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인권위원회가 지난 20일 고용노동부에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법(노조법) 개정을 권고한 것은 새삼스러운 일이 아니다. ‘실업자나 해고자도 노동조합에 가입할 수 있다’는 얘기는 우리사회에서 이미 정당성을 얻었기 때문이다.

외환위기 당시 실업자 노조가입 문제가 처음 논의됐다. 외환위기 후 실업자가 폭발적으로 늘자 조합원 자격시비가 끊이지 않았다. 국민의 정부 시절인 98년 2월, 노사정위원회는 ‘경제위기 극복을 위한 사회협약’을 체결했다. 실업자의 초기업단위노조 조합원 자격을 인정하기로 한 것이다. 참여정부 시절인 2003년 9월에는 ‘노사관계 법·제도 선진화 방안’이 발표됐다. 실업자의 초기업단위노조 가입은 허용하되 기업단위노조 가입은 금지한다는 내용이었다.

이렇듯 실업자의 노조가입 문제는 기정사실화된 문제였다. 그런데 국회 문턱까지 갔던 법 개정안은 번번이 처리되지 못했다. 기업단위노조 체제를 기반으로 하고 있는 현행 노동법과 충돌하고, 실업자의 정치행동이 빈발할 것이라는 정부와 국회 일각의 우려 탓이었다. 대법원은 이런 우려를 일거에 정리했다.

대법은 지난 2004년 구직중인 여성노동자가 가입한 지역별노조(초기업단위노조) 설립신고 반려조치에 대해 위법하다는 판결을 내렸다. 당시 대법은 근로기준법과 노조법에 명시된 ‘근로자’ 규정을 구분해 그 이유를 설명했다. 노조법(2조)에는 ‘근로자란 직업의 종류를 불문하고 임금·급료 기타 이에 준하는 수입에 의해 생활하는 자’로 명시돼 있다. 또 단서조항에는 해직자는 노동위원회에서 해고 효력을 다투는 동안만 근로자로 인정된다고 규정돼 있다.

대법은 특정 사용자와의 사용종속관계를 조합원 자격으로 인정하는 기업별노조와 달리 산업·직종·지역별 노조는 이를 전제하지 않는다고 해석했다. 근로자의 개별적 노사관계를 규율하는 근로기준법과 달리 노무공급자의 집단적 노사관계를 규율하는 노조법을 구분해야 한다는 것이다. 즉, 특정한 사용자에게 고용되어 취업한 자뿐 아니라 일시적으로 실업상태에 있거나 구직자도 노동3권을 보장해야 한다고 판결했다. 구직중인 여성 노동자 역시 노조법상 근로자이므로 지역별 노조의 설립신고를 반려한 것은 위법하다는 것이다. 초기업단위노조에는 구직자·해직자·실업자도 가입할 수 있다는 결론이다. ‘조합원 자격요건 결정은 노조의 재량에 따르며 행정관청이 개입해선 안 된다’는 국제노동기구(ILO) 결사자유위원회의 권고에도 부합하는 것이다.

대법 판결 후 초기업단위노조 조합원 자격시비는 줄어드는 듯 했다. 노조설립신고에 대한 행정관청의 처리도 엄격하지 않았다. 법률적으론 자영업자인 특수고용직도 사업주와의 인적·종속성이 실체적으로 인정되면 노조설립신고를 문제 삼지 않았다. 지난 2000년, 2007년에 각각 설립된 건설운송노조·운수노조가 대표적이다. 이들 노조에는 레미콘·화물트럭 운전기사가 가입돼 있으며, 상급단체는 민주노총이다.

이명박 정부 출범 후 이러한 분위기가 역전됐다. 관행적이고 형식적이었던 행정관청의 노조설립신고 처리는 까다롭고 복잡해 졌다. 설립 후 단체협약까지 체결한 노조의 조합원 자격시비도 불거졌다. 그것도 노조가 명칭을 변경한 후 설립신고를 다시하자 반려한 것이다. 건설노조와 운수노조가 이런 경우에 해당된다. 해고자가 포함돼 있다는 이유로 전국공무원노조와 전교조의 노조 지위도 문제 삼았다. 이번에 국가인권위에 진정을 낸 청년유니온노조는 구직자가 포함돼 있다는 이유로 노조설립신고서를 반려당했다. 노사정 사회협약 체결, 대법 판결, ILO 권고가 있었음에도 깡그리 부정한 것이다.

국가인권위의 권고는 후퇴되는 노동권에 대한 엄준한 경고다. 노조법 개정과 단서조항을 개정할 것을 노동부에 권고한 것은 너무나 당연하다. 조합원 자격시비 논란을 근원적으로 차단하기 위해서다. 헌법에 규정된 기본권을 더 이상 침해하지 말라는 뜻이다. 노동부는 외면하지 말고, 법 개정에 나서야 할 것이다. 산별노조가 보편적인 유럽이나 기업별노조 체제인 일본의 경우도 실업자의 노조가입은 허용돼 있음을 유념해야 한다.

국가인권위는 법에 정한 노조설립신고서와 규약 외에 별도의 자료를 요구하는 관행도 개선하라고 요구했다. 이는 노동부가 노조설립 신고제를 사실상 허가제로 운영하는 것이나 다름없다는 얘기다. 노동부는 이런 관행을 엄하게 금해야 할 것이다. 우리나라는 노조설립자유주의를 채택하고 있는 만큼 노조설립신고에 대한 처리는 형식적이야 함이 마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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