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추석은 갔다. 모처럼 길었던 휴일은 끝났다. 아주 잠시 동안이지만 일상에서 벗어나 있었다. 노동과 자본, 교섭과 투쟁, 상담과 소송 모두 잊고 떠나 있었다. 작업하겠다고 자료를 잔뜩 챙겨놓았지만 연휴 첫날부터 방 한쪽에 내팽겨쳐 놓았다. 그렇게 나의 추석 연휴는 갔다. 변호사인 나의 추석은 이렇게 갔는데 노동자의 추석은 어땠을까.

2. 일을 하지 않아도 부담이 없었다. 추석은 그런 날이었다. 공장과 사무실에서, 집에서 누구도 일을 하지 않는다고 그런 날에는 노동자 김아무개에게 무어라 말하지 않았다. 그런 날에는 지시하고 감시하는 사용자도 없었다. 그런 날에는 지시를 받고 감시받는 노동도 없었다. 추석 연휴에 사용자의 통제는 없었다. 그런 날일까. 자본으로부터 노동이 해방된다는 그날. 파업때마다 목이 터져라 불렀던 노동가 가사의 노동해방은 그런 날일까. 어떤 그런 날이란 말인가. 노동자 김아무개는 추석 연휴에 생각했다. 노동해방의 날. 일을 하지 않아도 부담이 없는 날일까. 사용자의 지시와 감시, 통제가 없는 날일까. 세상에 태어나 살아오면서 누구도 김아무개에게 일하지 않아도 된다고, 그런 세상을 말해주지 않았다. 심지어는 노동자를 위해 투쟁하다 감옥에 갔다 왔다던 금속노조 모 부장도 그런 말을 하지 않았었다. 자본이 노동을 착취하고 지배하고 있기 때문에 노동해방을 쟁취해야 한다고 그는 걸핏하면 말했을 뿐이었다. 그렇다면 노동해방의 날은 일하지 않고 놀고 먹는 그런 날은 아니다. 지난 번 조합원총회에서 “자본의 구조조정 박살내고 노동자세상을 쟁취하자”고 민주노총 모 국장의 선창에 따라 외쳤던 구호가 그런 날은 아니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노동해방의 세상, 노동자세상은 자본의 지시와 감시, 통제에서 벗어난 그런 날이었던 모양이다. 하기야 부모님도 김아무개에게 일하지 않고 놀고 먹어야 된다고 말하지 않았다. 곰곰이 생각할수록 김아무개는 추석 연휴가 너무도 좋았다. 노동해방의 세상, 노동자세상보다도 좋은 날이었던 것이다. 세상 아무도 자신에게 말해주지 않았지만 자신은 일하지 않고 놀고 먹을 수 있는 그날이 너무도 좋았다. 일을 하지 않아도 부담이 없었다. 누구도 일하지 않는다고 무어라 말하지 않았다. 그저 논다고 해서 눈치볼 필요가 없는 날이었다. 그래서 추석 연휴는 노동자 김아무개에게는 그들이 말하고 외쳐대던 노동해방의 세상보다 좋았다.

3. 그러나 추석은 갔다. 일하지 않아서 좋았던 그날들은 갔다. 그리고 어제 김아무개는 출근했다. 끔찍이도 싫었다. 등산하기에 너무도 좋은 날이었다. 회사가 아닌 산으로 ‘출근’하고 싶었다. 그래도 회사에 출근해야 했다. 그리고 다시 예전처럼 일을 했다. 추석 연휴 이전처럼 조회하고 지시에 따라 작업하고 보고했다. 사실은 아침에 출근하기 싫어서 아내에게 연차 얘기를 꺼냈다가 한소리를 들었다. 그만큼 쉬었으면 되었지 무슨 연차냐고 했다. 예전에도 그랬다. 부모님들도 자신에게 그랬었다. 학교 선생님도 그랬었다. 성실해야 한다고 말했다. 학교에 다닐 때에도 결석하고 싶을 때가 수도 없이 많았다. 그러나 부모님과 선생님들은 몹시 아프지 않다면 결석해서는 안 된다고 1학년때부터 말했었다. 그래서 김아무개는 결석은 나쁜 것이라고 알았다. 그래서 김아무개는 결근은 나쁜 것이라고 알았다. 사정이 있어 결석하거나 결근하게 되면 김아무개는 죄책감이 들었다. 그렇게 노동자 김아무개는 살아왔다. 결근은 죄라 알고 성실한 사람으로 살아왔다. 그래서 추석 연휴가 끝나고 어제 김아무개는 출근해서 일을 했다. 그런데 노동자 김아무개는 알 수가 없었다. 일하지 않아도 되는 세상이 왜 노동해방의 세상이 아닌지 알 수가 없었다. 노동해방이라면 노동에서 해방되는 세상이 아니겠는가. 그렇다면 노동해방 세상은 노동자 김아무개가 일에서 해방되는 세상이어야 했다. 그러고 보니 금속노조의 모 부장이나 민주노총의 모 국장 모두가 제대로 말해주지 않았음이 틀림없었다. 그러나 그런 세상은 없었다. 지금까지 노동자 김아무개로 살아오면서, 그냥 인간 김아무개로 살아오면서 누구로부터도 심지어는 아내한테 끌려서 가봤던 교회의 목사님조차도 일하지 말고 놀고 먹는 세상이 천국이라고 말하지는 않았다. 이 세상은, 그리고 저 세상조차도 일하지 않고 놀고 먹는 세상은 없었다. 노동자 세상을 만들겠다던 사회주의나라들에서도 일하지 않고 놀고 먹는다는 말을 들어보지 못했다. 오히려 이들 나라에서는 열심히 일하는 사람들에게 영웅칭호 등을 붙여주면서 일하는 것을 독려했다. 학교 다닐 때 세계사 시간에 선생님은 그러한 나라가 있었다고 말해주지 않았다. 지금까지 세상은, 어디에서도 세상은 노동자 김아무개가 바라던 세상은 없었다. 생각이 여기에 이르자 노동자 김아무개는 좌절했다. 자신이 바라는 세상은 세상에 없었다. 그리고 아무도 그런 세상을 말하지 않으므로 그런 세상은 앞으로도 올 수도 없었다. 갑자기 세상은 암흑과 절망으로 변했다. 열심히 일하지 않고 놀고 먹는 세상. 열심히 일하지 않고 놀고 먹는 것이 나쁘지 않는 세상. 그런 세상이 노동자 김아무개가 바라는 세상이었으나 그런 세상은 이 세상 사람들에게는 나쁜 세상이었다. 그래서 올 수 없는 나쁜 세상이었다. 어찌해야 할까. 노동자 김아무개가 바라는 세상은 나쁜 세상이고 그 세상은 올 수 없는 것을.

4. 추석 연휴가 일상일 수는 없다. 따라서 노동자 김아무개가 바라는 그 세상은 일상적으로 올 수는 없다. 적어도 지금은 그렇다. 그러나 그렇다고 노동자 김아무개가 바라는 세상이 나쁜 것일까. 열심히 일하지 않고 놀 수 있는 세상이 나쁜 것일까. 성실히 일해야 하는 세상이 좋은 것일까. 지금 세상은 성실한 노동자만 존재한다. 성실하지 않은 노동자는 없다. 놀고 싶어도 일해야 하고 산에 가고 싶어도 출근해야 한다. 그런 노동자로 세상은 돌아간다. 결근하지 않는 노동자로 세상은 돌아간다. 이 세상은 그런 노동자들로만 존재한다. 이렇게 노동자 모두가 열심히 일하는데 그렇게 일해서 쌓아올린 노동의 결과물은 어디에 있는가. 그렇게 쌓아올린 노동의 결과물은 김아무개를 비롯한 노동자들을 모두 뒤덮을 것이고 그렇다면 치워내지 않으면 일을 할 수도 없을 것이다. 어디에 있는가. 그런데 노동자 김아무개에게는 치워낼 것이 아무 것도 없다. 그저 어제도 오늘도 급여를 받기 위해 출근해야 한다. 그래서 이번 추석을 지낼 수 있었다. 따라서 노동자 김아무개는 추석 연휴를 위해 출근해야 했다. 치워낼 것은 아무 것도 없고 그저 추석 연휴를 지낼 수 있는 허기진 배를 가진 자신과 가족이 있을 뿐이다. 노동자 김아무개는 싫어도 출근해서 열심히 일해야 하고 그래서 다시 출근해서 일해야 한다. 어디에 있는가. 노동자 김아무개는 알 수가 없다. 자신은 열심히 일하고 그 대가로 급여를 받을 뿐이다. 그래서 알 수가 없다. 자신이 일한 대가로 급여를 받았으니 더 이상 궁금할 것도 없었다. 부모님도, 선생님도 말해주지 않았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니 그들도 알지 못하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그래도 그들은 그것을 궁금해 하지 않았다. 그러나 노동자 김아무개는 그들과 달랐다. 그들은 열심히 일해야 하는 그 좋은 세상이 그들이 바라는 세상이지만 노동자 김아무개는 열심히 일하지 않아도 되는 그런 세상이 그가 바라는 세상이었다. 그들과는 달리 노동자 김아무개는 궁금했고 노동자 김아무개에게는 자신이 바라는 세상을 찾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중요한 문제였다. 어디에 있을까. 노동자 김아무개가 일하는 회사에는 김아무개와 마찬가지로 열심히 일해서 급여를 받는 자들이 있는데 그들이 가져간 것이 아니었다. 그들도 김아무개와 마찬가지로 추석 연휴 다음날인 어제 출근했고 열심히 일했다. 그러면 회사 내에 일하는 노동자들이 아닌 누군가가 열심히 일하는 노동자들의 노동의 결과물을 챙겨가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누구인가. 노동자 김아무개를 지시하고 관리하는 회사라는 조직체계를 지배하면서 회사라는 법적 지위를 이용하여 노동의 결과를 챙겨가는 자들이 있었다. 금속노조의 모 부장과 민주노총의 모 국장이 걸핏하면 내뱉던 자본(가)이었다. 그들은 회사를 조직하고 관리자를 두어 관리하고는 일하지 않고서도 노동자 김아무개 등의 노동의 결과를 챙겨하는 자였다. 노동자 김아무개가 바라던 세상은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지만 그들은 일하지 않고서도 노동자 김아무개가 바라는 바를 차지하고 있었다. 노동자 김아무개는 마침내 깨달았다. 자신이 바라는 세상은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지만 자신이 꿈꾸었던 바를 누리는 자들은 존재하고 있었다. 마침내 찾았다. 희망에 들떴다. 그리고 이내 절망에 빠졌다. 노동자 김아무개는 지금 받는 급여를 아무리 모아도 그들이 회사에 출자한 돈은 모을 수 없기 때문이었다. 노동자 김아무개에게는 그것은 앞으로 추석 연휴 등 모든 휴가와 휴일을 사용하지 않고 일해서 받는 급여를 평생 모아도 모을 수 없기 때문이었다. 더 이상 노동자 김아무개는 나아갈 수 없었다. 더 이상 생각할 수 없었다. 자신이 아무리 발버둥쳐도 자신이 바라는 것은 이 세상에서 자신은 차지할 수 없었다. 이렇게 김아무개의 생각은 종착지에 도달했다. 그렇게 한 노동자의 추석연휴와 그 다음날은 지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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