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료사진 정기훈 기자

“재난지원금 받은 거는 벌써 썼죠. 특수고용직한테 주는 지원금도 50만원씩, 세 달인데 그 돈 가지고 어디 갖다 붙입니까. 아파트 관리비, 세금밖에 더 내겠어요? 돈 생기면 또 빚 좀 낸 거 갚고, 다시 모자라면 또 빚내서 쓰고. 그런 상황이에요.”

대구에서 대리운전기사로 일하는 김자영(59·가명)씨는 코로나19 1차 대유행 시기 가장 많은 피해를 본 사람 중 하나다. 암환자인 남편이 혹여나 자신 때문에 코로나19에 감염될까 염려돼 2월18일부터 5월 중순까지 석 달 동안 일을 쉬었다. 2월18일은 코로나19 슈퍼전파자 31번째 확진자의 진단 결과가 발표된 날이다. 이후 대구·경북 지역은 확진자가 급증했다.<3월31일자 2면 [대리운전기사 이중고] “콜 줄고 집 밖에도 못 나가는데 보험료는 60만원 급등” 참조>

8월15일 광화문 집회 이후 수도권을 중심으로 확대하는 2차 대유행 시기 김씨는 어떻게 지내고 있을까. 26일 김씨는 여전히 일을 하지 못하고 있었다. 코로나19가 잠잠해지던 5월 중순께 일을 다시 시작했지만, 일하다가 다쳤다. 어두운 밤길 주차공간에 있는 턱을 보지 못한 채 걷다가 넘어져 팔목이 부러졌다. 전치 12주 였다. 김씨는 “병원에서는 일을 하면 안 된다며 쉬라고 했다”고 전했다. 그나마 다행스러운 일은 미리 보험을 들어 둔 것이다. 그는 “없는 사람일수록 보험을 들어 놓아야 한다는 주의라 보험을 많이 들어 뒀다”며 “현재는 보험료로 생활하고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일을 하지 못하는 기간 동안 진 빚을 갚고, 생활비로 쓰다 보니 또 빚을 내야 하는 처지라고 한다.

“온 몸으로 고용충격 버텨”

특수고용직인 대리운전 기사는 고용보험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 근로기준법상 노동자에게 보장된 권리인 실업급여를 꿈꿀 수 없다. 일을 하지 못하면 수익은 ‘0’이 된다. 업무 중 재해를 입으면 개인이 감수해야 한다. 산업재해보상보험법(산재보험법)상 고용보험에 가입할 수 있는 특수고용직으로 규정된 대리운전기사의 경우 산재 신청이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하지만 전속성 기준 탓에 받을 수 있을지도 확실치 않다. 대리운전 기사는 통상 2~5개의 대리운전 프로그램을 사용해 일하고, 복수의 대리운전 업체에 소속돼 있기 때문이다.

김주환 전국대리운전노조 위원장은 “8월15일 이후부터는 일을 나가도 허탕치고 다시 돌아왔다는 이야기가 계속 나온다”며 “휴가기간이라 전남과 부산은 콜이 꽤 있는 시간인데 요즘은 콜이 없다”고 말했다. 김 위원장은 “1차 대유행 시기 대구·경북에서는 콜이 아예 없었는데, 사회적 거리두기가 3단계로 격상되면 마찬가지 상황이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초·중등학교에서 정규수업이 끝난 뒤 방과후수업을 하는 방과후강사들도 몇 달간 일을 시작하지 못하고 있다. 감염병 위기경보가 ‘경계’ 단계에서 ‘심각’ 단계로 오르자 교육부가 지난 2월23일 전국 유·초·중·고·특수학교의 개학 연기 방안을 발표했기 때문이다. 네 차례에 걸친 개학 연기 뒤인 5월, 각급 학교·학년별 순차적 등교 개학을 시작했지만 대부분 학교는 방과후수업에 빗장을 걸어 잠궜다. 2학기에는 정상수업을 기대했지만, 2차 대유행으로 앞이 깜깜하다고 한다.

방과후수업이 열리지 않으면서 수입이 끊겼던 김명지(가명)씨는 지난 6월8일부터 7월24일까지 학교 안전도우미로 일했다. 발열체크를 하고, 아이들이 학교 복도에서 안전 거리를 유지할 수 있도록 안내하는 일이다. 주 5일 하루 5시간씩 7주 동안 일해 그가 번 소득은 세후 150만원 남짓이다. 김씨는 “저는 정말 힘들어서 동생에게 (생활비를) 조금 송금 받았다”며 “이제 더 이상 못 버틴다”고 토로했다.

해고 통보에 무너지는 노동자

▲ 학습지교사와 대리운전 노동자를 포함한 특수고용노동자들이 지난 2월 서울고용노동청 앞에서 코로나19감염증에 대한 차별없는 대책 마련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하는 모습. <자료사진 정기훈 기자>


가정에 방문해 교육·돌봄 서비스를 제공하는 학습지교사와 재가요양보호사는 “나오지 마라”는 고객과 수급자의 말에 하루아침에 일자리를 잃었다. 근로기준법 26조(해고의 예고)에는 “사용자는 근로자를 해고하려면 적어도 30일 전에 예고해야 한다”고 명시돼 있다. 그런데 1년 단위로 재가요양센터와 기간제 계약을 맺고 수급자 집에서 일하는 재가요양보호사에게는 유명무실했다. 학습지교사는 고객이 낸 학습료 중 일부를 수수료로 가져가는 특수고용직으로 애초 근기법 적용 대상이 아니다.

경기도 평택에서 재가요양보호사로 일하는 한지희(41)씨는 지난 18일 수급자 보호자에게 “코로나19 때문에 이번 달은 쉬어 달라”는 전화 한 통을 받았다. 이번이 두 번째다. 한씨는 지난 3월9일 같은 보호자의 요청으로 네 달 동안 일을 쉬었다. 요양서비스노조 조합원인 한씨는 네 달 동안 벌이가 없었지만 노조 활동에 집중하는 계기로 삼으며 버텼다. 코로나19가 잠잠해지던 7월 수급자의 요청으로 다시 일을 시작했지만 2차 대유행이 그의 밥줄을 다시 끊었다.

“처음에 ‘그만 나와 달라’는 이야기를 재가요양센터를 통해 전하더니, 이번에는 수급자(할머니)의 할아버지가 전화를 했더라고요. 그 전화를 받고 참 해고가 이렇게 쉽구나 싶더라고요. 필요하면 갖다가 쓰고, 우리를 24시간 대기하고 있는 사람처럼 여기는 거죠.”

벌이가 사라져 생활도 어렵지만 한씨는 불안정한 노동과 모멸감이 더 힘들다.

“코로나19 때문에 안 좋았다가 점점 회복되는 것 같았어요. 4~5월 그만두던 학부모가 6월 다시 수업 등록을 했는데, 8월에 다시 그만두겠다고 하는 거죠.”

재능교육에서 학습지교사로 일하는 여민희씨는 24일에도 그만 나와달라는 이야기를 학부모에게 들었다고 했다. 전국학습지노조 재능교육지부장이기도 한 그는 “통계를 내보지 않아 모르지만 10~20% 정도 수업이 줄어든 것으로 보인다”며 “코로나19가 내가 담당하는 지역 내에서 발생할 경우 일거리가 반토막 나거나, 아예 전체 수업이 중단되는 경우도 생길 수 있다”고 설명했다. 학부모들은 과목별로 각기 다른 학습지 업체를 이용하는 경우가 잦은데, A업체 학습지 교사가 코로나19 확진이라도 되면 같은 가정을 방문하던 B·C업체 학습지 교사도 일을 못하게 된다는 것이다.

문제는 고객이 해지 의사를 밝혀 와도, 학습지교사가 지국에 이 같은 사실을 알리지 못하고 회비를 대납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는 것이다. 해당 권역을 관리하는 ‘지국’의 영업실적 압박 탓이다. 여 지부장이 드러난 학습지교사 피해는 빙산의 일각이라고 보는 이유다.

“코로나19 사태 진정돼도
취약계층 고용·소득 회복 어려워”


코로나19 2차 확산세가 운 좋게 빠르게 진정된다고 해도 문제는 남는다. 한국은행 조사국은 지난 6월 공개한 ‘코로나19 이후 경제구조 변화와 우리 경제에의 영향’ 보고서에서 “앞으로 코로나 사태가 진정되더라도 취약계층의 고용·소득여건 개선은 더딜 것”이라고 전망했다. 코로나19로 일자리를 잃었던 노동자들의 노동시장 진입으로 인력공급이 증가해 임금 협상력이 저하되고, 기업의 고용은 빠르게 회복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A호텔에서 일하고 있는 안지희(가명)씨는 “코로나19 자구안으로 호텔이 비정규직 인력을 감축하겠다는 계획을 세웠다”며 “주말 연회나 결혼식 때 고용하던 일용직 알바 3천여명을 줄이고, 정년이 넘은 고령자로 6개월 단위 계약을 맺는 기간제 노동자 20여명도 계약을 해지하기로 했다”고 설명했다. 안씨는 “예전에는 주말 알바를 구하려면 일당 12만원을 줘야 했지만 현재는 9만원이면 구할 수 있다”며 “고용조건이 점점 악화할 것으로 보인다”고 우려했다.

인력이 줄게 되면 기존 인력은 일손이 부족한 분야에 파견돼 일하게 된다. 비정규직은 물론 어렵사리 일자리를 지켜 낸 노동자들의 노동환경 악화가 불 보듯 뻔한 것이다. 서울 강남구에 있는 B호텔은 사무직으로 일하던 직원들을 주말 연회 서빙 알바로 투입하고 있다고 한다.

코로나19로 비대면 경제가 확산하면서 기존 일자리가 사라질 수 있다는 공포감도 현장 노동자 사이에 퍼지고 있다. 한국은행은 “가계의 경우 비대면 서비스에 익숙지 않은 개인도 디지털경제에 적응해 나가야 하기 때문에 혁신저항이 약화하게 된다”며 “영화·의료·교육·행정 등에서 디지털 경제가 확산할 것”이라고 분석했다.

학교 교육 한 축을 담당하는 방과후강사들의 고민도 깊다. 학교 교육이 온라인으로 전환하고 있기 때문이다. 김경희 방과후강사노조 위원장은 “최근 대전을 포함한 몇 개 지역은 방과후수업을 온라인으로 하라고 지침이 내려왔다”며 “직업이 없어질 것이란 생각에 근거가 있는 것은 아니지만 막연한 공포감은 느끼고 있다”고 전했다. 김 위원장은 “2학기까지는 어찌 넘어간다고 해도 내년에는 방과후강사들이 조합비를 낼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우려했다.

“1차 팬데믹 대책 넘어서기 어려울 수도
그동안 파악한 소득수준 활용해 지원해야”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에 따르면 코로나19 2차 대유행의 기폭제로 지목되는 8·15광복절 집회 후 16일부터 25일까지 누적 확진자는 3천여명에 육박한다. 1차 대유행과 달리 전국 각지에서 어디서 감염됐는지 알기 어려운 n차 감염자가 나타나고 있어 확산세는 계속될 것으로 예상된다. 정부는 어떤 준비를 해야 할까.

이병희 한국노동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1차 대유행 당시 제도가 갖춰지지 않은 상황에서 노동시장 약자·취약계층에 대해 직접 소득지원을 했다는 점은 높이 평가한다”며 “현재 상태로 1차 팬데믹때 정부가 내놓았던 정책을 넘어서는 정책 마련이 어려울 수 있다”고 말했다. 다만 그는 “이미 정부가 위기 전 (특수고용직과 프리랜서에 대한) 소득수준을 파악하고 초보적으로라도 검증을 한 상태니 지원 필요성이 결정되면 지원이 빨리 이뤄질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정부는 지난 4월 특수고용직과 프리랜서, 영세 자영업자, 무급휴직자에게 1인당 월 50만원씩 3개월 동안 지급하는 긴급생활안정지원금 정책을 시행했다.

권두섭 변호사(민주노총 법률원)는 “간접고용(용역·파견)이나 하청업체도 고용유지지원금 대상이 맞지만 신규채용과 퇴직이 없어야 한다는 지원 조건을 충족하기 어려워 지원대상에서 빠지는 노동자들이 생겼다”며 “220만명으로 추정되는 특고를 포함해 일하는 사람의 절반 정도는 실업급여도 받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권 변호사는 “고용보험 밖 노동자를 임시가입자로 편재시켜 근로기준법상 근로자처럼 6개월 동안 휴업급여를 받도록 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전지현 요양서비스노조 사무처장은 “주·야간보호센터는 고용유지지원금 대상인데도 받지 못했다”며 “코로나19로 보호자가 주·야간보호센터 이용을 중단하자 센터는 그곳에서 근무하던 요양보호사들에게 2주간 근무하고 2주간 쉬도록 했다”고 비판했다. 주·야간보호센터는 낮 혹은 야간에 돌봄이 필요한 노인들에게 돌봄서비스를 제공하는 곳으로 요양보호사들은 1년 단위로 계약을 갱신하는 기간제 노동자다.

김종진 한국노동사회연구소 선임연구위원은 “소득을 기준으로 지원금을 지급하려다 보니 서류가 복잡했는데, 상반기에 파악된 정보가 있는 상태”라며 “하반기에는 영업(노동)활동이 증빙되기만 하면 다 지원금을 지급하는 방식으로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 선임연구위원은 “중장기적으로는 전 국민 고용보험도 전체 노동자에게 적용되도록 빨리 확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지원마저 없었다면
생활고 비관 자살 얘기 나왔을 것”


특수고용직을 포함한 비정규 노동자에게는 정부의 대책이 절실하다. 김경희 위원장은 교육부가 등교 수업을 중단하고 온라인 개학으로 전환한다고 공식 발표한 25일 <매일노동뉴스>와의 통화에서 “1차 대유행 당시 정부 지원금도 없었으면 아마 방과후강사들 중 생활고 때문에 비관자살했다는 이야기가 분명 나왔을 것”이라며 말 끝을 흐렸다.

팔목이 부러져 대리운전 일을 하지 못하고 있는 김자영씨는 “지원금이라도 다시 줬으면 좋겠다”며 “어쩌다 보니 석 달 쉬고, 또 다쳐서 석 달 쉬게 됐는데 이것 때문에 지원금 대상이 되지 않을까봐 걱정”이라고 말했다. 김씨는 요양기간 12주가 끝나는 9월7일, 병원에 방문해 완치 판정을 받게 되면 다시 일을 나갈 생각이다.

강예슬·이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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