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조가 해 온 주장하고 비슷한다는 말은 기사에 쓰지 말아 주세요.”
최근 건설현장의 유보임금에 대한 정부대책을 취재하는 과정에서 고용노동부 관계자가 한 얘기다.

추석 연휴 전 박재완 장관이 건설현장을 방문하자, 일용직 노동자들은 유보임금 문제 해결을 호소했다. 박 장관은 곧바로 대책 마련을 지시했다. 노동부는 노동자들의 적정임금을 보장하고, 하도급 구조에서 나타나는 문제를 개선하는 방향을 검토하고 있다.

이런 대책은 최저낙찰제도를 개선해 저임금 문제를 해결하고, 건설현장의 하도급 구조 때문에 임금 지급이 늦어지는 현상을 해소해야 한다는 노동계 주장과 큰 차이가 없다.
노동부 단독 입법이나 정책마련으로는 불가능하고, 국토해양부 등 관련부처와 협의를 해야 하는 문제다.

그런데 노동부 대책이 노조가 해 온 주장과 비슷하다는 사실이 부각되면, 부처간 협의가 어려워진다는 것이 노동부 관계자의 설명이다. 안 그래도 노조나 노동계에 대해 부정적인 인식이 강한 타 부처에서 노동부의 대책을 곱게 봐줄리 만무하다는 것이다.

임태희 청와대 대통령실장은 노동부 장관시절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노동부가 무슨 정책만 제안하면 다른 부처에서 색안경을 끼고 쳐다 본다”고 말한 바 있다. 노조나 노동계를 바라보는 편협한 시선, 지나칠 정도로 기업만 편애하는 정부 관계자들의 인식이 합리적인 정책마저 가로막을 수 있다는 현실을 보여준다.
정부부처인 ‘고용노동부’가 내 놓는 정책도 부정적으로 바라보는데, 노동계나 노조의 주장에 대해서는 오죽할까.

하도급구조는 건설현장뿐 아니라 화물운송 등 우리나라 산업 전반에 걸친 고질적인 병폐다. 재계의 반발을 무릅쓰고 정부가 제대로 된 제도개선책을 내 놓을 수 있을지 벌써부터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더구나 ‘노동’이나 ‘노조’라고 하면 스스로 색안경부터 끼고 보는 대한민국 정부부처가 말이다.
저작권자 © 매일노동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