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지난 20일 국가인권위원회는 실업자·해직자·구직자의 조합원 자격이 인정될 수 있도록 하라는 권고를 했다. 노동부는 구직자라는 이유로 청년유니온에 대해 노동조합 설립필증을 주지 않았다. 그리고 해직자가 조합원으로 가입돼 있다고 해서 전국공무원노조를 노조법상 설립신고된 노조로 취급하지 않았다. 또한 전국교직원노조에 대해서도 해고자의 조합원 자격에 관해 시정명령을 내렸다. 국가인권위의 권고를 노동부장관이 충실히 이행한다면 이들 노조에게는 희소식일 수 있다.
노동부장관에게 한 국가인권위의 권고는 다음과 같이 세 가지다. 첫째, 노조법상 ‘근로자’ 개념을 둘러싼 조합원 자격 논란의 해소를 위해 실업자·해고자·구직자 등을 포괄하는 것으로 노조법 제2조제1호 근로자 정의규정을 개정하고, 해고자와 실직자의 조합원 자격을 부정하고 있는 노조법 제2조제4호라목의 단서 부분 “다만, 해고된 자가 노동위원회에 부당노동행위의 구제신청을 한 경우에는 중앙노동위원회의 재심판정이 있을 때까지는 근로자가 아닌 자로 해석해서는 아니된다”를 삭제하라고 권고했다.
둘째, 신고증을 교부받은 노조라도 결격사유에 대한 시정요구 불이행시 노조에 인정되는 일체의 지위를 부정하도록 한 노조법 시행령 제9조제2항은 헌법상 과잉금지원칙에 부합하지 않으므로 이를 개선해 “이 법에 의한 노동조합으로 보지 아니함” 부분을 삭제하고, 시정요구 불이행에 대한 제재는 보다 덜 침익적인 형태로 보완하는 방안을 모색하라고 권고했다. 셋째, 행정관청은 노동조합설립신고 심사시 제출된 노동조합설립신고서와 규약에 한정해 심사하고, 법령에서 규정하고 있는 것 이외의 자료제출을 임의로 요구하는 등의 광범위한 재량권 행사 관행을 개선하라고 권고했다.
이처럼 국가인권위는 노동부장관에게 실업자·해고자·구직자도 근로자로서 조합원의 자격이 인정되는데 논란이 없도록 노조법을 개정하고 노조 결격사유의 시정요구 불이행시 노조법상 노조로 보지 아니한다는 노조법 시행령을 삭제하며 노동조합설립신고 심사시 설립신고서와 규약만으로 심사하라고 권고했다.

2. 아. 그랬었구나. 국가인권위 권고를 보고 새삼 알았다. 노동부와 행정관청은 노동조합의 설립요건과 존속요건을 심사해 왔었다. 노조법은 노동조합 가입 자격을 정해 놓고 설립과 존속의 요건을 규정하고 있었다. 그랬다. 국가는 노동조합의 조직과 가입, 설립과 존폐를 관리해 왔었다. 오직 법에서 정해 준 요건에 따라서만 노조는 설립하고 존속할 수 있었다. 오직 국가가 심사하고 승인해 주야 노조는 설립하고 존속할 수 있었다. 그래서 노조를 설립하기 위해서는 노동관서나 행정관청에 신고서를 제출하고 심사받아야 했다. 설립신고 필증이 나온 뒤에도 법상 노조 설립요건에서 결격사유가 발생하게 되면 더 이상 노조가 아니었다. 이처럼 국가는 법령과 노동부 등 행정관청에 의해 노조의 조직과 가입, 설립과 존폐를 결정해 왔다. 그래서 노동부와 행정관청은 노조 설립을 심사했고, 존폐를 결정했던 것이다. 아. 아. 그래서 대한민국의 국가인권위는 노조의 조직과 가입, 설립과 존폐의 문제를 권고했던 것인가. 국가가 노조의 설립과 존폐를 결정하고 관리해야 하는 것이었기 때문에. 혹시 그런 것인가. 국가가 노동자를 관리하고 있는 것인가. 법과 행정관청 등 권력행사를 통해서 노동자의 운명을 결정하고 있다는 것인가. 지금 노동자는 그렇다. 대한민국에서 노동자는 현재 그렇다. 노동자의 운명은 노동자가 결정하지 못한다. 노동자의 주인은 노동자가 아니다.

3. 이미 노동자는 그랬다. 이 세계에서는 어디서나 그랬다. 노동자의 운명은 노동자가 결정하지 못했다. 이 세계에서는 태어나면서부터 노동자의 주인은 노동자가 아니었다. 이 세계에서 생존을 위해서는 자본의 운동에 편입돼야 했고 임금을 위해 노동을 해야 했다. 이 세계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사용자의 지배를 받고 노동해야 했다. 사용자에 의해 관리됐고, 사용자의 결정에 따라 노동자의 운명은 좌우됐다. 그러나 노동자로서 ‘우리’는 그렇지 않다고 했다. 헌법 제33조에서 근로자는 근로조건 향상을 위해 자주적인 단결권을 가진다고 했다. 그래서 노동자로서 ‘우리’는 우리의 운명은 우리라고 알았다. 노동자(개인)는 아니라도, 노동자로서 ‘우리’는 자주적으로 우리의 운명을 결정할 수 있는 줄 알았다. 노동자로서 ‘우리’의 주인은 우리라고 알았다. 노조법 제5조에서 규정한 것처럼 노동자들은 자유롭게 노동조합을 설립하고 가입할 수 있다고 알았다. 그들은 그렇게 말했고, ‘우리’도 그렇게 알았다. 그런데 그것이 아니었다. 노동자로서 ‘우리’는 우리가 우리의 주인이 아니었다. ‘우리’가 아닌, 노동자로서 ‘나’는 사용자가 모든 것을 결정했다. ‘나’와 가족의 생존을 위한 임금과 내 온전한 삶은 그가 결정했다. 짧은 휴식은 온전한 노동을 위해 노동의 피로로부터 회복하기 위해 바쳐졌다. 그에게 고용된 뒤부터 내 모든 것은 그의 것이었다. ‘나’와 그는 갑과 을로 표시된 근로계약서를 제외하고는 더 이상 어디서도 갑과 을이 아니었다. 임금과 근로조건, 그리고 내가 일하는 작업의 모든 것은 그가 정했다. 사업장의 각종 규정과 기준은 그가 정했고 그가 정한 것이 법이었다. 근로기준법은 취업규칙의 작성과 변경의 권한을 노골적으로 그에게 줬다. 불이익변경시에는 과반수근로자 동의를 얻도록 규정하고 있지만 그가 지시하면 따르지 않을 수 없었다. 지난번에는 퇴직금누진제를 폐지하는데도 그가 지시하는 대로 서명해야 했다. 사업장에선 그가 말하는 것이 법이고 그가 내 노동과 삶을 결정했다. 노조와 합의해야 한다고 정해 놓더라도 소용없었다. 법원은 사용자의 경영권 내지 인사권에 관한 것이라며 협의 정도로 족하다고 했다. 사업경영에 관한 것은 오로지 그의 것이었다. 아예 노동자는 참여할 수 없는 영역이었다. 이름과는 달리 근로자참여 및 협력증진에 관한 법률(근참법)은 노동자가 참여할 수 있도록 보장하고 있는 법률이 아니었다. 이것이 ‘나’와 그의 관계였다. 그가 ‘나’의 노동뿐만 아니라 내 삶을 지배했다. 그는 ‘나’의 주인이었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없었다. 이 세상에 태어나서 내가 살아온 모든 것이 그를 위한 것이었다. 집과 유치원, 학교에서 배우고 체득한 내 모든 것이 노동을 위해 그에게 제공했다. 그런 그에 대해서 ‘나’는 아니지만 노동자로서 ‘우리’는 그와 당당히 교섭하고 행동할 수 있다고 했다. 헌법과 법률이 노동기본권을 보장했다고 했다. 그래서 그렇게 알았었다. 그런데 국가인권위의 이번 권고를 받아 보고 놀랐다. 국가와 법령이 노동자로서 ‘우리’의 운명을 결정하고 지배하고 있었다. 노동부장관에게 실업자·해고자 등에게도 법상 노조 조합원 자격이 인정되도록 완화하라고 권고했다. 국가가 노동자로서 ‘우리’가 조직하는 노동조합의 가입 자격을 정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보고 권고했다. 그러나 헌법이 있고나서 이 세계가 존재할 수 있었던 것은 아니다. 자본의 운동이 시작됐고, 봉건의 지배자를 타도한 자본의 지배자는 자신이 지배할 세계를 헌법에 새겨놓았다. 그리고 자본과 자본의 운동에 대응하여 노동의 운동이 있었다. 그리고 노동운동에 의해 헌법에 노동기본권을 새겨놓았다. 헌법이 있고나서 노조가 존재할 수 있었던 것이 아니다. 헌법과 무관하게 자본의 운동이 시작된 것과 같이 노동의 운동도 마찬가지였다. 영국·프랑스·독일에서 헌법에서 노동기본권이 보장된 후 노조가 설립됐던 것이 아니었다. 자본에 대항한 노동자의 운동이 있었고, 노조가 있었다. 그리고 나서 비로소 노동운동은 노조를 헌법에 새겨 넣었다. 그런데 우리는 지금 노조 설립요건에 관해 법령에서 정하고 국가권력이 이를 심사하고 있다. 만약 그 설립요건과 심사가 노조 설립 여부를 법으로 정해 국가가 좌우할 수 있도록 한 것이라면, 그 설립요건과 심사가 노동자의 자유로운 노조 설립을 제한할 수 있는 것이라면 그것은 헌법과 법령에 의해 노조 설립과 존폐가 결정되는 것이다. 이것은 노동운동이, 노조로 단결해 노동기본권을 헌법에 새겨놓은 것을 뒤집은 것이다. 오히려 국가가 노조를 관리하도록 해석을 통해 헌법을 전복한 것이다. 이렇게 우리의 헌법과 법령, 이를 집행하는 권력은 노조를 관리해 왔다. 그래서 국가인권위는 노동부장관에게 위와 같은 권고를 당연하게도 했던 것이다. 만약 노동자로서 ‘우리’가 우리의 주인이라면 국가인권위는 다음과 같이 권고했을 것이다. 첫째, 노조법상 ‘근로자’ 개념을 둘러싼 조합원 자격 논란 해소를 위해 노조 설립요건을 노조법에서 삭제하도록 권고한다. 설립요건을 정하는 것 자체가 노동자의 자주적인 단결체로서 노동조합의 존립을 부정하는 것이다. 둘째, 설립신고 결격사유를 이유로 행정관청이 시정요구하는 행위 자체가 노조의 설립과 존폐를 관리하는 행위다. 시정요구제도를 삭제하도록 권고한다. 셋째, 노조 설립신고제도 자체가 노조의 자유로운 설립을 제한하는 것이다. 이에 관한 노조법 규정을 삭제하도록 권고한다. 노조는 이 자본의 세계가 시작되면서 노동자의 단결체로 존재했다. 헌법과 법률에 의해 비로소 존재할 수 있었던 것이 아니다. 국가가 노동의 운동을 조직하고 관리한다면 그것은 국가의 운동일 수 있어도 노동의 자기 운동이 아니다. 그것을 우리는 노동운동이라고 부를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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