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영학 강의시간에 한 대학생이 교수에게 물었다.
“교수님, (친노동인지 친기업인지) 색깔을 분명히 하십쇼.”
교수가 답했다.
“그게 바로 노사관계다.”

서울대 교수 출신인 최종태(71) 경제사회발전노사정위원회 위원장의 ‘노사관’이자, 경영학자로서의 ‘철학’이다. 최 위원장이 강단에 서기 시작한 76년. 당시만 해도 생소했던 ‘노사관계’를 전공한 그를 주변에서는 이상하게 쳐다봤다. 그만큼 ‘노동’이라는 말은 금기의 단어였다. 그런데 민주화가 되고 나서도 그는 ‘이상한 사람’으로 분류됐다. 노동과 경영 사이에서 균형을 찾으려 했으니, ‘누구 편’인지 불분명해 보인 것이다.

사회적 대화기구의 수장이 된 지금도 최 위원장은 “노사균형”을 강조했다. 그러면서 정부와 노동계의 역할 강화를 주장했다. 그는 “정부가 노사관계를 시장의 자율에만 맡겨서는 안 된다”며 “노사관계 당사자로서 적극적인 역할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노동계가 힘과 대표성을 지녀야 사회적 대화가 잘된다”고 덧붙였다. <매일노동뉴스>가 지난 16일 서울 여의도 노사정위원장실에서 최 위원장을 만났다.
 


“사회적 대화는 노사균형에서 출발”

노와 사 어느 한쪽에 서지 않으려는 최 위원장의 생각은 그의 이력을 보면 알 수 있다. 그는 한국노총의 자문위원과 한국경총·전국경제인연합회의 자문위원을 모두 지냈다. 노사정위 위원장에 내정됐던 지난 6일. 노동계와 경영계의 반응은 그 옛날 스승에게 질문을 던졌던 대학생의 그것과 비슷했다.

한국노총과 경영계는 “노사정 논의를 누구보다 잘 알고, 최저임금위원장 등을 거치며 노사 간 절충을 무난히 해 왔다”고 평가했다. 그러나 우려도 감추지 않았다. 한국노총은 “최 내정자가 위원장을 맡았던 노사관계선진화위원회는 정부의 압력에 눌려 제대로 역할을 하지 못했다”고 비판했다. 지난해 하반기 노조 전임자임금·복수노조와 관련해 정부는 강공드라이브를 걸었고, 노동계는 열세를 면치 못했다.

경영계는 “역대 최저임금위원회 위원장 중 최저임금을 가장 많이 인상시킨 사람”으로 기억했다. 최 위원장이 최임위 위원장에 재직했던 시기는 2003~2009년. 최저임금은 2천275원(2003년)에서 4천원(2009년)으로 75.8% 인상됐다. 매년 평균 11.5%가 올랐다. 경영계 입장에서는 펄쩍 뛸 일이었다.

그러나 최 위원장도 할 말이 있었다.
“노사관계선진화위가 정부의 압박을 받았다고 하는데, 오해입니다. 전임자임금과 복수노조 문제는 13년간 해묵은 과제였어요. 오히려 저를 비롯한 공익위원들이 ‘이번에는 반드시 바꿔야 한다’고 정부에 요청했어요. 한국노총이 결단을 했고, 공익안을 토대로 법이 개정된 겁니다.”

그는 경영계 비판에 대해서는 “법에 정해진 절차를 지켰을 뿐”이라고 했다.
“현행 최저임금법에 따르면 노·사·공이 합의를 할 수도 있고, 노와 사가 퇴장할 수도 있습니다. 임기 동안 민주노총까지 참석한 회의에서 두 번이나 합의를 이끌어 냈다는 사실이 중요합니다.”
 
“정부는 사용자, 적극적으로 대화해야”

사회적 대화기구인 노사정위는 98년 출범했다. 그러나 12년이 지난 지금도 사회적 대화는 제대로 정착되지 못하고 있다. 아직도 사회의 화두는 ‘대화와 소통’이다. 최 위원장은 “사회적 대화가 발전하기 위해서는 그 사회가 사회적 대화를 위한 자질과 능력을 갖춰야 한다”고 말했다. 능력이 없는 사회에서는 대화하자고, 협력하자고 강조해도 구호에 그칠 수밖에 없다는 설명이다.

이와 관련해 그는 정부에 쓴소리를 던졌다. 최 위원장은 “지금의 노사관계는 양자주의가 아니라 삼자주의이기 때문에 정부가 사용자 역할에 충실해야 한다”고 말했다.

최 위원장에 따르면 우리나라 고용인구의 20%는 공공기관 직원이거나 공무원이다. 노사가 임금과 근로조건에 대해 논의할 때, 교육비·주택비·교통비는 중요한 판단요소다. 예컨대 서울지역의 경우 생계비 중 교육비가 차지하는 비중이 60%를 넘는 가구도 있다.
“정부 정책은 노동상품의 수요·공급에 지대한 영향을 줍니다. 그런데도 노사가 자율적으로 하고, 정부는 당사자가 아니니까 개입하지 않겠다? 그건 말이 안 되죠. 한국전력 노사가 교섭하는데 사용자는 사장이다? 그건 직무유기입니다.”

사회적 대화에 소극적인 정부의 태도를 지적한 것이다. 최 위원장은 “사회적 대화가 축구라고 가정하면, 심판도 봐주고 축구장 같은 인프라도 만드는 등 정부가 역할을 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노동부를 제외하면 기획재정부 같은 정부부처가 노사관계를 잘 모른다는 게 문제입니다. 지방자치단체는 더 심각해요. 서울시 노사정기구 위원장을 8년째 하고 있는데, 서울시에는 아직도 노사교섭을 담당하는 독립된 부서가 없어요.”
 
“노동계, 변해야 힘 생겨”

최 위원장은 특히 노동계가 힘이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힘 있고 대표성 있는 노조, 사회적 책임을 지는 노조가 돼야 사회적 대화를 할 수 있는 역량이 생긴다”고 말했다.

“노조도 하나의 조직이고 생명이에요. 조합원 권익과 사회발전을 위해 실천활동을 하면서 내부 규범을 만들어 가야 합니다. 목표를 향해 실천하고, 현실을 존중하면서 부단히 변해야 합니다. 실천도 하기 전에 선을 그어 버려서는 안 됩니다.”

동등한 위치에서 진행돼야 하는 사회적 대화를 위해서는 열세에 있는 노동계의 위치를 끌어올려야 한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힘 있는 노조가 필요하다는 최 위원장의 생각은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상급단체 파견자 임금 지원’에 대한 입장으로 이어졌다. 결론은 “지원이 불가피하다”는 것이다.

“상급단체 간부에게 임금을 주지 않는다고 노사관계가 건전해질까요? 건전한 노사관계를 위해서는 산별연맹과 총연맹이 튼튼해야 합니다. 그런 측면에서 파견전임자 임금을 한시적으로 지원하면, 노조가 건전하게 변하고 사회적 책임을 지는 계기가 될 수도 있다고 봅니다. 물론 쟁의행위만 한다면 문제가 되겠지요.”
 
“노사정위 변할 것 … 새 의제 발굴하겠다”

그렇다면 사회적 대화기구인 노사정위의 현재 모습은 아무런 문제가 없는 것일까. 노사정위나 사회적 대화의 위상이 축소됐다는 비판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한국노총은 최근 “노사정위원회의 역할을 재정립함으로써 실질적인 사회적 대화에 힘써야 한다”고 주문하기도 했다. 최 위원장이 내정되기 전에는 노사정위 내에서 “대통령에게 직접 보고할 수 있는 힘 있는 위원장이 와야 한다”는 의견이 나오기도 했다.

“이명박 대통령이 사회적 대화나 노사정위에 관심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노사정위 설립 초기에는 제도가 정착되지 않아 사람 중심으로 갈 수밖에 없었어요. 그래서 힘 있는 정치인들이 위원장을 한 겁니다. 그러는 과정에서 제도와 시스템이 정착돼 왔습니다. 대통령에 대한 보고는 직접 만날 수도 있고, 제도를 통해서도 가능합니다. 사람 중심으로만 해결하려는 것이 오히려 구시대적인 게 아닐까 생각합니다.”

최 위원장은 “대통령보다는 현장의 근로자들과 더 많이 만나는 것이 사회적 대화에 도움이 된다”면서도 “국정과제에 대한 소통이 안 된다면 대통령도 만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변화에 제대로 대응하는 노사정위를 만들겠다”고 강조했다. 급변하는 시대를 준비하기 위한 의제 발굴에 미흡했다는 반성이다.
 
“전 세계는 물론이고 경제·기술, 노사관계의 지각이 변동하고 있습니다. 양극화는 전 세계가 고민하는 문제입니다. 이런 조류에 대응해 일자리 창출과 양극화 해소·인구정책 등 새로운 의제를 발굴할 생각입니다.”

[약력]

노사관계·사회적 대화 전문가로 불린다. 서울대에서 노사관계연구소장·경영대학장·교수협의회 회장을 역임했다. 현재는 명예교수다. 한국생산성학회·한국인사관리학회·한국노사관계학회·한국경영학회 회장을 지내는 등 외부단체 활동도 활발히 했다. 특히 △최저임금위원회 위원장 △노사정위 공익위원 △서울시 노사정 서울모델협의회 위원장 등을 거치며 사회적 대화 전문가로 인정받았다. 최 위원장은 “노사관계와 사회적 대화를 전공한 것에 자부심을 느낀다”며 “사회발전과 약자를 위해 일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라고 생각하고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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