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로감독과 근무를 3개월 한 이후부터는 말이 없어졌어요. 일이 점점 버거워지고 처리해야 할 양도 많아 졌습니다. 나중엔 어려운 게 쌓이고 쌓이더라고요. 야근을 해도 해결이 안 돼요. 자신감도 떨어지고 피곤하니까 말수가 줄고 잘 안 웃게 되고.”
고용노동부 산하 지방관서에서 근로감독 업무를 하는 여성 공무원은 “예전에 우울증에 걸린 적 있다”고 말했다. 우울증을 앓고 있는 이들은 이 여성 공무원만이 아니었다. 함께 일하던 동료 중에 우울증 진단을 받아 휴직한 이들이 있다고 했다.

기관사보다 더한 외상후스트레스장애 호소

노동부 공무원의 건강에 빨간 신호등이 켜졌다. 늘어나는 노동시간과 업무량에 노동부 공무원들은 늘 지쳐있다. 글로벌 금융위기를 거치면서 급증한 실업자·임금체불자 등 민원인을 상대하는 감정노동에 지쳐 몸과 마음이 병들고 있다.

최근 녹색병원·노동환경건강연구소가 노동부공무원직장협의회의 의뢰를 받아 실시한 ‘노동부 공무원 근무환경 및 건강실태 조사 보고서’를 공개했다. 노동부 전체 공무원 4천120명 중 6급 이하 직원 1천580명이 참여했다. 이에 따르면 심리상담사와의 면담이 필요할 정도로 우울증 증상을 보인 공무원은 30.1%인 475명이나 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적극적 치료여부를 판단하기 위해 정신과 전문의의 상담이 필요할 정도의 고도우울증상을 보인 경우도 12.6%인 199명이었다. 외상후스트레스장애를 호소한 경우는 6.7%인 106명에 달했다.

이는 평소 우울증이나 외상후스트레스 발병 비율이 높은 다른 업종의 노동자들보다 비슷하거나 오히려 높다는 점에서 심각성을 더해주고 있다.
노동환경건강연구소 조사에 따르면 주요 고객이 조직폭력배이거나, 가산을 탕진한 도박중독자들이 대부분인 카지노업체 딜러들의 경우 심리상담이 필요한 비율이 20%였다. 노동부 공무원들이 10%포인트 더 높은 것이다. 우울증상 수준이 다른 집단에 비해 높은 공무원 징계해직자들은 28.5%가 상담이 필요한 것으로 나타났지만, 역시 노동부 공무원들보다 비율이 낮았다.

카지노업체 딜러들의 경우 외상후스트레스장애 호소율은 6.7%로 노동부 공무원과 같았다. 사상사고 경험·위험 등으로 외상후스트레스장애와 공황장애 비율이 높은 것으로 유명한 지하철기관사들의 외상후스트레스장애 호소율이 6.5%인데, 오히려 노동부 공무원이 더 높은 것이다.

 


업무량 30~40% 급증

노동부 공무원들의 건강에 적신호가 켜진 것은 높은 노동강도가 원인이다.
지난해 11월부터 올해 1월까지 진행된 이번 조사 결과, 노동부 공무원들은 1년 전과 비교해 대체로 노동조건이 악화됐다고 판단하고 있었다. 평균 50점을 기준으로 100점에 가까울수록 노동조건이 악화되는 것으로 봤을 때, 노동부 공무원들은 근무시간(57.75점)이 늘고 여유시간(58.53점)이 줄어들었다고 답했다. 응답자의 월평균 초과근무 시간은 25.3시간이었다.

실제 노동부 직원들이 처리해야 할 각종 사건·민원업무량은 늘어나고 있는 추세다.
2004~2008년 근로감독관 사건 접수 현황 추이를 보면 21만4천500건에서 28만9천200건으로 34.7% 증가했다. 사건 처리가 많은 서울지방노동청 권역의 경우 34.7%, 서울 강남지청은 56.2% 늘어났다. 2008년 현재 근로감독관 1인당 월 평균 사건 수는 36개였다.

노동부 고용센터의 경우 피보험자격 취득과 피보험자격 상실업무·실업인정 신청·구직·이직 업무는 센터 전체 업무의 5분의 4 이상을 차지할 만큼 비중이 높다. 그런데 2006~2008년의 실업급여 지급이 4만700건에서 5만7천400건으로 41% 증가했다. 같은 시기 고용센터 공무원은 210명 늘어났다. 2007년 민간인 신분이었던 직업상담원들이 공무원으로 바뀌었기 때문인데, 인력충원이라기 보다는 신분전환에 따른 영향으로 봐야 한다.

글로벌 금융위기가 본격화된 지난해 1년 동안 실업급여 신규신청자가 28% 늘어났다. 또 고용유지지원금 지급 실적이 913% 증가한 것을 고려하면 금융위기를 거치며 고용센터 직원들의 업무량이 폭증했다는 것은 불을 보듯 뻔한 일이다.

노동강도가 강할수록 우울증 발행 위험도 높았다. 월평균 초과 근무시간이 30시간 미만인 집단보다 그 이상인 집단에서 상담이 필요할 정도의 우울수준 발생 위험이 1.3배 높았다. 월평균 휴일 근무일수가 1일 이하인 집단보다 초과하는 집단이 1.4배 높았다.

절반 이상이 폭언경험

노동부 공무원들이 임금체불 상담이나 실업급여 상담 등 민원인들을 상대하는 감정노동을 주로 한다는 사실도 건강을 해치는 원인이다. 지난 1년 동안 업무 중 신체적인 폭행을 당했다고 답한 노동부 공무원은 2.5%(38명) 였다. 가해자는 91.2%가 민원인이었다. 업무 중 성희롱을 당했다는 응답자는 41명(2.7%)이었다.
업무 중 욕설이나 폭언을 들은 경험이 있는 경우는 52.8%로 절반을 넘었다. 가해자의 94.6%가 민원인이었다.

감정노동에 많이 노출되는 다른 집단과 비교해도 그 빈도가 높았다. 연구소가 2006년과 2008년 각각 조사한 병원(39.4%), 카지노업체(48.2%)보다 언어폭력 경험 비율이 높은 것이다.

고용지원센터에서 일하는 한 여성공무원은 “하루는 민원인에게 욕을 먹고 집에 가서 자려고 누웠는데 몇일 뒤에 또 오겠다던 그 민원인의 말이 생각나 눈물이 날 것 같았다”고 말했다. 노동부 공무원의 경우 일자리가 없거나, 억울하게 임금을 떼인 노동자 등 위기에 놓인 사회적 약자들을 상대하기 때문에 폭언에 자주 노출되고 있다.

“우리가 감정노동을 하기 때문에 더 어려운 것 같아요. 행복한 사람을 만나지 못하는 거지요. ‘야 이년아 이렇게 해줘야 할 것 아냐’라고 민원인이 욕하면, ‘네. 저는 이년 맞고요. 그런데 그렇게 할 수는 없습니다’라고 말해요.” 한 여성 근로감독관의 말이다.
 
연구소에 따르면 1년 전과 비교했을 때 민원인 스트레스(65.78점·중간점이 50점)와 일 스트레스(67.9점)가 동료 스트레스(52.8점)·관리자 스트레스(55.03점)보다 높아진 것으로 나타났다.

“적정 업무 설정, 과도한 민원 방지대책 필요”

연구소는 노동부 공무원들의 과도한 업무량과 감정노동에서 오는 스트레스를 방지하기 위해 △업무량 평가를 통한 적정 업무기준 설정 △과도한 민원을 막기 위한 업무제도 개선 △정신건강 문제 해결을 위한 중장기 계획 마련 등을 제안했다.
연구소는 “1인당 적정업무량을 설정해 이를 초과할 경우 인력을 충원하고, 민원인을 대하는 서비스 시간에 대한 가이드라인을 만들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노동부 공무원들, 팔다리도 아프다
40%가 매달 한번, 일주일 이상 통증 호소
노동부 공무원들의 근골격계질환 증상호수 수준도 높은 편이었다.
목·어깨·팔·팔꿈치·손·손목·손가락·허리·다리·무릎·발 중 어느 한 부위라도 월 1회 이상, 일 주일 이상 통증을 호소하는 응답자는 전체의 40.4%인 638명이었다.
각 부위 중 어느 한 부위라도 월 1회 이상, 일 주일 이상 통증을 호소하면서 통증의 정도가 중간 이상인 응답자는 전체의 34.6%인 546명인 것으로 조사됐다. 통증의 정도가 심한 정도 이상인 응답자는 19.3%인 305명이었다.
노동환경연구소가 의정부 고용센터와 강남 고용센터를 조사한 결과 모든 책상의 높이가 가이드라인 기준인 600~700mm를 벗어났다. 연구소는 “키보드 높이를 기준으로 할 때 키가 큰 사람 일부를 제외하고는 상당 부분 높은 위치에서 컴퓨터 작업을 하기 때문에 어깨가 들린 상태에서 손목이 신전되는 부적절한 자세가 유발되고 있었다”고 밝혔다.  의자의 경우 안는 부위의 길이와 폭이 노동부가 고시한 기준의 최대범위(길이 : 420mm, 폭 : 450mm)를 벗어났다.  연구소는 “사무환경이 근골격계질환을 유발할 수 있기 때문에 개선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김학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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