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부처에서) 일자리 대책이라고 만들어 온 것이 대부분 그냥 자리에 관련된, 국·과별로 빨리 가져오라고 해서 짜깁기한 형색이 역력하더라고요.”

지난 4월15일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회의에서 박준선 한나라당 의원이 정부의 일자리대책을 질타하며 목소리를 높였다. 문제가 된 것은 4월6일 국회 일자리특위에 제출된 부처별 일자리 창출방안이었다. 당시 문화체육관광부는 상수원 보호구역에 골프장을 세울 수 있도록 입지기준을 완화한다는 내용을, 법무부는 불법체류 외국인 집중단속을, 환경부는 국립공원 청소업무 민간위탁 확대를 대책으로 보고했다.

당시 노동부장관이었던 임태희 대통령실장은 “장·차관들의 인식이 안 돼 있다”는 지적에 “공감한다”고 답변했다. 권선택 자유선진당 의원은 “(부처 간) 수평적인 관계에서는 조정에 한계가 있다”며 “컨트롤타워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임태희 전 장관은 “고용노동부로 명칭을 바꿈과 동시에 고용정책에 대한 총괄기능을 노동부가 수행하도록 하는 법안을 추진하고 있다”고 답했다. 정부조직법 개정 때 고용노동부장관의 역할에 ‘고용정책 총괄’을 삽입하겠다는 것이다.
 
국가고용전략, 6월에 내놓는다더니…
 
정부조직법은 임 전 장관이 생각했던 대로 개정됐다. 그런데 상황이 녹록지 않다. 2010년 8월 말 현재 노동부는 고용 관련 핵심 논의기구인 국가고용전략회의에서 ‘컨트롤타워’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다. 대부분의 정책은 기획재정부가 여과한 뒤 발표하는 형식이고, 각 부처별로 대책을 별도로 마련해 대통령에게 보고하고 있다. 국가고용전략회의도 마찬가지다. 지역일자리 창출방안을 다뤘던 3차 회의는 행정안전부가 관할했고, 사회서비스 육성방안을 논의했던 6차 회의는 보건복지부가 주도했다. 노동부가 끼어들 여지가 없다.

임 전 장관은 국회에서 했던 약속을 두 차례나 어기며 결국 청와대로 입성했다. 그 약속은 바로 국가고용전략 수립이다. 노동부는 “국가고용전략을 통해 고용정책 영역뿐만 아니라 경제·산업·교육·복지 등 일자리에 영향을 주는 정책 전반을 아우르겠다”고 강조한 바 있다. 임 전 장관은 4월 임시국회에서 “국가고용전략을 6월까지 마련해 국민들에게 일자리 희망을 줄 수 있는 청사진을 제시하겠다”고 보고했지만 6월 말 열린 국회에서 이를 번복했다.

노동부는 다시 “의견수렴 절차를 진행하고 있다. 수렴된 의견을 토대로 안을 마련한 뒤 관계부처 협의를 거쳐 7월 중 확정해 발표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7월에도, 8월에도 국가고용전략은 나오지 않았다. ‘컨트롤타워’를 자임했던 노동부가 제 역할을 하지 못한 것일까. 이에 대해 노동부 관계자는 “초안은 이미 마련됐다”며 “새 장관이 검토하고 조만간 국가고용전략회의에 보고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박재완 장관 후보자에게 이미 초안이 보고된 것으로 알고 있다”고 덧붙였다. 노동부가 이번에는 약속을 지킬지 두고 볼 일이다.
 

‘김 빠진’ 국가고용전략회의
 
거창하게 출범했던 국가고용전략회의가 계획과는 달리 이벤트성으로 변질됐다는 비판도 제기된다. 정부는 올해 1월 국가고용전략회의를 출범시켰다. 당시 정부는 “1년간 한시적으로 매월 1회 이상 회의를 열고, 3개의 실무TF를 구성해 가동할 계획”이라며 “국가고용전략회의가 명실상부하게 일자리 문제를 해결해 나갈 수 있도록 추진상황을 매월 점검하겠다”고 다짐했다.

그러나 이 또한 말잔치로 끝났다. 국가고용전략회의는 매월 추진상황을 점검하기는커녕 각 부처가 대통령 업무보고에서 밝혔던 내용을 재탕하는 자리가 돼 버렸다. 6월11일에 열린 7차 회의는 사회적 기업을 방문한 자리에서 열렸고, 7월15일 8차 회의는 강원도 춘천 남이섬에서 ‘관광·레저산업 육성방안’을 발표하는 방식으로 개최됐다. 8월19일 열린 9차 회의는 서울 마포구 강북청년창업센터에서 열렸는데, 회의가 끝난 뒤 창업지원실을 방문하는 것으로 회의를 마무리했다. 5차 회의(5월12일)부터는 아예 비상경제대책회의를 겸해 열렸다.

이상동 새로운사회를여는연구원 경제연구센터장은 국가고용전략회의에 대해 “무용론을 제기해도 될 정도”라고 혹평했다. 이 센터장은 “전략회의에서 쇼를 하면서 단기대책을 남발하고 있다”며 “(전략을 마련하고 검증하는) 실무 TF가 유기적으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는 증거”라고 지적했다. 국가고용전략회의 산하에는 국무총리실 국무차장이 주관하는 ‘고용·사회안전망 TF’ 와 기획재정부 차관이 담당하는 ‘실물경제 TF’, 교육과학기술부 차관이 주도하는 ‘교육·인력 양성 TF’가 구성돼 있다.

상생 망가뜨리는 주범은 대기업노조?
 
이런 상황이라면 정부가 향후 발표할 국가고용전략에 제대로 된 내용을 담을 수 있을지 의심을 품는 것은 당연하다. 다양한 메뉴가 제시됐지만, 대부분 구태의연한 대책 일색이기 때문이다.

그런 가운데 정책 결정자들의 발언이 한 방향으로 흐르고 있는 점은 주목할 만하다. 이명박 대통령은 이달 15일 광복절 경축사에서 “공정한 사회”를 강조했고, 곧바로 대-중소기업 상생이 주요 화두가 됐다. 주무장관인 박재완 고용노동부장관 후보자가 20일 인사청문회에서 한 발언도 이 대통령의 ‘공정 사회’와 같은 맥락으로 풀이된다. 박 후보자는 국가고용전략회의를 주도했던 인사다.

“지금 우리나라 노동시장의 유연성이 전반적으로는 국제 수준 또는 평균과 근접한 수준으로 알고 있습니다만, 특정 분야의 노동시장 경직성이 상당히 강합니다. 특히 대기업에 정규직 노동조합이 결성돼 있는 경우 이게 전체 근로자의 7% 정도 됩니다. 그 특정 분야 노동시장의 경직성이 상당히 강해서 일종의 과보호를 받고 있다고 할까요. 임금수준도 아주 높고 그러다 보니까 대기업들의 유연성이 제약되고, 채용을 기피하는 그런 측면도 있다고 봅니다. 그리고 치열한 글로벌 경쟁에서 살아남으려니까 사내하청이라든지 편법을 자꾸 선호합니다. 노조나 정규직 근로자와 중소기업 비정규직 근로자의 임금격차가 계속 늘어나고 있고 여러 가지 혜택에서도 차이가 많이 납니다.”

박 후보자는 인사청문회 모두발언에서 “일부 대기업과 정규직 노사가 중소기업, 비정규직 그리고 국민경제에까지 부담을 전가하는 관행은 바꿀 때가 됐다”고 밝히기도 했다. 김대모 경제사회발전노사정위원회도 26일 ‘중소기업 고용개선을 위한 대토론회’에서 “대기업과 중소기업 사이의 임금격차가 늘어나는 현상은 상당부분 대기업 노사가 중소기업 노사를 압박하는 불공정거래의 결과라고 볼 수 있다”고 주장했다.
 
국가고용전략 ‘고용안정’ 건드리나
 
김대모 위원장은 “대기업 경영진과 노조의 중소협력업체 배려”를 해법으로 제시했다. 그러나 정부는 그 정도에 머물지 않을 것으로 관측된다. 국가고용전략에 고용유연화 항목이 주요하게 포함될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복수의 전문가에 따르면 다음달 발표될 국가고용전략과 가장 유사한 자료는 올해 6월 노동부와 한국개발연구원(KDI)이 공동으로 개최한 ‘국가고용전략 수립을 위한 토론회’ 자료다. 실제로 당시 토론회 발제는 ‘국가고용전략 수립계획 작업반’에서 맡았다. 총괄 발제를 맡은 유경준 KDI 선임연구위원은 성장의 고용창출력이 하락하는 주요 원인으로 “정규직에 대한 과도한 고용보호와 연공급 임금체계”를 꼽았다. 이에 따라 제조업 대기업이 고용절약적 생산방식을 채택하고 해외생산을 늘리면서 고용감소와 청년실업이 증가했다는 것이다.

유 선임연구위원은 국가고용전략의 기본방향으로 “노동시장의 공정성을 회복해 정규직 과보호와 취약계층 사각지대의 병존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노동시장 분야를 발제한 정진호 한국노동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우리나라 노동시장의 유연성 제고를 위한 관건은 전체 근로자의 7%에 해당하는 유노조 대기업 정규직에 대해 정당한 해고 유연성을 확보해 유연성생산성에 기반한 임금체계로 전환하는 데 있다”고 주장했다. 노동부장관 후보자와 같은 주장이다. 정책결정자와 제안자가 같은 자료를 근거로 같은 목소리를 내고 있는 것이다.

윤진호 인하대 교수(경제학)는 “정부가 고용률을 정책 우선순위에 두겠다며 거창하게 국가고용전략회의를 시작하더니, 내용이 없다”며 “듣기로는 고용창출을 위한 전략으로 유연화를 잡고 있는 것 같은데 그것은 편파적이고 시대착오적인 전략”이라고 비판했다. 질 낮은 일자리를 창출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윤 교수는 “국가의 장기 고용전략을 만드는데도 공론화될 게 별로 없다”며 “전통적으로 고용을 경제의 종속변수로 보는 KDI가 고용전략을 만든다는 것도 난센스”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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