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연 - 이 사건의 주연, 전임자. 근로자 신분이나 사장님 하명하신 일을 하지 않고 노동조합의 소임을 다하는 자다(이 글에서는 ‘유급전임자’만 의미한다). 국법은 이들의 신분을 보장하고 있으나 세간에서는 이들을 ‘놀고먹는 자’라 칭하면서 갖은 모략을 펴 그 수를 줄이려 하고 있다. 이들이 고초를 겪는 것은 근래의 일이 아니다. 20년 전에도 마찬가지였다. 야사의 기록에서도 전임자의 삯을 주지 않으려고 한 흔적들이 여러 곳에서 발견된다.

사또1, 2, 3 - 권영문 1964년생(용띠), 홍예연 1978년생(말띠), 1984년생(쥐띠).

장면 하나 - 2009년 12월. 바야흐로 당시는 전임자 문제로 전국이 들썩거렸던 때이도다. 전국경제인연합이라는 한 도당이 ‘판례를 통해 본 노조전임자의 행태’라는 해괴망측한 사발통문을 저잣거리에 뿌렸다. 이 도당은 전국에 분점을 두고 있는 방사형 조직으로 주로 ‘호모 에코노미쿠스’ 출신의 보부상들로 구성해 있으며, 도당의 우두머리들은 국법을 어겨 여러 번 포도청에 끌려가 하옥된 적이 있으나, 조정과 내통해 방생된 자도 있다. 또한 상황이 위중한 경우, 제중원에서 안대를 제공받아 착용한 후 굴렁걸상에 앉는 묘책으로 곤장이나 옥살이를 모면하기도 하였다.

장면 둘 - ‘일요일 경성’급 찌라시들은 이 사발통문을 널름 주워 받아 백성들에게 알리기 시작한다. 헤드라인 보소. 섹시 아니 음탕하기 짝이 없도다.
“파업하면 조합원 ‘무노무임’…노조전임자는 꼬박꼬박 월급(한국경제)”
“노조 전임자, 파업 중에도 알뜰히 자기몫 임금 챙겼다(뉴시스)”
“노조 전임자, 조합원 이익 나 몰라라(이투데이 경제)”
개벽세상 최고의 남사당, 마이클 잭슨이 부릅니다. “당신들은 언론이 아니야”, You are not alone!

장면 셋 - 국법은 사장이 전임자에게는 급여를 지급해서는 안되며, 또한 이를 지급하는 사장을 부당노동행위로 처벌하도록 정해 두었다. 졸렬함이 작렬한다. 그게 무슨 뇌물인가. 전임자 급여지급이 부당노동행위가 된다면 국법의 조문도 사장이 ‘지급해서는 안된다’고 해야지, 전임자가 ‘받으면 안된다’고 하는 게 말이 되나. 되려 저들은 불법으로 주고 받았으면서. 허나 정치의 기본은 후안무치(厚顔無?)라, 안면에 철판 대고 가스용접한 자들만이 할 수 있기에 전임자급여와는 차원이 다르다며 손사래를 친다면 할 말 없다. 골품에서 밀리는 우리가 깨방정을 떨어봐야 무슨 소용이 있으랴.

어찌 됐건 어떤 사장님께서 파업기간 동안 전임자에게 지급하지 않은 급여 때문에 의금부로 압송된 이 사건. 의금부의 입장은 ‘메롱’에 가깝다.

전임자는 근로제공의무가 없고 사장님도 임금지급의무가 면제되는 ‘휴직상태’라고 하면서도(대판 1996.12.6 96다26671.), 출근을 안하면 ‘무단결근’이 된다고 하고(대판 1993. 8. 24 92다34926.). 사장님이 단체협약 등에 따라 전임자에게 일정한 급여를 준다고 하더라도 그건 ‘임금이 아니’라고 하면서(대판 1998.4.24 97다54727.), 전임자에게도 파업기간 중 ‘무노동 무임금’ 원칙이 적용되어야 한단다(대판 2003.9.2 2003다4815, 4822, 4839.). 이런 전차로 전임자들은 뒤통수가 얼얼할 수밖에.

잠시 한 박자 쉬자 - 이토록 안팎으로 전임자를 달달 볶는 이유가 뭘까. 두 가지다. 첫째, 노조의 동맥을 끊어 놓기 위해서다. 전임자 없는 노조, ‘야채인간’ 상태지 뭐. 둘째, 전임자들이 뭔가 특권을 누리고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직업운동가들의 완장 기득권 사라져야’라는 말이 나오는 이유가 그거지 뭐. 이 둘을 찰반죽하면 결론은 버킹검. 노사관계의 파트너로 인정 안하겠다는 거다. 국민들이 뽑으면 뭐하나, 맘에 안들면 대통령도 끌어내리는 마당에 전임자가 뭐 대수인가. 완장 중독에 걸린 이들이 용식이의 것을 찾아주려는 야무진 배려는 십분 이해하지만 왜 중죄에 해당하는 범죄를 저지르고 다시 경영일선에 귀환한 분의 ‘왕관 기득권’은 벗기려 하지 않는지 모르겠다.

고마해라 마이 뭇다 아이가? - 법원은 ‘파업으로 인하여 일반 조합원들이 무노동 무임금 원칙에 따라 임금을 지급받지 못하게 된 마당에 노동조합 전임자들이 자신들의 급여만은 지급받겠다고 하는 것은 일반조합원들에 대한 관계에 있어서도 결코 정당성이 인정될 수 없다’고 했다. 물론 법적 근거는 얇기만 하다. 찰지게 요약하면 이런 거다.

전임자에게 급여를 주는 이유는 생활상 불이익이 있을까봐 ‘임금 대신 주는 것’이므로 일반 조합원 보다 불리한 처우를 받지 않도록 하는 범위 내에서만 인정된다는 것이다. 그러니 일반 조합원 보다 유리하게 처우하는 것은 노사합의의 의도를 뛰어 넘는 것이므로 허용할 수 없다는 얘기다(대판 2003.9.2 2003다4815, 4822, 4839.).

근데 이 법원이 인용하고 있는 이 판결의 당사자는 사실 ‘이랜드 노조’의 전임자들이었다. 배재석(당시 노조 위원장), 이남신(당시 노조 사무국장), 홍윤경(당시 노조 교육홍보실장) 이 세 사람의 급여가 문제된 것이었다.

일반조합원들은 파업기간 중 무노동 무임금 원칙에도 불구하고 노사합의로 생계비 78만원(소득세 22만원 제외)을 이랜드 측으로부터 보전받지만 위 세 사람은 제외된 것이다.
그리고 이 소송이 제기되었다. 만약 이 세 분들이 한 몫 챙기려 한 것이라면 깨알 같은 증거를 가져오기 바란다.

연대정신도 판결로? - 법원은 법리가 아닌 ‘훈계’로 이 판결을 마무리하려 하고 있다. 일반 조합원들이 임금을 못 받는데 전임자가 급여를 받는 것은 ‘결코 정당성이 인정될 수 없다’는 꾸지람만 있을 뿐이다.

판결문의 자모음을 하나하나 분해해 빨고 말리고 탈탈 털어봐도 논리적 근거는 함량 미달. 좋다, 그 의도가 ‘연대정신’에 기반을 둔 것이라 치자. 반대로 일반 조합원들이 ‘우리는 괜찮으니 전임자 임금만은 지급하라’고 한다면? 그때도 법원은 안 된다고 버틸 건가.
연대정신을 법원이 판결로 말해줘야 아는 건가. 하기야 법원에서 말해 준 때도 있기는 했다. 1920년대 독일의 제국법원이 영역설(領域說)이라는 법이론 개발의 옵션으로 연대성이론을 덧붙였을 그때. 아득하다.
 
그러나 독일은 이 이론, 1980년대까지만 사용하고 버린다. 진짜다. 뻥 안치고. 책 소개해줘? 사볼텨? 저자는 쿠르트 비덴코프(Kurt H. Biedenkopf). 책 제목은 Die Betriebsrisikolehre als Beispiel richterlicher Rechtsfortbildung, 우리말로 대충 ‘법관의 법형성 사례로 보는 경영위험론’ 정도? 아님 말고. 이 책 독일 아마존에서 25유로면 산다. 배송비 빼고 약 38,000원. 오죽 했으면 읽도 보도 못한 책을 소개하랴.

엔딩 - 이 나라 조정은 전임자에게 ‘근로시간면제자’라는 작위를 하사하시어 연간 1천 시간에서 3만 6시간 동안 종속노동의 굴레에서 해방시켜 주시겠다 하시나니. 이는 현재 실세인 남인의 수장도, 재임 중이신 국왕께서도 포졸 복무에서 면제되신 경험을 바탕으로, 50평 미만부터 1만5천평 이상의 대지에서 일하는 백성들을 어엿비 너겨 만든 것이니 이를 두고 어찌 ‘동방면제국가’라 칭하지 않을 것인가.

‘친백성’이라면 ‘일하는 백성’이 최우선 아닌가. 국법이 허락하여 일하는 백성들이 그네들의 조직을 만들었다고 이토록 천시하고 홀대하는 이유는 뭔가. 이들이 모반이라도 일으킬 것 같은가. 오히려 그들은 ‘영포회’를 만들지 않았던가. 아무리 친백성 정책 떠들어봐야 쌍용차 노조진압의 공로자가 서울경찰청장이 되는 마당에, 오해와 불신은 ‘삽’시간에 번져간다.

이미 이 나라, 국왕께서는 단기 4342년 5월 여드렛날 케이비에스 ‘시사 360’에서 ‘4면이 바다’라 천명하신 뒤, 조선에는 동해·남해·서해, 그리고 지도상 표기되지 않은 ‘오해’가 생기게 된 바. 어획량은 고사하고 온 나라 비린내로 진동하니, 일하는 백성들은 ‘고해’에 빠진 지 벌써 오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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