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적 근로계약관계란 원고용주와 체결된 근로계약이 형식적이고 명목적인 것에 지나지 않아 아무런 의미를 갖지 못하고, 그 대신 제3자와의 관계가 실질적 근로계약관계를 맺고 있는 경우와 마찬가지일 정도로 사용종속관계가 존재하는 것을 의미한다.
근로계약 관계가 인정되면 형식적 근로계약 관계의 당사자가 아닌, 실질적인 근로관계로 볼 수 있는 당사자 사이에 근로계약이 성립됐다고 봄으로써, 그에 기초한 근로관계의 권리ㆍ의무가 발생한다고 보는 것이 2008년 SK-인사이트 코리아 사건(대법 2008.7.10 선고 2005다 75088 판결) 이후 확립된 판례의 묵시적 근로계약에 관한 법리이다.
또 판례는 기간제 및 단시간 근로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기간제법) 제정 이전 상황에 대한 기간제 근로자의 보호 법리로서, 기간의 정함이 형식에 불과한 경우로 볼 수 있는 경우와, 그 기간이 형식에 불과하지 않더라도 계약 갱신에 대한 기대권이 인정되는 경우에는 갱신 거절에 합리적 이유를 요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1. 사건의 개요

한국고속철도(KTX)는 KTX사업의 승객서비스 업무에 대해 자회사인 주식회사 한국철도유통(철도유통)과 업무 위탁계약을 체결하고, 철도유통은 2004년 4월1일 기간제근로자로 KTX 여승무원들을 채용했다.
이후 2006년 5월15일자로 KTX측은 승객서비스 업무를 KTX관광레저(KTX 계열사)로 업무 이관을 하게 되면서 본 사건의 원고측인 KTX여승무원들에 대해 2006년 5월9일께 KTX관광레저로의 이적을 요구했다.
그러나 KTX 여승무원들은 KTX가 자신들의 실질적 사용자로서 직접 고용관계가 있음을 주장하면서 KTX관광레저로 이적하지 않았고, 이에 KTX 여승무원들과 계약상의 고용관계를 맺고 있는 철도유통은 2006년 5월15일자로 KTX 여승무원들을 해고했다. 법원의 판결은 KTX관광레저로의 이적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한 해고에 대해 무효라고 판시했다.

2. 판결의 시사점

이번 사건의 첫 번째 쟁점은 고객서비스 업무 위탁계약에 의해 고용된 수탁업체의 여승무원들과 위탁업체인 KTX와의 묵시적 근로계약이 성립된 것으로 볼 수 있는가이다.
이번 1심 판결은 묵시적 근로계약관계의 성립에 관한 기존 대법원의 법리를 그대로 원용해 판단하고 있다.
즉, 묵시적 근로계약 관계가 성립됐다고 보기 위해 근로자에 대한 원고용주(철도유통, 수탁업체)가 사업주로서의 독자성이 없거나 독립성이 결여돼 제3자의 노무대행기관과 동일시 할 수 있는 등 그 존재가 형식적․명목적인 것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또 사실상 당해 피고용인(원고측인 여승무원들)은 제3자(KTX, 위탁업체)와 종속적인 관계에 있으며, 실질적으로 임금을 지급하는 자도 제3자이고, 근로제공의 상대방도 제3자이어서 당해 피고용인과 제3자 간에 묵시적 근로계약관계가 성립돼 있다고 평가될 수 있다는 기준을 들었다.
이번 판결은 ‘위장도급’의 형식으로 사실상 아무런 법적 제한 없이 근로자를 사용해 온 대기업들의 변칙적 고용에 대한 일종의 제한 고리로 작용한다는 점에서 그 의의가 크다. 기존 제조업에서의 위장도급의 문제가 서비스업 분야로 확대돼가는 추세에서 이번 판결은 상당한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측면에서 최근 현대자동차 하청업체의 불법파견에 대한 대법원 판결과 함께 이 판결 역시, 대기업의 변칙적 고용에 대한 경종을 울렸다고 볼 수 있다는 점에서 향후 고용노동관계의 큰 변화를 예고하고 있다.

이번 판결의 또 하나의 쟁점은 묵시적 근로계약이 성립됐음을 전제로, 기간의 정함이 있는 근로계약을 체결한 여승무원들에 대해 그 기간의 갱신거절을 해고로 볼 수 있는가에 있다.
본 대상 판결은 ‘기간의 정함이 있는 근로계약이 사실상 형식에 불과하다고 판단되는 경우, 사실상 기간의 정함이 없는 근로관계로 간주 된다’는 법리와 ‘기간의 정함이 형식에 불과한 것으로 볼 수 없더라도 그 계약의 기간을 갱신기간으로 보아, 갱신의 기대권이 인정되는 경우에는 그러한 갱신의 거절에도 해고제한의 법리(근로기준법 제23조 제1항)를 유추 적용된다’는 기간제근로자에 대한 보호 법리를 검토하고 있다.

이 사건에서 무기계약관계로의 간주를 주장한 KTX 여승무원들에 대해서는 계약기간 1년으로 그 기간 만료시 근로관계가 종료된다는 점이 근로계약서상에 명시돼 있는 점, 원고들 중 일부는 계약 갱신이 1회에 불과하거나 갱신한 바 없는 점 등에 비추어 무기계약근로로의 간주를 인정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동안 여승무원들의 의사에 반하는 계약갱신 거부 사례가 없었던 점, 승객서비스 업무가 전문적 소양이 요구되는 ‘상시적ㆍ계속적 고객 대면 업무’라는 점에서는 계약 갱신의 기대권이 여승무원들에게 인정되며 이러한 기대권을 져버리는 갱신 거절에는 해고 제한의 법리가 유추 적용되므로 완화된 기준이기는 하지만 사회통념상 합리적 이유가 있어야 한다고 판단했다. 또 합리적 이유가 없음을 이유로 이 사건 KTX측의 갱신거절은 사실상 해고로 무효라고 판시했다.

계약기간이 정해진 근로계약 관계라도 계약기간의 종료에 따른 계약갱신의 기대라는 근로관계의 전후 사정을 종합적으로 살펴, 일방적인 기간 만료의 통지나 갱신 거절에 대한 해고제한의 법리를 유추 적용함으로써, 근로자에 대한 보호 법리를 펴고 있는 이번 판결은 아직 대법원의 판례 법리로서 인정되지 않고 있지만, 기존 하급심 판결(서울행판 2004.4.8, 2003구합 32275)에서도 나타나고 있는 법리로 기간제 근로자에 대한 보호규율로서 작용하고 있다는 것은 바람직하다고 평가할 수 있겠다.

현재 기간제법 제4조에서 기간의 제한을 엄격히 해 근로기간이 2년을 초과한 경우 기간의 정함이 없는 근로자로 간주한다는 규정을 명문화함으로써, 향후 이러한 분쟁의 소지가 줄어들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아직도 많은 사건들이 본 사건과 같이 기간제법 제정 이전의 상황에서 발생했고, 법리적 분쟁이 사회적 문제가 되고 있다는 점에서 이번 판결은 향후 전개될 동일한 분쟁에 대한 선례적 판결로서 의의를 갖는다.

3. 마치며

‘위장도급’이라는 변칙적 고용을 이용해 왔던 그 간의 고용관행은 무수히 많은 근로자들의 고용여건을 악화시켜 왔음은 부인할 수 없다. 최근 기업들 스스로가 주창하고 있는 기업의 사회적 책임(CSR)과도 모순되는 이와 같은 관행은 기업들 스스로가 반성하고 고쳐나가야 할 부분이다.
또 근로계약기간의 종료로 바로 고용관계가 아무런 제한 없이 종료하게 됨으로 나타나는 고용불안 역시 사회적 문제로 인식하여 노ㆍ사ㆍ민ㆍ정의 진지한 논의가 계속돼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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