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노동위원회 심판결과는 말 그대로 운이에요. 공익위원 중 누구를 만나느냐에 따라 판정이 달라지거든요.”
 
노동위원회는 노동분쟁을 전문적으로 처리하는 합의제 행정기관이다. 분쟁은 온갖 시비를 낳기 마련이다. 노동위를 둘러싼 공정성·중립성·전문성 시비 역시 어제오늘의 일은 아니다. 그런 가운데 고용노동부가 노동위원회법 개정안을 이달 5일 입법예고했다. 주요 내용이 ‘노사정 3자 합의제 기구’라는 노동위의 정체성을 뒤흔드는 것이어서 파장을 일으키고 있다.
 

내년 7월 복수노조 시행에 앞서 노동위원회법 개정은 이미 예견된 일이었다. 복수노조가 허용되면 교섭대표 결정과 같은 새로운 분쟁을 해결하는 것도 노동위원회의 몫이기 때문이다. 노동부는 노동위원회법 개정안에 교섭대표결정위원회 신설 등 복수노조 시행에 대비한 기능을 추가하는 내용을 포함시켰다.

그런데 노동부가 ‘수요자 중심의 공정한 노사분쟁 해결서비스를 제공한다’는 명분으로 몇 가지 조항을 손대면서 논란이 가중되고 있다. 노동계에서는 “노동위원회 독립성을 심각하게 훼손하는 내용”이라며 “차라리 이번 기회에 노동위원회를 폐지하고, 노동법원 설립을 추진하자”는 목소리까지 나오고 있다.

개정안에 따르면 크게 두 가지 변화가 눈에 띈다. 중노위 재심절차 임의화와 공익위원 위촉방식 변경이 그것이다. 개정안이 통과될 경우 지방노동위원회 판정 이후 중노위를 거치지 않아도 행정소송을 할 수 있다. 지방노동위에서 중앙노동위·행정법원·고등법원을 거쳐 대법원에 이르는 5심제를 사실상 4심제로 변경한 것이다.

정부는 2004년과 2006년에도 이 같은 방안을 추진한 적이 있다. 노동법원 설립논쟁이  불거질 때마다 등장하는 단골메뉴다. 이번에도 국회에 노동법원법 제정안이 제출된 상황에서 노동부가 노동위원회법 개정안을 들고 나왔다.<상자기사 참조>

 노사는 중노위 재심절차 임의화에 대해 유보적인 입장을 보이고 있다. 한국노총과 민주노총·한국경총은 노동위원회법 개정안에 대한 의견서를 노동부에 제출했는데, 3개 조직 모두 4심제 전환 문제에 대해서는 찬반 입장을 밝히지 않았다. 민주노총은 “심급제도 변경은 단순히 노동위원회 절차를 개선하는 차원의 문제가 아니라 노동분쟁 해결제도 전반에 대한 재설계 차원에서 고민하고 논의해야 할 사안”이라며 “현재 국회에 계류 중인 노동법원 설립법안과 함께 검토해야 한다”고 밝혔다.

노동위원장이 공익위원 선정하면 공정하다?
 
문제는 공익위원 위촉절차다. 노동계와 경영계는 공익위원에 대한 노사 추천권을 없앤 것에 대해 반발하고 있다. 노사 의견만을 듣고 노동위원장이 공익위원을 선정할 경우 사실상 노사의견이 배제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민주노총은 2007년 노동위원회법 개정 이전의 노사 추천방식으로 환원할 것을 주장하고 있다. 노동위원장과 노사가 추천한 자 중 노동자위원과 사용자위원의 투표로 공익위원을 선출하는 방식이다. 한국노총과 경총도 개정안에 반대하지만 교차배제 방식의 현행유지를 요구한다는 점에서 민주노총과 차이를 보이고 있다. 특히 경총은 추천권이 사라지더라도 최소한  순차배제권은 보장돼야 한다는 입장이다.

이에 대해 노동부는 “교차배제 방식은 노사가 담합해 공익위원의 중립성과 전문성을 크게 떨어뜨리는 부작용을 낳았다”며 “반드시 개정해야 한다”고 반박했다. 노사가 상대방의 추천 인사 중 기피하는 인사를 배제하다 보면 노동 관련 전문가들이 탈락하고 비전문가가 공익위원이 되는 경우가 발생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노동부 주장대로 노사의 추천·배제 방식을 없애고 노동위원장이 공익위원을 선정한다고 해서 전문성이나 중립성이 높아지는 것은 아니라는 반론도 만만치 않다. 김철희 공인노무사(법률사무소 참터)는 “노사 자율로 분쟁을 해결하는 것이 원칙이기 때문에 어느 나라를 가더라도 노동위원회에 대한 정부 개입은 최소화한다”며 “정부 노동위원회법 개정안 정도의 내용이라면 아예 노동위원회를 폐지하고, 노동법원을 설립하는 게 낫다”고 말했다.

실제로 노동위 판정의 신뢰도는 상당히 낮은 편이다.<표 참조> 노동위를 비롯해 공정거래위원회·조세심판원 같은 행정심판기관 가운데 노동위의 소송제기율이 가장 높다. 노동위의 결정에 불복해 행정소송을 제기하는 비율은 연간 35~40%에 달한다. 법원에서 노동위 결정이 번복되는 경우도 20~30% 수준에 이른다.
 

노동부의 노동위원회법 개정안이 정부 개입 여지를 키워 ‘노사정 3자 합의제 기구’라는 노동위의 정체성을 뿌리째 흔들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예컨대 중앙노동위원장은 장관급임에도 노동부장관의 추천을 거쳐 대통령에 의해 임명된다. 노동부장관이 추천한 노동위원장이 공익위원 선정에 전권을 행사할 경우 그만큼 정부 개입 가능성이 커지는 것이다. 더구나 최근 임명된 정종수 중노위원장은 13년 만에 등장한 노동부 관료 출신 노동위원장이다. 노동위원회법 개정안을 놓고 이런저런 뒷말이 나오는 이유다.
 
법 개정 서두르는 이유 따로 있나
 
노동부는 노사 의견을 수렴해 오는 10월 중순께 국회에 노동위원회법 개정안을 제출할 예정이다. 노사 모두 반발하고 있어 법안 처리 과정이 순조롭지만은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 게다가 현행 공익위원 위촉절차는 2006년 경제사회발전노사정위원회에서 3자 합의를 바탕으로 개정된 사항이다. 그럼에도 노동부는 ‘노사분쟁해결서비스 개선TF’ 논의만 두 차례 한 뒤 노동위원회법 개정안을 입법예고했다.

이호동 민주노총 노동위원회사업단장은 “복수노조 시행에 대비해 민주노총 차원에서 노동위원회 제도개선 방안을 준비해 왔는데 돌연 노동부가 입법예고를 하는 바람에 무척 당혹스럽다”고 말했다. TF에 참여했던 한국노총이나 경총도 노동부가 충분한 논의 없이 법 개정을 추진하는 것에 불만을 표시하고 있다.

최근 노동시장이 빠른 속도로 변하면서 노동분쟁 역시 복잡다단해지고 있지만 노동위가 이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는 비판이 적지 않다. 정부가 단기적으로는 노동시장 변화를 감안하고, 장기적으로는 노동법원 설립을 염두에 둔 상황에서 노동위원회법 개정을 추진해야 한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조배숙 의원 ‘노동법원법 제정안’ 발의
지난 2004년 사법제도개혁추진위원회(사개추위)에서 노동법원 설립 문제가 뜨거운 감자로 떠올랐다. 당시 법무부가 노동법원 설립을 추진했는데, 노동부가 강하게 반발하면서 무산됐다. 그런 가운데 18대 국회에서 처음으로 노동법원 설립에 관한 법안이 발의돼 관심을 모으고 있다. 조배숙 민주당 의원은 올해 4월 ‘노동법원법 제정안’을 발의했다.
조 의원은 제정안에서 노동법원의 전속 관할대상으로 노동민사사건과 노동행정사건·노동비송사건 등 세 가지 범주를 설정하되, 이외에도 예상가능한 모든 노동분쟁을 포괄할 수 있도록 했다.
제정안에는 특허법원에서 시행하고 있는 ‘사법참여형 분쟁해결제도’도 담겨 있다. 노사관계의 특수성을 반영해 전문성을 갖는 비직업법관의 참여를 보장한 것이다. 조 의원은 “일정한 범위의 노동사건에 대해 심리와 재판에 참여하는 참심관을 둬 평결에 대한 의견제시권한을 부여했다”고 설명했다. 참심재판부는 판사 3인과 노동계측 참심관 1인, 사용자측 참심관 1인으로 구성된다. 이 밖에도 노사단체 사정에 정통한 실무자로 하여금 1심 재판에 한해 법원의 허가를 전제로 소송대리를 할 수 있도록 했다. 2006년 사개추위가 제출했던 안과 거의 유사하다. 김미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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