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노조법)상 근로시간면제(타임오프) 제도가 도입된 지 100일째 되는 날이다. 이 제도를 두고 지난 5일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국정감사장에선 어김없이 설전이 벌어졌다. 박재완 고용노동부 장관은 “타임오프는 시행된 지 3개월 만에 100인 이상 기업 76.5%에서 도입했다”고 밝혔다. 박 장관 말대로라면 새 제도가 산업현장에서 순조롭게 시행되고 있는 것이다. 반면 참고인으로 출석한 박유기 금속노조 위원장은 “이날까지 임금·단체협약 갱신협상을 타결한 131개 사업장 중 5곳만 타임오프 한도를 준수했다”고 반박했다. 나머지 사업장은 타임오프 한도를 초과해 합의한 것이다. 노·정 간의 조사결과가 이토록 차이가 나는 이유가 뭘까.

박유기 위원장은 “노조와 회사가 2개의 합의서를 작성해 하나는 노동부에 제출하고, 나머지 하나는 노사가 보관하는 편법이 나타나고 있다”며 “임금도 현금으로 지급하거나 별도의 계좌를 만들어 지급하는 실정”이라고 전했다.

노동부는 임금·단체협상을 타결한 사업장 노사가 신고한 단체협약에 근거해 타임오프 도입현황을 발표한다. 노동부에 신고한 단체협약과 달리 별도로 이면합의를 하는 경우 공식집계와 차이가 날 수밖에 없다. 이렇듯 노·정 간 실태조사가 다른 것은 까닭이 있었던 것이다.

노사가 타결한 합의안을 두고 진실공방이 벌어지지만 정작 그 내용을 정확히 아는 이들은 드물다. 노조 상급단체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임단협과 타임오프 협상을 분리하거나 다른 사업장 타결 상황을 보느라 협상을 미루는 사업장도 있다. 겉으론 큰 갈등 없이 타임오프가 도입되고 있다곤 하지만 실상은 편법이 난무하고 있는 것이다. 비공식 노사관계가 활개를 치는 부작용이 나타나고 있는 셈이다.

정부가 편법을 찾아내 처벌하겠다고 하지만 역부족이다. 현재까지 노동부가 시정을 요구한 사업장은 소수에 불과하며, 대형 사업장은 아예 없다. 민주노총 금속노조 소속 사업장이 대부분이다 보니 편파적 법집행이라는 비판도 나온다.

이런 부작용은 이미 예상된 것이었다. 우리나라에 적용된 타임오프는 최고한도로 정해졌고, 노동부가 그 시행방법마저 ‘매뉴얼’로 만들어 제시했기 때문이다. 일종의 가이드라인을 그은 것이다. 결국 법을 어기게끔 만들어 놓고 서둘러 바꾸라 했으니, 사업장 노사가 편법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것 아닌가. 타임오프 한도를 최저한도로 정하고, 노사자율로 시행방법을 정해 온 외국의 사례와 너무나 다른 것이다.

타임오프의 부작용이 드러나고 있는 만큼 제도에 대한 손질은 불가피하다. 우리 노사관계 현실에 맞지 않는 부분부터 개선해야 한다. 이는 타임오프 고시에 부칙으로 규정돼 있다. 이에 따르면 노동부장관은 지역적 분포·교대제 등 사업장 특성에 따른 시행상황을 점검하고, 근로시간면제심의위원회에 심의를 요청할 수 있다. 지역적 분포와 교대제 사업장 특성이 반영되지 않은 일률적인 타임오프 한도를 수정할 수 있게 길을 열어 놓은 것이다. 그간 단체교섭 과정에서 교대제 사업장인 보건의료노조 소속 병원사업장은 이 문제를 두고 갈등을 겪어 왔다. 단협이 만료되지 않은 체신노조·전력노조와 같은 전국 분포사업장도 비슷한 상황에 처할 수밖에 없다.

그런데도 박재완 장관은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국정감사에서 “내년 말까지 타임오프 한도를 수정하지 않겠다”고 못 박았다. 임태희 전 장관이 이를 약속하고 고시에 부칙까지 마련했는데도 신임 장관이 말을 바꾼 것이다. 이는 신의를 저버리는 일이다. 너무나 행정편의주의적인 발상이다. 여당인 한나라당 사무총장 원희룡 의원마저 “지난 5월 노사정 합의 당시 몇 개월 정도 시행한 뒤 개선하기로 의견을 모으지 않았느냐”며 “내년 말 이후에 정하는 것은 너무 늦다”고 따질 정도다.

노동계가 배제된 채 타임오프 한도가 결정된 것도 불공정한데, 고시에 있는 재심의 요청마저 묵살하는 것은 상식에 맞지 않다. 타임오프 한도를 조정할 수 없다면 근로시간면제심의위를 개최할 이유가 없지 않는가. 박 장관의 발언은 노사정 합의로 운영되는 근로시간면제심의위 위상에도 걸맞지 않는다. 근로시간면제심의위에서 타임오프 한도를 재심의하기도 전에 찬물부터 끼얹은 박 장관은 당장 발언을 철회해야 한다. 노동부가 이런 입장을 고수한다면 달리 방법이 없다. 타임오프 제도의 후유증이 심각한데도 수정할 수 없다면 결국 타임오프의 모법인 노조법을 개정하는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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