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일 시작된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국정감사에서 여야 구분 없이 집중적으로 비판을 받은 사안은 산업재해 등 산업안전보건과 관련한 것이었다. 그중에서도 삼성반도체 백혈병 사망자 등 이른바 ‘삼성전자 직업병’ 문제는 지난해와 마찬가지로 국정감사의 화살을 피해 가지 못했다.

삼성전자 직업병 사망자 31명?

국정감사에 나선 의원들을 경악케 한 것은 삼성전자와 삼성전기 등에서 발생한 산재사고와 사망자수였다.
참고인 신분으로 출석한 ‘반도체 노동자의 건강과 인권지킴이 반올림’(반올림) 소속 이종란 노무사는 “최근 15년간 반도체·LCD 등 삼성전자와 삼성전기에서 발생한 백혈병 등의 직업병 피해자는 96명, 사망자는 31명”이라고 주장했다. 이 중 반도체 생산라인에서 백혈병 등 림프조혈계암만 42명이 발병해 13명이 사망했다는 것이다.

한국산업안전보건공단이 삼성전자 반도체 공정을 대상으로 진행한 2008년 실태조사 결과에서는 ‘림프조혈계암 19명 발병, 7명 사망’으로 조사된 바 있다. 반올림의 주장은 15년 동안의 현황을 제보 위주로, 공단 발표는 10년 동안의 조사결과를 발표한 것이었다.
반올림 주장에 충격을 받은 의원들은 정확한 실태조사를 노동부에 요구했다. 또 산안공단이 실시했던 삼성반도체 제조공정 근로자에 대한 역학조사 결과와 화학물질 정보 공개 등을 요구했다. 이와 관련해 노동부는 “역학조사 결과 업무성 질환을 입증할 수 있는 인과관계를 찾지 못했고, 기업 경영정보가 포함됐기 때문에 화학물질 정보 등을 공개할 수 없다”는 답변을 되풀이했다.

삼성전자 직업병에 대한 논란은 법개정 요구로 이어졌다. 현행 산업재해보상보험법 시행령에 따르면 뇌실질내출혈이나 뇌경색 등 일부를 제외한 질병의 경우 업무와 질병 사이의 인과관계를 밝히는 입증책임이 노동자에게 있다.

주호영 한나라당 의원은 “한 사업장에서만 13명이 같은 병으로 죽었는데 근로자에게 업무상재해임을 입증하라고 하는 것은 무책임하다”며 산업재해보상보험법 개정을 추진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주 의원뿐 아니라 같은당 신영수 의원과 민주당의 이미경 의원도 노동자에게 입증책임 부담을 지운 현행 제도 개선 필요성을 주장했다.
이에 대해 박재완 노동부장관은 “신중하게 검토해 볼 문제”라고 말했다.

 


하늘의 별따기 ‘직업성 암’ 인정받기

삼성전자 직업병 논란을 불러온 ‘림프조혈계암’처럼, 노동자들이 업무상 인과관계를 입증하기 어려운 것이 질병이 ‘암’이다. 우리나라에서 암을 업무상재해로 인정받는 것은 하늘에 별따기만큼 어렵다. 이미경 의원에 따르면 2006년부터 올해 6월까지 암을 직업병으로 인정받아 산재보험 혜택을 본 노동자는 신청자 10명 중 1명을 겨우 넘는 13.6%에 불과했다.

특히 ‘진폐의 예방과 진폐근로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진폐법)에 따라 비교적 산재 승인율이 높은 폐암을 제외하면, 직업성 암에 대한 산재 승인율은 3.6%에 그쳤다. 위암의 경우 5년간 총 37건의 산재승인 신청이 있었지만 단 한 건도 산재로 승인되지 못했다. 간암은 200건 신청에 6건이 산재로 승인됐고, 백혈병은 76건 신청에 12건이 승인됐다. 기타로 분류된 각종 암들도 105건이 신청됐지만 이 중에 6건만 산재로 인정됐다.

이 의원은 “작업환경에 대한 정보가 노동자에게 공개되지 않는 상황에서 업무와의 연관성을 재해노동자가 입증해야 하는 제도의 문제와 우리나라의 법정 발암물질의 범위가 국제기준에 비해 매우 협소하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국제 암연구소가 지정한 발암물질은 417종, 유럽연합은 1천7종에 이른다. 반면에 우리나라 노동부가 고시한 발암물질은 56종밖에 되지 않는다.

석면관리 허술 … 비정규직은 산업안전 사각지대

우리나라 정부의 발암물질 관리도 허술한 것으로 확인됐다. 홍희덕 민주노동당 의원에 따르면 2000년부터 올해 7월까지 산안공단으로부터 석면건강관리수첩을 발급받은 건설노동자는 8명에 그쳤다. 반면에 노동부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으로 건설노동자는 무려 320만명에 달한다.

노동부는 2007년부터 석면건강관리수첩 발급대상을 확대한다고 발표했지만, 2008~2009년 수첩 발급은 단 한 건도 없었다. 조선업에서는 지난 10년 동안 102명에게만 석면건강관리수첩이 발급됐다. 그런데 모두 현대중공업 소속 노동자였다.

이미 대우조선해양과 한진중공업에서 6명의 석면 폐암환자가 산재승인을 받았는데도, 대우조선해양·삼성중공업·현대삼호중공업·STX조선해양 등에서는 단 한 건도 수첩발급을 신청하지 않았다. 홍 의원은 “까다로운 발급조건과 정부·기업의 홍보부족으로 석면건강관리수첩 발급이 무용지물이 됐다”고 주장했다. 홍 의원은 이어 “수첩을 받기 위해 ‘직업력 입증’을 해야 하는데, 직업이동이 잦은 조선업 하청 노동자들과 건설 일용노동자들에게는 거의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사내하청 노동자들이 건강관리수첩을 발급받기 어려운 데서 보듯이 하청 노동자들의 산업안전은 사각지대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이미경 의원에 따르면 조선업종 전체 산재 사망사고의 81%가 하청업체에서 발생했다. 올해의 경우 7월 말 현재 조선업종에서 총 16명이 사고로 숨졌는데, 이 중 13명이 하청업체 소속이었다. 지난해에는 34명의 조선업 산재사망자 중 74%인 25명이 하청노동자였다. 2008년에도 31명의 사망자 중 81%인 25명이 하청업체 소속으로 조사됐다.


 

노동부, 재해율 축소 목표 하향조정?
고용노동부가 지난 3월 발표한 ‘제3차 산재예방 5개년 계획’을 7개월 만에 전면수정할 계획이어서 관심이 모아진다. 박재완 장관은 지난 5일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국정감사에서 산재예방 대책을 촉구하는 지적이 잇따르자 이런 계획을 밝혔다.
당초 노동부는 수정한 계획을 이달 중순 발표할 계획이었지만 자료 수정 등을 이유로 연기한 것으로 전해졌다. 노동부 관계자는 “연내에 마무리하는 것이 목표”라고 말했다.
당초 계획에 따르면 노동부는 현재 0.7%대인 재해율을 노사자율의 산재예방노력과 민간 재해예방기관의 참여 확대 등을 통해 2014년까지 0.5%대로 줄일 방침이었다. 그런데 수정계획에서는 0.6%대로 조정할 계획인 것으로 알려졌다. 목표치 하향조정을 추진하는 것이다. 노동부는 이와 관련해 “3월에 발표한 계획 중 검토가 덜 됐던 부분이 있어 이를 보완하고 있다”고 밝혔다. 김학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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