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은 지난 2008년 4월 기업살인법(Corporate Killing Law)을 시행했다. 이 법에 따르면 필수적인 안전조치를 시행하지 않아 노동자가 사망할 경우 기업주를 과실치사 혐의로 처벌하도록 돼 있다. 당시 브렌단 바버 영국노총(TUC) 사무총장은 “수년 간 발생한 사망재해들은 충분히 예방 가능했던 것”이라며 “기업살인법 시행은 영국의 기업문화를 바꾸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기업살인법은 캐나다에서 먼저 실시됐으며, 호주의 경우 일부 주정부에서 시행되고 있다.

최근 우리나라에서도 살인기업법을 제정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지난 7일 충남 당진소재 환영철강에서 김모(29)씨가 용광로에 떨어져 숨지는 사건이 발생했기 때문이다. 김씨는 용광로가 제대로 닫히지 않아 이를 막기 위해 고정 철판에 올라갔다. 김씨는 고철을 끄집어내려다 발을 헛디뎌 용광로에 떨어진 것으로 알려졌다. 김씨가 작업했던 용광로 위 고정철판에는 난간이나 가드레일 등 안전펜스조차 설치되지 않았다.

이번 사고는 고용노동부의 안전점검 소홀도 한 몫 했다. 사고를 낸 환영철강은 지난달 27일 고용노동부의 공정안전 실태점검을 받아 14건의 시정지시를 받았지만 용광로 주변은 점검대상에 포함되지 않았다. 앞서 관할지청인 고용노동부 천안지청은 지난 6월 산재감소 캠페인을 벌였지만 이 사업장은 점검대상에서 뺐다. 캠페인의 주요 점검대상은 넘어짐, 끼임, 떨어짐 재해였다. 그런데도 중복점검을 피하기 위해 환영철강을 뺐다는 게 노동부의 답변이다. 용광로에 추락사한 청년 노동자를 생각하면 노동부의 답변은 한마디로 어이가 없다.

이번 사고는 어디까지나 ‘인재’다. 사업주가 용광로 위 고정철판 주변에 안전펜스만 설치했어도, 고용노동부가 용광로 주변에 대해 안전점검을 했어도 일어나지 않았을 사고였다. 고용노동부는 뒤늦게 환영철강을 포함해 용해로가 있는 전 사업장 297곳에 대해 특별점검을 하도록 지침을 내렸지만 이는 때늦은 조치에 불과하다. 환영철강과 같은 금속재료품제조업에서 발생한 재해율과 사망만인율은 전체 사업장 평균의 두 배를 웃돌고 있다. 사업주들의 안전불감증이 만연한 것이다. 이는 금속재료품제조업에 속하는 기업들만의 문제는 아니다. 우리나라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가 중 산재사망률 1위다. 지난해만 2천181명, 하루에 6명의 노동자가 산업현장에서 재해를 당해 목숨을 잃었다.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를 개최할 정도로 국격이 높아졌다고 하지만 한국은 여전히 산재다발국가라는 오명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도 노동자를 사망케 한 사업주에 대한 처벌은 ‘솜방망이’에 불과하다. 산업안전보건법에 따르면 사업주가 사업장의 위험예방에 필요한 안전조치를 취하지 않아 노동자를 사망에 이르게 했을 경우 7년 이하 징역 또는 1억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돼 있다. 2008년 1월, 40명의 사망자가 발생한 이천 냉동창고 화재참사를 일으킨 원청기업인 코리아냉장 대표의 경우 겨우 2천만원의 벌금형만 받았다. 용광로 사고가 일어난 제강·철강 사업장의 경우 올해 상반기까지 8건의 사망사고가 일어났다. 그런데 검찰에 의해 기소된 것은 고작 5건이다. 기소되더라도 사업주보다는 안전관리자나 현장소장이 처벌되는 사례가 대부분이다. 이렇듯 사업주들은 고용노동부의 안전점검을 비웃기라도 하듯 안전조치는 매우 소홀하다. 안전점검 받을 때만 반짝 노력할 뿐 평소의 사고예방에는 게을리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다 보니 고용노동부의 안전점검이 실효성을 거두지 못하고 있는 것 아닌가.

안전불감증이 만연한 기업문화를 근본적으로 바꿔야 한다. 다른나라에서 실시하고 있는 것처럼 사망사고를 일으킨 사업주들에 대한 처벌을 강화해야 한다. 산업안전보건연구원에 따르면 2004년부터 2007년까지 산안법 위반 건수를 분석한 결과, 총 4천490건 가운데 구속된 경우는 단 3건에 불과했다. 1천건은 불기소 처리돼 범죄가 인정되지 않았다. 검찰의 구속 기준을 보더라도 사망사고 2명 이상, 1년에 3건 이상 사망사고 발생 때에만 구속처벌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대부분은 불구속처벌이거나 벌금형이다. 벌금형도 사업주가 그리 부담을 느끼지 못할 정도다.

반면 영국의 경우 신체형(실형)보다 벌금형이 최근 두 배 이상 증가할 정도로 사업주의 책임성을 강화했다. 미국도 고의적 위반했을 때 6개월에서 10년으로, 재차 위반했을 때 1년에서 20년 징역형으로 처벌을 강화했다. 이를 볼 때 우리나라도 사업주의 책임성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 노동보건단체들은 지난 2002년부터 살인기업법과 징벌적 손해배상 제도를 도입하라고 요구해 왔다. 우리나라도 이젠 이를 적극 검토할 때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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