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폐증을 앓고 있는 노동자들에게는 흔히 합병증이 따라온다. 진폐증 자체로 사망하는 경우도 있지만 진폐증이 불러온 합병증이 노동자의 건강상태를 악화시키거나 생명을 단축시킨다. 산재보험법상 요양대상이 되는 진폐증의 합병증은 활동성 폐결핵·흉막염·기흉·기관지염·기관지 확장증·폐기종·폐성심·미코박테리아감염 등이다.

대법원은 업무상 발병한 질병이 사망의 주된 발생 원인이 아니라고 하더라도 업무와 직접적인 관계가 없는 기존의 다른 질병과 복합적으로 작용해 사망했을 경우 업무상 재해로 인정한다. 또 업무상 발병한 질병으로 인해 기존 질병이 자연적인 경과속도 이상으로 급속히 악화돼 사망한 경우에도 업무와 사망 사이에 인과관계가 있다고 보고 있다.

서울행정법원은 지난해 5월 진폐증 합병증으로 사망한 퇴직 노동자의 유가족이 근로복지공단을 상대로 제기한 유족보상금 및 장의비 부지급 처분 취소 소송에서 원고의 손을 들어줬다.

채탄부로 일한 후 진폐증·뇌경색 발병

원고의 남편인 A씨(2007년 사망당시 71세)는 62년부터 68년까지 대한석탄공사 B광업소에서 채탄부로 일했다. 그는 97년부터 2005년까지 총 5회에 걸쳐 진폐정밀검사를 받은 결과 진폐증으로 판정을 받았다. 2001년에는 뇌경색이 발병해 좌측 부전마비 증세가 나타났고 2007년 4월 노인요양병원에 입원한 이후로는 가래증상이 심해지고 음식물을 삼키기 어려워 코와 위장으로 삽관을 해 음식물을 투여받았다.

그는 병원에서 사망하기까지 호흡곤란과 가래·고열 소견이 있어 기관지 2차 감염증 진단을 받아 약물치료를 받았다. 흉부방사선 검사결과 만성기관지염과 간질성 폐질환 소견이 나타났는데 같은해 5월 결국 호흡곤란 증세를 보이며 사망했다. A씨의 아내는 남편의 사망이 업무상 재해라며 근로복지공단에 유족보상금 및 장의비 지급을 청구했다. 그러나 공단은 “망인이 진폐증에 의해 사망한 것으로 인정할 수 없다”는 이유로 이를 거부했다. 이에 A씨의 아내는 서울행법에 소송을 제기했다. 아내는 “남편이 장기간 분진사업장에서 근무하면서 진폐증이 발병하고, 퇴직 이후로도 진폐증이 악화돼 장해등급 3급으로 인정될 만큼 위중한 상태였다”며 “이로 인한 전신쇠약과 잦은 기침, 가래의 증가 등으로 인한 간질성 폐질환은 망인의 사망에 이르는 결정적인 원인이 됐다”고 주장했다.

호흡곤란 증세 보이며 사망

A씨가 사망 직전까지 치료를 받았던 노인요양병원의 주치의는 “만성기관지염과 간질성 폐질환은 과거 진폐증 후유증으로 인한 것으로 사료된다”는 견해를 밝혔다. 반면 공단 자문의는 “흉부 사진상 진폐병형이 심하지 않았고 사망 당시까지도 악화 소견을 보이지 않았다”며 “망인은 진폐증보다 뇌졸중 후 전신상태의 악화가 사망에 더 큰 영향을 미친 것으로 판단된다”고 밝혔다. 법원의 진료기록 감정을 촉탁받은 대학병원에서는 “망인은 사망 당시 가래 증상을 호소하고 있었으므로 폐기능 검사상 합병증인 만성 폐쇄성 폐질환(폐기종·만성 기관지염)이 있었을 것으로 사료된다”며 “망인이 사망 당시 갑작스런 호흡곤란 증상을 보인 점과 관련해 망인에게 기흉이 발병했을 가능성이 있다”는 소견을 밝혔다. 만성 기관지염은 2년 연속, 1년 3개월 이상 기침·가래가 발생하는 질환이다.

법원 “진폐증과 뇌경색이 상호 영향”

서울행법은 “망인에게 나타난 호흡곤란 등의 증상이 오로지 뇌경색과 그 후유증에 기인한 것일 뿐 진폐증과 무관하다고 단정하기 어렵다”며 “진폐증과 뇌경색이 상호 부정적인 영향을 주고받는 가운데 망인의 건강상태가 자연적인 경과 이상으로 악화됐다고 볼 수 있다”고 밝혔다. 법원은 이어 “기흉 역시 진폐증의 합병증 내지 속발증인 점에 비춰보면 비록 망인이 진폐증 자체로 인해 사망한 것이 아니라 할지라도 진폐증 및 합병증인 만성기관지염과 간질성 폐렴 등이 망인의 건강상태를 자연경과 이상으로 악화시켰거나 망인의 생존기간을 상당히 단축시켜 사망에 이르게 한 것으로 보인다”고 판결했다.

[관련판례]

서울행정법원 2009년5월29일 선고 2008구합33525
대법원 2003년4월11일 선고 2002두12922
저작권자 © 매일노동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