동법적 보호의 사각지대에 있는 노동자 보호를 확대하고, 차별·임금체불로부터의 보호를 강화하며, 노조활동과 초기업적 교섭을 지원하는 내용을 포함하고 있다. 특히 2016년 보수정부가 폐지한 전국적 안전운임제를 재도입하는 개정안은 2022년 말로 안전운임제가 일몰된 우리와 좋은 대조를
쿠팡이 블랙리스트를 작성하고 운영해 물류센터 노동자의 취업을 방해했다는 보도가 이어지고 있다. 블랙리스트에 등재된 인원이 1만6천450명에 이른다고 한다. 그런데 이 사실이 그렇게 놀랍지는 않다. 내가 만난 쿠팡 물류센터 노동자들은 블랙리스트가 있다는 것을 이미 인식하고 있었다. 일용직의 경우 출근 신청을 했는데 출근확정 문자가 오지 않으면 ‘혹시 내가 블랙인가?’ ‘어제 일하면서 내가 뭘 잘못했지?’ 하고 생각한다 했다. 관리자들이 블랙리스트를 암시하면서 현장통제에 순응하게 하는 일이 많았기 때문이다.쿠팡은 ‘사업장 내에서 성희롱
“사고현장인 주유소 바닥에 미끄러져 발목 골절” “현장 주행하던 차량이 추돌하여 업무차량 파손” “블랙박스 확인 후 하차하다 뚜껑 열린 맨홀에 빠져 연골판 파열”교통사고조사원들이 증언하는 업무상 사고의 대표적인 사례다. 보험가입자의 교통사고가 접수되면 자동차보험 회사는 사고현장에 사고조사원을 출동시킨다. 현장에 도착한 사고조사원은 부상자 구호와 현장 수습을 조치하고, 피해현황과 사고원인 조사 등 지정된 업무를 수행한다. 위급한 현장에서 극도로 위험한 노동을 감수한다.김인식 사무금융노조 삼성화재애니카지부장은 “24시간 잠들지 않는 서
명절은 누구에게나 평등한가?먼저 답하면 명절은 평등하다. 다만 우리 사회가 뒤틀려서 명절이라는 시간을 평등하게 제공받지 못할 뿐이다. 명절이 다가오면 여성은 일방적으로 더 많은 가사노동을 강요받는다. 다른 누군가는 연휴도 제대로 보장받지 못한 채 일터로 나가 일하기도 한다. 멀리서 찾지 않아도 우리 주변에 이런 상황은 널려 있다.10여 년 전 방영한 TV드라마 의 한 장면에서 명절에 계약직인 주인공 장그래는 식용유 선물세트를, 같은 일터 정규직은 스팸 선물세트를 받았다. 스쳐 지나가는 장면에서 한 계약직 직원이 “어유 됐어,
서울고법이 지난 24일 CJ대한통운이 택배노조의 단체교섭 요구에 응할 사용자임을 재확인하는 판결을 내렸다. 지난해 1월 서울행정법원이 같은 취지의 판결을 내린 후 정부와 재계는 이 판결을 집중적으로 비판했는데, 이번 고법 판결문을 보니 그런 비판에 대한 법원의 답변을 읽을 수 있었다.정부는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노조법)의 ‘사용자’ 정의에 ‘근로자의 근로조건에 대해 실질적, 구체적으로 지배·결정할 수 있는 지위에 있는 자’를 포함시키는 것이 단체교섭의 상대방인 사용자를 지나치게 확대함으로써 ‘제3자’인 기업의 권리를 침해한다고
한국의 행정기관과 재판부는 대체로 약자들에게 가혹하고 그 가혹한 조치는 매우 신속하다. 재판정에서 떠돌아다니는 법률의 말들은 현장의 실태를 제대로 반영하지 못한다. 노동자가 피해자인데도 노동자들의 투쟁이 사측에 대한 가해로 인식되는 일도 허다하다. 노동조합에 대한 이해가 없고, 기업과 자본가들의 소유권을 과도하게 인정하는 한국에서는 이런 왜곡된 판결이 너무 자주 내려진다. 그런 판결은 기업과 자본이 법망을 피해 노동자들에게 피해를 입히는 일을 정당화한다. 법원의 판단에 일희일비할 일은 아니지만 그래도 그런 무례한 판결을 보면 속이
국세 통계에 의하면 ‘거주자의 사업소득 원천징수 신고현황’(2021년)으로 집계된 총인원은 787만8천928명이다. 명칭대로라면 해당 사업체(징수의무자)에 의해 사업소득세(소득의 3.3%)가 원천징수되는 사업소득자의 숫자다. 이들은 2011년(327만7천898명)에 비해 2.4배 늘어났다. 전년대비 83만명이 더해져 연간 증가율(11.9%)도 두 자릿수가 됐다. 이런 추세로 후속 통계가 나오면 ‘3.3 천만시대’ 정도가 기사 제목으로 붙을 것이다. 첫 칼럼의 제목은 근로소득이 아닌 사업소득 관련 숫자다. 이 숫자의 정체를 따져 묻는
얼마 전까지 청년 활동가들끼리 글쓰기 계모임을 했다. 각자의 활동을 ‘글’이라는 언어로 쌓아가자는 취지였다. 보증금을 내고 글을 쓰지 않으면 벌금을 차감하는 방식으로 강제요인을 둬 꾸준히 글을 써 보고자 했다. 내가 참여한 이유는 글 쓰는 연습을 하고 싶어서였다. 하지만 회차를 거듭할수록 활동을 글이라는 언어로 정리해 나가는 게 왜 중요한지, 다른 참가자들의 글을 보면서 이 모임의 취지를 이해하게 됐다.동시에 우리 센터에서 매년 진행하는 비정규노동 수기공모전에 대해서도 새롭게 생각해 보게 됐다. 한국비정규노동센터는 지난해에 13번째
노조법 개정안에 대한 대통령 거부권 행사로 분노에 잠겨 있던 지난해 말에 반가운 판결이 나왔다. 지난달 21일 서울고등법원은 쏘카㈜가 운영하는 실시간 차량·기사 호출 서비스인 ‘타다’의 운전기사가 근로기준법의 근로자라고 인정했다. 2022년 1심인 서울행정법원이 계약형식만 살펴 타다 운전기사의 근로자성을 부인하는 판결을 내린 데다가, 6개월 전에는 타다 서비스가 여객자동차 운수사업법(여객자동차법) 위반이 아니라는 대법원 판결이 있었던지라
작은사업장에서 일하는 노동자는 도대체 무슨 잘못이 있길래 위험에서 보호받을 권리를 빼앗겨야 하는 것일까. 5명 미만 사업장 노동자들은 더 쉽게 해고되고 더 열악한 노동조건에서 일하는데도 근로기준법이 온전히 적용되지 않는다. 안전보건관리체계와 안전보건교육도 제외된다. 전체 산재사망자의 60% 이상이 50명 미만 사업장에서 사망하는데, 정부는 50명 미만 사업장 중대재해 처벌 등에 관한 법률(중대재해처벌법) 적용을 또다시 2년 유예하겠다고 말한다. 처음 시행을 유예할 때 작은사업장에서 준비할 시간이 필요하다는 이유를 달더니 지금에 와서
서울시 통합 노동권익센터의 민간위탁 우선협상 대상자 결과가 지난 14일 발표됐다. 필자가 속한 한국비정규노동센터는 2순위로 밀려 서울노동권익센터와 서울시감정노동종사자권리보호센터와 함께했던 시간을 올해 말로 마무리하게 됐다. 그리고 12월 19일 서울노동권익센터는 지난 10년의 성과를 되돌아보고 평가하는 정기토론회를 진행했고, 필자도 참여하면서 지난 시간을 되돌아볼 수 있는 시간이기도 했다.2000년대 이후 한국 사회 비정규직 문제와 사회 양극화는 심화했다. 수원, 전주, 울산, 대전, 청주, 서울, 안산 등 전국 곳곳에서 비정규직
노동조건을 실질적으로 결정할 수 있는 자의 교섭을 촉진하기 위한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노조법) 개정안이 결국 대통령의 거부권에 가로막히던 날, 국무총리는 “노조법 개정안은 교섭 당사자와 파업 대상을 무리하게 확대하는 등 건강한 노사관계를 저해하고, 산업현장에 갈등과 혼란을 초래하며, 국민 불편과 국가 경제에 어려움을 초래할 것으로 우려된다”고 그 이유를 밝혔다. 헌법이 노동자의 단결권·단체교섭권·단체행동권을 기본권으로 보장하고, 국제노동기구(ILO) 등 국제사회가 노조법 개정을 지속적으로 권고했지만, 단체교섭이 활성화되고 노동
이 글을 쓰고 있는데, 단식 35일째인 건강보험공단 고객센터 지부장이 결국 쓰러졌다는 소식이 들린다. 부디 지부장의 건강이 많이 상하지 않았기를 바랄 뿐이다. 35일 동안 곡기를 끊은 채 싸우는 사람의 마음이 어떤 것인지 감히 짐작하기 어렵다. 그렇지만 그 마음의 절실함을 조금은 알 수 있다. 헤드셋을 놓고 파업하는 것 외에는 자신의 주장을 관철할 힘이 없는 노동자들이, 자신들의 목소리가 건강보험공단에 더 잘 들리게 하고자 농성을 하고 곡기를 끊었다. 이 노동자들의 요구는 ‘단 한 명도 포기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건강보험공단은 노
각종 기사와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드라마 에 대한 찬사가 이어지고 있다. 이 드라마는 정신병을 앓는 사람에 대한 이해를 넘어 ‘나도 정신병을 앓을 수 있구나’를 생각해 보게 한다. 주인공인 정다은은 직장에서 자신의 험담을 듣고 사회불안증세를 겪는다. 정신병동에서 일하는 간호사 업무의 특성상 감정노동도 심할 수밖에 없었다. 주인공은 자신이 돌보던 환자와 같은 처지가 됐고 전문적인 치료를 받게 된다.얼마 전 노회찬정치학교 동문과 연말모임을 가졌다. 함께하기에 의미 있는 활동을 찾다가 혼자 보면 힘들 것
한국이 국제노동기구(ILO)에 가입한 지 30년 만에 ILO 기본협약인 87호, 98호를 비준했던 2021년 4월. 비준서 기탁식에서 이재갑 고용노동부 장관은 “한국 정부는 앞으로 기본협약의 성실한 이행을 위해 현장에서 노동기본권이 충분히 보장되고, 자율과 책임에 기반을 둔 건강한 노사관계가 형성될 수 있도록 노사와 함께 지속 노력할 것”이라고 약속했다. 그때로부터 얼마 지나지도 않았건만 요즈음 우리 사회 시계는 거꾸로 흐르는 듯하다.1998년 정리해고제와 근로자파견제의 입법, 2006년 기간제법 입법으로 상징되듯 90년대 이후 우
11월13일은 전태일 열사가 ‘근로기준법을 지켜라’고 외치며 자신의 생명을 내어준 지 53년이 되는 날이었다. 이날 노조법 2·3조 개정운동본부 공동대표인 남재영 목사님이 ‘개정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노조법) 2·3조 공포를 촉구하는 단식기도’를 시작했다. 곡기를 끊으며 기도를 시작한 동화면세점 앞은 경찰로 가득했다. 그들은 기도회를 위해 물품을 내리는 것을 가로막았고 추운 날 맨바닥에서 노숙하는 성직자가 몸을 덮으려 했던 비닐을 빼앗았다. 경찰은 기도회에 참석하려면 가방을 열어 보여줘야 한다고 강요했다. 가방 열기를 거부한
우리 사회가 빠르게 분열되고 있다. 사전적 의미 그대로 집단이나 단체, 사상 따위가 갈라져 나뉘고 있다. 스스로 분열하기도 하지만, 지금 우리 사회의 분열은 외부의 충격과 영향을 받아 분열되는 상황이다. 정치·세대·젠더·지역·공동체·노동 등 분열은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정치 분열은 정치적 사상과 환경 등에 따라 이미 오래전부터 나타났고, 세대와 젠더는 지난 대선 이후 더 빠르게 분열될 것으로 이미 예견된 바 있다. 노동은 노동조합이 그나마 지키고 있지만, 최근에는 노동조합마저 분열시키려는 시도가 이어지고 있다.분열이 잘못된 가
지난 10월27일, 미국 연방노동관계위원회(NLRB)가 새로운 ‘공동 사용자 판단 기준’ 시행령을 공포했다. 이에 대해 비정규직 노동자를 조직하고 있는 미국노총을 비롯한 노조운동은 환영 입장을, 비정규직을 많이 사용하고 있는 프랜차이즈 등 사업주단체는 비판 성명을 내놓았다. 이렇게 상반된 반응들을 이해하기 위해 미국 연방노동관계법에 관해 잠시 살펴보자.루즈벨트 대통령의 유명한 ‘뉴딜 정책’ 일환으로 1935년 제정된 연방노동관계법은, 사용자가 단체교섭에 응할 의무를 비롯해 부당노동행위에 대한 구제를 주로 규율하고 있다. 즉, 연방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