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히 ‘디스크’로 불리는 추간판탈출증은 직업성 요통 가운데 업무상재해 인정을 둘러싼 논쟁이 많은 질병 중 하나다. 공단이 요통을 퇴행성질환으로 보기 때문이다. ‘퇴행성’이라는 기준을 두고도 이견이 존재한다. 한쪽에서는 퇴행성의 의미를 “나이가 들어서 생기는 노화현상의 일환”으로 보는 반면, 다른 한쪽에서는 “직업에 따른 생활양식이나 외부의 충격에 의해 추간판수핵에 퇴행성 변화를 초래하게 돼 작은 충격에도 추간판이 파열돼 돌출되는 증상”이라고 주장한다.
서울행정법원은 지난 2006년 3월 한 고속버스 운전기사에게 발생한 추간판탈출증을 업무상재해로 인정했다.

고속버스 운전하다 발병

90년 한 고속버스 회사에 입사한 오아무개씨는 13년간 고속버스 운전기사로 일했다. 오씨는 이 기간 동안 창녕군에서 마산시까지 고속버스를 운전했다. 하루 평균 편도 8.2회(총 427.5킬로미터)를 운행했다. 1일 평균 7시간4분을 운행하고, 한 번에 50분에서 1시간20분을 운행한 뒤 평균 1시간 정도 휴식을 취했다.

오씨는 사고 발생 열흘 전이었던 2003년 9월3일 요통·양측 둔부통으로 병원에서 진단을 받았다. 검사 결과 제4-5번 요추 간에 중증도 이상의 추간판탈출증이 관찰됐고, 제3-4-5번 요추 간에 협착증이 관찰된다는 진단이 나왔다.

그리고 열흘 후 오씨는 창녕발 마산행 차량을 운행하고 중부내륙고속도로를 운행하던 중 교량이 이어지는 지점의 요철로 인해 차량이 지면에서 떨어져 공중으로 올라갔다가 내려오는 사고를 당했다. 오씨는 운전선 의자에서 20센티미터 정도 튀어 올랐다가 다시 떨어졌다. 격심한 통증을 느낀 오씨는 도저히 차량을 운행할 수 없다는 판단이 서자, 고속도로 갓길에 차량을 정차하고 승객 중 운전이 가능한 승객을 찾았다.

하지만 버스를 운전할 수 있는 승객이 없었다. 오씨는 회사에 전화를 해 재해사실을 알리고 대기기사를 보내 달라고 요청했다. 회사측은 그러나 대기기사가 없다는 등의 이유로 이에 응하지 않았다. 결국 오씨는 통증을 참으며 서행으로 20분에 걸쳐 간신히 버스를 운전해 마산시내 입구까지 차량을 운행할 수밖에 없었다.

공단 업무와 인과관계 인정 안해

마산시내 입구에서 다른 기사에게 차량을 인계한 오씨는 인근 병원을 찾아가 자기공명영상(MRI)을 촬영하고 물리치료를 받았다. 그리고 제4-5번 요추 추간판탈출증과 척추관협착증 진단을 받았다.

오씨는 2003년 10월 근로복지공단에 요양을 신청했지만 공단은 이듬해 3월 “기왕증으로서 업무와 상당인과관계가 없다”며 요양불승인 처분을 했다. 이에 오씨는 “운전업무를 수행하다 도로의 요철로 인해 요추부에 충격을 받고 그로 인해 질병이 발병했거나, 경미하게 진행되던 요추부의 질병이 사고 충격으로 자연적 경과 이상으로 급격히 악화돼 질병이 발병했으므로 업무상재해”라며 행정소송을 제기했다.

법원 “사고로 자연경과 이상 질병 악화”

법원은 원고인 오씨의 손을 들어줬다. 법원은 “60세에 가까운 원고의 나이에 따라 요추간판과 요추강에 퇴행성 변화가 계속되다 이번 사고로 인해 자연적 경과 이상으로 악화돼 요추간판탈출증과 요추강협착증이 발현됐다고 봐야 한다”며 “이 사건상병은 업무상재해에 해당하므로 요양승인신청을 반려한 피고(근로복지공단)의 처분은 위법하다”고 판결했다.

법원은 오씨가 운행한 도로의 상태나 차량운전석의 기능과 상병 발생경로 등에 비춰 이 사고로 말미암아 질병이 발생했다고 볼 수는 없다고 판단했다. 그러나 오씨가 재해 당시까지 13년이 넘도록 고속버스 운전사로 일하면서 하루 400킬로미터 이상 장시간 운전을 하고, 잦은 요철구간을 지나면서 지속적으로 요추부에 충격을 받던 중 이 사고로 허리에 결정적인 충격을 받고 운전을 할 수 없는 상태에 이르렀다고 판단했다.


[관련판례]

서울행정법원 2006년3월22일 선고 2006구합76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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