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어가는 말

한국에서 주 40시간제가 도입되기 전만 하더라도 노동시간단축은 노동운동진영을 포함한 진보진영 전체의 지지를 받은 구호 중의 하나였다. 그러나 경제위기가 본격화된 2009년, 노동시간단축은 노동운동진영에서 제안됐지만 거의 주목을 받지 못했다. 일부 노동운동단체는 노동시간단축 요구 자체를 반대하기조차 했다. 이는 주 40시간제 도입에 대한 부정적 평가에서 출발한다. 주 40시간제 도입 후 소정근로시간은 부분적으로 단축됐지만 초과근로는 유지됐다. 그리고 고용창출 효과는 거의 발생하지 않았다. 정규직의 임금인상 효과가 있었지만 노동유연화가 도입됨으로써 노동운동 진전에 별다른 도움이 되지 않았다. 더욱이 자본은 경제위기를 빌미로 노동시간단축 조건으로 변형시간근로제나 임금 하락을 수용할 것을 요구할 것이 불을 보듯 뻔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노동시간단축 요구에 대해 다시 생각해봐야 한다는 것이다.
 
1980~90년대 유럽의 노동시간단축 과정에서도 노동유연화가 동반됨으로써 임시직이 상당 부분 증가됐다. 때문에 좌파는 경제 불평등이 강화됐고, 실업은 해소되지 않았다고 평가한다. 따라서 노동시간단축은 더 이상 노동운동의 대안으로 공감대가 형성되지는 않는 듯하다.

그러나 킴무디도 지적했듯이 노동시간단축은 자본의 고용 파괴 경향들에 대한 노동의 대항무기다. 이는 노동계가 노동 공급을 제한함을 통해 노동시장을 조절할 수 있는 한 방식이다. 또한 노동자의 삶과 노동조건을 향상시키는 수단이며 실업을 줄이고 분배를 확대하는 방안이다. 핵심적으로는 자본의 잉여노동시간을 단축하는 중요 방안이기도 하다. 특히 한국사회에서 장시간 노동은 노동자의 건강을 직접적으로 위협하며 저임금 구조를 유지시키는 한편 더 많은 임금을 향한 욕망에 노동자들을 종속시킴으로써 노동자 간 단결을 방해하고 노동자의 삶을 더욱 피폐하게 만든다. 마르크스가 노동으로부터의 해방에서 노동시간단축은 근본조건이라고 말한 바 있듯이 노동의 입장에서는 노동시간단축은 노동해방의 핵심적 요건인 것이다. 장시간 노동을 하면서 노동 안에서의 해방을 이룰 수 없고, 노동으로부터의 해방도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또한 노동유연화의 우려에도 불구하고 노동유연화 저지, 구조조정 저지, 선진화방안 저지 등 노동진영의 대부분의 요구들이 저지와 중단이라는 수세적·방어적 요구임에 비해 노동시간단축 요구는 전체 노동자 계급의 이해를 담보할 수 있는 공세적인 이슈다. 이는 과학기술혁명의 발전에 의한 생산성 향상, 높은 실업률,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국가 중 유일하게 연 2천시간이 넘는 장시간 노동국가라는 오명 등으로 인해 한국에서 노동시간단축의 근거는 누구도 부정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물론 노동시간단축이 노동유연화를 위한 자본의 공격이라는 평가가 있지만 이조차도 노동자계급 전체의 이해를 담지한 노동시간단축이 되기 위한 비판을 의미할 것이다.

노동시간단축이 일자리 방어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노동해방을 향한 노동운동의 대안으로 자리 잡으려면, 누군가 언급했듯이 일종의 ‘고구마 뿌리’식 강령이 돼야 한다. 노동시간단축 입법화와 시간단축 분만큼의 일자리 확충을 위한 국가의 노동시장 개입 및 통제, 다시 이러한 국가의 행위에 대한 아래로부터의 민주적 통제, 재원확보, 실질임금의 방어와 새로운 일자리의 질에 대한 노동 측의 규정, 성별 간 모순 해결, 여가시간의 정치적·문화적 전유 등이 보완돼야 하기에 노동시간단축은 결코 간단치 않은 문제인 것이다.

앞의 김원태의 글이 현대 자본주의에서의 노동시간단축의 한계에 대해 주목하고 총체적 노동시간단축으로서의 기본소득이 노동시간단축과 결합돼 대안적 노동시간정치로 기능할 수 있음을 보이고자 했다면, 이 글은 앞의 주장에 동의하면서 기본소득이 도입되기 이전시기라도 노동시간단축은 지속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는 입장에 서 있다. 따라서 노동시간단축의 한계를 어떻게 극복해야 하는 지에 주목하면서, 먼저 자본주의 발전 과정에서 노동시간단축이 어떻게 이루어져 왔는 지를 살펴본다. 그리고 한국에서 주 40시간 단축 과정을 연간노동시간 제한하지 않은 측면을 중심으로 평가하고, 신자유주의 시대를 맞이해 노동시간단축의 효과를 무력화시켜 버리는 노동유연화와 임금 문제 등에 대해 살펴보려 한다. 그리고 대폭적인 노동시간단축과 기본소득의 결합을 통해 현존 노동운동 진영의 대안인 완전고용과 복지확대 요구를 넘어서 그 지평을 넓혀보려 한다.
 
노동시간단축의 역사

세계사적으로 노동시간단축의 역사를 보면, 크게 기술의 발전이나 경제위기에 따른 실업 해소의 목적과 다른 하나는 경제성장에 따른 분배의 관점에서 여가 확대의 측면이 강조되는 경향을 알 수 있다. 노동시간단축의 역사는 생산성의 향상과 이에 대한 분배를 둘러싸고 항상 자본과 노동자의 힘겨루기1) 속에서 양쪽의 이해 관철을 위한 숨 가쁜 공방, 나아가 계급전쟁의 과정을 거치는 게 일반적이었다. 선진자본주의 국가의 노동시간단축의 역사를 살펴보자.

『자본』에서는 노동시간이 12시간까지 연장하는데 수세기가 걸렸지만, 18세기 마지막 3분의 1기 대공업의 탄생과 더불어 노동일은 급속히 연장되기 시작해 아동과 미성년자조차 온 낮, 온 밤을 시키는 대로 일하지 않을 수 없었다고 한다. 자본주의 산업화 초기에는 장시간노동을 시키는 것이 곧바로 생산량과 이윤을 증가시키는 것이었기에 가능한 만큼 오래 시간 노동을 시키되, 더욱 낮은 임금을 위해 여성과 아동도 공장으로 동원됐다. 1837년 선진자본주의 국가의 주당 노동시간은 69~90시간으로 하루 노동시간이 12~15시간이나 됐다. 당시 주간 노동시간이 영국은 69시간, 미국은 78시간, 프랑스는 72~84시간, 프러시아는 72~90시간, 스위스는 78~84시간, 오스트리아는 72~80시간이었다.

노동시간단축 운동사는 크게 네 단계로 나눠 볼 수 있다.2) 제 1단계(1790~1850년)는 일일 기준 노동시간 제정을 위한 정치운동 단계라고 할 수 있다. 1817년 섬유공장주였던 오웬은 착취 억제뿐만 아니라 노동과 일상의 조화, 그리고 생산성 향상을 위해 8시간 노동을 도입했다. 이를 확대하기 위해 섬유노동자 노동조합을 만들고자 시도하기도 했다. 그리고 1830년대 영국 노동자들의 정치권리 획득을 위해 진행된 차티스트 운동 과정에서 8시간 노동은 많은 지지자들을 확보하게 됐다. 이 운동의 확산의 저변에는 제1차 산업혁명으로 인해 영국에서 위협적으로 확대되고 있던 실업을 저지하고 일상적인 가족생활을 영위하고자 하는 요구가 내재했다. 1833년 영국에서 마침내 공장법이 제정됐고, 이 공장법에는 미성년자의 노동시간을 15시간 이내로 규제했다.

1848년의 새로운 공장법에는 섬유산업에서 아동과 여성 노동자의 노동시간을 10시간으로 제한했다. 그리고 1850년의 공장법에서 주 60시간제가 성립했다. 이는 1840년대 이후 증기기관의 보편화와 함께 산업자본이 발전하면서 근대적 노동규율 확립에 대한 필요성이 산업자본가들 사이에 강하게 대두됐고, 보수주의자들은 ‘성 월요일’에 대해 도덕적으로 공격하면서 이를 근절시키려는 요구가 자리했다. 이러한 자본의 요구와 토요일 반(半)휴일제라는 노동자의 요구가 맞물려 주 60시간제가 제정됐다. 이는 노동자계급의 승리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측면도 대개는 실노동시간이 증가하고, 이전 시기부터 계승돼 온 노동과 여가의 자연스런 리듬을 잃어버리게 됐다는 점에서는 노동자의 승리라는 말이 무색해질 수 있다. 그러나 상층노동자라고 할 수 있는 숙련공의 이해는 축소된 반면 그 외의 노동자의 이해가 관철된 측면으로 이해할 수도 있다. 곧 ‘성 월요일’로 지칭된 여가 문화의 소멸은 선술집이나 투계 등 전근대적 여흥문화의 일소를 주장했던 도덕적 보수주의자들과 근대적 노동규율의 확립을 필요로 한 산업자본가들의 승리를 의미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3)

제2단계(1850~1920년)는 8시간 노동제 확립을 위한 국제적 연대운동이 벌어졌던 단계다. ‘8시간 일하고, 8시간 자고, 8시간 쉬자’는 운동이 일어난 시기다. 1856년 호주의 석공 등이 ‘8시간 연맹’을 결성하여 8시간 노동제를 제창한 것을 시작으로 1860년대 유럽과 미국을 중심으로 제1인터내셔널이 8시간 쟁취운동을 확산시키면서 이 운동은 국제적인 성격을 띠었다. 1886년 5월1일 미국의 노동자들이 8시간 노동제를 요구하며 대규모 파업을 벌였고, 4명의 노동자들이 처형되는 희생이 있었다. 투쟁의 과정에서 다수 기업에서 8시간 노동제를 수용했고, 그 후 메이데이 행사에서 8시간 노동제는 주요 요구로 자리 잡았다. 그리고 1917년 러시아혁명 후 러시아에서 8시간 노동제가 확립되면서 1919년 설립된 국제노동기구(ILO)는 제 1원칙으로 8시간 노동제를 천명하게 됐다. 8시간 노동제 요구는 많은 대중의 호응을 받았다. 이는 기술의 발전으로 인한 실업에 대한 공포와 노동 강도 완화에 대한 요구 때문이다.

3단계(1920~1960년)는 주 40시간, 주 5일 노동의 확립 단계로 일일 노동시간 단축운동에서 주당 노동시간단축과 유급휴가 제도화 등으로 범위가 확대되기 시작했다. 20세기 들어 2차 산업혁명(석유 및 전기)과 포드주의의 확산으로, 유럽에서 주 40시간제에 대한 요구가 좀 더 전면화됐고, 프랑스 인민전선정부 집권시기인 1936년, 주 40시간 노동과 연 14일간의 유급휴가가 법제화됐다. 미국에서는 대공황 시기 대규모 실업을 막기 위해 주 40시간 노동제가 활용됐다. 종전 후 1945년 10월 세계노련(WFTU) 결성을 계기로 주 40시간제는 국제적인 기준으로 정착되기 시작했고, 1962년 ILO가 주 40시간 노동을 권고로 채택했다. 독일은 2차 대전의 폐허를 경험한지 13년 만인 1967년 주 5일제 근무를 도입했다. 1950년대 후 선진자본주의 국가들은 자본주의의 급속한 성장과 거의 완전고용에 가까운 조건으로 인해 실업의 위협보다는 생산성을 분배하고 실제적인 여가시간 확대를 위해, 노동시간 단축을 진행했다. 당시 독일 노조의 ‘토요일에 아빠는 우리 것’이라는 구호는 여가에 대한 노동자의 정서를 잘 보여준다. 이 시기의 노동시간단축도 국가의 적극적인 복지정책 등을 통해 노동자들에게 일정한 개량을 약속함으로써 노동운동과 타협을 모색한 케인스주의적 자본의 전략의 일환이었다. 완전고용과 실질임금 상승에 대한 노동자의 요구와 자본주의의 번영과 안정을 수용하는 대가로 노동운동진영과 사민주의와의 타협으로써 이루어진 것이다.

제4단계(1970년대 말~현재)는 주 30시간대의 노동제와 연차 휴가의 확대 단계이다. 1980년대 이후의 노동시간단축은 노동의 입장에서는 급속한 자동화·정보화로 인한 생산력 향상과 노동자의 방출에 따라 실업률이 두 자릿수에 달했고, 이의 해소가 가장 큰 목적이었다. 반면 자본의 입장에서는 노동시간 유연화 도입이 가장 큰 목적이었다고 할 수 있다. 이 과정에서 프랑스는 주 35시간, 독일 금속노조가 주 35시간, 네덜란드에서 주 4일 36시간 노동제가 도입됐다. 이 외의 국가들도 법정노동시간은 대체로 주 40시간이지만 단체협약에서 대부분 주 40시간 미만을 규정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주목해야 할 것은 주 30시간대로의 법정노동시간 단축이 연간노동시간을 1천700시간대로 단축하려는 노력과 이를 위한 제도 정비4)와 병행됐다는 것이다. 그러나 ‘노동시간의 어떠한 변화도 노동조건에 대한 영향이나 여성의 고용기회에 대한 효과를 고려해야 한다’는 노동진영의 입장에도 불구하고, 노동 유연화가 자본의 요구대로 관철됨으로써, 용역노동·파트타임·단기계약·임시노동이 증가했고, 노동시간도 유연하게 운영됐다. 한편 노동시간은 단축됐지만 경제불평등은 심화됐고, 실업은 해소되지 않거나 증가하기조차 했다. 이러한 문제들을 극복하고자 노동관계들을 다시 규제하려는 노력도 함께 이뤄졌지만, 신자유주의의 흐름을 제어할 만큼 그 효력을 발휘하지 못했다. 신자유주의 시대라는 조건 속에서 노동시간단축 논의는 노동운동 진영에서 수많은 논쟁을 불러일으키게 됐고, 더 이상 노동운동의 대안이 아닌 처지가 돼 버린 것이다.

이상에서 살펴본 것처럼 노동시간단축을 향한 과정은 노자 간의 계급전쟁의 결과로, 노동시간단축이라는 노동자의 이해가 관철되는 이면에는, 노동자의 이해가 자본에게 침식당하는 또 다른 과정이 복합적으로 이뤄져 왔던 것이다. 하지만 노동시간단축은 신자유주의 이전시기까지는 여전히 노동운동의 대안적이고 핵심적인 요구의 하나였다. 노동시간단축 과정 그 자체가 노동운동의 역사라고까지 말하기도 한다. 그렇다면 그 이전 시기와는 달리 신자유주의 시대의 노동시간단축이 노동운동의 대안이 아니게 된 이유는 무엇인가. 앞의 글에서 김원태는 노동시간단축이 △자본주의의 핵심법칙인 가치법칙을 비판하지 못한 점 △성·인종·민족을 매개로 한 노동의 분할을 간파하지 못한 점 △신자유주의 상황을 고려하지 못함으로써 저임금 노동자의 상황을 악화시킨 점 △자본에 의한 노동시간의 유연화를 거부하고 노동자가 자기 결정하는 노동시간의 유연화를 실현할 수단의 결핍으로 노동시간정치를 왜소화할 수 있다는 점 등 7가지를 구체적으로 지적하고 있다. 노동시간단축이 전체 노동자계급의 이해를 포괄하지 못할 뿐만 아니라, 오히려 경제적으로나 사회적으로 배제되는 노동자를 창출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노동시간단축 주장은 철회돼야 하는가. 노동시간단축 없이 높은 실업률은 해소될 수 있으며, 노동시간단축 없이 노동해방이 가능한 것일까. 누군가의 말대로 노자 간 모순의 총체적 극복 없이 이뤄지는 노동시간단축 운동은 현실을 망각하고 외면하는 관념주의적 발상에 지나지 않는 것일까.

아래에서는 노동시간단축은 노동자의 이해를 실현시키는 과정이고, 진정으로 해방된 사회가 만들어지기 이전까지 계속적으로 단축돼야 한다는 입장에서, 한국에서의 주 40시간제 도입에 대한 간단한 평가를 통해, 장시간 노동을 제어하지 못한 한계에 주목한다. 이와 함께 신자유주의시대 노동시간단축의 긍정적 효과를 상실하게 만드는 대표적인 쟁점이라고 할 수 있는 노동시간 유연화와 임금문제에 대해 대폭적인 노동시간단축과 기본소득을 연계해 살펴보고자 한다.

한국의 주 40시간제 평가와 노동시간단축을 둘러싼 쟁점들

한국의 주 40시간제 도입 평가 - 연간노동시간 제한을 중심으로

 
한국은 1953년 근로기준법에서 ‘근로시간은 휴게시간을 제하고 1일 8시간, 1주 48시간을 기준으로 한다’고 정한 이후, 36년 만인 1989년 ‘1일 8시간, 1주일 44시간을 초과할 수 없다’고 개정함으로써 비로소 주 44시간제가 성립했다.

이후 민주노총이 건설된 다음 해인 1996년부터 민주노총 임금·단체협약 갱신투쟁에서 주 40시간 단축요구가 제기됐다. 그해 31개 사업장에서 기준노동시간이 일부 단축되기도 했다. 당시 한국노총도 1997년까지 임금저하 없이 주 42시간으로 단축하되 2000년까지 주 40시간 노동으로 단축할 것을 단체협약 사항으로 제기했다. 1996년 자본의 공세로 시작된 노동법 개정을 둘러싼 공방 속에서 자본 측은 노동유연화를 강력히 추진했고, 총파업이란 진통을 거치며 정리해고와 근로자파견제·변형근로시간제가 통과됐다. 국제통화기금(IMF) 구제금융 이후 2000년 5월 노사정위원회는 ‘근로시간 단축관련 기본합의문’을 채택했는데 △주 40시간, 연간 2천시간 이내로 단축 △휴일 휴가 합리적 조정 및 실제 사용하는 휴일 휴가의 합리적 조정, 휴가일수 확대 △업종별 규모별 단계별 시행이 그 내용이다. 이후 노동시간 교섭과정에서 근기법을 개악하려는 자본의 공세 속에서 노동진영의 요구는 실질임금 삭감과 노동조건 후퇴 없는 노동시간단축, 중소·영세·비정규 노동자 희생 없는 노동시간단축, 마지막에는 근로기준법 개악 없는 시간단축으로 변경됐다.

결국 2003년 8월 통과된 주 40시간 노동제 입법화 과정에서 임금 보전은 명시했지만 주 12시간 연장근로를 허용했다. 무엇보다 연간노동시간에 제한을 두지 않게 됨으로써 연 2천시간 내로의 제한이라는 초기목표는 사라지고 장시간 노동의 길은 계속 열려 있게 됐다. 이로써 장시간 노동을 제어할 수 있을 정도의 실질적인 노동시간단축 효과와 이에 수반되는 고용창출 효과는 기대하기 힘들게 됐다. 노동운동 진영 내에서 주 40시간제를 둘러싼 평가가 논쟁적으로 진행되지는 않았지만, 다양한 관점의 평가들이 있다. 4시간만큼의 소정근로시간단축 효과는 대체로 인정하지만, 임금인상 효과와 고용창출 효과에 대한 평가5)가 다르고, 휴가휴일의 축소 문제와 변형근로제 개악을 포함한 주40시간제 전반에 대한 긍정적 평가는 거의 없어 보인다. 그러나 주 40시간제가 이미 통과된 정리해고·근로자파견법 등 노동유연화 법제화에 대한 노동 측에 대한 보상으로서 논의된 측면이 있고, 이 과정에서 휴일휴가의 축소, 변형근로제의 개악이 있었지만, 노동시간단축으로 인해 노동유연화가 법제화됐다고 평가할 수는 없어 보인다. 즉 노동유연화 법제화 이후 노동시간 단축논의가 의제에 오른 것이라는 점이다. 그리고 임금 보전을 명문화한 성과도 분명히 있다. 그러나 연 2천시간으로의 단축이 노사정위 기본 합의조항이었지만, 이를 관철할 구체조항을 확보하지 못함으로써 주 40시간제가 법제화 되었음에도 장시간 노동 제어와 기 실질적 고용창출 효과를 기대하기 힘들게 됐다.

참고로 주 40시간제 도입이 단위 현장에서는 어떻게 왜곡되고 있는지를 살펴보자. 현대자동차의 정규직들은 연간근로일수가 235일 내외이며 주 40시간제 하에서 연간 표준노동시간은 1천880시간이다. 그러나 표준노동시간을 2천시간 미만으로 잡더라도 법 준수율은 16.6%에 불과하다. 법이 연장근로시간의 한도를 주 12시간으로 정하고 있음에 비추어 볼 때, 매주 12시간 연장근로를 한다 해도 최대 노동시간은 연 2천500시간 수준이어야 한다. 2003년 연간 3천시간 이상을 근무한 노동자도 16.1%나 되며 3천200시간 이상도 8.4%나 된다. 현대차는 단체협약에서 장시간 노동을 제어하고자 2005년부터 연간 3천시간을 상한선으로 정해 놓았다. 그러나 2006년의 경우 전체의 4.8%, 엔진·변속기 공장의 13.4%, 소재공장의 15.8%가 3천시간 이상을 일하고 있어 노사가 합동으로 법과 단체협약을 위반하고 있는 것이다. 이는 현대차에서 98년 정리해고 도입 이후 고용·노동조건·연대 등 모든 노동조합의 주요 과제들이 ‘고용안정’으로 대체됐고, 이는 역으로 고용불안정을 촉발하면서 장시간 노동이 곧 고용안정이라는 정서가 현장을 지배하게 된 점과 신규채용 비용을 절감하려는 기업의 이해가 맞아떨어진 데서 연유하는 것으로 보인다.6)

주 40시간 법제화 과정에서 원래의 목표였던 연간 2천시간으로 노동시간을 단축하지 않은 점, 단위현장에서의 단체협약은 연간노동시간의 상한선을 법보다 높은 3천시간으로 정하고 있는 점, 상한선인 3천시간을 위반하는 노동자들도 상당수 있지만 노조나 정부 등에서 어떠한 제재도 없다는 점은 우리가 처한 노동운동의 현실을 잘 보여주고 있다.

이미 1982년 유럽노련 헤이그 대회에서는 유럽 노동시장의 발전과 실업증가라는 조건 속에서 잔업의 단축 또는 완전한 폐지를 요구한 바 있다. 유럽에서 기준노동시간 단축운동을 할 때 연 1천700시간으로의 제한을 함께 추진한다든지, 일본에서 법정노동시간을 단축하는 과정에서 연간 노동시간을 2천100시간에서 1천800시간으로의 제한을 목적의식적으로 진행한 것과 한국의 노동시간단축 과정은 사뭇 다른 양상이라고 할 수 있다.7) 한국의 노동자들이 연장근로에 연연해하는 것은 물론 저임금에 기인하고 있다. 하지만 한국 노동자의 의식과 문화에 비롯한다는 세간의 평가와는 달리 유럽은 이미 노동조합을 포함해 사회 전체적으로 연간노동시간을 제한하려는 규정 정비 등을 포함한 의식적 노력을 계속해 왔음을 상기해야 할 것이다. 물론 서구에서 무상의료와 무상교육을 포함해 사회복지가 상대적으로 잘 정비된 점도 노동자들의 장시간 노동을 제어하는 좋은 조건일 것이다.

연간노동시간 제한 없이 법정노동시간만을 단축하는 노동시간 단축투쟁의 한계는 명백하다. 따라서 주 40시간제 도입을 둘러싸고 연장근로 제한 혹은 연간노동시간이 왜 제한되지 않았는지, 그것이 뜻하는 바가 무엇인지에 대한 냉정한 평가가 필요하다.
 
노동시간단축과 임금 문제 - 기본소득을 통한 해결

노동자들에게 노동시간 단축을 둘러싼 최대 관심은 임금문제일 것이다. 임금삭감 없는 노동시간단축은 노동자들의 요구가 잘 담겨져 있는 구호다. 이미 살펴보았듯이 1980~90년대 유럽의 주 30시간대로의 단축이나 우리나라의 주 44시간, 40시간으로의 법정노동시간 단축 시 임금삭감은 거의 없었다. 1994년 독일의 폭스바겐 모델에서는 28.8시간 적용에 한해 임금삭감에 합의한 적이 있다.

노동시간단축을 둘러싼 자본과 노동자의 정치에서, 노동시간단축이 노동자의 이해를 반영한다면, 노동의 유연화와 임금삭감은 자본의 이해를 반영한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노동시간단축 시 임금보전에 대해 노동측이 강경한 편이라면, 자본은 노동유연화 관철을 우선시하되 임금에 대해 오히려 관대한 편이다. 40시간 법제화 과정이나 현대차의 주간연속 2교대제를 둘러싼 협상 과정에서 이를 확인할 수 있다.

앞에서도 언급했듯이 한국의 경우 주 40시간 법제화 과정에서 노동진영은 임금삭감 없는 노동시간단축에 주력하면서 주 12시간 연장근로를 허용하고 연간노동시간을 제한하지 않았다. 이로써 초기의 목표였던 연간 1인당 노동시간 2천시간 제한은 어느 순간 사라졌고, 한국은 OECD국가 중 2천시간 이상 노동을 하는 유일국가 자리를 지키게 된다. 연간노동시간 제한을 위한 장치를 마련하지 못한 것은 결국 노동운동의 힘의 약화에서 비롯한 것이겠지만, 임금보전이란 노동자들의 이해에 부합한 노동운동 지도부와 노동유연화 관철을 위한 자본의 이해가 맞물려 타협한 결과일 수 있을 것이다. 노동시간단축 과정에서 임금보전은 분명히 성과이다. 그러나 노동시간단축과 임금의 관계는 면밀한 진단이 필요하다. 왜냐하면 임금삭감 없는 노동시간 단축 후에는 명목상의 임금을 감축하지 않더라도 협상임금 인상을 자제하는 경향이 생기게 돼 임금삭감 효과가 나타나거나, 노동유연화의 확대 적용으로 시간외 노동에 대한 할증부분이 줄어드는 등 실질소득 감소효과도 더해지기 때문이다.8) 즉 보전된 임금은 여러 조건에 의해 그 효과가 지속될 가능성이 그리 크지 않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따라서 노동시간단축과 임금, 노동시간 유연화 등이 의제에 오를 때, 노동자들은 당장의 이해에 급급할 것이 아니라, 장기적인 안목에서 복잡한 계산과 고민이 필요한 것이다. 임금은 노동자의 생활과 직접적으로 연계됨으로 민감할 수밖에 없는 사안이긴 하지만 노동유연화, 실질적 노동시간단축 등 다른 조건들에 비하면 노동자의 즉자적 이해일 수 있는 것이다.

한편 연간노동시간을 제한하지 않음으로써 지속되는 장시간 노동과 저임금의 공존관계에도 주목해야 한다. 장시간 노동은 저임금을 존속시키게 되고 저임금은 다시 장시간 노동을 유발하는 악순환을 거듭하게 된다. 장시간 근로와 저임금은 필연적으로 동반관계인 것이다. 잘 알려져 있다시피 우리나라는 OECD국가 중 노동자 1인당 연간 노동시간이 2천시간이 넘는 유일국가로 2007년 기준 2천357시간이었다. 주 40시간 노동제가 제대로 실시되면 연간 노동시간은 1천800시간대면 충분하기 때문에 약 500시간은 연장근로시간을 의미한다고 하겠다. 따라서 한국의 장시간 노동체제를 중단하기 위해 무엇보다 연장근로 제한이 필요하고, 연장근로에 의존한 임금체계를 극복하기 위해서도 장시간 노동은 사라져야 한다.
 
[각주]--------------------
1) 『자본』에서는 노동시간을 둘러싸고 자본가와 노동자 쌍방 모두는 동등하게 상품교환의 법칙에 의해 보증되고 있는 권리를 주장하고 있는 것이기 때문에 “자본주의적 생산의 역사에서 노동일의 표준화는 노동일의 한계를 둘러싼 투쟁, 다시 말하면 총자본(즉 자본가계급)과 총노동(즉 노동자계급) 사이의 투쟁으로서 나타나는 것이다”, “노동의 시간과 한계와 중단을… 규제하는 이 세밀한 규정들은 결코 의회가 고안해 낸 것이 아니었다. 그것들은 근대적 생산양식의 자연법칙으로서 주어진 환경으로부터 점차적으로 발전해 온 것이다. 국가에 의한 그러한 규정들의 정식화·공식화 인정·선포는 장기간의 계급투쟁의 결과였다.”고 쓰고 있다(『자본론』, 김수행 역, 제1권(상)).
2) 인수범, 1996.7, 『노동사회』에서 도움을 받았다.
3) 정병기, 2001. 『노동시간단축과 여가』 참조. ‘성 월요일(St. Monday)’ 관행은 한 주일의 노동이 끝나는 토요일 오후부터 일요일까지 음주하며 투계 등 ‘전근대적’ 놀이로 지내다가 월요일은 쉬고 화요일도 적당한 분량의 일만 하며, 수·목·금요일에 그 주의 목표량 달성을 위해 집중적으로 일하는 습관을 일컫는 것이다. 19세기 동안 보편화되어 있었던 ‘성 월요일’ 관행은 당시의 놀이문화뿐만 아니라 직업 및 산업구조와도 관계있는 것으로, 소규모 작업장들이 밀집되어 있던 영국의 버밍엄이나 셰필드 등에서 이른바 비교적 높은 급료를 받던 숙련공들의 여가문화였다.
4) 노동부, 2007, 『실근로시간 단축 저해요인 분석 및 향후 개선과제 마련을 위한 연구』 참조.
5) 노동부, 2007, 『실근로시간 단축 저해요인 분석 및 향후 개선과제 마련을 위한 연구』 한국노동조합총연맹, 한지원, 2009, 『사회운동』 87호, 등 참조. 물론 반대의 평가도 있다. 2004~2007년 법정근로시간 단축으로 총근로시간은 6.1%, 정상근로시간은 6.4%, 초과근로시간은 6.0%, 월 근로일수는 8.6% 감소했으며 근로시간을 10% 단축할 때 단기적으로는 고용증가 폭이 미미하지만 장기적으로 취업자는 8.5%, 노동자는 13.1% 고용이 증가했다는 긍정적 연구결과도 있다(김유선, 「법정근로시간 단축이 실근로시간, 고용, 실질임금에 미친 영향」, 『산업노동연구』 제14권 2호).
6) 박태주, 「현대자동차의 장시간 노동체제와 ‘주간연속 2교대제’에 대한 시사점」, 『동향과전망』 76호.vv
7) 프랑스는 연장근로를 1년 220시간으로 총량한도를 규정하되 그 일부를 보상휴식에 의해 보상받도록 규제함으로써 연장근로에 의한 실근로연장 효과를 없애는 장치를 마련하고 있다.
8) 김성희, 『노동시간단축의 쟁점과 과제』,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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