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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게릭병 업무상재해로 인정받은 생산직 노동자
지난해 개봉한 영화 ‘내 사랑 내 곁에’의 남자 주인공 배우 김명민은 루게릭병(근위축성 측삭경화증)에 걸린 환자를 연기하기 위해 25킬로그램을 감량해 화제가 됐다. 루게릭병은 운동신경세포만 선택적으로 사멸하는 질환으로 1년에 10만명당 1~2명에게 발병하는 희귀병으로 알려져 있다. 루게릭병에 걸리면 운동신경 세포가 파괴돼 근육이 차례로 마비된다. 루게릭병의 발병원인은 아직 밝혀지지 않았고, 다만 여러 가지 가설들이 제기되고 있다. 역학조사에 따르면 루게릭병 환자의 약 10% 정도는 어느 정도 유전성 소인과 연관돼 발병하며, 나머지 90%는 유전성 소인이 분명하지 않은 산발성 경향을 보이는 것으로 보고됐다.

지난 2005년 대전지방법원은 한 생산직 노동자에게 발병한 루게릭병을 업무상재해로 인정하는 판결을 내렸다. 이 판결은 아직까지 의학적으로 발병원인이 명확하게 밝혀지지 않은 희귀병이라도, 제반 사정을 고려할 때 업무와 상당인과관계가 있다고 추단되는 경우에는 희귀병도 업무상재해가 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 줬다.

추락사고 후 루게릭병 발병

섬유업체에서 일하던 신아무개(사고당시 44세)씨는 2003년 6월 작업용 리어카에 올라가 리어카 최상단에 실려 있던 무게 80킬로그램의 실뭉치 자루를 끌어내리려다가 그만 작업장 바닥으로 추락했다. 자루 끈이 끊어져 뒤로 넘어진 것이다.

신씨는 추락하면서 엉덩방아를 찧었고, 머리와 목·어깨·허리 등을 작업장 바닥에 심하게 부딪혔다. 그는 검사결과 경추부염좌·양측 승모근 만성근막통증후군·근위축성측삭경화증(루게릭병)이 발병한 것으로 진단되자 이듬해 2월 근로복지공단에 요양을 신청했다.

공단은 그러나 경추부염좌와 양측 승모근 만성근막통증후군에 대해서만 요양을 승인하고 루게릭병에 대해서는 승인하지 않았다. 루게릭병은 신경전달물질 중 한 가지에 의해 신경이 파괴된다는 가설과 환경오염에 의한 중금속 축적, 유전적 원인 등에 의해 발생될 수 있다는 가설이 있지만 그 원인이 밝혀지지 않아 업무와 루게릭병의 상당인과관계를 인정하기 어렵다는 이유였다. 이에 신씨는 공단을 상대로 행정소송을 제기했다.

발병기전 규명하지 않아도 추단 가능

신씨는 “루게릭병의 발병원인은 외상·바이러스·약제·중독 등 여러 가지 학설이 있다”며 “추락사고를 당해 외상을 입은 것 외에 유전·기왕증 등 루게릭병의 다른 발병 원인에 대한 기록을 찾을 수 없으므로 루게릭병은 업무로 인해 발병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신씨는 추락사고 당시 목과 양 어깨에 통증을 느꼈지만 일주일 동안 진통제만 먹으면서 계속 근무했다. 당시 구조조정을 시도하던 회사가 결근자에게는 구조조정에 따른 위로금을 지급하지 않는다는 방침을 밝혔기 때문이다. 그러다가 통증을 더 이상 참을 수 없어 의원에서 치료를 받기 시작했다.

법원이 서울대병원에 신체감정촉탁을 의뢰한 결과 병원측은 “의학적으로는 두부외상과 근위축성 측삭경화증의 관련성에 대해서 다소 논란이 되고 있는 면이 있으나, 적어도 반복적인 작은 두부외상 또는 심한 두부외상에 의해서 근위축성 측삭경화증의 발생 위험도가 증가할 가능성은 충분한 것으로 판단되고 있다”고 밝혔다. 신씨의 경우 “환자의 병력·진찰소견·문헌고찰 등을 종합적으로 판단할 때 추락사고로 인한 외상이 매우 심했을 경우 원고의 근위축성 측삭경화증의 발병에 어느 정도 간접적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대전지법은 이와 같은 의학적 소견과 원고에게 근위축성 측삭경화증의 유전적 소인이 없다는 의학적 소견 등을 반영해 원고의 손을 들어줬다. 법원은 “원고는 추락사고 이후 목과 어깨통증으로 병원치료를 지속적으로 받기 시작했고, 계속된 치료에도 증상이 호전되지 않고 악화되다가 근위축성 측삭경화증이 발병하게 된 점 등에 비춰 보면 구체적인 발병기전이 명확히 규명되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원고의 근위축성 측삭경화증은 추락사고로 인한 것이라고 추단된다”고 판결했다.

[관련판례]
대전지방법원 2005년 5월31일 선고 2004구단1389
대법원 1999년 1월26일 선고 98두10103

조현미 기자  ssal@labor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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