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경업금지약정1) 판결을 살펴보게 된 배경

‘고용유연화’가 기업의 경쟁전략인 양 그 필요성이 강조되면서 한 때 당연했던 ‘종신고용’은 노동조합 투쟁의 산물로만 남아있는 듯하다. 기업이 경영사정에 따라 근로자들의 수급을 유연하게 조절하기를 원하는 한편, 근로자들도 회사에 고용보장을 기대하기보다 개인적 목표(금전적 보상, 경력개발 등)를 위해 잦은 이직을 하기도 한다. 이직률이 높아지면서 사용자는 근로자들이 재직 중 얻게 된 회사의 기술·고객·거래처 등의 정보를 이용해 다른 경쟁업체에 취업하거나, 회사를 설립함으로써 손해가 발생하는 것을 막기 위해 경업금지약정을 체결하고 있다.

근로자들은 ‘경업금지약정’이 생존권을 심각하게 위협할 수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불구하고 사용자가 제시하는 약정서를 거부할 수 없어 서명을 한다. 이렇게 체결된 약정서를 위반해 경쟁업체에 취업하거나 경쟁회사를 설립하게 되면 회사는 근로자를 상대로 전직금지가처분 신청을 제기하거나 손해배상청구를 하게 된다.

법원은 경업금지약정 자체에 대해서는 효력을 인정하고 있으나, 보호할 가치가 있는 사용자의 이익, 근로자의 퇴직 전 지위, 경업 제한의 기간·지역 및 대상 직종, 근로자에 대한 대가의 제공 유무, 근로자의 퇴직 경위, 공공의 이익 및 기타 사정 등을 고려하여 직업선택의 자유나 근로의 권리를 비합리적으로 제한하다면 경업금지약정을 무효로 판단하고 있다.

경업금지의무를 제한하는 구체적인 법규정은 없고, 경업금지를 둘러싼 기업의 이익과 근로자의 직업선택의 자유는 첨예하게 충돌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최근 내려진 대법원 판결을 통해 경업금지약정의 효력요건이 무엇인지 구체적으로 살펴볼 필요가 있다.

□ 사건개요 및 쟁점

P씨(피고)는 손톱깎이 등 금속품 제조업체인 B회사(원고)에서 무역부장으로 재직하던 중 “피고가 원고를 퇴직 후 2년 이내에는 원고와 경쟁관계에 있는 회사에 취업하거나 직·간접 영향을 미쳐서는 안된다”는 내용의 약정(이하 이 사건 경업금지약정)을 체결하였다. 위 약정을 체결한지 1년5개월 후 피고는 퇴사해 중개무역회사를 설립, 운영했다. 피고는 원고가 미국의 배셋사에 납품한 바 있는 손톱깎이 세트, 손톱미용 세트 등과 일부 유사한 제품을 중국에 하청을 주어 제작해 배셋사에 납품했다(이 사건 사업행위). 이에 원고는 피고를 상대로 ① 영업비밀 침해 ② 경업금지 약정의무 위반 ③ 업무상 배임 등에 따른 손해배상금액 10억원을 청구하는 소송을 제기하게 됐는데, 원고는 1·2·3심 모두 패소했다.

위 사건에서 피고에게 손해배상 책임이 있는지 여부를 판단하는 요인으로는 이 사건 사업행위가 부정경쟁방지 및 영업비밀 보호에 관한 법률(부정경쟁방지법)에서 보호하는 영업비밀을 침해했는지 여부, 이 사건 경업금지약정이 민법 제103조의 공서양속 위반에 해당하는지 여부, 형법 제356조 제2항의 업무상 배임죄가 성립되는지 여부 등이 쟁점이 되었는데, 대법원의 각 쟁점에 대한 판단은 다음과 같다.

□ 부정경쟁방지법상의 영업비밀을 침해했는지 여부

영업비밀에 해당하는 정보가 되기 위해서는 ① 동종업계에 널리 알려져 있지 않을 것 ② 독립된 경제적 가치를 가질 것 ③ 상당한 노력에 의하여 비밀로 유지될 것이 요구된다.

그러나 이 사건에서 원고가 납품하였던 배셋사의 바이어 명단, 납품가격, 아웃소싱 구매가격, 물류비, 가격산정에 관한 제반자료, 원고의 중국하청업자에 대한 자료(이하 이 사건 정보)는 위 요건을 충족하는 영업비밀에 해당하지 않는다.

□ 경업금지약정이 유효한지 여부

(1) 경업금지약정의 유효성 판단기준
사용자와 근로자 사이에 경업금지약정이 존재한다고 하더라도, 그와 같은 약정이 헌법상 보장된 근로자의 직업선택의 자유와 근로권 등을 과도하게 제한하거나 자유로운 경쟁을 지나치게 제한하는 경우에는 민법 제103조에 정한 선량한 풍속 기타 사회질서에 반하는 법률행위로서 무효라고 보아야 한다.

민법 103조에 해당해 무효인지 여부를 판단할 때에는 구체적으로 ① 보호할 가치가 있는 사용자의 이익, ② 근로자의 퇴직 전 지위, ③ 경업 제한의 기간·지역 및 대상 직종, ④ 근로자에 대한 대가의 제공 유무, ⑤ 근로자의 퇴직 경위, ⑥ 공공의 이익 및 기타 사정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야 한다.

여기에서 말하는 ‘보호할 가치 있는 사용자의 이익’이란 부정경쟁방지법 제2조 제2호에 정한 ‘영업비밀’ 뿐만 아니라 그 정도에 이르지 아니하였더라도 당해 사용자만이 가지고 있는 지식 또는 정보로서 근로자와 이를 제3자에게 누설하지 않기로 약정한 것이거나 고객관계나 영업상의 신용의 유지도 이에 해당한다.

(3) 이 사건 경업금지약정이 유효한지 여부
(가) 보호할 가치가 있는 사용자의 이익 존재여부
① 이 사건 정보 - 이미 동종업계 전반에 어느 정도 알려져 있었고, 알려지지 않은 정보가 있다고 하더라도 입수하는데 많은 비용과 노력이 필요치 않으므로 보호할 가치있는 사용자 이익 아님.
② 거래처와의 신뢰관계 - 원고가 거래관계 있었더라도 다른 업체의 진입을 막고 독점할 권리 없으며, 거래처와의 신뢰관계는 업무수행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습득되는 측면이 강하므로 보호할 가치 있는 사용자 이익 아님.
(나) 2년간 경업이 금지되는 데 대한 특별대가가 없었음
(다) 원고에서 장기간 무역업무를 담당하였던 피고로써는 원고에서 습득한 지식과 경험을 사용하지 않고는 이직이 어려워 생계에 위협을 받을 수 있음
(라) 피고가 원고의 거래업체와 거래를 할 수 있게 된 것은 거래업체 바이어들과의 신뢰관계보다는 가격경쟁력을 갖추었기 때문임
(마) 피고가 원고와 동종사업을 하기 위해 원고를 그만두었고, 퇴직일에 임박하여 미리 사업준비를 했더라도 배신성이 크다고 보기 어려움

위 (가)~(마)를 종합하면 이 사건 경업금지약정은 피고의 직업선택의 자유와 근로권 등을 과도하게 제한하거나 자유로운 경쟁을 지나치게 제한하는 경우에 해당돼 민법 제103조에 정한 법률행위로서 무효다.

□ 업무상 배임죄에 해당하는지 여부

① 이 사건 경업금지약정의 효력이 인정되지 않는 이상 피고에게 원고에서 재직 중 얻은 정보나 거래처와의 신뢰관계 등을 이용하지 않을 임무가 있다고 보기 어려운 점, ② 피고가 배셋사에 납품한 제품에 대해 원고가 독점적인 권리를 갖고 있다고 보기 어려운 점, ③ 피고가 배셋사 관계자와 접촉하였다고 하더라도 이는 퇴사가 임박한 시기였던 점 등에 비추어 피고의 영업행위가 업무상 배임에 해당하여 불법행위를 구성한다고 보기 어렵다.

□ 마치며

살펴본 바와 같이 대법원은 경업금지약정이 유효하기 위한 요건을 매우 엄격하게 해석하고 있다. 따라서 무분별한 경업금지약정을 체결하기 보다는 기업이 적극적으로 보호하고자하는 정보를 선별하여 그 정보에 대해서는 특별히 관리·감독하고, 그 정보에 접근하는 근로자들에 한해서 경업금지약정을 체결하고 그에 대한 특별 대가를 주는 것이 바람직해 보인다.

[각주]
1) 경업이란 근로자가 근로관계 존속 중에 또는 근로관계가 종료된 이후에 취업한 회사와 경쟁적인 관계에 있는 업종이나 이와 유사한 업종의 다른 회사로 이직을 하거나 또는 스스로 회사를 설립하는 등의 방법으로 종전회사에서 재직 중 취득한 지식·기술·기능·거래관계 등을 이용하여 경쟁적인 성격을 갖는 직업활동에 종사하는 것을 의미하고, 경업금지약정이란 근로자가 위와 같은 사용자와 경쟁관계에 있는 기업에 취업을 하거나 사업을 하지 않기로 하는 근로자와 사용자간의 약속을 의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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