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세습이 문제다. 북의 권력승계 문제로 세습이 새삼 문제되고 있다. 경향신문은 북의 권력세습을 직접 비판했다. 민주노동당은 이러한 경향신문의 비판을 비판했다. 북에서 이뤄지고 있는 권력의 세습은 민주주의도 아니고, 사회주의도 아니다. 경향신문은 이렇게 세습을 비판했다. 민주노동당은 세습을 비판한 경향신문을 비판했어도 권력의 세습 자체를 지지하거나 비판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이 나라에서는 누구나 북의 권력세습을 비난한다. 권력이 세습되는 것. 이 나라에선 비난받아야 할 문제다. 그렇게 지금 모두 세습을 비난하고 있다. 국가권력의 세습에 대해 이 나라에선 누구도 용납하지 않는다. 이 나라에서 권력이 세습된다면, 대통령직이 세습된다면 누구나 비난하고 용납하지 않을 것이다. 그것을 우리는 민주주의라고 알아왔다. 권력의 세습은 민주주의가 아니라고 알아왔다. 세습은 민주주의가 아니다. 세습은 비난할 대상이다. 그렇게 알아왔다. 지금까지는. 권력에 대해 그렇게 알아왔다.

2. 그러나 세습은 문제가 아니었다. 우리는 세습을 비난하지 않는다. 오히려 세습을 용납하고 당연하게 인정해 왔다. 우리는. 적어도. 지금까지는. 이 나라에선 세습은 당연하게 인정됐다. 대한민국은 모든 국민의 재산권을 기본권으로 보장한다(헌법 제23조). 그리고 당연하게도 그 재산권의 상속을 보장하고 그에 따른 법·제도를 완비하고 있다(민법 상속편). 이에 따라 재산은 상속되고, 규모를 떠나 기업체도 상속된다. 대한민국은 상속제도를 통해 세습되고 있다. 심지어는 상속세를 탈루하면서까지 대규모 기업체를 상속하는 편법까지 동원하면서 기업이 세습된다. 이 나라에서 재벌이든 아니든, 규모가 크거나 작거나 이렇게 기업이 세습됐다. 기업체의 상속은 보장되고 이에 따라 자본가의 지위는 세습된다. 누구도 그 세습을 비난하지 않았다. 상속세 등 세금의 탈루를 비난했을 뿐 세습 자체를 비난하지 않는다. 대한민국에선 권력의 세습에 대해 누구나 비난해도 재산 내지 기업의 세습에 대해서는 비난하지 않는다. 왜 대한민국에선 그럴까. 이 세계에서는 왜 그럴까. 세습에 대해 권력자는 비난받지만 자본가는 비난받지 않는다. 왜 그럴까. 이승만과 박정희의 권력을 세습했다면 비난받았을 것이지만 이병철과 정주영의 재벌 세습은 비난받지 않았다. 모른다. 도대체 왜 권력의 세습은 비판받고 자본의 세습은 비판받지 않는 것인지. 아무도 알지 못하고 다만 그렇다고 받아들일 뿐이다. ‘세상은 본래 그런 것이다. 받아들여야 할 뿐이다.’ 그렇게 우리는 알고 있다. 우리는 그렇게 배웠다. 이건희와 정몽구에게 직접 물어봐도 알 수가 없다. 그들도 본래 그런 것이라는 말밖에 당신에게 대답해 주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 우리는. 바로 이런 세상에 살고 있다. 권력의 세습은 비난받지만 자본의 세습은 비난받지 않는 세상. 우리가 사는 세상이 본래 그런 것이다. 그리고 본래 그런 세상은 대한민국의 헌법과 민법 등 법령에 의해 법·제도로 보장받고 있다. 그래서 우리는 모두 태어날 때부터 그렇게 알고 살아왔다. 헌법과 민법은 몰라도 우리는 상속은 알았다.

3. 우리는 상속됐다. 재산이 상속됨으로써 우리도 상속됐다. 상속을 통해 그들은 자본가가 됐다. 그리고 우리는 상속받지 못했다. 자본가로 상속받지 못했다. 그리고 그들은 상속과 함께 노동자도, 우리도 상속받았다. 지금 세상은 자본에 의해 작동된다. 노동자만이 아니라 이 세상의 모든 것은 자본의 힘으로 작동된다. 자본의 운동에 의해 자본의 규모는 끊임없이 성장했고, 자본의 영토는 계속 확대됐다. 이와 함께 자본의 권력은 한없이 강력해지고 확대되고 있다. 자본의 운동에 의해, 노동에 의해 자본은 끊임없이 집중과 집적을 계속하고 있다. 오늘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하루하루가 자본의 힘으로 축적되고 있다. 우리의 일상은 이미 오래 전에 자본의 세계에 갇혔다. 이 세계에서 우리의 모든 몸부림은 자본을 위한 것이다. 우리가 생산하는 상품과 서비스가, 우리가 소비하는 모든 것이 자본의 운동을 위한 것이다. 비록 노동자가 아니라도, 이 세계에서 살고 있는 한 모두가 자본의 축적을 위한 자본의 운동법칙 아래 살고 있다. 따라서 자본의 상속은 단순히 자본가의 자식이 그 자본가의 지위를 승계받는 것만이 아니다. 그들은 상속에 의해 노동자를, 그리고 우리를 상속받은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이병철과 정주영이 그랬던 것처럼 우리를, 노동자를 사용하고 지배한다. 그들은 자본을 상속받으면서 이 세계를 상속받았다. 조선시대 세자는 왕조를 상속받았다. 단순히 세자는 왕의 재산을 상속받는 데 그친 것이 아니라 왕조의 질서까지 상속받았다. 그는 왕의 재산뿐만 아니라 왕의 신하와 백성까지도 상속받았다. 그는 왕조가 제도화한 관계, 즉 왕의 세계까지 상속받았다. 조선시대 세자와 마찬가지로 상속을 통해 자본가는 이 세계를 상속받는다. 자본에 의해 작동되는 이 세상을 상속받는다. 왕조의 세자와 마찬가지로 자본의 후계자는 그들이 지배하는 세계를 상속받는다. 헌법과 민법은 재산권과 상속제도를 보장했지만 이를 통해 그들은 자본의 세계를 상속받는다. 단순히 재산의 상속만이 아닌 재산에 의해 제도화된 관계까지 상속받게 된다. 그리고 왕조에서 그랬던 것처럼 그들의 세습은 비난받지 않는다. 누구도 의심하지 않는다. 이 세계에서는 당연한 것일 뿐이다. 그렇게 당연한 것으로 군림해 왔다. 세습을 통해 그들은 지배해 왔다. 그들의 노동자를, 그리고 노동자와 우리를 지배해 왔다.

4. 소유자가 지배자다. 재산을 소유한 자가 사람을 지배한다. 우리는 그런 세계에 살고 있다. 조선시대에는 왕과 그 수하인 벼슬아치들이 지배자였다. 왕조의 권력을 차지하는 자가 지배자로 군림했다. 그래서 왕조시대에서는 재산의 세습보다 권력의 세습이 중요했다. 그러나 왕조시대는 철저히 부정됐다. 혁명에 의해 부정됐다. 몇 백 년 동안 혁명과 전쟁에 의해 세계의 모든 곳에서 부정됐다. 왕조는 사라졌고, 그 권력은 잊혀졌다. 왕조는 박물관에 박제돼 버렸고, 더 이상 왕은 지배자가 아니게 됐다. 그리고 재산의 소유자가 지배자인 세계가 왔다. 이 세계에서는 무엇보다 왕조의 부활을 막기 위해 봉건적 신분제도를 부정해야 했다. 그리고 왕조와 그 봉건세력의 재산권을 몰수하되, 새로운 지배자의 지위와 재산권은 보장해야 했다. 이것을 헌법을 통해서 제도화했다. 그리고 이 세계의 기본질서는 헌법 개정에 의해서도 변경될 수 없는 불가침의 절대적인 것이라고 못 박고 해석했다. 이렇게 세습되는 권력은 부정됐고, 세습되는 재산은 인정됐다. 즉 권력의 세습은 부정되고 재산의 세습은 인정됐다. 그래서 대한민국 헌법에서는 사회적 특수계급 제도를 인정하지 아니하고 어떠한 형태로든 이를 창설할 수 없도록 했고(제11조 제2항), 재산권을 보장했다(제23조). 그래서 대한민국에서는 누구나 재산의 세습을 당연하게 받아들인다. 우리의 세계에선 재산의 소유는 단순히 물건에 대한 지배 권한, 즉 물권이 아니다. 재산의 소유는 재산을 매개로 한 사람과의 관계를 소유하는 것이다. 이를 통해 재산의 소유자는 자본가로서 노동자를 우리를 이 세계를 지배한다. 오늘 우리가 사는 세계는 왕조시대의 왕처럼 자본이 모든 곳에 군림한다. 오히려 우리의 세계에서 자본의 영토는 계속해서 확대되고 있는 데 반해 국가권력의 영토는 축소되고 있다. 국가권력에 의해 지배·관리되는 공공부문은 축소되고 있으며 민영화라는 이름으로 자본의 지배로 전락하고 있다. 그래서 오늘 우리의 세계에서는 무엇보다도 우리의 자유를 위해서는 자본에 대한 비판이 요구된다. 자본의 운동을 비판하고 자본의 세습을 비판해야 한다. 자본에 대한 비판 없이 이 세계에서 자유를 말할 수 없다. 자본에 대한 비판 없이 이 세계에서 민주주의를 말할 수 없다. 우리 세계에서 세습을 말한다면 무엇보다도 자본의 세습을 말해야 한다. 노동의 이름으로 왕조의 세습을 비판하려면 자본의 질서에서 세습된 자신과 세계를 제대로 들여다보고 비판할 수 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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