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3일 오전 전북 순창군에서 건설노동자 서아무개씨가 자신의 몸에 불을 붙였다. 현재 병원에서 치료 중인 서씨가 분신이라는 막다른 선택을 한 이유는 건설현장에 만연한 유보임금 때문이었다. 일명 ‘쓰메끼리’라고도 불리는 유보임금은 작업을 시작한 달에 임금을 주지 않고 그 다음달에 주는 것을 말한다. 말이 좋아 유보임금이지 실상은 임금체불이다. 유보임금으로 인해 건설노동자들은 일을 시작한 뒤 적어도 두 달은 수입 없이 살아야 한다.
서씨가 작업을 하는 곳은 88고속도로 확장공사 현장이었다. 한국도로공사가 발주하고, 현대건설이 시공하는 곳이다. 이른바 관급공사이다. 정부가 관리·감독하는 곳에서 상시적인 임금체불이 발생한 것이다. 문제는 정부 역시 이런 사실을 알고 있다는 것이다. 고용노동부는 최근 “건설근로자의 유보임금에 따른 폐해를 근원적으로 차단하겠다”며 “10월 말까지 전국 260여개 건설현장에 근로감독관을 집중투입해 대대적인 감독을 실시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정부의 강경한 의지는 현장에서 공염불일 뿐이다. 건설현장의 암적 존재인 유보임금, 해법은 없을까.



"체당금 제도 완화로 현실적 해결책 찾아야"
이종수 공인노무사(참여연대 노동사회위원회 실행위원)


고질적인 임금체불이 반복되는 상황에서는 건설노동자가 당장 활용할 수 있는 현실적인 대안을 찾아야 한다. 그 방법으로 건설노동자들이 체당금을 이용하는 것을 제안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체당금 제도를 완화해야 한다.
임금채권보장법에 의해 지급되는 체당금은 잘 알려져 있지도 않아 이용자가 적다. 복잡한 절차 때문에 받기 힘들다는 지적을 듣고 있다. 노무사를 통하더라도 최소 6개월이 걸리는 형편이니, 매일매일 생활을 이어 가기조차 힘든 체불노동자들에게는 가혹한 일이다. 간편한 방식을 제도적으로 마련하려는 노력도 없다. 사업주가 도산을 했을 경우에만 체당금을 받을 수 있는 현 제도를 바꿔야 한다. 특수고용노동자에 대한 배려도 반드시 고려돼야 할 대목이다.
체당금은 세금이 아니다. 사업주들이 내는 임금채권보장기금에서 지불하는 것이다. 체당금은 마지막 수단이기 때문에 수급조건을 까다롭게 만들었다는 고용노동부의 입장은 이해되지만, 그래도 기금유지가 가능한 수준에서는 활용도를 높이는 노력이 필요하다. 사실 재직자들은 담보가 확실하다. 사업운영 가능성을 판단해 채권추심이 가능하다면 까다롭게 조건을 달 이유가 없다고 본다. 근로복지공단이 채권추심을 열심히 하면 된다.
고질적인 건설업자의 임금체불 문제를 해결하려면 사업주들에 대한 처벌을 강화하는 조치가 선행해야 한다. 사업주들이 고의적으로 폐업을 반복하는 등 법인격을 남용하는 것도 막아야 한다.


"국책사업 건설현장 노동착취 현장으로 전락"
강기갑 민주노동당 국회의원(경남 사천)




어떻게 국책사업으로 진행되는 공사마다 불법과 탈법, 편법이 판을 치는지 통탄할 일이 아닐 수 없다. 정부가 발주하는 관급공사의 경우 건설기계 임대차계약에 정부가 권장하는 표준계약서 체결률이 낮은 것은 물론이고 임대료 체납현황도 민간공사보다 높다. 특히 지방자치단체의 관급공사는 체납률이 36.7%나 된다. 국비로 전행되는 이러한 사업들이 국민의 혈세를 건설사에게 챙겨 주면서도 하도급을 하는 건설기계 노동자들에게는 비참한 체불의 현실을 안겨 준다는 것은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마치 국가가 대형 종합건설사들의 배를 채워 주려고 건설기계노동자들의 임금이나 임대료를 체불하는 상황이 돼 버린 셈이다.
때문에 관급공사의 모든 사업장에서 표준계약서를 의무화해야 한다. 체불이 발생하는 사업체는 반드시 퇴출시키는 제도를 만들어야 한다. 노동자들이 더 이상 체불 문제로 삶을 포기하려고 시도하는 상황을 만들지 말아야 한다.


“철저히 감독하거나 제도 개선해야”
권혁태 고용노동부 노동시장정책과장




건설현장에서 유보임금의 고통을 경험한 이들이 68%에 달한다. 유보임금의 원인이 건설현장의 다단계 하도급 구조라는 데에는 이견이 없다. 따라서 대책도 하도급 구조에서 임금이 적기에 근로자들에게 전달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일정한 기일 내에 임금이 전달되지 않을 경우 사업주를 처벌할 수도 있다. 임금이 빨리 전달되도록 제도를 개선할 필요가 있다. 그런데 노동법의 영역에서만 제도를 만들기는 어렵다. 건설과 관련 법령에 담는 것도 필요하다. 현재 관계부처의 의견을 들어보고 있는 중이다.
정부는 최근 국가고용전략을 통해 정부발주 공사 원가에 적정한 임금을 반영하는 방안을 발표했다. 적정한 임금이 보장된다면 다단계 하도급을 통해 건설근로자에게 전달되는 임금이 보다 상승하게 된다. 유보임금에 대한 직접적인 대책은 아니지만, 근로자들의 임금을 적정하게 보장할 수 있는 방법은 될 것이다.


"하도급대금 지급기일 단축, 원청책임 강화"
이정훈 건설노조 정책국장


건설현장의 임금체불 문제는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먼저 건설현장 하도급대금 지급기일을 단축(현행 15일에서 7일로 단축)해야 한다. 임금과 건설기계 임대료 지급과 관련해 관리·감독에 대한 발주처와 원청의 책임을 강화하기 위해 처벌조항을 도입해야 한다. 근본적으로는 발주처가 공사대금에서 임금부분을 따로 떼 직불할 수 있는 구조를 갖춰야 한다.
건설노동자의 임금과 건설기계 임대료를 지급하지 않을 경우 강력하게 처벌할 필요가 있다. 예를 들어 지급기한을 넘기는 경우 건설공사 입찰참가를 원천적으로 제한할 수 있도록 법과 제도를 정비해야 한다. 문제는 오히려 공공공사 현장에서 임금체불이 더 심각하다는 것이다. 이정희 민주노동당 의원에 따르면 건설기계 임대료 체불건수가 민간공사에 비해 관급공사에서 오히려 10.8%나 더 많았다고 한다.
건설기계 임대료 체불 예방에 기여할 수 있는 ‘건설기계 표준임대차계약서’ 작성도 2009년 6월에 66.9%였던 것이 4대강 공사가 본격적으로 이뤄진 올해 5월에는 20%로 급감했다. 공공공사 현장에서부터 임금체불이 사전에 근절될 수 있도록 해야 하는데도, 임금체불이 민간공사보다 많으며 건설기계 표준임대차계약 작성현황이 줄어들고 있는 것이다. 정부가 말로만 ‘친서민’을 외치는 것은 아닌지 의심할 수밖에 없다. 정부는 이제 수박 겉 핥기 식 대책만 내놓지 말고 체불근절을 위한 근본적인 대책을 내놓아야 한다. 건설현장의 유보임금 관행이 위법행위임에도 건설노동자들의 임금지급일을 평균 한 달 이상 유보하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는 건설사들의 의식도 바뀌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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