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자동차를 포함한 제조업 산업현장이 술렁이고 있다. 대법원이 지난달 22일 “사내하청 노동자도 근로자파견에 해당하므로 2년 이상 근무한 사내하청 노동자는 정규직으로 고용한 것으로 간주한다”고 판결했기 때문이다.

이번 판결의 핵심은 두 가지다. 대법원은 우선 자동차 조립·생산작업은 컨베이어벨트를 이용한 흐름생산공정으로, 독립된 업무의 완성을 목적으로 하는 도급과 거리가 멀다고 봤다. 대법원은 특히 원청업체에 배치된 하청업체의 반장·직장 같은 이른바 ‘현장대리인’의 지휘·감독권도 인정하지 않았다. 실질적인 지휘·감독권을 가지고 있는 원청사인 현대자동차가 사용자라는 것이다.

이번 판결은 2005년 고용노동부가 현대차 사내하청업체 101곳에 불법파견 판정을 내린 근거보다 더 명확하다. 당시 고용노동부의 판정을 보면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조립공정 혼재배치 여부와 사내하청업체의 실질적인 지휘·감독권 소유 여부로 합법도급과 불법파견 여부를 판정했다. 반면 대법원은 흐름생산을 하는 자동차 조립공정에서 독립된 업무의 완성을 목적으로 하는 도급은 가능하지 않다고 못 박은 것이다. 도급과 파견 논란에 쐐기를 박은 셈이다.

이번 판결로 흐름생산을 하는 제조업 전반에 미치는 파급효과가 클 것으로 보인다. 그간 현대자동차를 포함한 완성차업체들은 불법파견 시비를 없앤다는 명목으로 이른바 ‘진성도급화’를 추진했다.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혼재작업을 배제하고, 비정규직만 작업하는 조립공정을 만들겠다는 것이다. GM대우자동차와 쌍용자동차는 일부 조립공정에서 이를 실행했다.

현대차는 사내하청업체에 반장·직장을 파견하도록 해 지휘·감독권 논란을 회피하려 했다. 이는 자동차업계에만 국한되지 않았다. 조선업과 전자업체에도 확산됐다. 국내 제조업체의 사내하청 남용은 개선되지 않고, 되레 합법의 날개를 단 셈이다. 대법원의 판결은 이런 관행의 법적 정당성을 박탈한 것이다. 앞으로는 경영계가 만든 ‘진성도급’이라는 신조어는 더 이상 통용될 수 없게 됐다. 자동차·조선·전자 제조업체들은 이번 판결을 계기로 사내하청을 남용해 온 고용관행을 변화시켜야 할 것이다.

일각에선 경영계가 외주화·모듈화 또는 사내하청 노동자의 채용주기를 단축하는 방식으로 이번 대법원 판결에 대응할 것이라고 우려한다. 외주화나 채용주기 단축이 장기적으로 생산성을 떨어뜨릴 수 있다는 분석을 고려하면 올바른 선택은 아닐 것이다. 파견근로자 보호에 관한 법률(파견법)의 파견대상을 확대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온다. 이미 정부는 파견법 수요가 높은 업종이나 직무부터 파견대상을 확대한다는 계획이다. 이번 판결로 합법파견뿐 아니라 불법파견(사내하청)까지 포함하면 파견노동자가 적다는 정부의 종전 발표는 신뢰하기 힘들어졌다.

이를 고려하면 법 개정보다 제조업 사내하청의 정확한 실태조사가 우선이다. 고용노동부의 실태조사는 대법원 판결의 취지에 따른 조사여야 한다. 사내하청 문제는 정규직 노조도 그 책임에서 자유롭지 않다. 대형 제조업 노동조합은 사내하청 고용관행의 물꼬를 트는 데 암묵적으로 묵인했거나 부분적으로 합의했다. 진성도급도 위장도급의 ‘변종형’이라고 비판했지만 사실상 정규직 노조는 묵인할 수밖에 없었다. 생산물량 변화에 따른 고용불안을 해소하기 위해 사내하청 노동자를 고용의 안전판으로 여겨 온 정규직 조합원의 관행을 극복하지 못한 탓이다. 이젠 대형 제조업 노동조합들도 새로운 고용관행을 위한 전략적인 모색을 할 때가 됐다. 흐름생산을 하는 조립공정에서 사내하청이 불가능해진 만큼 노조가 주도적으로 고민하고 조합원을 설득해 나가야 할 것이다.

정규직과 사내하청의 연대를 활성화하려는 노력도 필요하다. 정규직과 사내하청 노조 간 통합은 당연한 귀결이어야 한다. 이를 미루고 있거나 의결기구에서 결정하지 못했다면 빠른 시일 내에 재시도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래야만 사내하청 노동자의 정규직화라는 노동계의 요구가 설득력을 얻을 수 있다. 대법원 판결 이후 폭발적으로 늘고 있는 사내하청 노동자의 노조 가입에도 부응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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