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S평가점수가 낮게 나왔다고 객장에 있는 의자를 빼는 바람에 3개월 동안 서서 일했습니다. 하루 종일 서서 일하니 업무가 원활했겠습니까. 고객들의 불만이 더 커졌어요.”
전북의 한 지역농협에서 일하는 이영희(34·가명)씨는 지난해 CS평가에서 낮은 점수를 받았다는 이유로 3개월 동안 서서 일해야 했다. 이씨는 “평가점수가 낮으면 마치 죄라도 지은 기분”이라고 털어놓았다. 해당 지역농협에는 노조가 없어 하소연할 곳도 없다.

CS평가가 뭐길래
 
농협중앙회는 지난 2005년부터 CS(Customer Satisfaction, 고객만족) 평가를 전사적으로 시행하고 있다. 농협중앙회에 따르면 CS란 “고객의 욕구와 기대에 부응해 상품과 서비스의 재구입이 이뤄지고, 고객의 신뢰감이 이어지는 상태”를 말한다.
CS를 바탕으로 한 고객만족 경영기법은 80년대 후반 미국과 유럽에서 주목을 받았다. 경영의 모든 부문을 고객의 입장에서 생각하고 고객을 만족시켜 기업을 유지하는 것이다. 

CS평가는 은행과 유통점 등 고객을 대상으로 하는 기업들이 주로 사용한다. 고객으로 위장해 직원의 서비스 내용을 평가하는 ‘미스터리 쇼핑’도 CS평가의 일종이다.
농협은 CS평가에 대해 “직원을 감시·통제하는 것이 아니라 CS 수준 향상을 통해 고객감동을 실현하고 삶의 터전인 우리 직장을 스스로 지키며, 치열한 금융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한 최소한의 자기방어 차원의 일환”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농협의 고객만족업무의 시작은 82년부터 시작된 ‘친절봉사운동’이었다. 친철봉사운동은 90년대 각 지역·지점에서 자율적으로 시행됐다. 농협의 고객만족경영은 2005년 외부 컨설팅용역업체와 손을 잡으면서 강화됐다.

농협은 올해를 ‘CS 재도약의 해’로 정하고 전사적인 붐 조성에 나서고 있다. 농협중앙회 상호금융지원부 고객만족팀은 ‘2010년 전사적 CS 추진의 배경 및 필요성’ 자료를 통해 “CS 활동의 지속적인 교육에도 불구하고 지역농협의 CS 수준은 아직도 경쟁 우수은행보다 다소 미흡하다”고 평가했다. 특히 신용사업-경제사업 분리(신경분리)에 발 맞춰 경쟁은행과의 경쟁에서 밀리지 않기 위해 지금부터 체계적인 CS 추진이 절실하다는 게 농협의 입장이다.

CS 붐? 현장은 ‘부글부글’
 
“점수가 낮게 나왔다며 공판장에 있는 쓰레기를 치우라고 하더군요. 벌이라고 그래서 장갑도 끼지 않고 과일 껍질을 주웠어요. 그것도 휴일에 말입니다.”
“점수가 낮게 나올 때마다 아침에 본점으로 출근해요. 본점에서 교육을 받고 체조하고 다시 지점으로 출근하는 거죠. 자존심도 상하고 민망하기도 하고…….”
농협이 고객만족도를 높이기 위해 열을 올릴수록 역설적이게도 농협 노동자들의 직장만족도는 그만큼 하락하고 있는 셈이다.

농협중앙회는 올해 외부 용역기관과 계약을 체결해 1년에 네 번 CS평가를 실시할 계획이다. 지난해까지 연간 6회에 걸쳐 평가를 실시했는데, 올해부터는 4회로 줄였다.
주로 ‘미스터리 쇼퍼’들이 고객으로 가장해 직원들의 고객응대와 지점의 시설환경 등을 항목별로 평가한다. 횟수는 줄었지만, 기간은 더 길어졌다. 농협노조에 따르면 대략 1년에 289일 정도 CS평가를 받는다. 사실상 연중무휴로 평가가 진행되는 셈이다.

농협의 CS평가는 크게 관찰·상담·전화 평가로 나뉜다. 각 항목은 용모와 고객을 맞이하는 자세 등으로 세분화돼 있다.<표 참조> 직원들은 CS평가를 잘 받기 위해 매뉴얼대로 고객을 응대해야 한다. 그런데 매뉴얼대로 기계처럼 고객을 응대하다 보면 시간도 오래 걸리고 고객의 요구와 맞지 않은 경우도 생긴다.

대기하는 손님이 많을 때 매뉴얼을 따르다 보면 고객의 불편이 불가피하다. 고객마다 만족하는 내용이 다를 수도 있다. 한 지역농협 조합원은 “빠른 업무 처리를 선호하는 고객도 있고, 자세한 설명을 요구하는 고객도 있다”며 “천차만별인 고객의 만족을 매뉴얼 하나로 대응한다는 게 말이 되느냐”고 반문했다.
 

모니터요원의 주관적 평가
 
“표정 밝지 않고 적극적 관심표현이 없어”
“친근감 전달되지 않음”
“표정 없는 얼굴로 인사하고 있음”
“신속하고 정확한 업무처리보다 우선하는 것이 밝은 미소와 따뜻한 눈맞춤을 염두에 두고 응대할 수 있었으면 좋겠음”
 
모니터요원의 주관적인 평가도 문제점으로 제기된다. 모니터요원이 누구냐에 따라 평가점수가 달라진다. 모니터요원의 평가항목에는 ‘단정한 느낌을 주며, 불결한 느낌을 주지는 않는지’ 등 주관적인 평가항목도 있다. 어느 정도가 단정한 것인지, 어느 정도가 불결한 느낌인지는 전적으로 모니터요원의 판단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미스터리 쇼퍼에만 기대는 CS평가는 금융사고의 위험성에도 노출돼 있다. 실제로 대출업무를 상담하다 신용도가 낮아 대출을 거부해야 하는 고객임에도 불구하고 ‘혹시 모니터요원일지 모른다’는 생각에 주저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노조 관계자는 “경영상 대출을 지양해야 하는 사업장인데도 상담시 대출 권유를 적극적으로 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최하점수를 받은 사업장도 있다”고 말했다.

3천449개 지점, 줄 세우나
 
“농협중앙회에서 단말기 지원이나 보조금을 지원할 때 CS평가점수가 낮으면 해당 지점을 제외합니다. 그러니 책임자들이 우리를 달달 볶을 수밖에요.”

농협중앙회의 ‘2010년도 서비스컨설팅 추진계획’에 따르면 CS평가대상 영업점은 전국적으로 3천449개다. 도시형본점 348개, 도시형지점 1천630개, 농촌형본점 830개, 농촌형지점 641개다.

CS평가는 지역농협 지점의 업적평가에서 50%를 차지할 정도로 비중이 크다. 업적평가는 각 지점의 업무성과를 종합하는 경영평가에 반영된다. 경영평가는 농협중앙회의 각종 시설 지원과 성과급과 직결된다.

지역농협 지점장 입장에서는 CS평가에 신경을 쓰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다.  실제 농협중앙회는 정기성과급여와 변동성과급여를 5등급으로 구분해 직원과 연봉제 직원, 상근임원 등에 차등적으로 지급하고 있다. 1등급을 받은 직원은 월 통상임금의 700%, 5등급은 530%를 성과급으로 준다. 임원들도 1등급은 연간 기본연봉의 60%, 5등급은 45.3%로 구분하고 있다. 

지역농협 특성 고려해야
 
부산의 한 지역농협에서 최근 눈길을 끄는 행사가 있었다. 지역의 문화센터에서 운영하는 주부대학 출신 주부들이 지역농협의 일일 명예지점장이 되는 행사였다. 주부들은 일일 지점장으로 일하며, 직원들에게 “이런 부분은 이렇게 고쳐 줬으면 좋겠다”는 의견을 내놓았다.

직원들은 주부들의 설득력 있는 의견에 공감했다.
노조 관계자는 “농협중앙회에서 진행하는 획일적인 CS평가는 지역농협별 특성과 협동조합의 특성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것”이라며 “지역농협별 특성에 맞는 자율적인 고객만족서비스 제도를 정착시켜야 한다”고 강조했다.
전문가들은 고객만족서비스를 제공하기에 앞서 복지향상과 일체감 조성 등 기업에 대한 직원들의 만족도가 필수적이라고 강조한다. ‘내부고객’인 직원들이 회사에 만족해야 ‘외부고객’도 만족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형님 오셨습니까”  한마디에 1위에서 꼴찌로
지역농협 특성 무시한 CS평가 사례
“어머님 오셨어요”와 “어서오십시오 고객님” 중 어떤 인사말이 더 친절하게 느껴질까. 대도시 시중은행에서 고객을 어머님이나 형님으로 불렀다가는 CS평가에서 지적을 당하기 십상이다. 하지만 지역농협의 사정은 다르다.
“고객들은 성심성의껏 대하면 좋아해요. 나이 드신 고객이 많은 지역농협에서는 매뉴얼대로 하면 불편해하세요. 시골 어른들은 편하게 대하는 걸 더 좋아하세요.”
지역농협은 지역노인들의 ‘사랑방’ 역할을 한다. 앵무새처럼 매뉴얼을 읽었다가는 고객의 외면을 받기 일쑤다. 실제 경남의 한 지역농협은 지난해 상반기 CS평가에서 지역 1위를 기록했다. 그런데 같은해 하반기 평가에서는 꼴찌로 떨어졌다. 1위에서 꼴찌로 떨어뜨린 주범은 “형님 오셨습니까” 한마디였다.
순번대기표도 없는 시골에서는 “고객님 뭘 도와드릴까요”라고 말하면 고객이 “너 뭐 잘못 먹었냐”라고 받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한 지역농협 조합원은 “농촌이다 보니 모니터요원이 오면 대부분 알아챈다”며 “모르는 사람이면 모니터요원”이라고 말했다. 그는 “모니터요원에게만 매뉴얼대로 응대하면 점수가 잘나온다”며 “모니터요원들은 정작 고객들한테 어떻게 하는지는 제대로 살펴보지 않는 것 같다”고 귀띔했다.
농협중앙회는 최근 도시형 농협이 아닌 농촌형 농협에서는 인사말에 사투리를 사용할 수 있도록 CS평가 항목을 변경했다. 이에 대해 농협노조 관계자는 “일상에서 지역주민과 함께하는 시간이 많은 지역농협의 정서와 특성을 적극적으로 반영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오재현 기자

 
남주연(34·사진) 농협노조 여성국장은 “농협의 CS평가를 개선하기 위해 노사 대책기구를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농협노조는 지난달 12일부터 이달 24일까지 11개 지역의 지부·분회에서 현장 노동자들과 CS평가에 대한 간담회를 개최했다.
간담회에 참석한 노동자들은 노조에 CS평가의 문제점을 쏟아 냈다.
“점수로 전국의 농협지점을 줄 세우는 방식은 안 됩니다.
무한경쟁 시대에 살아남으려면 뭐든지 해야겠지만 그렇다고 협동조합을 금융경쟁시장에 내놓고 비교해서야 되겠습니까.”
남 국장은 “CD평가와 같은 형식적인 제도를 시행하지 않아도 고객들의 불만이나 불편사항은 충분히 접수할 수 있다”며 “지역농협별 특성에 맞는 자율적인 고객만족서비스를 정착시킬 필요가 있다”고 제안했다.
그는 특히 미스터리 쇼핑을 하는 모니터요원 제도를 폐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용역 모니터요원이 하는 평가는 주관적일 수밖에 없습니다.
노동자들을 일상적으로 감시하는 시스템으로 작동할 뿐입니다.
모니터요원 제도는 폐기해야 합니다.”
한편 농협중앙회가 CS평가를 위해 1년에 쓰는 예산은 12억원에 달한다.
 남 국장은 “CS평가에 들어가는 예산을 인력충원이나 낙후된 환경 개선, 노후기기 교체에 사용해야 한다”며 “그것이 진정한 고객만족서비스”라고 말했다. 오재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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