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문제는 노동자였다. 그 어떤 것도 문제는 노동자였다. 세계를 인식한 것도 세계를 변화시켜야 한다는 것도 문제는 노동자였다. 세상의 모든 말과 글도 문제는 노동자였다. 어떠한 소설과 시도 노동자의 것이어야 했다. 노동자의 문학이어야 했다. 어떠한 그림과 조각도 노동자의 미술이어야 했다. 어떠한 노래도 노동자의 음악이어야 했다. 그래서 노동자가 아닌 것은 우리가 아니었다. 노동자 없이는 세계를 인식할 수도, 세계가 변화할 수도 없었다. 노동자가 아닌 세상의 말과 글은 존재할 수 없었다. 노동자의 관점이 아닌 소설과 시는 문학이 아니었다. 노동을 위한 그림이 아니라면, 노동자의 삶과 운동을 노래하는 것이 아니라면 우리의 그림과 노래가 아니었다. 그렇게 세상을 보았다. 철학이다, 과학이다, 미학이다 하는 것을 노동자의 것으로 보고 살아왔다. 운동을 시작하면서 세계는 그런 것이었다. 삶은 그런 것이었다. 나는 그렇게 살아왔다. 우리는 그렇게 살아왔다. 학교에서, 그리고 노동단체와 시민단체에서, 공장과 직장에서 살아왔다. 그렇게 1980년대와 90년대, 그리고 2000년대를 살아왔다. 소련 등 사회주의체제가 붕괴됐어도 우리에게 노동자 세상은 반드시 와야 할 세상이었다. 노동자 세상은 반드시 올 필연이라고 누구보다도 크게 외쳐 대던 그들조차도 모두 떠났어도 우리에게 노동자 세상은 들고 있어야 할 깃발이었다.

2. 우리는 자본과 권력에 맞서 왔다. 노동자의 세상을 위해 언제나 맞서 왔다. 노동자를 착취하고 억압하는 자본과 권력은 노동자 세상을 위해 맞서야 할 대상이었다. 그래서 언제나 이 세상의 모든 악은 그들이었고, 우리는 그들을 이기기 위해 학습하고 투쟁했다. 우리가 조직하고 가입한 노조 등 노동단체는 그들을 이기기 위해 조직됐고 활동했다. 강령과 규약은 이를 위한 조직의 강령이고 규범이었다. 이 세상 모든 것은 노동자를 착취하고 억압하는 자본과 권력이 자행하는 것이었다. 우리는 언제나 정세분석을 통해 그들의 의도와 행동을 파악하고 그에 따른 투쟁방향을 정해야 했다. 그렇게 조직하고 활동해 왔다.
그러나 그런 것이 아니었다. 우리가 맞서야 할 대상은 그들만이 아니었다. 노동자를 착취하고 억압하는 그들만이 우리가 맞서야 할 대상이 아니었다. 자본과 권력만이 노동자 세상을 위해 우리가 극복해야 할 대상이 아니었다. 노동조합이든, 노동단체든 그것이 무엇이건 노동자가 주인되는 세상, 노동자 세상을 여는데 극복해야 할 대상이라면 우리가 맞서야 할 대상이다. 노동자의 세상을 열기 위해 조직된 우리의 노동자조직도 노동자 세상을 위해서라면 우리가 맞서야 할 대상일 수 있다. 결국 우리는 자본과 권력만이 아니라 우리와 맞서야 했다. 그러나 우리는 우리와 맞서는 데 서투르다. 우리는 우리와 맞서는 데 주저해 왔다. 우리는 우리와 맞서는 것이 자본과 권력에 맞서는 것보다도 무섭고 두렵다. 우리는 우리와 맞서는 것을 제대로 학습하지 못했다. 우리가 맞서야 할 우리가 무엇인지조차 알지 못한다. 그러나 우리의 낡은 것을 극복해야 한다.

3. 노동조합 등 노동자의 조직이라면 노동자의 민주주의가 철저히 관철돼야 한다. 노동자조직이 선출된 대표에 의해서 결정되고 집행된다면 그것은 그 대표의 조직이다. 그 대표가 노동자의 의사에 따라 결정하고 집행한다면 그 조직은 구성원인 노동자의 의사에 따라 대표가 지배하는 조직이다. 어떤 조직이 그 구성원에 의해서 결정되고 집행될 때야 그 구성원이 지배하는 조직이다. 구성원의 민주주의가 관철되는 조직이다. 그렇지 않고 선출된 대표에 의해 그 임기기간 동안 그 대표에 의해 그 조직의 의사가 결정되고 집행된다면 그 조직은 대표가 지배하는 조직일 뿐이다. 대의원·중앙위원·위원장 등 임원 등을 선출하고 이들 대표에 의해 노동조합이 의결하고 집행한다면 그것은 대표의 지배, 즉 대의주의일 뿐이다. 이 대의주의가 구성원인 조합원들의 의사에 따른 대표들의 의결과 집행에 의한 것이라면 조합원들의 참여를 배제한 문제가 있다고 해도 적어도 조합원의 의사에 따른 대표들의 행위로 정당화될 수도 있다. 그러나 이렇게 정당화되려면 해당 안건에 대해 대표들이 그 조합원들의 의사를 확인하고 그에 따라 의결하고 집행했어야 한다. 우리는 그렇지 못했다. 우리의 노동자조직은 그렇게 하지 않아 왔다. 그렇게 할 제도를 세우지 못했다. 그래도 민주주의라고 외쳐 왔다. 조합원들이 선출한 대표들이 의결하고 집행했으므로 우리는 민주주의라고 주장해 왔다. 지금 필자는 이른바 대의민주주의를 비판하고 직접민주주의를 도입해야 한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다. 어차피 대표를 선출한다면 대의민주주의일 수밖에 없다. 대의민주주의는 대표의 임기기간 동안은 대표가 의결하고 집행한다. 구성원, 즉 조합원의 의사에 따르지 않고 대표가 하면 된다. 그렇게 할 것인가. 노동자조직이 그렇게 운영되도록 할 것인가. 적어도 대표가 의결하고 집행하는 과정에서 조합원들의 의사에 따르도록 해야 한다. 실제로 노동조합이 제대로 활동하는 순간에는 조합원들의 의사에 따라 결정하고 집행해 왔다. 파업 등 투쟁과 단체협약 체결 등에 있어 조합원들의 의사를 묻고 그에 따라 결정하고 집행해 왔다. 노동조합이 가장 중요한 사안이 발생했을 때는 조합원들을 결집시키고 투쟁에 조직해야 하기 때문에 그렇게 해 왔다. 조직이 위태로운 절박한 순간일수록 조합원들 모두가 참여해 논의하고 결정하고 노조대표는 그에 따라 행동해 왔다. 그래서 단협 체결시 총회인준권 조항이나마 몇몇 노조의 규약에 포함돼 있는 것이다. 이렇게 노동자의 민주주의는 실제로 위기의 순간에 중요한 순간에 작동해 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노동자조직은, 노동조합은 노동자의 민주주의를 배제했다. 대표가 지배하는 대의제를 당연한 것으로 수용했다. 헌법 등에서 국가조직원리가 그러하므로 회사·사단 등 법인 등 이 세상의 모든 단체들의 조직원리가 그러하므로 노동조합 등 노동자조직도 당연하게 규약에서 대의제를 취했다. 그렇게 노동자의 민주주의를 배제했다. 노동자를 배제했다. 그래서 우리는 민주주의를 말하지만 민주주의를 모른다. 그래서 이 나라에서 노동자는 민주주의를 말하지만 민주주의를 모른다. 노동조합의 민주주의를 말하지만 노동자의 민주주의를 모른다.

4. 어디 민주주의만인가. 우리의 노동자조직에서 낡은 것을 극복하기 위해 고민해야 할 것이 민주주의만이겠는가. 우리는 말할 줄을 모른다. 노동조합 등 노동자조직에서 우리는 말할 줄 모른다. 노동자조직에서 활동하고 있는 자는 그 조직의 작동원리와 작동방식에 관해 끊임없이 말해야 한다. 비판해야 한다. 그 조직이 노동자의 세상을 열고 노동자를 위해 활동할 것이므로 문제가 있는 부분을 끊임없이 지적해서 낡은 것을 극복하고 언제나 새롭게 서도록 해야 한다. 노조의 무슨 장·국장·부장 등의 직책을 갖고 있는 자가 지시되는 바를 그저 묵묵히 성실히 수행한다고 해서 낡은 것이 극복될 수 없다. 노동조합이 정체돼 있다면 이것은 그 노동조합을 움직이고 있는 자, 즉 노조간부들이 정체돼 있기 때문이다. 자본과 권력의 탄압 때문에 노동조합이 침체돼 있다고 말한다면 당신은 잘못 말하고 있는 것일 수 있다. 탄압이 아니라 노조간부, 당신의 침체 때문일 수 있다. 그 직책이 무엇이든지 노동조합 등 노동자조직에서 해당 직책의 수행업무에 대해 말해야 한다. 무엇이 문제이고 극복해야 하는지 끊임없이 비판해야 한다. 노조의 법률사업담당자는 노동조합의 법률 문제에 관해 그 사업의 수행 과정에서 발생하는 문제에 관해 노동조합의 결정과 집행에 관해 비판해야 한다. 비판을 할 것이 없다고 말한다면 당신은 당신의 조직에 무관심하다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지금 노동자조직은 대표의 지배 아래에 있다. 노동조합은 대의원·위원장 등 대표의 의결과 집행에 의해 운영되고 있다. 지금 이 나라에서 대표적인 노동자조직인 노동조합은 조합원에 의해 의결과 집행이 이뤄지는 조직이 아니다. 따라서 이 노동조합 조직에서 대의원·위원장 등 임원 그리고 그가 임명한 간부를 제외한다면 누구도 조직의 운영과 활동에 관여하지 못한다. 따라서 이들을 제외한다면 노조의 운영과 활동을 제대로 파악해서 비판할 수 없다. 노동조합 임원회의에서 결정된 사항이기 때문에 지시받은 사항을 그저 묵묵히 수행하는 것이 노조간부인 당신이 하는 일의 전부라면, 조직의 운영과 활동에 관해 아무런 말도 하지 않는다면 당신이 당신의 노동조합을 망치고 있는 것이다. 당신의 침묵으로, 당신의 그저 성실한 업무수행으로 망치고 있는 것이다. 대의제에서는 노조간부인 당신의 침묵은 노조를 망치는 것이다. 이런 당신은 노동자 세상을 가져올 수 없다. 필자는 노동자 세상이 무엇인지 모른다. 어떻게 노동자 세상이 올지도 모른다. 다만 노동자의 세상은 오늘 우리의 노동자조직에서 낡은 것을 극복하고 새롭게 해야만 올 수 있다고 믿는다. 착취와 억압에 맞서 자본과 권력을 상대로 투쟁하는 노동자조직은 투쟁을 위해 조직돼야 하지만 노동자 세상을 위해서도 조직돼야 한다. 노동자 세상은 오늘 노동자 조직 속에서 자라고 있어야 한다. 노동자 세상은 우리의 말과 행동으로 오늘 노동자조직에서 자라고 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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