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쌍용자동차에서 정리해고된 정형구(42)씨는 일할 때 입던 작업복을 요즘도 자주 꺼내 입는다. 복직을 요구하는 시위라도 있는 날이면 어김없이 작업복을 챙겨 입고 집을 나선다. 지난해 77일간의 파업을 끝내고 집에 돌아온 다음날. 정씨는 아침 출근시간에 맞춰 작업복을 입고 쌍용차 구로정비사업소 정문으로 나갔다. 그는 “그저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출근하는 ‘산 자’들의 모습이 보고 싶었다”고 했다.

우리는 고용의 단절이 사회적 죽음을 의미하는 시대에 살고 있다. 정씨는 작업복을 입음으로써 살아 있다는 것을 확인하고 싶었던 게 아닐까. <매일노동뉴스>가 작업복을 입고 일하는 노동자들에게 물었다. “당신은 어떤 작업복을 입고 있나요?”

현대자동차 울산공장 노동자들은 정규직이나 비정규직 모두 같은 작업복을 입고 일한다. 현대차에 직접고용된 정규직 노동자들의 옷에는 현대차 로고가 찍혀 나오고, 사내 하청업체에 고용된 비정규 노동자들의 옷에는 하청업체 마크가 달려 나온다는 점이 다를 뿐이다. 울산 시내에는 작업복 차림으로 활보하는 노동자들을 쉽게 만날 수 있다. 현대차 울산4공장 소형트럭부에서 일하는 이익재(41)씨는 “울산 노동자들은 애경사를 챙길 때도 작업복 차림으로 갈 때가 많다”며 “대공장이 많은 울산지역의 독특한 문화”라고 설명했다.

현대차는 노사가 공동으로 운영하는 피복위원회에서 작업복을 선정한다. 현대차가 하청업체에 지급하는 도급단가에도 피복비가 포함돼 있다. 그런데 2000년대 초반만 해도 현대차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작업복은 달랐다. 디자인만 다른 게 아니라 소재부터 차이가 났다. 당시 정규직은 청색 면 작업복을, 비정규직은 남색 나일론 작업복을 입었다. 두 개의 작업복은 이원화된 노동시장을 암묵적으로 보여 줬다.

“한진중공업에 다닐 때, 아침 조회시간에 나래비를 쭉 서 있으면 아저씨들 등짝에 하나같이 허연 소금꽃이 피어 있고 그렇게 서 있는 그들이 소금꽃나무 같곤 했습니다. 그게 참 서러웠습니다.”

‘소금꽃나무’의 저자 김진숙 민주노총 부산본부 지도위원의 눈에 비친 80년대 조선소 작업복의 이미지는 ‘서러움’이었다. 조선소의 억센 노동은 작업복을 누더기로 만들곤 했다. 용접 불똥이 튀어 구멍이 난 옷에 청테이프를 붙여 입어도 살갗은 빨갛게 벗겨졌다. 걸레 같은 작업복이 부끄러워 노동자들은 집이 아무리 가까워도 작업복을 입고 출근하지 않았다.

87년 노동자 대투쟁을 거친 후 가장 먼저 달라진 것도 작업복이었다. 1년에 한 벌만 지급되던 것이 두세 벌로 늘었다. 질도 좋아졌다. 김 지도위원은 “작업복을 부끄러워했던 공순이·공돌이들은 투쟁을 통해 노동자로서의 자존감을 회복했다”며 “87년 이후 작업복을 입고 외출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 됐다”고 회상했다. 이 같은 인식의 변화는 누가 거저 준 게 아니었다. 투쟁의 성과였다.

“작업복은 노동자의 정체성 그 자체입니다. 요즘 대공장의 작업복이 현장권력의 상징이 된 것을 보면 격세지감이 느껴지기도 합니다. 이러한 성과가 비정규 노동자들에게도 골고루 돌아가면 좋을 텐데. 아직도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작업복이 다른 사업장이 많아요.”

 이중노동시장의 상징 ‘두 개의 작업복’

작업복은 제조업 노동자처럼 특정 사업장 안에서 근무하는 사람들의 전유물은 아니다. 서울 중랑우체국 집배원 김종현(34)씨도 사시사철 작업복을 입는다. 비가 오거나 눈이 오는 날, 덥거나 추운 날에도 밖에서 일해야 하기 때문에 무엇보다 작업복의 질이 중요하다.

“작업복은 튼튼하고 질겨야 합니다. 집배원들은 주로 밖에서 일하잖아요. 길바닥에 털썩 주저앉아 잠깐씩 쉬기도 하는데, 지금의 옷은 금방 해지는 것 같아요. 품질 대비 가격이 비싼 편이라는데도 그래요. 유명 디자이너가 디자인을 해서 비싸다는 소문도 있고….” 김씨는 작업복을 입고 우체국을 나서면 바짝 긴장한다. 누구나 한눈에 집배원임을 알아보기 때문이다. 그래서 늘 복장상태를 체크한다. 오토바이 무단횡단 같은 사소한 범법행위도 가급적 하지 않는다.

더운 여름엔 우체국으로부터 검정색 반발 티셔츠와 바지가 나온다. 그러나 김씨는 조금 덥더라도 정복을 고집하는 편이다. 그는 “요즘 들어 흉악범죄가 많아지고 있는데, 집배원들이 정복을 입고 있으면 민원인들이 안심하고 문을 열어 준다”고 설명했다.

정부기관이나 공기업 노동자들이 입는 작업복의 특징은 정부의 입김이 반영된다는 것이다. 철도공사가 추진 중인 ‘녹색 유니폼’이 대표적이다. 공사는 정부의 ‘녹색 철도’ 정책에 부응하기 위해 작업복의 색깔과 디자인 변경을 추진 중이다. 빠르면 올 겨울부터 공사 직원들은 녹색 유니폼을 입게 된다. 이 소식을 접한 노동자들은 심드렁한 반응을 보이고 있다. 녹색 옷을 소화하기 어려운 데다, 옷 색깔만 바꾸면 자동으로 녹색철도가 되느냐는 자조적인 목소리가 흘러나온다. 하지만 작업복 선정에 있어 노동자들의 의견이 반영될 여지는 크지 않아 보인다. 백남희 철도노조 선전국장은 “작업복 업체를 선정할 때 노조도 참여하지만, 사전에 공사와 업체 간 물밑 의견조율이 된 상태라면 노조의 의결권은 큰 의미가 없다”며 “이러한 구조로 인해 가격에 비해 질이 떨어지는 저질 작업복이 납품되기도 한다”고 말했다.

작업복을 입어야 진짜 ‘나’

여성 사업장의 작업복은 곧 죽어도 예쁘고 봐야 한다. 디자인이 우수한 유니폼을 입은 항공사 여승무원의 직무만족도가 높다는 연구결과도 있다. 그러나 여승무원들은 “굽이 높은 하이힐을 신어야 한다”거나 “염색은 안 된다”, “화려한 액세서리는 안 된다”, “머리는 올려 묶은 뒤 망을 씌워야 한다” 등 각종 규제에 시달린다.

서울의 한 대형마트에서 화장품을 판매하는 김해원(31·가명)씨는 유니폼에 대한 불만보다는 마트 직영사원들의 태도 때문에 짜증이 난다. 김씨는 “마트마다 복장에 대한 규제와 규정이 다른데, 마트 직영사원들은 나 같은 협력업체 직원들에게 명령하듯이 이건 안 된다, 저것도 안 된다는 식으로 말한다”며 “직영사원이 이래라 저래라 할 법적 권한은 없지만, 그런 요구를 무시하면 결국 협력업체들만 피해를 본다”고 털어놓았다.

서울 시내 한 대학병원에서 간호사로 근무하는 최아무개(28)씨는 간호복을 비하하는 대중매체의 문제점을 지적했다. 코미디 프로그램이나 성인용 애니메이션에 종종 왜곡된 이미지의 간호복이 등장하기 때문이다. 최씨는 “간호사 복장에 짧은 스커트를 입은 여성이 간호사 모자를 쓰고 등장하는 경우가 있는데, 실제 그런 모양의 모자는 존재하지 않는다”며 “간호사 전체를 비하하는 것 같아 언짢다”고 말했다. 그는 “TV 드라마에 간호사가 환자의 사생활을 노출하는 장면이 많이 나오는데, 환자의 상태에 대한 설명은 아무한테나 하지 않는다”고 속상해했다.

 좋은 작업복을 찾아라

우리나라 노동자들이 지금과 같은 형태의 작업복과 유니폼을 입기 시작한 것은 70년대부터다. 한때는 획일성을 강조하는 작업복 문화가 노동자들의 창의성을 저해한다는 비판이 제기되기도 했지만, 최근에는 좀 더 안전하고 기능적인 작업복을 개발하기 위한 연구가 활발히 진행되고 있다. 

그렇다면 어떤 작업복이 좋은 작업복일까. 박혜원 창원대 교수(의류학과)는 “노동자들은 회사에 대한 자긍심을 느낄 수 있는 독특하고 창의적인 작업복을 원하고 있다”며 “작업현장의 특성을 고려한 색깔과 소재를 사용한 작업복은 노동자들에게 심리적으로 도움이 되고, 작업 안전성도 높이는 효과가 있다”고 설명했다. 박 교수는 “노동계도 회사와 작업복 논의를 할 때 이 같은 특성을 감안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구은회·조현미 기자

노조의 작업복 ‘투쟁조끼’
노동자들에게 작업복이 있다면 노조 간부들에게는 투쟁복이 있다. 빨간색 머리띠와 투쟁조끼로 이른바 ‘깔맞춤 코디’를 한 노조 간부들의 모습은 전투적 조합주의의 상징이자, 현장권력을 쟁취한 승리자의 자신감을 대변한다. 제조업 정규직노조를 대표하는 금속노조 현대자동차지부의 투쟁조끼는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빨간색이었다. 빨간색 조끼를 입은 대의원들은 일반 노동자들과 달리 회사 경비대의 제지를 받지 않고 공장을 드나드는 특권을 누렸다. 어깨에 잔뜩 힘이 들어간 ‘빨간조끼’들은 결혼식이나 장례식·술집에서도 심심찮게 눈에 띄었다. 현대차지부의 한 활동가는 “투쟁조끼는 노조 간부들의 기를 살리는 완장인 동시에, 크고 작은 권력을 남용하는 노조 간부들의 행태를 상징한다”고 설명했다. 지부의 투쟁조끼는 산별노조로 전환한 지난 2006년 금속노조의 조끼 색깔에 맞춰 남색으로 바뀌었다.
여성들이 많은 사업장의 투쟁복은 디자인이 중요하다. 보건의료노조 제일병원지부의 경우 노조 전임자만 투쟁조끼를 입는다. 대신 쟁의행위가 시작되면 조합원들은 단체티셔츠를 입고 구호가 적힌 리본을 단다. 병원 파업집회 현장에 가면 팔이 가늘어 보이게 소매를 걷어붙이거나, 옆구리를 살짝 묶어 허리를 잘록하게 보이도록 한 여성 조합원들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투쟁리본으로 머리를 묶거나 머리띠를 한 조합원들도 적지 않다.
특히 환자와 보호자를 직접 상대하는 병원 노동자들에게 단체티셔츠 착용은 각별한 의미를 갖는다. 김미성 제일병원지부장은 “조합원들은 단체티셔츠를 입는 것만으로도 굉장히 수위가 높은 투쟁이라고 생각한다”며 “외래환자를 많이 상대하는 원무과 조합원들은 단체티셔츠 착용을 부담스러워하기도 한다”고 귀띔했다.
주로 쟁의행위 시기에 입게 되는 투쟁복은 노동자들의 요구를 사회에 알리는 ‘게시판’ 역할을 한다. 박성식 민주노총 부대변인은 “최근에는 투쟁조끼 위에 주요 요구사항이 적힌 몸벽보를 붙이는 것이 유행”이라며 “투쟁복을 입는 행위는 노동자들이 사회와 소통하는 하나의 방식”이라고 해석했다. 구은회 기자

 
 
같은 듯 다른 ‘작업복’과 ‘유니폼’
‘작업복’이라는 낱말은 ‘공장’이나 ‘기름때’, ‘노동자’ 같은 단어를 연상시킨다. 그런가 하면 ‘유니폼’은 ‘비행기 승무원’이나 ‘열차 기관사’처럼 정장 스타일의 말쑥한 차림을 한 ‘전문직 종사자’를 떠올리게 한다. 작업복과 유니폼. 이 둘은 어떻게 같고, 어떻게 다를까.
개념으로 따지면 작업복보다는 유니폼이 더 큰 범주를 형성한다. 작업복은 작업장 안 유해환경으로부터 노동자를 보호하는 노동복에 가깝고, 유니폼은 교복이나 군복·운동복처럼 한 집단을 상징하는 옷을 통칭한다. 작업복도 유니폼의 일종인 셈이다. 은행 여직원들이 입는 근무복은 작업복인 동시에 유니폼이다. 직종에 따라 생산직의 작업복은 기능성, 사무직의 작업복은 상징성, 서비스직의 작업복은 심미성이 강조된다.
과거 유니폼에는 사회적 권력을 쥔 지배집단이 피지배집단에게 똑같은 옷을 입혀 손쉽게 통제·관리하겠다는 의도가 반영돼 있었다. 교복이나 교련복이 획일적 군대문화를 연상시키는 것도 이 같은 이유 때문이다. 아직도 상당수의 유니폼은 군복과 유사한 디자인으로 제작되고 있다. 유니폼을 입는 대상에게 단정한 헤어스타일이나 깔끔한 신발 착용 등이 요구되는 것도 같은 맥락으로 이해할 수 있다.
지난날 노동자들에게 작업복은 ‘부끄러움’의 상징이었다. 사회적으로 “공돌이·공순이가 입는 옷”으로 치부됐기 때문이다. 이 같은 인식은 아직도 남아 있다. 박혜원 창원대 교수(의류학과)가 지난 2007년 창원공단 내 7개 업체 노동자 912명의 작업복 실태를 설문조사한 결과, 응답자의 절반 이상인 458명이 “앞주름이 있는 정장바지 스타일을 선호한다”고 답했다.
박 교수는 “최근 작업복의 디자인 경향은 생산직과 사무직의 차이를 없애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고, 생산직 노동자들이 정장바지를 선호하는 것 역시 과거 ‘공돌이’ 이미지에서 벗어나고 싶다는 욕구가 반영된 것으로 해석된다”면서도 “이러한 경향이 바람직하기만 한 것은 아니다”고 지적했다.
생산직 노동자에게는 작업장 유해환경으로부터 몸을 보호하고 작업의 능률을 올릴 수 있는 작업복이 적합하고, 민원업무가 많은 사무직 노동자에게는 회사의 이미지를 대표할 수 있는 깔끔한 유니폼이 적합하다는 설명이다. 구은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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