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노사민정협의회(지역파트너십협의회)가 설립된 지 2년째를 맞고 있다. 협의회는 이명박 정부가 국정과제로 추진한 것으로, 2008년 10월1일 부산에 첫 깃발을 꽂은 뒤 전국으로 확산됐다. 2008년 말부터 지난해 초에 걸쳐 16개 광역자치단체에 모두 협의회가 발족했다. 협의회가 설치된 기초자치단체도 전체 230곳 중 31%인 71곳에 달한다.
외형적 성장은 토를 달기 어려울 정도로 빨랐지만 내용은 그렇지 못했다. 노사관계 안정에 초점이 맞춰진 탓이다. 지역의 특성에 맞는 일자리를 만들자는 목소리가 나오고는 있으나 속도가 더디다. 중앙의 발언권은 여전히 높고, 지역은 중앙의 시책을 이행하는 수준에 머물고 있다. 지역이 제 길을 찾느냐, 중앙의 손발이 되느냐의 기로에 선 셈이다. <매일노동뉴스>가 3년차에 접어드는 지역노사민정협의회를 진단했다.
 
“국내의 한 기업이 미국에 공장을 지을 때 해당 지역의 시장이 직접 와서 ‘어떤 경우에도 파업을 못하게 하겠으니 우리 지역에 공장을 꼭 세워 달라’고 요청했다더라. 중앙에서 좋은 정책을 만드는 것도 중요하지만 지방에서도 선진 노사문화를 만들기 위한 노력을 하는 등 적극적인 인식이 필요하다.”(2008년 3월13일 이명박 대통령, 노동부 업무보고)
 
‘지역노사민정협의회’는 이렇게 시작됐다. 지방자치단체가 앞장서 지역에 파업이 없도록 만들라는 것이 핵심 내용이다. 노사민정협의회는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시절에 이미 이명박 정부의 국정과제로 제시됐다. 파업이 없는 지자체에 지방교부세를 더 주겠다고 했다가 빈축을 사기도 했다.

그래도 이 대통령의 발언은 거침이 없었다. 2008년 5월2일 시도지사 회의와 그해 7월16일 국무회의, 11월9일 언론 인터뷰에서 지역노사민정협의회를 거론했다.
“지방에 가면 수도권보다 노사분규가 적고 인건비도 싸고 인력도 더 동원할 수 있다고 하는 등 기업적 측면에서 유리해야 한다. 그래서 지방자치단체에 ‘우리 지역에 오면 노사분규 없습니다’라고 말할 수 있도록 지역노사민정협의회를 강화하라.”
 
정부는 노사관계, 노동계는 고용에 초점
 
노동부(현 고용노동부)는 바로 움직였다. 기본 골격은 당시 노동부가 만들었던 ‘지역 노사민정 협력활성화 방안’에서 확인할 수 있다. 노동부는 협의회를 ‘자치단체와 지역 노사, 주민대표가 참여해 지역의 일자리 창출과 경제활성화, 지역 노사안정과 협력을 협의하는 기구’로 정의했다. 협의회에 참여할 노사의 범주에 비정규직과 중소기업을 포함시킨 점은 독특하다. 중앙단위 사회적 대화기구인 경제사회발전노사정위원회를 염두에 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노동부의 관심은 이러한 정의와는 달리 대통령의 뜻인 ‘산업평화’에 쏠렸다. 핵심 선도지역을 선정해 인센티브를 주겠다는 계획이 대표적이다. 잘하는 지역은 ‘노사상생협력 우수도시’로 선정해 파격적인 지원금을 주고, 대통령이 직접 방문해 관계자를 격려한다는 당근도 내놓았다. 비난을 받았던 지방교부세 차등지원 방침도 다시 등장했다. 정부는 행정안전부의 자치단체 통합평가 항목에 노사협력 수준을 포함시키는 방식으로 현실화하겠다는 계획이다.

이런 계획이 알려지자 노동계는 반발했다. 민주노총은 “지자체까지 동원해 입체적으로 노조를 탄압하고, 지역주민과 노동조합을 서로 적대적으로 만들려고 한다”고 비난했다. 그해 3월25일부터 노동부가 주관하는 실무회의에 참석해 왔던 한국노총은 회의불참을 선언했다. 한국노총은 “지역 노사가 구호성 평화선언을 통해 노사관계를 안정시키고 이에 따라 지방교부세를 차별지급하는 것에 반대한다”며 지역본부의장단 회의에서 협의회 참여를 공식적으로 중단했다. 당시 지역에서는 산업평화 혹은 노사화합, 대타협이라는 이름의 노사민정 선언이 이어지고 있었다.
 
‘노사화합’ 자리 꿰찬 ‘양보교섭’
 
한국노총은 협의회에 다시 참여하는 조건으로 △정부 주도 배제 △지역고용 관련 중복 사업·위원회 통합 △노사정위원회와 연계체제 구축을 내걸었다. 고용에 방점을 찍은 셈이다. 노동부와 한국노총은 실무접촉 끝에 2008년 7월 지역노사민정협의회를 지역 파트너십협의회로 바꿨다. 한국노총은 그로부터 한 달 뒤에 다시 지역본부의장단 회의를 열어 참여 재개를 결의했다.

하지만 같은달 노동부가 발표한 지역파트너십협의회 추진방안은 기존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지방교부세 차등지원이나 대통령의 핵심선도 지자체 방문 같은 인센티브를 그대로 유지했다. 거기에 2008년 9월 리먼브러더스의 파산을 시작으로 미국발 금융위기가 시작됐고, 지역노사민정협의회는 정부 시책을 선전하는 기구로 전락했다.

노사화합선언이 차지했던 자리를 ‘양보교섭’이나 ‘경제위기 극복 협력선언’이 꿰찼다. 실제로 노동부의 ‘2009년도 지역 노사민정 협력 활성화 추진방향’은 세부추진 과제 중 하나로 위기 극복을 위한 지역단위 실천운동 전개를 포함시켰다. 예컨대 노사와 시민이 함께 위기극복 릴레이 선언을 하는 식이었다.

계획은 성과로 나타났다. 2009년에만 16개 광역자치단체 모두에서 경제위기 극복 협력선언이 나왔다. 지역과 업종단위 협력선언은 160건에 달했다. 특히 ‘경제위기 극복 실천사업’이라는 이름을 걸고 있으면 가점을 받아 재정지원 사업 지원대상으로 선정됐다. 연말에는 ‘노사 상생협력 우수 자치단체’ 선정을 위한 평가에 비중 있게 반영됐다.
 
진화하는 노사민정협의회
 
변화는 경제위기의 끝에서 한숨을 돌린 뒤 시작됐다. 변화의 원동력은 일자리였다. 이명박 대통령이 올해 신년연설에서 일자리 창출을 국정의 최우선 과제로 삼겠다고 강조한 것이 기폭제가 됐다. 노동부도 지난해 12월14일 업무보고를 통해 지역 일자리 창출의 중심에 지역노사민정협의회를 두겠다고 밝혔다. 노동부는 “지역단위에서 일자리 창출과 생산적 노사관계 구축을 위해 지역노사민정협의회의 역할이 더욱 긴요해졌다”는 이유를 달았다.

지역 일자리 창출의 중심이 된 만큼 노사민정협의회의 역할도 달라졌다. 기존 노사관계에서 고용으로 무게중심이 이동했다. 우수자치단체를 선정하는 방식이 달라진 것이다. 지난해 배점이 상대적으로 낮았던 고용 관련 지표들이 부각됐다. 지역노동시장 성과 중 일부였던 일자리 창출 지원노력이라는 지표가 독립된 탓이다.

반면 노사협력과 관련한 지표는 점수가 낮아졌다. 노사협력선언이나 고용협약 등 파트너십 실천선언과 관련한 ‘지역노사관계 협력 활성화 수준’이라는 세부평가지표가 없어졌다. 20점에 달하던 이 평가지표는 노사분규 해결노력이라는 지표와 함께 묶여 5점으로 축소됐다. 노사협력선언을 한다고 해서 각광받던 시대가 끝났다는 얘기다.
변화의 정점은 민주노총 쪽의 움직임이다. 전남 순천에는 민주노총이 참여하는 분쟁조정협의회 모델이 이미 존재하고 있다. 최근에는 대기업 노조나 상징성 있는 지역이 참여 의사를 타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도 협의회를 고용과 노사관계 관련 의제를 논의하는 ‘지역 통합 거버넌스’로 발전시키겠다는 뜻을 명확히 하고 있다. 이채필 노동부차관은 6월 지역 노사민정 워크숍에서 지역고용심의회를 지역노사민정협의회와 통합해 운영하겠다고 밝혔다.
지역고용심의회는 지방고용노동청이 주도하고 있다. 차관의 말은 지역고용전략을 마련하는 과정에서 ‘관(官)’ 냄새를 가능한 빼겠다는 뜻으로 읽혔다.

한국의 ‘위스콘신’ 나올까 
 
그러나 ‘관’ 냄새는 여전하다. 지난해 대통령상을 받은 경기도의 사례는 이를 극명하게 보여 준다. 9월8일 열린 제2회 경기도 노사민정협의회 회의자료를 분석해 보니, 의장인 도지사를 포함해 24명의 위원들이 대부분 공무원이거나 재계 인사들이었다. 이날 협의회에 보고된 안건은 근로시간면제(타임오프) 현황 및 정착지원, 도내 주요 사업장 노사관계 중점 모니터링 계획, 일자리 공시제 참여였다. 모두 노동부가 추진하는 사업이다.
논의안건은 △노사민정협의회 운영 내실화 △중소제조업종 장기근로자 지원방안 △중소기업 근로자 채용 가산점 제도 도입 △고용환경개선사업 관련 중소제조업 지원방안 △노사상생 우수기업 선정 및 인센티브 △청년일자리 대책 등 6개였다. 역시 중앙정부의 시책사업이 다수였다.

노동부는 우수자치단체를 선정할 때 협의회 개최 횟수가 많거나 자치단체장의 참여도에 높은 배점을 주고 있다. 정부정책과 안건 내용의 부합성도 평가한다. 자치단체가 높은 점수를 받으려면 중앙정부의 사업에 관심을 기울일 수밖에 없는 구조다.

지역노사민정협의회는 미국 위스콘신주의 노사정 협력모델을 벤치마킹한 것이다. 위스콘신주의 주력산업은 인근 지역인 디트로이트의 자동차산업에 공급하는 부품소재와 장비 등 제조업이다. 김주섭 한국노동연구원 원장직무대행의 논문에 따르면 위스콘신 지역에 노사정 협력모델이 등장한 당시는 금속 관련 제조업체들이 단순생산기능에 대한 외부하청을 늘리면서 각종 부작용을 낳던 시기였다. 대표적인 게 하청생산 분야의 인력감소와 실업률 증가·저임금·기술혁신 부진 등이다. 위스콘신주는 동일한 산업이나 최종생산품을 생산하는 과정에서  관련 사업체를 공통의 단위로 묶어 노동자들의 숙련을 향상하고 기업생산을 혁신하는 데서 해법을 찾았다. 2010년 한국의 지역노사민정협의회가 주목해야 할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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