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임금과 초과근로의 관계에 대해 잠깐 살펴보자. 현대자동차의 주간연속 2교대제 도입을 둘러싸고 노사의 이해가 충돌하는 최대 쟁점 중의 하나가 임금보전 문제였음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이는 귀족·고임금 노동자라고 지탄받는 이면에 현대차 노동자들의 임금 또한 연장근로에 의한 임금의존성이 43%나 되기 때문에, 주간연속 2교대제 도입에 있어 초과근로 수당이 쟁점이 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러나 현대자동차의 시급제 생산직 노동자의 통상급과 상여금을 포함한 월 평균고정임금은 민주노총 생계비를 뛰어넘고 있다. 따라서 장시간 노동의 원인은 저임금 구조 때문이 아니라 교육·주택 등 가계지출구조의 문제와 고용불안에 연유한다는 분석이 있다. 이런 경우 장시간 노동은 임금소득 극대화 전략의 일환으로 임금이 상승되더라도 노동시간은 단축되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이다.9) 따라서 대기업 노동자의 장시간 노동체제 극복을 위해서는 더 많은 임금인상이 아니라 고용의 불안정성 극복, 무상교육, 무상의료 등 사회복지제도의 정비가 함께 실현돼야 하는 것이다.

그러나 하청노동자 임금의 연장근로에 대한 의존성은 생계를 위해 절대적인 의미를 지닐 것이다. 100% 비정규직으로 구성되어 있는 동희오토 수습 노동자의 시간급은 2009년 최저임금액인 4천원, 3개월 지나면 30원 인상, 1년차 4천100원, 2년차 4천150원이다. 월 기본급은 약 100만원, 실수령액은 80만~90만원 선이다. 이들이 주야 맞교대로 주 60시간 노동하면서 수령하는 급여가 약 140만원~150만원(실수령 약 130만원선), 상여금이 지급되는 달은 약 170만원(실수령 약 150만원)이다. 이들에게 만일 연장근로가 제한된다면 100만원선의 임금만이 지급될 것이고, 이 정도의 급여로는 부양가족이 있는 노동자의 생활은 매우 힘들게 된다. 그러므로 연장근로는 노동자 스스로의 생계를 위해서도 절박한 요구가 된다. 따라서 저임금 노동자의 연장근로 제한을 고민할 때는 당연히 임금보전을 고민할 수밖에 없게 된다.

이러한 고민의 일환으로 민주노총은 소득보전기금을 만들어 고용유지 및 창출을 위한 노동시간단축 시 노동자 소득 보전을 위한 지원금으로 사용할 것과, 노동시간단축 시 시간급을 월급제로 전환하여 기본급 수준을 통상임금 수준 이상으로 상향조정하는 방식을 제안하고 있다. 또한 서구의 경험을 살려 노동자·사용자·정부가 노동시간단축에 따른 비용을 3분의 1씩 분담하는 방안도 고려해 볼 수 있을 것이다.

또 다른 방안으로는 최저임금제 인상을 통해 장시간노동과 저임금의 관계의 고리를 끊는 방안도 적극 검토돼야 한다. 최저임금 현실화야말로 장시간·저임금 구조를 없애는데 가장 분명한 대안일 수 있다. 이러한 대안을 외면한 채 자본은 또 다른 제도를 만들었다.10) 저임금 보완장치로서 2006년 도입된 근로장려세제(EITC)가 그것이다. 그러나 이는 기혼 여성의 노동 의욕을 떨어뜨리는 것은 물론이며, 광범위한 사각지대를 가지고 있어, 독신자, 한 부모 가정, 자녀가 없는 부부 등은 제도의 대상이 될 수 없다. 또한 근로장려세제는 노동시장 유연화, 노동기본권 후퇴, 구조적 저임금, 불합리한 최저임금 등 철폐돼야 할 구조를 용인케 하는 법적 근거가 될 가능성이 높고, 무엇보다 지급 수준이 의료, 교육비 등을 감내할 수 없다.

기본소득이 도입되기 이전이라도 장시간 노동을 제한하기 위한 사회적 노력은 반드시 필요한 것이다.
장시간 노동을 제한하기 위해서는 임금보전 등 대안적 장치가 세밀하게 준비돼야 하고 자본과 정부와의 지루한 협상을 해야 한다. 이 협상의 과정에서 원래의 목적은 또 만신창이가 되기 일쑤다. 따라서 장시간 노동을 철폐하기 위한 가장 단순한 접근이 필요하다. 바로 노동자 스스로 연장근로를 하지 않을 조건을 만드는 것이다. 기본소득이 그 대안이다.

기본소득은 재산심사와 어떠한 노동의 요구 없이도 국가가 매월 개인에게 지급하게 된다. 기본소득은 기본적으로 생활할 수 있는 권리로 기본소득이 보장된다면 노동과 임금을 분리함으로써 노동세계에는 커다란 변화가 일어날 수 있을 것이다. 임금노동 없이도 생활이 보장될 수 있기에 지금처럼 무리하게 장시간 노동을 할 필요가 없게 되므로 자연히 노동자 스스로 연장근로를 제한할 수 있을 것이다. 만일 연장근로를 굳이 하려는 노동자가 있다 해도, 기본소득이 보장된다면 장시간 노동을 제한하는 조치는 노동자들에게 무리 없이 받아들여질 수 있을 것이다.

기본소득과 임금과의 연관하여 최저생계비·최저임금제의 문제가 있다. 기본소득은 임금의 대체물이 아니기 때문에, 기본소득이 도입된다 할지라도 최저임금은 폐지되는 것은 아니고 유지 강화돼야 한다. 또한 부당하게 책정된 최저생계비 현실화도 중요하다. 또한 협정임금의 제 규정들도 계속해서 존재해야 한다.
 
노동시간단축과 노동시간 유연화의 문제 - 기본소득을 통한 해결

이명박 정부가 2009년 임금삭감을 통한 일자리 나누기를 대대적으로 유포했다면 2010년 일자리대책의 핵심 중의 하나는 노동유연화다. 단시간노동을 통해 신규 일자리를 만들거나, 재택근무·시차출퇴근제 등 근무형태를 변경하겠다는 것이며 여성부·보건복지부 등에서 구체계획을 제출하고 있다. 이중 여성 일자리 전략은 상용직 파트타임을 만들겠다는 것으로 시간을 자유롭게 쓸 수 있는 것처럼 하면서 자본의 입장에서는 저임금 노동력을 자유로이 쓰되, 일과 가정의 양립을 추진하겠다는 것이다. 이러한 노동유연화를 통한 일자리창출은 저임금·불안정 노동자만을 양성할 뿐, 근본적인 실업대책이 될 수 없다는 점은 노동계에서 누누이 강조해왔던 바다. 시간단축과 파트타임 활성화를 통해 실업률을 일정 극복했다는 네덜란드 모델은 시간제 노동자를 차별할 수 없도록 하는 동일노동 동일임금에 관한 협약으로 노동자 보호를 우선했다.

일부 노동진영에서는 시간단축이 노동유연화를 불러왔고, 따라서 시간단축이라는 의제를 상정하는 것조차 우려하기도 한다. 그렇다면 시간단축을 추진하지 않으면 노동유연화가 진행되지 않는가라는 점을 살펴봐야 한다. 2010년 현재처럼 노동유연화는 고용시간단축과 관계없이 추진될 수 있으며 한국을 포함하여 전 세계적으로 노동시간 유연화는 거대한 흐름이고 지속적으로 확대되고 있다.

노동시간 유연화는 1960년대 초반 이미 미국의 기업가들이 생산력 증가와 생산계획의 유연화를 목적으로 주 4일 40시간제 도입을 주장했다. 이 과정에서 기업들은 4일 노동을 일주일에 걸쳐 다양하게 배치하는 노동시간 유연화를 도입한 바 있다. 그리고 1980년대 들어 서구 국가의 노동시간단축 과정에서 자본의 요구로 노동시간 유연화가 도입됐다. 그 결과 개인별 노동속도, 총노동시간과 노동계획 등에서 광범위한 차별화가 일어났다. 다양한 유형의 용역노동·파트타임·단기계약·임시노동과 같은 차별적인 고용지위, 1년을 기준으로 계산되는 유연적 노동시간제, 같은 회사에서 서로 다른 노동시간이 운영되게 됐다. 일본도 1980년 후반 노동시간단축이 집중적이 이뤄져 88년 46시간제, 1991년 44시간제, 1994년부터 40시간대로 단축되서 연간 노동시간을 2천100시간대에서 1천800시간대로 단축하고자 했다. 일본도 이 기간 동안 노동시간 유연화에 대한 법제도 정비에 들어갔다. 그러나 이들 국가에서 노동시간 유연화를 도입함에 따라 노동시간단축이 원래 의도했던 실업률 감소, 노동자의 삶의 질 향상 등의 실질적 효과는 발생하기 힘들어 졌다.

한국의 경우를 살펴보면, 1993년 당시에도 45시간 노동하고 있는 노동자가 4분의 3이 넘고 과반수 정도는 주당 54시간 일하며 35시간 이하의 노동자가 6.6%로 비교적 낮은 수준이었다. 하지만 개인 간 평균 노동시간 차이가 매우 커 당시에도 노동자 개인적으로는 노동시간이 아주 유동적이었다고 할 수 있다. 당시는 경제가 성장기에 있었고, 완전고용에 가까운 시기였으므로 유동적인 노동시간이 사회적으로 큰 문제가 되지는 않았다. 하지만 1997년 경제위기를 거치면서 경제성장은 급격히 둔화되고 실업이 본격화되면서 정리해고와 변형근로시간제, 그리고 파견제 도입과 같은 노동의 유연화는 노동시장을 급속히 재편하는 요소가 됐다. 한국에서도 노동유연화가 법제화되면서 저임금과 불완전고용의 나쁜 일자리가 급속히 양산되고, 노동유연화는 실업과 더불어 사회양극화를 심화시키는 키워드로 자리 잡게 된 것이다.

신자유주의 시대, 노동시간 유연화의 확대는 무엇보다 무한이윤 추구를 위한 기업의 요구에 바탕하고 있다. 그러나 노동시간 유연화는 변화된 사회적 조건 속에서 노동자의 욕구를 반영하는 측면이 있다는 점도 함께 고민해야 한다.

1982년 유럽노련 헤이그 대회에서는 잔업의 단축 또는 완전한 폐지를 요구하면서 노동자들이 선호하는 다양한 생활양식을 감안한 ‘사회적 욕구’의 만족에 많은 관심을 기울였다. 또한 파트타임 노동이 사회적 욕구에 대한 적절한 해결책으로 작용할 수 있는 상황이라는 해석도 있었기 때문에 파트타임 노동을 거부하기가 쉽지 않았다. 대신 그것의 전제로서 파트타임 노동은 항상 자발적인 것이어야 하며 사전에 노동자대표와 협의를 거쳐야 하고 파트타임 노동자도 정규노동자와 동등한 권리를 누릴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결의가 채택됐다. 앞의 김원태의 글에서 보듯이, 전 시간 고용노동자는 노동시간단축 뿐만 아니라 자기가 결정하는 노동시간 유연화를 원하며, 육아나 자기계발 등을 원하는 파트타임 노동자는 파트타임 자체에 문제가 있다고 느끼기보다는 노동시간의 길이와 배치의 일방성, 저임금, 사회적 보호의 미비 등이 문제라고 느낀다는 지적도 있다.

이처럼 노동시간 유연화는 자본의 노동에 대한 공격과 노동자의 개인적 욕구가 맞물리는 지점이 있다. 따라서 노동시간 유연화에 대해 노동진영이 반대만 할 수 없는 사회적 조건이 존재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파트타임 노동 등에 대한 보호규정 정비 또한 필요하다.

정리하면 현재의 조건에서 자본의 주도하에 이루어지는 노동시간 유연화는 자본의 이윤증가를 위한 노동력 활용의 극대화를 도모하는 일방적 전략으로써 계속 확대되고 있는 추세이고 노동진영은 확대를 저지하는 데 총력을 기울여야 한다. 그리고 이의 적용을 받고 있는 노동자들에 대한 저임금 문제 해결, 사회보장 적용 등의 보호장치를 만들어야 할 것이다.

그렇다면 저임금, 불안정 고용, 이에 따른 빈민화의 주범으로서의 노동시간 유연화가 아니라 대폭적인 노동시간 단축과 기본소득이 보장된다면, 노동시간 유연화는 노동자의 시간주권 확보라는 측면에서 고민해 볼 수 있을 것이다.

노동시간의 길이와 배치를 둘러싼 노동시간 유연화에는 노동자가 자신의 욕구에 의해 선택하거나 기업가가 생산성 향상을 위해 선택하는 길이 있을 것이다. 이때 노동자가 선택한다면 엄격한 시간강제로부터의 부분적 해방일 수 있고, 기업가가 선택한다면 엄격한 시간강제로의 노동자의 종속의 완성일 수 있을 것이다. 여기서 문제는 누가 선택하는가의 문제이고 이는 시간주권을 둘러싼 투쟁이 될 것이다. 노동자의 시간주권은 ‘노동시간이 노동자의 의사와 무관하게 외부로부터 규정되는 것을 철폐하고 일하는 사람 스스로 자신의 노동시간의 길이와 배치를 결정하며 개개 노동자의 노동시간 결정에 있어서 동료들 간의 자유를 확대함에 의하여 노동자로써의 삶을 인간화한다는 것’11)으로, 노동자의 노동에 대한 자기결정권이라고 정의할 수 있을 것이다. 노동자 스스로 노동시간을 결정하는 권한이 커지면 커질수록 노동자를 소외시키는 억압적 규율은 줄어들게 된다는 점은 명백하다. 노동운동진영은 자본주의 사회이건 자본주의 이후의 사회이건 간에 노동자 자신의 노동시간을 스스로 책임질 수 있는 새로운 노동시간 모델을 만들어 낼 필요가 있다. 즉 자본에 의한 노동유연화가 아니라 노동진영이 노동시간을 총괄하면서 노동의 새로운 분배 형태를 제시하는 노동시간에 대한 사회적 경영이 필요한 것이다. 이를 전문적으로 연구하고 추진할 진보 진영의 기구 설립도 고민해 봐야 한다.

그렇다면 노동자의 시간주권을 확보할 수 있는 가능성은 어디에서 찾아야 하는 것인가? 먼저 노동시간단축을 통한 노동력 공급자(노동자)의 힘의 강화에서 찾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앞에서도 지적했듯이 신자유주의시대 노동시간단축은 노동유연화, 실질적 고용창출 효과 고려, 임금 등 다양한 고려 속에 진행돼야만 한다. 둘째, 법적권리 강화를 통한 방법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법적 장치 또한 신자유주의 시대 그 효력은 장담할 수 없다. 노동시간단축을 위한 법적 장치가 마련됐다 하더라도, 개인들은 실업과 미래에 대한 두려움, 기업이익 보호 등등의 온갖 이유로 인해 법적 권리를 포기하는 경우가 생기고, 앞의 현대자동차 사례에서도 보았듯이 기업은 이러한 노동자의 불안을 이용해 노사 합동으로 법을 위반하기도 한다. 이처럼 노동자 개개인에게 고용불안, 미래에 대한 불안이 엄습하고 노동조합의 힘은 약화되고 법적 효력조차 무력화되는 상황에서 다수가 비정규직과 실업의 굴레에서 벗어날 수 없게 되고 생활은 보장돼야 한다면 그 방법은 무엇이어야 할까. 노동운동은 더 이상 정규노동을 보장해 달라고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정규노동과 생계를 분리해 생활 보장을 요구해야 한다. 그 요구가 바로 기본소득이다.

기본소득은 생계로부터의 위협을 벗어나게 하기 때문에 노동에 대한 선택을 가능하게 한다. 따라서 건강을 위협하는 노동인지, 노동이 자발적인지, 노동하는 이의 역량발전을 위해 그리고 공동체를 위해 유익한지, 생태적인지 등을 판단할 수 있는 여지가 생긴다. 마찬가지로 기본소득이 보장된다면 파트타임 노동 수용 여부도 노동자의 선택이 될 수 있을 것이고, 파트타임이 지금처럼 더 이상 생존을 위협하는 노동자의 덫이 되지는 않을 것이다. 노동자가 노동을 둘러싼 자기결정권을 높일 수 있는 노동자의 시간주권, 나아가 노동주권을 확보하기 위해 대폭적인 노동시간 단축과 기본소득은 필수적이다.
 
완전고용인가 노동공유인가

완전고용을 향한 우리 사회의 열망은 자본과 정부, 미디어, 하물며 노동진영을 망라한다. 이들은 한 결 같이 “일자리가 없다, 일자리가 부족하다”고 외치고 있고, 일자리 창출을 위한 온갖 고민을 쏟아낸다.

정부와 자본은 경제성장을 통한 일자리 창출에 주목한다. 정부는 실업해소와 노동시장유연화를 축으로 청년층 대상의 신규일자리 창출(인턴, 해외봉사 등 불안정 일자리), 사회적 일자리 창출(저임금 고용불안정 일자리), 녹색뉴딜을 통한 95만개 일자리 창출(토목 건설 관련이 78%이고 비정규 단순노무직이 97% 차지), 법제도 개선을 통한 고용유지 유도(대상이 6만5천명이고 예산이 583억원)를 실업의 대안으로 제출했다.

민주노총은 일자리 지키기·나누기·만들기라는 모토 아래 “일자리 지키는 ‘고용안정특별법’제정과 임금삭감 없는 노동시간 단축(연간 2천시간 이내)을 통한 일자리 나누기,12) 공공부분에서의 ‘좋은 일자리’ 만들기”를 주장하면서 실업과 빈곤에 대한 처방으로 기초생활 보장을 요구한다. 그리고 민주노동당은 ‘전국민 고용보험제’ 도입, 청년실업해소, ‘청년희망(가칭)플랜’, 고용유지 및 확대 ‘고용책임세’도입, 중소영세기업·자영업 보호를 위한 서민은행설립 등의 실업대책을 발표했다. 그 외 노동운동 단체들도 고용권·노동권 입법화, 사회복지의 개혁,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연대를 통한 비정규직 철폐와 주체형성을 노동운동의 대안으로 제시했다.

이명박 정부가 경제성장을 통한 일자리 창출에 방점이 있다면, 진보진영의 대안은 대체로 좋은 일자리 창출과 노동시간단축을 통한 일자리 나누기, 이를 통한 완전고용 요구와 고용으로부터 이탈한 자에 대한 기초생활 보장 요구, 그리고 주체형성 전략으로 집약할 수 있을 것이다.

현재 한국사회 진보진영에서 요구하고 있는 완전고용과 복지국가체제는 70년대 중반 이후 신자유주의가 강력하게 대두하면서 서구에서 이미 파괴되고 있는 정책이라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1945부터 1970년대 중반까지 서구사회는 지속적인 경제성장 속에 대량생산, 대량소비, 국가의 경제개입, 복지정책을 펼쳤다. 고용은 거의 완전고용에 이르렀고 노동자들의 실질소득도 지속적으로 증대했다. 국가는 국유화 등으로 경제에 적극 개입하면서 실업·교육·건강 등의 복지정책을 펼쳤다. 이 시기는 포드주의 축적체제 시기로 지칭되며 케인즈주의 시기이기도 하다. 그러나 70년대로 들어서면서 급속하고 장기적인 경제성장은 끝나고 불황의 시대를 맞이하면서 신자유주의가 도입되기 시작한다. 이후 실업률은 지속적으로 증가했고, 사회복지체제는 대폭적으로 축소됐다. 이 시기 기업들은 기업 차원의 구조조정을 진행하는데 이 때 기술혁신의 일환으로 추진한 것이 정보화였다. 이러한 구조조정의 결과 1990년대 들어 서구 국가들의 실업률은 10%를 상회하게 된다. 이러한 대량실업은 신자유주의적인 구조조정의 귀결로써 기업에서 정보화를 추진하고 정보기술을 도입함에 의한 것으로, 이는 정리해고의 핵심적 역할을 했던 것이다. 정보화와 자동화로 인해 재편된 생산구조 속에서 노동의 방출은 급속화됐고, 80년대 이미 서구는 노동시간단축에 대한 진지한 논의에 들어갔던 것이다. 그러나 노동유연화와 맞물린 주 30시간대의 단축으로는 실업률을 극복할 수 없었다.

마찬가지로 한국도 과학기술혁명에 의한 정보화와 자동화가 급속히 진전된 생산방식과 그에 따른 생산성 향상, 노동자의 방출이란 조건을 맞이하게 된 것이다. 이러한 조건 속에서 경제성장을 통한 실업 극복이나 현재의 노동시간을 유지하거나 일부 단축만으로 완전고용을 요구하는 것은 자본주의 발전의 객관적 조건을 고려치 않은 것이다. 물론 대폭적인 노동시간단축, 주 20시간대로의 노동시간단축이 이루어진다면 완전고용은 가능할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이 글에서 주장하는, 기본소득 지급과 함께 대폭적인 노동시간단축을 통한 일자리 창출 전략은 완전고용을 추구하는 것인가. 그것은 아니다. 대폭적인 노동시간단축으로 만들어진 일자리는 일하고 싶어 하는 사람들에게 일할 기회를 제공하는 노동 공유, 노동 재분배의 조건을 만드는 것일 뿐, 완전고용을 추구하는 것은 아니다. 완전고용을 지향하는 사회에서는 노동을 할 때에만 생존이 보장되므로 필연적으로 노동강제를 수반하게 된다. 그러므로 노동을 하지 않거나, 못하는 조건에 처하는 사람들, 즉 실업자는 노동으로부터 벗어난 자유의 몸이 아니라 사회적 열등감과 굴욕을 견뎌야 하는 사회의 낙오자가 되는 것이다. 그리고 실업수당, 단시간 근로, 소득의 세대 내 이전 등을 통해 비참한 생존조건을 감내해야 하는 시혜의 대상이 되는 것이다. 따라서 기본소득과 대폭적인 노동시간이 이루어진 사회에서는 노동과 소득을 분리함으로써 임금노동 없이도 생활할 수 있는 권리를 보장받게 된다. 기본소득이 보장된다면 노동이 생존을 담보하는 개념인 실업(?業)의 의미는 자연스럽게 소멸될 것이다. 자의이건 타의이건 노동영역에 흡수되지 않아 발생하는 실업으로 인한 사회의 낙오자는 더 이상 없어지게 된다. 따라서 사회의 낙오자, 시혜대상자가 아닌 권리를 가진 인간으로서 정정당당히 생활할 수 있는 기반을 확보하는 것이다. 임금노동을 원하는 사람들에게도 기본소득은 지급되므로 이들은 그만큼 물질적 풍요를 누리게 될 것이다.13) 임금노동을 원치 않는 사람들은 기본소득만으로 생활하며 임금노동이 아닌 다양한 사회 활동을 통하여 사회에 기여할 수 있을 것이다.14) 가사노동, 육아, 노인 돌봄 등 인간의 삶과 밀접히 결합되어 있고 그 때문에 항상 행해져야만 하는 활동들이야말로 인간의 삶의 질을 높이는데 실질적 기여를 하게 된다. 그리고 인권·환경·제3세계에서 활동하는 시민사회단체(NGO) 등이 새로운 사회적 필요활동이 될 수 있다. 각종 봉사활동·문화활동·시민운동·정치활동 등도 개개인이 창의력과 상상력에 기반해 그 자체로 가치를 생산하며 사회 유지에 필요한 활동인 것이다. 따라서 기본소득은 고용노동이 아닌 소득과 분리된 이처럼 다양한 활동을 사회적으로 중요한 활동으로 인정하게 한다. 그리고 삶의 불안정, 불확실성을 제한하고 더 많은 자유공간을 창조하게 되는 것이다.
 
[각주]
9) 현대자동차(2007년 기준) 노동자의 평균연령은 42세(근속연수 17.1년)이며 평균부양가족은 3.8명이고 월고정임금은 약 309만이며 연장, 휴일수당 및 기타임금을 포함한 임금총액은 월 약 542만원이다.
10) EITC에 대해서는 앞의 권문석 글 참조. 그리고 EITC도 그 한 가지 예일 수 있겠지만 사회양극화가 심화되고 빈곤층이 확산되면서 땜방식의 이러한 제도는 계속 증가하는데 독일의 경우 사회복지제도는 100가지가 넘는다고 한다. 이러한 제도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필연적으로 심사가 필요한데, 그 과정에 드는 노력과 비용, 관료주의, 그리고 계속적으로 발생하는 사각지대, 무엇보다 심사과정에서 느껴야 하는 사회복지 대상자들의 굴욕감 등 수많은 문제가 발생한다. 이러한 문제를 가장 단순하게 해결할 수 있는 방안이 바로 기본소득이다. 그러나 기본소득은 모든 사회복지를 통합하는 것이 아니라 무상의료, 무상교육 등 전국민 대상의 기본적인 사회보장과 병행하는 정책이다.

11) 황선길, “노동시간 단축과 노동의 유연화-역사적 고찰”.

12) 민주노총 자료에 의하면 ‘노동시간 단축으로 인한 노동자 일자리 증가분’을 연간 노동시간을 2천시간으로 줄일 경우 11.54%(=261/2261×100) 감축되고 전체 취업 중인 노동자 수는 1천599만명(2008년 3월 경제활동부가조사)이므로 장기적으로 전 산업 노동자 수는 241만명(=1,599만×13.1/100×11.54/10) 증가. 10인 이상 사업장으로 한정하면 151만명(=999.8만×13.1/100×11.54/10) 증가한다.

13) 기본소득이 도입된다면 장시간 노동의 제한과 아울러 임금상환제 도입에 대한 고민도 필요할 것이다. 2007년 국민은행장의 연봉은 20억2천500만원이었고, 하나은행장의 연봉은 10억800만원이었다고 한다. 이들은 비정규직 임금의 1천배 이상을 받고 있다. 작년 발표된 한국은행의 일반서무직원, 청원경찰 등에 대한 임금상한제는 천박한 자본주의의 단면으로 임금상한제가 이런 식으로 악용되어서는 안 될 것이다. 1971년 파리꼬뮌 당시에도 공무원의 연봉 상한선을 최고 6천프랑으로 한정시키는 포고령을 발표한 것을 되새겨 볼 필요가 있다. 우리 사회는 빈민층 양상을 기반으로 더 많은 부를 향한 욕망의 용광로에 휩싸여 있다. 기본소득이 지급되는 사회는 과시, 더 많은 소비가 아닌 공동체를 향한 또 다른 생활양식이 주는 기쁨을 향유하는 사회, 부의 재분배를 지향한다.
14) 앞의 김원태의 글에서 자세히 쓰듯이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고용노동, 임금노동만 노동으로 인정되어 임금이 주어지고, 가사노동을 포함한 ‘고용노동이 아닌 노동’은 노동 범주에서 쫓겨나지만 사회의 재생산에 필요한 노동의 3분의 2는 고용노동에 의한 것이 아니라고 한다. 『노동의 미래』(로마클럽보고서)에서는 완전고용 시대에도 여성노동의 대략 3분의 2가 임금노동으로 환산되지 않으며 남성노동의 3분의 1에서 4분의 1도 임금노동으로 환산되지 않지 않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노동(활동)은 우리 사회를 지탱하는 주요한 원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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