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로시간면제(타임오프) 한도를 둘러싼 논쟁이 다시 불거지고 있다. 한국노총과 한나라당이 지난달 28일 고위정책협의회를 개최할 때까지만 해도 타임오프 한도 재논의는 급물살을 타는 듯했다. 한국노총과 한나라당이 이날 지역적 분포와 사업장 특성을 반영한 타임오프 한도를 재논의하기로 합의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정부의 반응은 냉랭하다. 박재완 고용노동부 장관은 지난 5일 과천정부청사에서 열린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국정감사에서 “(타임오프 고시를) 내년 말까지 수정할 계획이 없다”고 일축했다. 노동부가 경경한 태도를 취하면서 근로시간면제심의위원회가 열려도 타임오프 한도 고시를 수정하기가 쉽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이르면 이달 중 열릴 것으로 예상되는 근면위가 어떤 결론을 도출할지 관심이 모아진다.



"타임오프 연착륙 위해 사업장 특성 등 보완해야"
강성천 한나라당 의원(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지난 연말 노조법 개정으로 7월1일부터 근로시간면제(타임오프) 제도가 현장에서 시행되고 있다. 일부 대기업의 과도한 전임자 문제를 시정하면서 사업장 노조활동을 적정한 범위 내에서 보장하자는 개정법의 취지를 살려 나가야 한다. 타임오프 제도는 처음 실시되는 제도이기 때문에 정착되기까지 일정 부분 진통을 수반하기 마련이다. 그러나 노사정이 합의해 만든 제도이므로 각 주체들이 서로 협력해 제도 본래의 취지를 살려 나가야 할 것이다.
지난 근면위 논의 과정에서 사업장의 분포와 근무형태 등을 감안해 일정 부분 가중치를 부여하는 문제가 논의됐고 절충안까지 제시됐지만, 최종 의결에서는 이 부분이 배제됐다.
이에 따라 사업장이 전국에 산재한 노조와 교대제 근무 사업장의 경우 타임오프 고시에서 정한 전임자만으로는 사실상 노조활동이 어렵다. 타임오프 도입의 취지는 과도한 전임자를 줄이되, 노사관계 현실을 반영한 적정한 수준의 자주적 노조활동 보장을 통한 선진 노사문화 정착에 있다. 합리적이고 유연하게 제도를 운용해야 한다. 고시 부칙에 추후 논의의 여지를 남겨 놓았던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다. 사업장 특성이 제대로 반영되지 않음으로써 노사 분쟁의 불씨가 된다면 오히려 제도의 취지에 반하는 결과가 나타날 수도 있다. 지난 5월 타임오프 합의 당시 노사정이 이 문제에 관한 공감대를 이룬 것으로 알고 있다. 빠른 시일 내에 근면위를 소집해 이 문제를 논의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판단된다.


“정부는 타임오프 재논의 약속 지켜야”
김주영 한국노총 상임부위원장(전력노조 위원장)




지역적 분포와 사업장 특성을 반영해 타임오프 한도를 수정해야 한다는 노동계의 주장은 잘못된 것이 아니다. 정부가 타임오프 제도를 시행하면서 노조의 씨를 말리려고 하는 것은 아닌지 또는 이른바 ‘한 건’ 하려는 것인지 그 의도를 잘 모르겠다.
정부가 지금처럼 타임오프 제도에 접근해서는 곤란하다. 사업장 특성을 반영해 합리적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타임오프 제도를 정착시키고 나중에 더 큰 노사갈등을 막는 계기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어떤 시험을 치르더라도 가산점이란 게 존재한다. 형평성 문제라는 것도 있다. 특히 정부는 약속을 이행해야 한다. 지난 5월 한국노총 지도부가 단식을 중단하기에 앞서 정부와 한 합의가 있다. 타임오프 한도 재논의를 하겠다는 것이었다. 정부는 신뢰와 소통을 위해 다른 이유를 대며 회피하지 말고 약속한 것을 지켜야 한다.
타임오프 한도 수정을 위한 재논의를 빨리 수정해서 마무리지어야 한다. 이달 중 근면위 논의를 시작해 타임오프 한도를 조정해야 한다.


“재논의는 혼란만 가중, 제도 정착에 힘쓸 때”
이형준 한국경총 노동정책본부장




타임오프 한도 고시 후 시행 3개월이 흘렀다. 일부 사업장은 아직 제도가 정착조차 되지 못한 상태다. 지금은 만들어진 제도 정착에 힘을 쏟아야 할 때다. 노사가 이를 위해 의견과 힘을 모아야 할 때 타임오프 한도를 변경하는 논의를 하자는 것은 적절치 않다. 오히려 제도 도입을 준비 중인 현장에 혼란만 가중시킬 수 있다. 고시 한도는 지켜져야 한다.
근면위는 3년마다 타임오프 한도를 재논의하기로 했다. 만약 타임오프 한도에 따라 일부 문제가 발생한다면 3년 후에 재논의하면 된다. 물론 전임자임금 지급금지 취지에 따라 타임오프 한도를 늘려 나가기보다는 줄여 나가는 것이 올바른 방향이다. 노조법에서 전임자임금 지급을 금지했는데, 타임오프 한도를 늘려 전임자임금을 주는 것은 문제가 있다.
노동계에서는 사업장 분포나 특성을 고려해야 한다고 이야기하는데, 이번 타임오프 한도 고시로 일부 사업장에서는 오히려 전임자가 늘었다. 노동계나 경영계나 할 말은 많을 것이다. 그러나 근면위 논의에서 노사 모두가 충분히 의견을 개진했고, 이를 바탕으로 한도가 고시된 것이다. 이를 기준으로 우선 제도 정착에 힘쓰는 것이 지금 노사정이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한다.


“시행상황 파악한 뒤 수정 여부 검토해야”
전운배 고용노동부 노사협력정책관




근로시간면제 한도는 노·사·공익위원으로 구성된 근면위에서 2개월간의 치열한 토론 과정을 거쳐 결정된 것이다. 이 과정에서 노동계가 제시한 지역적 분포·교대제 근로 등 사업장 특성을 반영하기 위한 논의도 있었다. 그러나 중소노조는 최대한 활동시간을 보장하고, 대규모 노조는 재정능력을 고려하는 방향으로 면제한도(시간)가 결정됐다.
이후 고용노동부는 고시에 5·11 노사정 합의를 반영했다. 고시 부칙에 “근로시간면제 한도를 최초로 적용하게 되는 점을 고려해 지역적 분포·교대제 근로 등 사업장 특성에 따른 시행상황을 점검하고, 근면위에 근로시간면제 한도의 적정성 여부를 심의 요청할 수 있다”는 내용이 포함됐다. 이에 따라 정부는 고시를 충실히 이행할 것이다. 노사정 합의주체 중 하나인 노동계에서 조속한 논의를 희망하고 있는 만큼, 노사정 간 실무협의를 통해 관련 문제를 검토해 나갈 것이다.
그러나 현 시점은 면제한도 결정을 위한 노사 간 교섭이 진행되는 단계다. 따라서 시행상황을 제대로 파악하기에는 다소 한계가 있을 것으로 생각된다. 제도가 일정기간 동안 운영된 시점에서 고시내용의 이행 여부가 검토돼야 한다. 다만 지난 5일 국정감사에서 나온 장관님의 발언은 '반드시 내후년이나 돼야 한도를 조정하겠다'는 뜻이 아니다. 오해가 없기를 바란다.


“근면위 조속히 열어 매뉴얼 만들어야”
노광표 한국노동사회연구소 부소장


기아자동차나 만도 등과 같이 편법으로 합의하는 사업장이 늘어나고 있다. 이미 법·제도의 실효성은 사라졌다. 하지만 법을 만든 사람들조차 책임을 지지 않으려고 한다. 현장의 혼란이 가중되고 있는 상황에서 한나라당은 부담이 되는 법 개정을 피하면서 노동계와 타협할 수 있는 방안을 찾다가 한국노총의 재논의 요구에 응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노동부의 반대로 쉽지 않게 됐다.
타임오프 한도와 관련해 구간별 편차 문제, 즉 1천명에서 1만명 사이가 너무 벌어진 것이라든지 지역분포 문제 등은 보완이 시급하다. 이런 문제는 법 개정사항이 아니다. 근면위를 열어 재조정하면 된다. 이와 함께 기존 노조활동을 인정하지 않는 것도 심각한 문제다. 현장에서는 대의원대회나 총회를 타임오프 한도에 포함시키는 월권이 자행되고 있다. 근면위를 조속히 열어 매뉴얼을 만들어야 한다.
한국노총은 법 개정의 전제조건이 수용되지 않고 있는 만큼 지금이라도 조직 내 책임 있는 논의를 통해 결단을 내려야 한다. 법안 폐기 입장인 민주노총은 한국노총과의 역할 분담이나 장기적인 싸움을 준비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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