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결론부터 정리해보자

“법대로 해라.” 이 사건 판결의 결론이다. 법률이 어떠한 권리를 창설하면서 그 권리 발생의 요건을 규정하고 있을 때, 요건이 충족되면 권리는 당연히 발생하는 것이다. 요건이 충족됐음에도 권리 발생을 제한하는 아무런 규정이 전혀 없다면. 너무 당연한 얘기를 왜 하냐고? 그 당연한 얘기를 가지고 왈가왈부 이렇게 송사(訟事)가 벌어지고 있으니 얘기를 할 수밖에. 그것도 힘겹게 소송을 통해서야 노동자들이 이 당연한 결론을 얻게 만든 사실상의 주범이 노동부라니, 결론만 정리하고 간단히 끝낼 일은 아닌 듯하다.

2. 사건의 개요는 이렇다

근로기준법(제60조)은 “사용자는 1년간 8할 이상 출근한 근로자에게 15일의 유급휴가를 주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연차유급휴가 청구권의 발생과 관련해 어떤 제한규정도 없다.
이 사건 피고(회사)는 연차유급휴가 산정대상기간 1년 중에서 원고(노동자들)의 “파업으로 근로를 제공하지 않은 기간을 제외한 나머지 기간”(이하 ‘제외 소정근로일수’)에 대한 출근율로 연차유급휴가일수를 산정한 후(여기까진 문제가 없다), 다시 총 소정근로일수에 대한 제외 소정근로일수의 비율로 총 연차유급휴가일수를 산정(공제)했다(이게 문제다).
즉, 8할 이상 출근했으니 15일의 연차유급휴가가 발생해야하지만 제외 소정근로일수가 총 소정근로일수의 1/3이라면 연차유급휴가도 그 1/3인 5일만 발생한다는 주장이다.
그런데 문제는 이렇게 하라고 노동부가 해석을 하고 있다는 것이니, 그저 노동부의 해석에 따랐을 뿐인 피고 입장에서는 조금 억울할 수도 있겠다.(이 경우 연차유급휴가일수는 사용자의 귀책사유로 인한 휴업기간, 적법한 쟁의행위기간, 남녀고용평등법에 의한 육아휴직기간을 제외한 나머지 소정근로일수에 대한 출근율에 따라 산출된 일수에 당해 사업장의 연간 총 소정근로일수에 대한 출근일수 비율을 곱하여 산정하여야 함. ‘연차유급휴가 등의 부여 시 소정근로일수 및 출근여부 판단 기준’(1997.5.30 근기 68207-709. 임금근로시간정책팀-3228, 2007.10.25 개정))

3. 연차유급휴가란 무엇인가

“법대로 해라”는 당연한 결론이 소송을 통해서야 나오는 현실이니 근본적인 논의부터 하지 않을 수가 없다. 연차유급휴가, 도대체 정체가 뭘까?
일반적으로 연차유급휴가는, 노동자의 심신의 피로를 회복시키고 노동력을 유지ㆍ배양하기 위해 필수적으로 일정기간의 여가를 부여하는 것을 목적으로 설정된 제도라 해석된다. 이 사건에서 연차유급휴가에 대해, 피고 회사는 무엇보다 근로제공에 따른 “공로보상”적 성격을 강조했고 원고 노동자들은 “여가부여”에 주된 취지가 있다고 주장했다.

노동부 역시 실제 근로일수에 따른 비율로 연차유급휴가일수를 공제할 수 있다고 해석하는 것을 봐서는 아마 피고 회사와 같은 입장에 있는 것이 아닌가 싶다. 그런데 법 조문을 보자. 법은 연차유급휴가의 발생요건과 발생일수만을 규정하고 있을 뿐이며 발생요건 역시 “1년간 8할 이상 출근”이라는 내용밖에 없다. 설령 1년간의 계속근로에 대한 공로보상적 성격이 당해 제도에 일부 있다고 하더라도 이는 발생요건으로 온전히 흡수될 뿐이고, 남는 것은 일정기간의 여가를 부여하라는 것이다.

외국에도 우리의 연차유급휴가제도와 유사한 제도들을 갖고 있는 나라들이 많은데, 일정기간 재직 시 몇 일간의 휴가를 부여하라는 내용들이 대부분이고 우리나라처럼 일정기간 재직 중에서도 일정 출근율을 요건으로 하고 있는 경우는 거의 없다.(‘다른 나라의 근로시간 궁금합니다.’ 노동부, 2000.7.31 참조) 즉, 노동력이라는 상품은 인간과 일체인 특수한 상품이니만큼 그 유지를 위해서는 일정 장기간의 여가를 부여해주자는 것이 이른바 글로벌스탠더드(Global Standard)이기도 하다는 얘기다.

4. 무노동 무임금? 노동3권을 제한하겠다고?

한편, 피고 회사는 연차유급휴가를 사용하지 않은 경우 발생하는 이른바 연차유급휴가근로수당의 임금성을 주장하면서 파업기간 중 이른바 무노동 무임금 이론까지 끌어오고 있기도 하다. 연차유급휴가수당이 발생하는 전제로서 연차휴가가 유급인 것은, 여가 부여 보장의 실효성 제고차원으로 법에 의해 창설된 제도인 것이므로(유급이 아니라면 임금이 공제되는 상황에서 누가 휴가를 쓰겠는가), 계약법리에 따라 근로제공의 의무이행이 없었으니 임금지급의 의무도 없다는 이른바 무노동 무임금 이론을 갖다 붙일 꺼리도 아닌 것이다.

또한, 파업기간을 뺀 제외 소정근로일수의 총 소정근로일수에 대한 비율에 따라 연차유급휴가일수를 공제할 수 있다면 이는 파업으로 인한 다른 법적 권리의 제한을 용인하는 심각한 문제가 발생한다.

파업(쟁의행위)은 헌법으로 보장돼 있는 노동3권의 행사인바, 헌법상의 기본권 행사를 이유로 차별이나 불이익을 받아서는 아니 됨은 기본 중의 기본이다. 기본권에 대한 일부 제한은 주지하다시피 국가안전보장·질서유지·공공복리를 위해 필요한 경우에 한해 오직 법률로써 제한할 수 있는 것인바, 아무런 법률규정도 없는 상태에서 파업을 이유로 연차유급휴가청구권에 있어서 차별이 발생하는 결과를 인정할 수는 없는 것이다.

5. 법 해석은 법 창설 행위가 아니다

자, 이제 다시 정리 해보자. 괜히 복잡하게 머리 굴릴 것도 없이 법 조문을 보면 정답이 나온다. 법은 “1년간 8할 이상 출근”하면 “15일의 유급휴가”가 발생한다고 돼 있다. 거기에 더 무슨 제한이 가능한 해석의 여지가 있는가. 법률상의 권리 발생의 요건이 갖춰지면 권리는 발생하는 것이고 그것을 제한하려면 제한규정이 있어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 제한규정이 없다. 그러면 그 누구도 법률상의 요건이 충족돼 발생한 권리를 추가적으로 제한할 수는 없다.

피고 회사는, 그러면 “원고들 주장대로 연차유급휴가일수를 산정한다면 1년 내내 파업한 경우에도 연차유급휴가를 모두 인정하여야 하는데 이는 불합리하다”는 극단적인 예까지 들며 괜한 걱정까지 하고 있다. 앞서 살펴 본 연차유급휴가제도의 취지 상 단 하루도 근로를 제공하지 않은 경우에는 연차유급휴가 산정대상기간 중 소정근로일수 자체가 없어 연차유급휴가는 발생하지 않으므로 걱정할 것이 없다.
 
그러나 연차유급휴가 산정대상기간 중 제외 소정근로일수가 단 1일이라도 그 1일을 출근했다면 15일의 연차유급휴가는 발생하는 것이다. 이상한가? 뭔가 불합리해 보이는가? 이런 극단적인 예까지 들고 보면, 상식적으로는 다소 불합리해 보일지 모르겠지만, 법률의 해석행위는 단지 법을 해석하는데 그쳐야하지 법을 창설하는 행위로 나아가서는 결코 안 된다. 근본적으로는, 법이라는 것이 상식이나 사회통념의 총체여야 하겠지만 양자가 꼭 일치하는 것은 아님을 인식할 필요도 있다. 1년간 개근 시 노동력 유지․배양을 위한 여가 목적의 연차유급휴가가 왜 꼭 15일이어야 하는가, 주 3일을 일하는 노동자와 휴일도 없이 매일 연장근로를 하는 노동자에게 똑같이 법상 15일의 연차유급휴가가 부여되는 것은 과연 합리적인가. 어차피 법이라는 것은 하나의 도식적이고 제도화된 약속이다.

법률상 아무런 제한이나 근거 규정이 없음에도 법률상의 권리를 부가적으로 만들거나 또는 제한해버리는 것은 법률 해석이 아니라 새로운 법률을 창설하는 것이다. 법을 만드는 것은 오직 입법부의 권한이고 행정부(노동부)나 사법부는 단지 그 법을 해석할 수 있을 뿐이다.
'
이미 이 사건 판결과 동일한 내용의 항소심(2심) 판결(서울중앙지법 2006.9.28 선고, 2006나6583 판결)도 있었다. 그런데도 노동부의 행정해석은 요지부동이다. 어디 이 사례뿐이겠는가. 대법원에서 복수노조가 아니라고 해도 복수노조라 우기고, 원청사용자에게 부당노동행위책임이 있다 해도 원청 사용자에게는 사용자책임이 없다하니, 대한민국이 과연 법치주의 사법국가이긴 한 것일까.
저작권자 © 매일노동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