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행 산업재해보상보험법(산재법)에 따르면 노동자가 근로계약에 따른 업무를 하던 중 사고가 발생하면 업무상재해로 인정한다. 하지만 같은 법 37조2항에 따르면 노동자의 고의·자해행위나 범죄행위 또는 그것이 원인이 돼 발생한 부상·질병·장해 또는 사망은 업무상재해로 보지 않는다.

2007년 서울행정법원은 유사석유제품을 만들다 발생한 공장 화재로 숨진 노동자에 대해 업무상재해를 인정하지 않았다. 석유 및 석유대체연료사업법은 유사석유제품의 제조·수입·판매 또는 사용을 금지하고 있다. 또 유사석유제품임을 알고 이를 저장·운송 또는 보관하는 것도 금지하고 있다.

전남 보성군에서 아버지의 농사일을 돕던 김아무개씨는 2006년 8월20일 예비군 훈련장에서 우연히 고향선배를 만났다. 그는 선배로부터 인천에 있는 공장에서 급하게 사람을 구하고 있다는 얘기를 들었다. 예비군 훈련을 마친 당일 저녁 인천 사업장에 도착한 김씨는 사업주로부터 한 달에 250만원을 월급으로 받기로 하고 23일부터 일을 시작했다.

공장 입사 나흘 만에 폭발사고 당해

그의 일은 사업주를 도와 성분 미상의 유사석유제품으로 추정되는 인화성 물질을 제조하는 일이었다. 사업주는 다른 사람 명의로 2006년 5월 사업장을 임차해 성분 미상의 유사석유제품으로 추정되는 인화성 물질을 제조·판매하는 사업을 수행했다. 사업자등록은 내지 않았고 주로 밤이나 새벽에 작업을 했다.

김씨는 입사 나흘째인 26일 사업장 내부에 있던 4.5톤 차량에 적재돼 있던 솔벤트 1천리터를 20리터 용기에 분배하는 작업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사업주가 환풍기의 전원을 켰고, 그 순간 스파크가 발생하면서 펑 하는 폭발음과 함께 화염이 발생했다. 이로 인해 사업장 내부에서 작업 중이던 김씨와 동료 이아무개씨가 화상을 입었다.

김씨는 신체전반에 화염화상 59%의 재해를 당했다. 그는 사고 발생 나흘 후 근로복지공단에 업무상재해에 해당한다며 요양신청을 했고, 공단은 “재해발생 사업장은 석유 및 석유대체연료사업법 29조와 44조에 의한 중대한 불법행위 등으로 산재법에 의한 사업 또는 사업장으로 볼 수 없어 적용제외 사업에 해당된다”며 요양신청을 불승인했다.

그런 가운데 김씨는 공단의 불승인이 있기 나흘 전인 2006년 9월16일 사망했다. 김씨의 아버지는 “아들이 근무한 사업장은 유사석유제품을 제조한 것이 아니라 솔벤트를 구입해 이를 플라스틱통에 나눠 담아 지방이나 인근의 세탁소 등을 상대로 판매하는 사업을 해 왔을 뿐”이라며 “아들이 근무한 사업장이 불법적인 유사석유제품을 제조하는 곳이라고 하더라도 아들이 근무한 기간이 불과 4일에 불과해 불법적인 유사석유제품을 만드는 곳이라는 점을 인식하지 못했다”고 주장하며 공단을 상대로 행정소송을 제기했다.

법원 “불법사업 국가보호 의무 없어”

서울행정법원은 그러나 유가족의 손을 들어주지 않았다. 서울행법은 판결문에서 “산재법 5조에 의하면 근로자를 사용하는 모든 사업에 원칙적으로 적용하되 다만 위험률·규모·사업장소 등을 참고하여 적용을 받지 않는 사업을 정하도록 돼 있다”며 “여기서 ‘사업’은 일정한 장소에서 유기적인 조직하에 업으로서 계속적으로 행하는 것을 말한다”고 판시했다. 법원은 “업으로서 계속적으로 행하는 한 그 사업이 1회적이거나 사업기간이 일시적이라 하더라도 산재법의 적용대상이라 할 것이나 각종 법규 등으로 그 사업을 위한 행위가 금지돼 있고 그 금지규정을 위반한 경우 형사적인 처벌이 따르게 되는 경우까지 국가가 정책적으로 보호해 줄 의무가 있는 산재법상의 사업이라 할 수는 없다”고 덧붙였다.

김씨는 일한 지 나흘 만에 사고를 당해 숨지는 불행에 이어 불법제품을 제조하는 사업장에서 근무했다는 이유로 업무상재해까지 인정받지 못했다. 법원은 이에 대해 이렇게 밝혔다.

“망인은 사업주를 도와 석유 및 석유대체연료사업법 29조(유사석유제품의 제조 등의 금지)에 의하여 그 제조 등이 금지된 유사석유제품을 제작하다가 이 사건 재해가 발생한 것이라고 할 것이다. 나아가 망인은 사업주가 제조 등이 금지된 유사석유제품을 만든다는 사실을 인식하였다고 보이는 바, 이러한 경우 망인이 종사한 사업을 국가가 정책적으로 보호해 줄 의무가 있는 산재법상의 사업이라고 할 수는 없다고 할 것이다.”

[관련판례]
서울행정법원 2007년11월16일 선고 2006구단122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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