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분 1초의 긴장도 풀 수 없는 공간. 순간의 실수가 환자의 생명을 좌우할 수 있는 곳. 바로 병원이다. 위급한 환자들로 가득한 응급실은 한 치도 긴장의 끈을 놓을 수 없다. 생명이 위독한 교통사고 환자나 의식을 잃은 음주환자라도 오면 응급실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의 심박수는 끝도 없이 치솟는다.

환자의 상태를 확인하기 위해 엑스레이(X-ray) 촬영은 기본이다. 응급의료센터 내 응급촬영실에서 대기환자가 늘어나면 환자와 보호자들의 불만은 증폭된다. 하지만 엑스레이 촬영을 위해 왜 오래 대기해야 하는지 그 이유를 생각해 본 환자·보호자가 몇 명이나 될까. 그들에겐 그럴 여유가 없다. 그저 답답할 뿐이다.



<매일노동뉴스>가 추석연휴를 앞둔 지난 19일 오후 서울 안암동에 있는 고려대의료원 안암병원 응급의료센터 응급촬영실을 찾았다. 이날 오후 3시. 응급촬영실에 팔이 부러진 어린 남자아이가 아빠의 품에 안겨 들어왔다. 울음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방사선사 서현(39)씨와 트레이닝을 받고 있는 김동식(가명·25)씨가 나섰다.
“옳지. 자, 팔을 촬영대에 이렇게 올려놓으시고요.”
서씨가 빠른 손놀림으로 어린 환자의 팔을 잡았다. 김씨는 환자 보호자에게 방사선 보호가운을 입혀 줬다. 어린아이를 달래는 것도 기술이다. 하루 이틀에 완성되지 않는 노하우다.

“따르릉~ 따르릉~”
그 사이 응급촬영실에 전화벨 소리가 울렸다. 응급센터 간호사들에게 걸려 오는 전화다. 두 사람이 있지만 촬영이 바빠 받을 틈이 없다. 그래도 이날은 양호한 편이다. 김씨가 보조를 서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한 달 후면 김씨는 이 일을 혼자 감당해야 한다.



“교통사고 환자 오면 아노미 상태”

서씨가 엑스레이 촬영기기 버튼을 눌렀다. 컴퓨터 화면에 환자 팔의 뼈가 선명하게 찍혀 나왔다. 원래 엑스레이 촬영을 할 때는 촬영대가 있는 촬영실과 조종실 사이에 있는 문을 닫아야 한다. 방사선에 노출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서씨는 그냥 문을 연 채로 버튼을 눌렀다. 문을 열고 닫을 짬이 없기 때문이다.

“환자가 무리없이 움직일 수 있으면 다행이죠. 교통사고 환자라도 오면 혼자서 촬영을 감당하기 어려워요.”
엑스레이 촬영기기 옆의 컴퓨터 화면에는 실시간으로 응급센터에 들어오는 환자들의 현황이 업데이트됐다. 몇 명의 환자가 촬영을 기다리고 있는지도 확인할 수 있다. 컴퓨터 화면에서 촬영이 제대로 됐는지 살펴본 뒤 서씨가 뒤쪽에 있는 영상리더기를 다시 한 번 확인한다. 촬영된 엑스레이 영상은 PACS(의료영상저장전송시스템)으로 전송된다. PACS는 엑스레이 촬영기기와 연결돼 있다. 촬영한 영상은 디지털 상태로 저장되고, 병원 내 시스템으로 전송돼 담당의사가 확인할 수 있다. 영상이 디지털화되면서 엑스레이 촬영실에서 필름이 사라진 지 오래다.

“이동촬영을 하러 가겠습니다.”
응급촬영실에서 엑스레이 촬영을 마친 두 사람이 이동촬영기를 밀며 응급의료센터 응급환자에게 갔다. 응급촬영실은 응급의료센터 안에 붙어 있지만 거동이 불편한 환자는 이 거리도 이동할 수 없다. 이럴 땐 방사선사가 이동촬영기를 가지고 환자를 찾아 엑스레이 촬영을 해야 한다.

김씨는 2개월째 트레이닝을 받고 있다. 트레이닝을 받는 동안은 무급이다. 그를 트레이닝시키는 서씨의 원래 근무처는 응급촬영실이 아니다. 그는 영상의학과 일반촬영실에서 근무하는 정규직이다. 고대의료원 안암병원 응급의료센터 응급촬영실은 비정규직 3명이 3조2교대로 근무하고 있다. 1인이 1조를 구성하고 있다. 응급촬영실에서 근무하는 방사선사는 한 명뿐이다. 3명 중 1명이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매일 오전 8시30분부터 오후 5시30분까지 낮 근무를 한다. 남은 2명은 교대로 야간당직 근무를 하는데 오후 5시30분부터 다음날 오전 8시30분까지 근무한다. 무려 15시간을 비정규직 혼자서 근무하는 것이다.



365일 2교대 근무하는 응급촬영실

근무조가 바뀌는 매주 일요일 낮 당직근무는 영상의학과 당직자 3명 중 1명이 응급촬영실 근무를 지원한다. 이날 근무지원에 나선 사람이 서현 방사선사인 것이다.
엑스레이 촬영은 언뜻 간단한 것처럼 보여도 숙련이 필요한 작업이다. 환자 몸의 위치를 정확히 잡고 촬영해야 아픈 부분을 제대로 알 수 있기 때문이다.

“머리와 사지·배·척추·흉부를 나눠 (신규직원을) 교육시킵니다. 일을 하는 도중에 설명을 해 주다 보면 자연스럽게 환자 대기시간이 늘 수밖에 없죠.”
보조하는 사람이 있어 업무가 수월할 줄 알았더니 그렇지만도 않다. 설명을 해야 하니 환자에게 온전히 집중해야 할 정신이 신규직원에게 분산된다. 그런데 응급촬영실 안에서는 이런 트레이닝이 2년마다 반복된다. 일한 지 2년이 된 비정규직은 계약이 만료되고, 병원이 다시 신규직원을 채용하기 때문이다.

5년 동안 비정규직으로 일하다 지금은 정규직으로 일하고 있는 서씨는 “응급촬영실 전체 직원이 비정규직인 병원은 아마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오후 4시35분. 또 어린이 환자가 들어왔다. 이날따라 유독 어린이 환자가 많았다. 주말엔 소화과가 운영되지 않기 때문에 어린 환자들도 응급실로 몰린다. 중소병원이 문을 닫기 시작하는 초저녁이면 응급촬영실은 말 그대로 아노미 상태가 된다. 곧바로 이동침대에 누운 노인 환자가 들어왔다.

“자, 환자 몸을 안아 보세요.”
제대로 된 촬영결과를 얻기 위해서는 때때로 환자의 옷을 벗겨야 한다. 보호자의 도움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다. 침대에 누운 환자를 촬영대에 눕힐 때도 손이 부족하기는 마찬가지다.

응급촬영실 전체 직원이 비정규직

“할머니 숨을 잘 참으셔야 합니다. 안 참으시면 사진이 정확하게 안 나와요. 숨 참으세요.”
아무리 환자가 밀려 있어도 응급촬영실 안에서 뛰는 것은 금기사항이다. 자칫 환자나 보호자들이 “방사선을 피하기 위한 것 아니냐”며 오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서서 촬영을 하는 환자가 갑자기 쓰러질 수도 있기 때문에 조종실 안으로 들어오면서도 몸을 돌리지 않는다. 환자를 지켜보기 위해서다.

“최혜수님도 있어요.”
한 간호사가 응급촬영실 문을 두드리고 고개를 내밀며 대기환자가 있음을 알린다. 오후 5시가 되자 대기환자가 늘어나기 시작했다. 엑스레이 촬영을 하는 도중 또다시 간호부에서 전화가 걸려 왔다. 움직이지 못하는 환자가 있어 이동촬영을 요청하는 전화다. 응급촬영실 밖에는 이미 서너 명의 환자와 보호자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이분은 환자를 ‘타는’ 징크스가 있어요.”
옆에서 설명을 돕던 김진용(38) 보건의료노조 고대의료원지부 교육정책부장이 서현 방사선사를 두고 “환자를 탄다”고 했다. 서씨가 근무를 하면 유독 환자가 몰리는 징크스가 있다는 뜻이다.

다음에 들어온 환자는 머리가 긴 여성 환자였다. 머리를 묶어야 하는데 응급촬영실에 고무줄이 없다. 서씨는 급한 대로 수건을 이용했다. 환자들이 대기하고 있다는 전화가 계속 걸려 오고, 밖에서는 환자와 보호자들이 대기하고 있다는 것을 알리려는지 연이어 문을 두드린다. 그러는 사이에도 서씨의 눈은 컴퓨터 모니터화면과 환자를 끊임없이 오갔다.

“좀 이따 보내 주세요. 환자들이 많이 대기하고 있거든요.”
오후 3시30분 이후로 앉아 있을 틈이 없었다. 간식으로 준비한 사탕은 껍데기가 뜯긴 채 몇 시간째 책상 위에 방치돼 있었다. 이날 오후 5시까지 총 236명의 환자가 응급촬영실에서 엑스레이 촬영을 마쳤다.

“출혈환자 있습니다.”
전화가 또 걸려 왔다. 이동촬영을 요청하는 전화였다. 하지만 대기환자가 밀려 있어 바로 이동촬영에 나설 수 없는 상황이다. 오후 5시30분이 되자 다음 교대근무자 박창신(29)씨가 들어왔다. 김진용 부장이 “고대의료원의 송승헌”이라고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하지만 근무를 시작하는 박씨의 마음은 그리 편하지만은 않다. 근무한 지 2년이 도래하는 다음달 26일까지만 일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가 나가면 지금 트레이닝을 받고 있는 김동식 방사선사가 다시 비정규직으로 근무한다.


2년마다 트레이닝 “정규직도 힘들어”

“원서를 쓰고 있기는 한데, 나이 때문에 걱정이네요. 다른 병원에서는 경력을 잘 인정해 주지 않거든요.”
병원들은 신규직원을 채용할 때 보통 자기 병원 출신 계약직을 선호하는 경향이 있다. 어느 정도의 손해를 감수해야 한다. 업무가 손에 익을 만하면 다른 일자리를 찾는 상황이 반복되고 있는 것이다.
 
“간호사들은 3교대 근무를 하는데 저희는 2교대 근무를 하거든요. 야간근무를 할 때 근무시간이 긴 게 가장 힘들었던 것 같아요.”
응급촬영실 야간근무자는 식사시간을 포함해 15시간 동안 근무한다. 하지만 휴게시간을 제대로 보장받기 어렵다. 쉬는 동안 촬영을 대신할 사람이 없기 때문이다. 특히 야간에는 응급의료센터의 특성상 몸을 가눌 수 없는 음주환자들이 적지 않다. 이런 환자를 혼자서 감당해야 한다. 지부의 통계에 따르면 응급촬영실의 경우 낮에는 보통 80~100건을 촬영하고, 야간에는 180~230건을 촬영한다.

응급촬영실이 3명의 비정규직으로 운영되면서 덩달아 영상의학과 일반촬영실 방사선사의 노동강도도 세졌다. 영상의학과의 일요일 낮 당직근무자는 총 3명인데, 이 중 1명이 응급촬영실 지원업무를 해야 하기 때문이다. 3명이 처리할 일을 2명이 처리하는 셈이다. 응급촬영실 직원들이 병가나 경조사·연차 휴가를 쓸 경우에도 영상의학과에서 근무를 지원해야 한다. 이 때문에 일반촬영실 직원들 일부가 연차휴가를 사용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지원근무에 나선 서씨의 근무시간은 오후 5시30분까지였다. 그러나 대기환자들이 밀려 있어 바로 교대를 하지 못했다. 박창신 방사선사는 출근하자마자 근무복으로 갈아입고 이동촬영기를 밀며 응급촬영실을 나섰다. 그가 출근하기 전부터 이동촬영을 기다리고 있는 환자가 있기 때문이다. 20여분이 지나서야 서씨와 김씨가 근무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갔다. 이제부터 15시간의 야간근무는 박씨 혼자서 책임져야 한다. 다음달 26일 이후 일자리를 고민하면서 15시간을 버텨야 한다.

조순영(36) 보건의료노조 고대의료원지부장은 “2년마다 비정규직을 계약해지하는 일이 발생하고 있다”며 “병원일은 빨리 돌아가면서 협업을 하는 경우가 많은데 트레이닝 때문에 업무공백까지 발생하는 상황”이라고 우려했다.


고대의료원 노사는 당초 추석 전까지 임금·단체교섭을 마무리하기로 합의한 상태였다. 이를 전제로 보건의료노조 고대의료원지부는 중앙노동위원회에 제기한 조정을 취하했다. 하지만 노사는 추석이 지난 27일 현재까지도 쟁점을 둘러싸고 이견을 좁히지 못하고 있다. 지부는 28일부터 30일까지 쟁의행위 찬반투표를 거친 후 합의에 이르지 못할 경우 다음달 6일 파업에 돌입할 예정이다. 상시업무에는 정규직을 고용하고 비정규직을 정규직화하는 것도 주요 요구사항 중 하나다.
지난 19일 오후 서울 안암동 고대의료원 안암병원 지부사무실에서 만난 조순영(36·사진) 지부장은 “비정규직 정규직화는 비용이 아닌 의지의 문제”라고 강조했다.
“기간제 및 단시간근로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기간제법)이 시행되기 전에는 비정규직을 고용하고 나서 해고하지는 않았어요. 그래서 매년 교섭 때 비정규직을 몇 명씩 정규직화하는 관행이 있었습니다.”
기간제법이 시행된 2007년 고대의료원에서 진단검사의학과 의료기사 비정규직 3명이 해고됐다. 이들은 복직 투쟁 후 무기계약직으로 복직됐다. 보건의료노조는 그해 산별교섭을 통해 정규직 임금을 ‘3.5%+1.8%’ 인상하고, 이 가운데 1.8%를 비정규직 처우개선을 위해 쓰기로 합의한 바 있다.
당시 고대의료원 소속 3개 병원(안암·구로·안산병원)의 비정규직은 445명이었다. 비정규직의 임금은 정규직의 50% 수준이었다. 노사는 1.8%의 임금인상분을 시간제 노동자는 정규직 초임임금의 75%, 계약직은 정규직 초임임금의 85%까지 맞추고, 비정규직 76명을 정규직하는 데 사용했다. 하지만 올해 7월 현재 비정규직은 469명이다. 비정규직이 다시 늘어난 것이다.<현장분석 기사 참조>
조 지부장은 “구로병원을 증축하면서 비정규직이 늘었고, 새로운 기계가 도입되거나 업무량이 늘었을 때 정규직을 충원하지 않고 비정규직을 충원한 결과”라고 말했다.
“노사는 2007년 비정규직의 처우개선을 위해 노력하기로 합의했어요. 그런데도 2007년 이후 이렇다 할 처우개선이 없는 상황입니다. 상시적인 업무에는 정규직을 채용하고, 비정규직을 정규직화해야 한다는 것이 지부의 입장입니다.”  조현미 기자

고대의료원은 서울 안암과 구로·경기도 안산 세 곳에 병원을 두고 있다. 보건의료노조 고대의료원지부에 따르면 주차관리·청소·세탁실·전산파트는 용역화돼 간접고용 비정규직이 일하고 있고, 나머지 비정규직은 직접 고용 비정규직이다. 많은 사립대 병원들이 영양팀을 용역화한 것에 비하면 고대의료원은 그나마 나은 편이다.
지난 7월 현재 고대의료원의 전체 노동자는 3천865명으로 이 가운데 12.1%(469명)가 비정규직이다. 직군별로는 일반업무직의 비정규직 비율이 32.6%로 가장 높다. 의료기술직(23.4%)과 행정직(17.7%)에도 비정규직이 적지 않다. 간호사의 비정규직 비율은 0.9%로 낮은 편이다. 조순영 지부장은 “간호직은 초임이 삭감된 상황에서 노동강도가 세다는 인식 때문에 이직률이 높다”며 “간호사들은 대부분 정규직으로 입사한다”고 말했다.
비정규직 비율이 높으면 부서 운영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칠 수밖에 없다. 2년마다 신규 노동자를 트레이닝하는 과정에서 정규직의 노동강도도 세지고 업무 공백이 발생하기 때문이다.
“영양팀의 경우 전체 직원 65명 중 35명이 비정규직입니다. 대부분 2월에 계약기간이 만료됩니다. 한꺼번에 35명이 그만둔다고 생각해 보세요. 업무가 돌아가겠어요?”
정규직이 연차휴가를 제대로 못 쓰는 상황도 발생한다. 의료기술직의 경우 물리·언어·운동치료사, 방사선사·영양사·약사·치위생사·의무기록사 등 직종이 다양하다. 고대의료원은 물리·언어·운동치료사의 24.4%, 방사선사의 20.6%, 영양사의 42.9%, 의무기록사의 42.5%가 직접고용 비정규직이다. 지부는 방사선사 전원이 비정규직으로 구성된 응급의료센터 응급촬영실의 경우 2교대 근무로 인해 실제 근무시간이 주당 50~55시간에 이르는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지부 관계자는 “1인 근무체계와 장시간 야간근무의 부담을 완화해야 응급상황에 대처하고 의료서비스 질을 높일 수 있다”며 “응급촬영실을 응급의료센터 자체 인력으로 운영하고 휴게시간과 연차휴가를 보장하기 위해서는 적어도 3명 이상을 더 충원해야 한다”고 말했다.
지난해 말 보건의료노조와 한국비정규노동센터가 발표한 ‘비정규직 노동자 실태 및 의견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당시 설문에 응한 49개 지부의 전체 직원수는 3만3천677명으로, 이 중 비정규직은 21.5%(7천247명)로 조사됐다. 직접고용 비정규직(7.6%)보다 간접고용 비정규직(13.9%)이 더 많았다. 기간제법 제·개정 전후로 나타난 간접고용화 양상이 병원사업장에도 예외 없이 나타난 것이다. 조현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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