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을 앓았던 경험이 있는 노동자가 쓰러졌을 경우 근로복지공단으로부터 업무상 재해로 인정받기는 쉽지 않다. 평소 고혈압이 있던 노동자가 뇌출혈로 쓰러졌을 경우 객관적인 노동시간·업무량의 증가를 입증하지 못하면 업무상 뇌출혈로 인정받기가 쉽지 않다.
반면 법원의 판단은 이보다 낫다. 대법원은 평소 정상적인 근무가 가능한 기초 질병이나 기존 질병이 직무의 과중 등으로 인해 자연적인 진행속도 이상으로 급격하게 악화될 때 업무상 재해로 인정한다. 업무와 질병과의 인과관계 유무도 보통 평균인이 아닌 해당 노동자의 건강과 신체조건을 기준으로 판단하고 있다.

연장·휴일근무에 시달린 영업팀장

한 제약회사의 영업팀장이었던 A(48)씨는 지난 90년 입사 이래로 의약품 영업업무를 담당했다. 2006년 1월부터는 서울 강남팀 영업팀장으로 근무했다. 그는 서울 강남지역의 병·의원에 대한 의약품 판매 영업책임을 담당했다. 그는 팀원들의 영업을 지원하고 영업목표관리 업무를 수행했다. 팀원들과 함께 하루 7~8곳의 병원을 방문해 의사에게 약품을 소개하고 경쟁사 활동을 조사했다.

외근 업무를 마친 후에는 사무실에 돌아와 영업 관리에 필요한 서류작성을 하는 등 내근 업무를 했다. 때로는 상사의 지시에 따라 매월 팀장 회의 안건을 정리하거나 다른 영업팀의 매출목표를 관리하기도 했다. 형식적으론 주 5일제 근무였지만 현실적으로 지켜지기 어려웠다. A씨는 영업업무와 함께 다양한 행사·세미나·경조사에 참석해야 했다. 때문에 연장근로나 휴일근무가 비일비재했다.

그는 2008년 9월(2회), 10월(6회), 11월(3회)에는 연장근로를 했고, 같은해 9월(2회), 10월(2회), 11월(3회)에는 휴일근무도 했다. 특히 9월부터 11월 사이에는 대한당뇨병학회 추계 학술대회, 대한내분비학회 추계 학술대회, 당뇨걷기대회에 회사 체육대회까지 등 각종 행사가 끊이지 않았다.

영업 실적 압박에 스트레스 받아

회사의 영업사원들은 실적에 따라 다양한 비율의 인센티브를 받았다. A씨가 속한 강남팀은 2008년 1분기 영업실적에서 1위를 했지만 2분기 6위, 3분기 5위, 4분기 7위로 영업실적이 점차 악화됐다. 이에 A씨는 2008년 11월 회사로부터 실적 부진에 따른 분발을 요구받았고, 매출 증대 전략을 달성하도록 독촉하는 메일을 받기도 했다. A씨는 영업실적 하락과 승진심사 지연 등에 따른 부담감으로 인해 동료들에게 정신적 스트레스와 육체적 피로를 호소하기도 했다.

그러던 어느날 오후 7시쯤 업무를 마치고 자신의 승용차를 이용해 퇴근하던 A씨는 두통으로 의식을 잃고 쓰러진 후 119 구조대에 의해 분당차병원으로 후송됐다. A씨는 ‘우측 대뇌출혈, 뇌실질내출혈’ 진단을 받았다. 그는 근로복지공단에 요양을 신청했지만 공단은 "뇌출혈을 일으킬 만한 업무상 과로나 스트레스가 인정되지 않고, 기존질환이 있었던 점에 비춰 뇌출혈과 업무 사이에 상당 인과관계를 인정하기 어렵다″는 이유로 업무상 재해를 인정하지 않았다.

하지만 A씨는 “연장근무, 휴일근무를 해 업무상 과로를 하고 영업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정신적 스트레스에 시달리면서 기존질환인 당뇨·고혈압이 자연경과 이상으로 급격히 악화됐다”며 공단을 상대로 요양불승인처분취소 행정소송을 제기했다. 법원은 A씨의 손을 들어줬다.

“과로·스트레스가 기존질병 악화시켜”

서울행법은 “원고는 고혈압·당뇨 등의 기존질병을 가지고 있었으나 2004년 이후로 계속 치료를 받아왔고, 업무상 접대를 위해 마시는 술을 제외하고 담배를 거의 하지 않았다”며 “같은 회사에서 영업사원으로 근무하던 근로자가 업무상 과로로 뇌실질내출혈을 일으켜 요양승인을 받은 적이 있다는 점 등을 고려하면 원고는 건강과 신체조건에 비춰볼 때 과중한 육체적 업무로 과로하거나 스트레스를 받았다고 볼 여지가 충분히 있다”고 밝혔다.

법원은 이어 다음과 같이 판시했다.
“계속적인 과로와 스트레스는 당뇨병·고혈압 등과 함께 뇌출혈의 발병원인이 될 수 있을 뿐 아니라 당뇨·고혈압을 악화시켜 뇌출혈을 일으킬 수 있다는 것이 일반적인 의학적 소견이다. 원고의 기존질병인 당뇨·고혈압은 업무와 관련이 없다하더라도 이 사건 상병의 발병 무렵 업무의 과중·매출감소·승진심사 지연에 따른 만성적인 과로와 스트레스가 당뇨·고혈압을 자연적인 진행 속도 이상으로 악화시켜 뇌출혈을 유발했거나 기존질병인 당뇨·고혈압에 겹쳐 뇌출혈을 유발한 것이라고 추단된다.”

[관련판례]
서울행정법원 2010년2월23일 선고 2009구단8024
대법원 2006년9월22일 선고 2006두7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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