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용노동부가 제조업 사내하도급 실태점검을 시작했다. 노동부는 이달 6일부터 다음달 10일까지 자동차·전자·조선·철강·IT 등 5개 업종 29개 공장을 선정해 점검에 들어갔다. 주요 점검대상은 사내하도급의 불법파견 여부와 불법파견시 고용의제 적용 노동자 규모 등이다. 노동부는 11월 말까지 위법사항에 대한 시정조치를 마무리할 예정이다.

노동부의 사내하도급 실태점검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노동부는 2004년부터 2006년까지 3년간 8개 업종 1천930개 업체에 대해 실태점검을 진행했다. 여기에는 451개 원청회사와 1천479개 하청회사가 포함됐다. 이 가운데 원청회사와 하청업체 113곳(5.9%)이 불법파견 혐의로 적발됐다. 특히 노동부는 현대자동차와 사내하청업체 대표 등 128명을 불법파견 혐의로 울산지방검찰청에 고발했다. 하지만 검찰은 2006년 12월 ‘협의없음’이라며 불기소처분을 내렸다. 당시 검찰은 “현대자동차(주) 및 사내협력업체의 노동자 간의 노무관리상 사용종속성을 인정할 근거가 없다”며 이같이 결정했다. 노동부가 숱한 현장조사와 진정인·참고인 조사를 통해 내린 결론을 검찰은 하루아침에 뒤집어 버렸다. 검찰이 현대차와 사내하청업체에게 면죄부를 준 셈이다.

검찰의 어이없는 결정이 있은 뒤 4년 가까이 흘렀다. 최근 대법원은 검찰의 결정에 ‘철퇴’를 내렸다. 현대차와 사내하청업체는 파견법을 위반했으며, 현대차와 사내하청 노동자 간의 사용종속성이 있다고 본 것이다. 모든 것을 백지화시켰던 검찰의 결정 이전으로 돌아간 것이다. 노동부가 실태조사에 다시 나선 배경이다.

그런데 노동부의 실태조사에 대해 노동계는 벌써부터 우려하고 있다. 우선, 실태점검 대상에 관한 것이다. 3년 동안 2천여곳을 조사했던 참여정부 시절과 비교하면 이번 특별점검 대상은 10분의 1도 안 된다. 고작 5개 업종 29곳이다. 종전에는 전수조사에 가까웠다면 이번에는 표본조사로 국한됐다. 점검대상에 선정된 곳에 대한 잡음도 끊이지 않는다. GM대우차의 경우 이번 점검대상에 부평공장만 포함됐고, 군산과 창원공장은 제외됐다. 노동계에선 불법파견 판정을 받은 전력이 있는 군산과 창원공장이 제외된 데 대해 의혹을 제기하고 있다. 기아차의 경우 소하리공장이 점검대상에 포함됐는데, 상대적으로 사내하청이 많은 화성공장은 제외됐다. 지난해 정규직을 정리해고한 후 그 자리를 사내하청으로 채운 쌍용자동차도 빠졌다. 사내하청 비율이 높은 동희오토·현대모비스·STX중공업·현대중공업 군산공장도 마찬가지다.

7월22일 대법원 판결이 나온 후 40여일 이상 지났기에 ‘조사대상 기업들이 사전대응을 했을 것’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조사대상에 포함된 대공장들이 불법파견 시비를 없애기 위해 ‘진성도급’ 공정으로 위장해 조사에 응할 수 있다는 의혹이다. 실제 대법원 판결이 나자마자 사내하청비율이 높은 일부 조선·철강업체에서 정규직과 비정규직 혼재공정을 서둘러 시정했다는 얘기도 흘러나왔다.

때문에 노동계는 이번 실태점검에 실효성이 없을 것이라며 조사 주체인 노동부를 불신하고 있다. 민주노총 금속노조는 노동부 조사에 협조하지 말라는 공문을 산하 노조에 내려보냈다. 노동부에 따르면 해당업체로부터 기초자료를 받은 뒤 그것을 토대로 조사내용을 정한 다음 현장조사를 하는 방식으로 실태점검이 이뤄진다. 노조가 현장조사 단계에서 협조하지 않거나 조사자체를 봉쇄할 수 있다는 얘기다. 이렇게 되면 노동부의 사내하도급 실태점검은 파행이 빚어질 수 있다.

노동부의 실태점검은 대법원의 판결에서 비롯된 만큼 시작과 끝이 수미일관해야 한다. 부실조사를 방지하기 위해 작업현장을 잘 아는 노조 또는 노조 추천 전문가를 조사에 참여시키는 방안을 고려해 봐야 한다. 노동부는 인력이 부족해 전수조사가 어렵다고 하지만 이는 사내하도급 남용을 근본적으로 개선하지 않겠다는 말과 다를 게 없다. 사내하도급은 고용관계의 중첩성으로 인해 그 실태 파악이 쉽지 않다. 노동부 인력이 부족해 전수조사가 일시에 불가능하다면 단계적으로 실시하는 계획을 세우면 될 일이다. 단순히 일부 대기업의 사내하청의 규모를 파악하는 수준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 그래야만 외환위기 후 만연한 대기업들의 사내하도급 남용을 개선할 수 있다. 그게 바로 노동부가 해야 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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