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업무상질병 불승인율이 높아지고 있다. 특히 뇌심혈관질환으로 나타나는 과로사의 경우 업무상질병 불승인율이 다른 질병에 비해 급격히 증가하고 있다. 지난 2008년 78.3%에서 지난해 84.4%, 올해 84.5%였다. 뇌심혈관질환은 한번 발생하면 일상적인 생활이 불가능할 정도의 중증이거나 사망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때문에 노동자가 일하다 뇌심혈관질환으로 쓰러지거나 사망했음에도 업무상재해로 인정받지 못했을 경우 노동자뿐만 아니라 가족에게도 상당한 경제적·정신적 피해로 다가온다. 또한 노동자가 쓰러지거나 사망한 상태에서 가족이 사망원인과 업무 사이의 상관관계를 밝혀내기가 쉽지 않다. 법원은 지난해 2월 1년3개월 동안 아파트 관리소장으로 일하다 집에서 숨진 윤아무개씨에 대해 업무상재해라고 인정했다.

관리소장 근무 1년3개월 만에 숨져

윤아무개씨는 2006년 1월부터 청주의 한 아파트에서 관리소장으로 근무했다. 그는 일한 지 1년3개월 가까이 된 2007년 4월 퇴근을 하고 집에 돌아온 후 오후 10시께 안방에서 사망한 채로 발견됐다. 윤씨의 아내 황아무개씨는 남편의 죽음이 업무상 과로로 인한 것이라며 근로복지공단에 유족보상 및 장의비 지급을 청구했다. 공단은 그러나 “망인의 사망원인이 밝혀지지 않았고, 달리 망인의 사망이 업무상 사유에 의해 발생했다고 추정할 만한 특이사항이 없다”며 업무상재해를 인정하지 않았다. 이에 황씨는 공단을 상대로 행정소송을 제기했다.

윤씨는 아파트 관리소장으로 아파트 단지 안전·방화관리, 입주민 민원관리, 관리사무소 직원(윤씨를 포함해 총 21명) 관리, 각종 서류결재, 입주자대표회의 의결안 작성, 반상회 건의사항 심의·작업방안 작성, 용역·협력업체 관리 등 다양한 기본업무를 수행했다.
그 외에도 하자보수와 관련한 업무가 있었다. 하자보수 대상물을 파악하고, 우선 보수해야 할 시설물을 파악하는 업무 등이 그것이다. 하자보수 관련 회의를 주관하는 업무도 그가 수행했다. 윤씨는 퇴근시간 이후에도 정기적으로 아파트 단지 내 조경작업을 효율적으로 진행하기 위한 조경교육을 받았다.

잦은 민원 발생으로 극심한 스트레스

윤씨의 사망 당시 해당 아파트는 입주한 지 1년이 조금 넘은 신규 아파트였다. 그래서 하자보수와 관련해 많은 민원이 발생했다. 사망일 직전인 2007년 4월에는 매일 자정을 전후해 일하면서 시설물 보완·보수 등에 관한 동대표회의를 진행했다. 회의를 진행하는 과정에서 윤씨는 입주자대표회의 회장과 잦은 마찰을 빚었다.
하자보수와 관련해 아파트 시공사와도 마찰이 자주 발생했다. 그가 사망하기 직전에는 일주일에 한두 차례씩 하자보수 관련 회의가 열렸다. 전용건은 4천건, 공용건은 약 800건의 하자처리를 했다.

윤씨의 사망 당일은 휴일이었다. 하지만 그는 이날도 조경작업을 감독하기 위해 오전 8시40분에 출근했다가 오후 5시30분에 퇴근했다. 퇴근한 윤씨는 집에서 딸기를 5개 정도 먹은 후 오후 10시께 안방으로 들어갔다. 그런데 시간이 약간 경과한 후 ‘헉, 헉’ 하는 큰소리를 내고 숨을 가쁘게 몰아쉬며 쓰러졌다. 충북대병원에 후송됐으나 이미 사망한 뒤였다.

해당 병원의 사체검안서에는 직접사인이 딸기에 의한 기도폐쇄로 추정된다고 기재됐다. 그러나 부검감정서에는 “완전 기도폐쇄가 있을 경우 호흡이 어려워 비교적 커다란 소리를 내기 어려우므로 완전 기도폐쇄를 사인으로 단정하기 어렵고, 정확한 사인은 불명이나 심장비대 및 관상동맥경화에 따라 심장기능 이상으로 사망하는 급성심장사의 가능성을 고려할 수 있다”는 취지로 기재돼 있었다.

법원 “과로 이외 사망유인 없다면 업무상 과로”

윤씨는 2006년 6월 본태성(원발성) 고혈압 진단을 받고 약물을 복용해 치료하고 있었다. 사망일 6개월 전부터는 담배와 술을 끊은 상태였다. 서울대 교수측은 “기왕증인 고혈압과 부검감정서의 심장동맥의 죽상동맥경화의 소견을 고려한다면 심장동맥의 경화에 의한 심장비대 발생으로 보는 것이 합리적이며 이러한 소견을 바탕으로 급성심장사로 추정하는 것이 합리적이라고 판단된다”고 밝혔다. 청주지방법원은 이러한 견해를 바탕으로 윤씨의 사망을 급성심근경색증에 의한 것으로 추정했다.

법원은 “과로의 내용이 통상인이 감내하기 곤란한 정도이고 본인에게 그로 인해 사망에 이를 위험이 있는 질병이나 체질적 요인이 있었던 것으로 밝혀진 경우에는 과로 이외에 달리 사망의 유인이 됐다고 볼 특별한 사정이 드러나지 않는 한 업무상 과로와 신체적 요인으로 사망한 것으로 추정하는 것이 경험칙과 논리칙에 부합한다”고 판시했다.

[관련판례]
청주지방법원 2009년2월12일 선고 2008구합964
대법원 1999년 2월9일 선고 98두16873
대법원 1994년6월28일 선고 94누2565
저작권자 © 매일노동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