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출산·고령화 문제는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심각한 사회 문제가 됐다. 정부는 지난 10일 4대 분야 227개 과제로 구성된 ‘제2차 저출산·고령화 기본계획’을 발표했다. 주요 내용은 △육아휴직 급여 확대 △배우자 출산휴가 유급 변경 △육아 직장인 근로시간 단축권 도입 △2011년 이후 출생 둘째자녀 고교수업료 면제 △퇴직연금 불입액 소득공제 한도 확대 등이다.
하지만 정부의 대책으로는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 우려가 적지 않다. 노동·시민사회단체는 정부의 안일한 상황인식을 강하게 비판했다. 중장기 재정계획 없이 기존 정책을 짜깁기한 수준이라는 것이다. 여당인 한나라당 내에서도 좀 더 강력한 대책 마련을 주문하고 있다. 저출산·고령화 문제에 대한 정부 대책의 문제점과 해결방안을 들어봤다.



“출산을 ‘짐’으로 보는 사회분위기 바꿔야”
정문자 여성노동자회 대표


여성노동자회에 가장 많이 들어오는 상담요청은 여성노동자들이 임신을 한 순간부터 기업과 사회에서 ‘죄인’ 취급을 받는다는 것이다. 기업과 사회가 출산과 육아를 ‘짐’으로 인식하는 한 제아무리 좋은 법이 만들어진다고 해도 공염불일 뿐이다.
그런 의미에서 현재 법으로 규정된 산전후휴가부터 일하는 여성이라면 누구나 당당히 쓸 수 있는 사회적 분위기를 조성해야 한다. 또 여성노동자의 70%가 비정규직인 만큼 이들을 위한 고용유지 정책을 추진해야 한다.
하지만 정부 발표내용은 유연근로 확대로 여성고용의 질을 악화시키고, 중산층 이상의 여성들만 미미하게 혜택을 보는 수준이다. 남성도 엄연히 아이를 돌보는 양육자임에도 불구하고 이를 배제한 채 출산과 육아를 여성들만의 몫으로 한정해 놓았다.
저출산 문제에 접근하는 정부의 관점이 잘못됐다. 여성들이 출산을 기피하는 가장 큰 이유는 출산과 동시에 직장에서 퇴출됨에 따라 고용과 소득이 불안정해지기 때문이다. 따라서 여성의 노동권을 중심에 놓고, 양질의 여성고용을 확대하는 것이 저출산 해결의 시작이다. 또 고용보험 가입률을 높이는 등 가장 소외된 비정규직 저소득층에게 유리하게 적용되는 제도를 정착시켜야 한다.
무엇보다 정부는 법이 현장에 안착될 수 있도록 ‘남녀 공동 육아 캠페인’을 벌이는 등 강한 의지를 갖고 철저한 관리·감독에 나서야 한다.


“국가책임을 왜 기업에 떠넘기나”
류기정 한국경총 사회정책본부장




우리 사회에서 왜 저출산 문제가 심각한지 따져 봐야 한다. 본질적인 원인은 과도한 사교육비와 주택난·만혼·비혼 등 사회구조적 문제 때문이다. 이는 공교육이 정상적이지 못한 데서 출발한다. 그런데도 정부는 이번에 발표한 대책에서 기업에게 부담을 지우고 있다. 육아휴직급여 인상이나 배우자 출산휴가 유급화, 근로시간 단축청구권 등이 대표적이다.
정부가 생각하는 만큼 효과가 없을 것이다. 기업 부담은 늘어나고 당초 취지와는 달리 기업들이 여성근로자 고용을 피하게 될 것이다. 우리나라 여성고용보호 제도는 선진국과 비교해 결코 낮은 수준이 아니다. 일부 분야는 오히려 더 높은 수준이다. 사회구조적 문제에서 출발하는 저출산 문제를 해결하려면 정부 할을 넓혀야 한다. 국·공립보육시설을 확충하는 등 사회적 인프라를 확대해야지, 기업에 부담을 떠넘겨서는 안 된다.
그렇다고 규제를 강화하는 것은 부적절한 정책이다. 기업의 여성고용 부담을 완화해 장기적으로 여성고용을 확대하도록 유도해야 한다.


“저소득층은 전혀 고려되지 않아”
이영순 민주노동당 여성위원회 위원장(최고위원)




저출산 대책의 대상을 중산층까지 확대하는 것을 민주노동당은 지속적으로 주장해 왔다. 하지만 정부의 2차 기본계획은 저소득층에 대한 정책이 전혀 고려되지 않았다. 사각지대를 그대로 남겨 둔 것이다. 예를 들어 육아휴직급여를 최대 100만원까지 적용한다는 것도 전문직 소수 여성에게 해당되는 부분이다. 여성노동자 가운데 비정규직이 많은데 정작 비정규직 여성에게는 아무런 도움이 안 되는 공허한 대책이다.
정부는 2011년 출생 둘째자녀부터 고교무상교육을 하겠다는 것을 마치 대단한 정책인 양 얘기하고 있다. 그때가 되면 당연히 무상교육을 실시해야 하는 것 아닌가. 오히려 무상교육을 지연시키는 후퇴한 정책이다.
육아휴직은 정당한 권리임에도 불구하고 직장 내에서 눈치가 보여 이용률이 낮은 상황이다. 제도는 있으나 실효성이 없는 부분에 대한 보완대책이 필요하다. 육아휴직을 사용하더라도 인사고과에서 불이익을 받지 않도록 제도를 보완해야 한다. 육아휴직을 마치고 업무를 빨리 파악할 수 있도록 단기간이라도 교육을 실시해야 한다. 이런 직장 분위기를 만들어 줘야 한다.


“고용 빠진 저출산·고령화 대책은 무용지물”
심재옥 진보신당 대변인(여성위원장)




지난 10일 발표된 제2차 저출산·고령화 기본계획은 정부에서 진단한 원인조차 해결하지 못하는 한계를 지닌 것이다. 지엽적 대안만 제시됐을 뿐 근본적 대책이 되지 못한다. 저출산·고령화 대책은 곧 고용 문제다. 하지만 비정규직 대책이 완전히 빠졌다. 이래서야 저출산·고령화 대책이 될 수 있겠는가.
대표적으로 육아휴직급여를 임금의 40% 정률제(100만원 상한)로 하겠다는 것은 월평균 250만원 이상 여성에게만 혜택이 되는 것이다. 보통의 가임기간 젊은 여성은 혜택을 받기 어렵다. 여성노동자의 70% 이상이 비정규직이다. 이들은 출산휴가조차 쓰기 어려운 게 현실이다. 그런데 어떻게 1년의 육아휴직을 쓸 수 있겠는가. 그림의 떡일 뿐이다.
게다가 고용보험에 가입돼야 육아휴직급여를 받을 수 있는데 180일 이상 고용보험에 가입해 있는 여성 비정규직이 얼마나 될까. 정부는 육아휴직급여가 늘어난 것처럼 선전하지만 불안정고용 대책이 없는 한 진정한 저출산·고령화 대책은 있을 수 없다.
현실에서는 많은 여성노동자들이 임신과 출산을 이유로 해고된다. 이른바 ‘모성해고’다. 이같이 임신·출산을 이유로 한 해고·전보 등 기업의 부당노동행위가 발생할 때는 정부가 강력하게 감독하고 처벌해야 한다. 또 남성들도 한두 달의 육아휴직을 쓸 수 있도록 보편적인 육아휴직 제도를 마련해야 한다.


"불안한 사회, 근본적으로 바꿔야"
이주희 이화여대 교수(사회학)


이번 정부 대책에는 저출산에 대한 진지한 고민이 없다. 아이를 낳고 키우기에 적합한 사회를 만들지 않는 한 백약이 무효다. 사실 저출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저출산·고령화 대책이 필요한 게 아니라 사회체계를 바꾸는 근본적인 정책들이 필요하다.
결혼하고 아이를 키우려면 집도 필요하고 안정된 직장도 있어야 한다. 그런데 우리 사회는 어떤가. 집값이 너무 비싸고 비정규직도 많고 정규직이어도 고용이 불안하다. 육아에 드는 시간과 비용을 국가가 얼마나 책임지고 있나. 공교육은 또 얼마나 부실한가.
출산이 부담스러운 것은 비단 여성뿐만 아니다. 남성도 기피하고 있다. 불안한 삶을 영위할 수밖에 없는 현재의 사회체계가 다 바뀌어야 한다. 기존 정책을 짜깁기해서 나열하는 방식으로는 저출산·고령화 문제를 결코 해결할 수 없다.
저작권자 © 매일노동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