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아자동차 노사의 ‘대타협’을 기점으로 2010년 7월의 쟁점 투쟁에서 이제 전선이 없어지는 것 같다. 현장은 이면합의로 몸살을 앓고 있다. 이면합의라는 속성이 갖는 불신의 늪에 빠져 버린 것이다. 이면합의는 기본적으로 약자에게 매우 불리할 수밖에 없는 방식이다.
 
특히 자신들이 ‘국민’의 ‘공복’이라는 균형 감각을 완전히 잃고 노조를 향해 칼을 빼들고 있는 고용노동부와 소통하고 있는 자본의 입장에서는 더 강자의 위치에 설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결과적으로 그 피해자는 노조(조합원)이고 노조 활동가들이다. 10년의 논쟁 끝에 도입된 제도였기 때문에 노동진영에서 충분한 준비를 하지 못했던 책임도 없다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이 제도는 그 자체로 문제가 너무 많다. 타임오프 시간을 상한으로 규정하고 있는 점, 노사 간에 합의를 통해 결정할 수 있는 내용임에도 불구하고 법으로 처벌 조치(또는 단협 효력 상실)할 수 있는 점, 해당 법이 아니라 다른 법에서 다루고 있는 사용자와의 협의·교섭, 고충처리(근로자참여및협력증진에관한법률)의 활동, 산업안전활동(산업안전보건법)과 같은 영역까지를 포괄해 타임오프 범주 내로 포함시키고 있다는 점 등 많은 문제가 있다.

지난 6월 초 발표된 노동부의 '근로시간면제 한도 적용 매뉴얼'은 한 술 더 뜬다. 노동부는 매뉴얼에서 “사용자와의 교섭·협의, 고충처리, 산업안전 활동 등 노조법 또는 다른 법률에서 정하는 업무와 건전한 노사관계 발전을 위한 노조의 유지·관리 업무는 근로시간면제자가 반드시 우선적으로 수행해야 함”이라고 명시하고 있다. 노동부는 아마도 노조를 자신의 하부조직으로 생각하고 있는 모양이다. 의사결정을 하면 집행하는 단위쯤으로 보고 있는 것 같다.

노동조합은 자유로운 결사체다. 탈법한 조직도 아니다. 헌법이 보장하고 있는 권리를 누릴 자유가 있다. 그런데도 노동부는 한낱 매뉴얼로 그 지고한 권한을 유린하려 하고 있다. 확실히 뭔가 크게 잘못되고 있는 것이다. 국가권력의 변화가 이렇게도 세상을 퇴행시킬 수 있다는 것이 참으로 놀라울 뿐이다.

이대로 방치해서는 안 된다. 경제력이 세계 10위이면 뭐하나. 그 경제력이 국민을 소득에서 양분하고 권리에서 양분하고 있는데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세상 어디에도 내놓을 수 없는 이 참담한 법을 깨뜨려야 한다. 올해 투쟁이 여기서 끝나서는 안 된다. 충실히 다음 투쟁을 준비하자. 그리고 반드시 짚고 가야 할 영역이 있다. 바로 안전보건의 문제다. 산업안전보건법은 노조법과 아무런 관련이 없다. 오히려 특별법 성격으로 더 상위의 법으로 해석할 수 있다. 산업안전보건법은 노동자의 생명을 논하는 규제이기 때문에 그 어떤 존재가치보다 우선돼야 한다고 본다. 따라서 노조가 있건 없건 임금노동자가 있는 곳에는 산업안전보건법 적용을 기본으로 하고 있다.

고약하고 창피하게 강제된 법을 더 상위법이, 더 포괄적인 적용대상의 법이 쫒아가야 하는 상황을 좌시해서는 안 된다. 상식이 통하지 않는 역진(逆進) 세상을 정상적인 궤도에 올리기 위해 제대로 된 활동을 벌여야 한다. 그간 노동조합 상근 간부에게 대부분 위임했던 산업안전보건법상의 참여 권리를 이제 적극적으로 우리 것으로 가져와야 한다. 사업장 규모와 무관하게 주어진 산업안전보건위원회위원 구성을 극대화하고 활동력을 강화해야 한다. 사업장 명예산업안전감독관도 그간 노조 노동안전보건 담당자가 겸임하는 형태를 취해 왔지만 이제는 적극 나누고 함께 활동해 가야 할 것이다. 초기업 명예산업안전감독관 양성도 시급하다.
 
원청사업장 노동조합은 하청사업장 노조와 적극적인 연대를 통해 작업장 순회·감독에 나서야 한다. 더 나아가 해외처럼 20인 이상 사업장에 산업안전보건위원회를 설치할 수 있게 하고, 5인 이상 사업장에 노사협의회를 설치할 수 있게 해 명예산업안전감독관수를 기업규모에 따라 비율화하는 방법을 과제로 삼아야 한다. 마음이 헛헛하다. 자꾸만 세상이 양분되는 것 같아서다. 이를 좁혀 가야 할 노동자집단에서조차도 양분화가 심화하고 있다. 통계가 그렇고, 올해 교섭결과가 그렇다. 생명의 문제에서는 더 이상 그러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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